|
제 4일
일행은 마카오로, 나는 침대에… ㅠㅠ
알람에 맞춰 제 시간에 일어났지만 몸 상태는 좋지 않다. 페리를 타고 마카오에 가서 휠체어를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야 한다. 홍콩으로 출발하기 전 마카오 관광청에도 전화를 해봤고, 마카오 버스회사에 전화해 장애인용 차량이 있느냐고 물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마카오에는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교통수단은 전무했다. 어쩔 수 없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하루 종일 마카오를 헤매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밤새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서 오한은 가라 앉았지만 엉덩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고 오늘 무리를 하고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러다 욕창이 아주 심해지면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상황까지 생기기 때문에 걱정이다. 3년 전에 두바이 갔다가 심한 욕창 생겨 결국 병원에 입원해 수술까지 하고 열흘 넘게 굶는 등 끔찍한 병원생활이 떠오르니 두렵다.
홍콩 여행을 준비할 때 너무 할 일이 많아 상휘에게 마카오여행 휠체어 동선 파악과 맛집, 관광지 등은 잘 알아 놓으라고 얘기는 해놔서 상휘에게 전화를 했다.
내 몸 상태를 얘기하고 혼자 일행을 이끌고 마카오에 갈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걱정을 하면서도 내 처지를 이해하는 듯 그렇게 하겠노라고 한다. 용태에게 식당에 내려가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어제 사온 육포도 가서 우리 일행에게 나누어주고 용태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내 식사를 준비해왔다.
한심하다. 어차피 이미 비싸게 계산된 음식이고 식당 측에서 양해를 하고 담아갈 플라스틱 용기까지 여러 개 챙겨준 상황이면 이것 저것 골고루 푸짐하게 챙겨올 것이지… 주스 한 잔, 커피 한 잔 정도도 챙겨다 주지… 야채라곤 보이지도 않고... 화가 나지만 뭐라 싫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에효~ 나 같으면 있는 거, 없는 거 가득 가득 다 챙겨다 줄텐데…
그리고 손선배님도 내 건강 걱정하시며 컵라면과 김치, 김을 잔뜩 주고 가신다.
아마 아침을 먹자마자 모두들 마카오 행 페리 선착장으로 출발하였을 것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선착장까지 잘 찾아갔을지 누워있어도 계속 마음은 불안하다. 무리를 해서라도 같이 갔어야 했나? 가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나? 도저히 안 되겠어서 상휘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선착장까지 잘 찾아갔고 곧 배에 오를 것이라고 한다. 휴~ 저녁 6시쯤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때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일단 배는 탔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여기고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점심은 손선배님이 주고 가신 컵라면과 용태가 아침에 챙겨온 식사 중 남은 밥을 조금 말아 김, 김치와 함께 먹었더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혹시나 해서 집에서 챙겨온 커피믹스도 뜨거운 물에 타 한 잔~ 다방커피... 역시 최고다. 나는 커피에는 입맛이 관대하다. 최고급 커피를 블랙으로도 잘 마시고 자판기 커피, 일회용 커피도 맛있게 잘 마신다. ㅋㅋㅋ 전천후 미각...
오후에도 내내 침대에서 쉬다가 4시가 조금 넘어 휠체어에 앉았다. 조금 있으면 돌아올 우리 일행들을 위해 조그마한 선물을 미리 준비하고자 함이었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는 에이다가 말한 홍콩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기화병가 寄華餠家라는 유명과자점의 에그롤 Egg roll이었다. 조금의 여유가 있어 용태와 천천히 빅토리아 하버 쪽으로 산책을 하였다. 오늘은 홍콩에서의 첫 날과 달리 먼저 길을 건너가니 지하도를 건너지 않고도 하버에 갈 수가 있다. 1881 헤리티지 1881 Heritage에 가기 위함이었다. 1881 헤리티지는 1800년대 중반부터 얼마 전까지 홍콩 해양경찰청 본부로 사용되던 건물로 빅토리아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유럽스타일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지금은 호텔, 명품샾, 고급식당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명한 곳이어서 인지 아울러 일요일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도 그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홍콩 첫날 밤에 구경한 것과는 달리 낮에 보는 빅토리아 하버와 시계탑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날씨가 좋아 홍콩섬도 깨끗하게 보였다. 자랑스런 한국 기업 'SAMSUNG'의 로고도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5시 반쯤 되어서 기화병가가 있는 침사추이 쪽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엔진소리에 도로를 보니 5억은 넘는 검은색 람보기니가 달린다. 하긴 홍콩에 돈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텐데…
기화병가가 있다는 침사추이역 지하상가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유명하다는 에그롤 선물상자를 우리 일행 숫자대로 사서 호텔 로비로 왔다. 기분 좋다~ 언제부터인가 선물은 받을 때보다 줄 때 훨씬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 중에 참 선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이금희 아나운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의 작은 선물이지만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초콜렛 선물을 자주 하는데 예쁜 박스에 특별한 모양과 맛의 초콜렛이 담겨있다. 그리고 예쁜 포장과 함께 고급스런 종이봉투에 담겨있다. 어디서 그런 특별한 초콜렛은 구하는지 너무 예뻐 먹기 아까울 정도이다… 대수로운 선물이 아니라는 듯 내놓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고맙고 기분 좋은지 모른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우리 일행은 오지를 않는다. 한 시간쯤 기다리다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다. 이제 막 배에서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덟 시가 넘은 어둑어둑한 시간에 휠체어가 한 대, 두 대씩 보인다. 반가워라~ 그래도 매일 종일 같이 지내다가 한나절을 떨어져 있었더니 무지 반갑다. 이산가족 수 십 년 만에 상봉하듯이… ㅎㅎㅎ
아무래도 홍콩에 와서 중국음식은 실컷 먹었고 한식도 먹었고 이태리 음식도 먹었다. 아침은 매일 서양 뷔페식으로 했다. 우리 일행은 오늘 점심을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식으로 했을 것이다. 중국음식을 또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우리 일행이 오기 전에 에이다에게 물어 호텔 근처에 휠체어 가기 편하고 깨끗한 일식당을 알아 놓았다.
마카오에 다녀온 고생담을 한바탕 늘어 놓고 난 후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일식당을 찾아갔다. 침사추이역과 바로 다음역인 조단 Jordan역 중간쯤에 식당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겠느냐, 휠체어를 타고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그냥 휠체어 채로 가잔다. 다행히 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조금 커서 두 대씩 탈 수가 있다. 이곳 역시 에이다가 미리 예약을 해주어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각자 입맛에 맞게 음식을 주문하였다. 냄비우동, 덮밥, 모리소바, 캘리포니아롤 등을 주문하여 먹었다.
아무래도 서양음식보다는 동양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는다. 한국 관광객인 것을 눈치 챈 일본인 식당 지배인이 김치를 갖다 준다. 김치 한 점 입에 들어가니 입이 더욱 시원해진다. 허옇고 맛없는 일본식 기무치가 아닌 벌겋고 맛깔나는 한국식 “김치”였다. 저녁 식사를 잘 마치고 나와 두 정거장 거리의 몽콕 야시장 거리로 가자고 하였다. 호텔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조단역 근처의 템플 스트리트와 몽콕역의 레이디스 마켓은 꼭 가보라고 하였다.
조단역까지 걸어 템플 스트리트 Temple Street 야시장을 구경하고 지하철을 이용해 몽콕까지 가려고 했다. 상휘는 저도 몸 상태가 영 좋지 않다며 호텔 가서 쉬겠다고 하였고, 잠시 함께 가던 태정씨는 휠체어 배터리 게이지가 급격하게 떨어졌다며 불안해서 멀리 가기는 힘들다고 호텔로 돌아간단다. 결국 배꽃님 내외분과 나, 용태가 조단역으로 향했다. 시간이 꽤 늦어 템플 스트리트는 포기하고 몽콕역의 레이디스 마켓 Ladies’ Market 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찾았더니 마침 공사 중이란다. 계단형 리프트가 있다지만 그것을 타고 세월아 내월아 시간을 지체하기가 그렇다. 그리고 시간도 꽤 늦었는데 몽콕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지하철이 끊겨도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신다.
그래도 거기까지 온 고생이 아까워 지나가던 동양인들에게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을 물어보니 이리저리 손으로 가르쳐준다. 그러더니 안 되겠다는 듯 직접 야시장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겠다며 두 명이 앞장을 선다.
가는 길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눴는데 이 청년 두 명은 스리랑카에서 5년 전에 일하러 홍콩에 왔다며 스리랑카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이 일하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한밤중에 거무스름한 외국인 청년 두 명이 길을 안내해 주는데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어 약간의 경계심을 갖고 그들을 따라갔다. 다행히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야시장 입구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고는 환하게 웃으며 제 갈 길을 간다. 고맙다. 홍콩 와서 홍콩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얻었지만 또 다른 외국사람들에게도 도움을 받는다.
제대로 된 야시장이다. 천막들이 빼곡히 3열로 길게 줄지어 있고 오만 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다. 한 켠에서는 홍콩의 서민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름 아름 모여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우리나라 장터 음식 같은 해산물을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휠체어가 다니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살만한 물건도 없다. 결국 손선배님, 나, 용태는 100 HKD에 3장 하는 짝퉁 폴로 티셔츠를 사고 장난감 가게만 보면 손주생각에 지갑을 여시는 배꽃님은 무선 모형 자동차를 또 한대 사셨다. 야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홍콩의 명물이라는 과일주스 가게가 또 눈에 보인다. 어제 망고주스를 먹었으니 오늘은 딸기주스를 마셨다. 어제 손주 선물 사러 가시느라 침사추이에서 망고주스를 못 드신 배꽃님은 망고주스를 드셨다. 용태가 어제 마신 딸기주스보다는 맛이 덜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잘 마셨다.
시간이 꽤 늦었다. 천천히 호텔 쪽으로 향했다.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중국 무술영화에서 인사할 때 하는 손동작 조형물과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듯한 귀신 나올 것 같이 기기묘묘하게 생긴 나무들 앞에서 사진도 찍으며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호텔에 돌아오니 11시가 훨씬 넘었다. 그렇게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은 지나간다. 이제 내일이면 서울로 떠난다. 조금은 아쉽고 부족했지만 두고두고 이야기거리 많을 홍콩의 밤이 소리 없이 깊어간다.
|
첫댓글 우하하 그 우여곡절 끝에 산 짝퉁 폴로 셔츠중 하나는 내 수중으로 들어왔도다.. 고마워.. 아부지께 빼았겼지만.ㅋㅋ
고맙긴... 우리 홍콩팀이 워낙 쇼핑에는 관심이 없으셔서 나 역시 산 물건이 없어. 짝퉁 폴로 셔츠 세 장이 다야. 종혁이, 영선이만 겨우 돌아오는 뱅기 안에서 조그만 장난감 하나씩 사고...
마카오 여행기는 배꽃님이 이미 올리셨어요~ 챙겨 보세요~ 홍콩여행기도 이제 하루 남았네요. 지루하게 오래 끌어서 죄송합니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로는 머리 고이고 다른 손의 두번째 손가락 한 개 가지고 타이핑을 하니 참 느리네요... 이해하세요~ 그래도 이 자세로 타이핑하여 91년, 98년 책 두 권을 썼답니다. ㅎㅎㅎ
이렇게 대하드라마`홍콩야화`가 막을 내리나요?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잘 읽고 봤어요. 다음작에는 저도 출연예약(ㅎ)이요.
가계약했다. 계약 깨면 위약금 왕창 물릴거야~ 담엔 꼭 같이 가자...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부러움과 재미를 동시에 느끼면서요...^^* 저녁 먹는 것도 미루고 처음부터 쉬지않고 숨차게 댓글가지 다 읽었네요. 지기님 많은 고생은 하셨지만 가족들이 모두 든든해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개비 생각 맞지요?
이제 끝이군요....ㅠ.ㅠㅋㅋㅋ 하루하루 글 올라오기 기다렸었는데....ㅋㅋㅋ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요~ㅋㅋㅋ
앙겔로스님 위해 여행 한번 더 갔다올까요? ㅎㅎㅎ 끝까지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홍콩여행 마무리 글은 곧 올릴거예요~ 끝맺음은 잘해야죠~ ㅋㅋ
음...일행과 떨어져 나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셨네요...그래도 오후에 기운차려서 그나마 관광해서다행입니다. 커피취향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릭셔리하고 우아한척 무슨 무슨 원두니 머니 함써 마셔도 다방커피들어가면 좋아서 행복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마카오에 못 가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서 병원까지는 안 가게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하지요. 언제 커피 한 잔 하시죠~
티비 드라마 보면 시청률이 올라간다 싶으면 고무줄 늘리듯 방송 횟수를 늘리던데...홍콩 여행기는 그런거 없나요?
여행고수 해오름님의 지난 여름 미국여행기 새로 시작하시면 대박날 것 같은데... 통촉해 주소서~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잠시 잠시 들어와 홍콩여행기 읽을때마다 생각나는 순간이 그립습니다. 제 사진도 보내드려야하는데 오늘 보내드릴께요.
사진 보내주세요... 제가 정리해서 카페에 올릴게요~
저도 지기님 홍콩여행기 읽으며 홍콩에서 돌아다니던일 엘리베이터 수없이 탔던일 무슨 구경이나 난듯이 서서 사진찍고 하던 리픗트타던일등들 생각이 나네요 함께여행 은 하였지만 지기님 쓰신 여행기 가 더 실감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은 했지요? ㅎㅎㅎ 죄송해요. 고생만 하시고... ㅠㅠ
아니얘요 고생 은 무슨고생이요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는데요
저도 헤르티지1881 앞에서 빨강 페라리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