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태백산맥> 순천사범 출신들, 진짜 순천사범과 관련 있을까? (에필로그)
소설<태백산맥>에 보성출신 국회의원 이야기가
나온다. 제헌국회의원은 한민당 소속의
최익승 의원이고, 2대 국회의원은 변호사
출신 안창배가 최익승을 이기고 당선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보성의 실제 국회의원은
제헌국회의원이 한민당 소속의 이정래(李晶來)
의원이고, 2대 국회의원은 국민회 소속의
김낙오(金洛五)의원이다. 소설
속 인물은 가공의
인물들이다.
작가 조정래씨는 <태백산맥>을 집필하면서 "고향을 샅샅이 뒤지게 되었다.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과 엮어져 나가는 모든 사건들은 다 허구이지만 지명들은 모두 실명 그대로이며, 지형
의 묘사나 도시의 구도도 실재 그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물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이로
미루어 실존하는 순천사범 출신 인물들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소설<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수 많은 빨치산
가운데 실명을 쓰고 있는 경우는 이미 과거에
사실로 굳어져 있는 사람들 뿐이었다. 노동당
전남도당 위원장 박영발, 전남도당 유격대
사령관 김선우,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 14연대 출신 김지회 등은
실존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외의
빨치산 이름은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인
셈이다.
순천사범 음악선생이었던 오경심 선생과 남편인 박만고 씨에 대해서는 여순사건 당시 구체
적인 활동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당시 14연대 반란군이 점령했던 지역은
여수지구와 순천지구, 광양군, 구례군, 곡성군, 보성군 등이었다. 당시 남로당의 지역 관할은
군당 위원장 밑에 지역 인민위원장(시장, 군수, 읍장, 면장에
해당)이 속해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인민위원장은 그 지역의
명망가 가운데 포섭이 가능한 사람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오경심 선생의 남편 박만고 씨가 점령지역 내의 어떤 곳에서 인민위원장을 맡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하겠다.
여순사건 당시 "여수지구 노총위원장 김창업(金昌業)이 여수 중앙동 로터리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살해되기 전 <봉선화>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으며 이후 이 노래가 여수, 순천, 보성, 광양
일대에서 대유행을 하고 나중에는 토벌군에 처형당하는 인공 부역자들까지도 <봉선화>를 애창
했다."(백선엽 육필 증언록, 실록 지리산 P 170)는 사실은 오경심 선생의 <봉선화>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본다.
소설<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재
인물이 아니지만 어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그려지는 경우는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년
빨치산 이야기는 몇 년전에 작고한 광주지역
재야 경제학자 故 박현채 씨가 그 모델이고, 실제로
고인이 생전에 작가와 함께 자신이 빨치산
으로 활동했던 곳을 안내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출소공산주의자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쓴 이기봉 씨는 <태백산맥>의 주인공 염상진은
1995년 2월 사망한 출소공산주의자 '윤기남(尹基南)이 그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윤기남은
1925년 전남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에서 빈농 가정의 3남3녀중
막내로 출생, 1939년 해남 달삼
보통학교를 졸업후 일자리를 찾아 만주지역으로 출국, 전전하다가 1944년 빈손으로 귀국하여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46년 5월 조선공산당(남로당 전신)에
입당한다.
그는 순천, 장흥, 보성군 등의 군당위원장을 역임하는
가운데 1946년 9~10월 노동자 총파업
에 가담하였으며 1948년 남한의 5.10 총선거 반대투쟁과 1948년 10월 여순사건 가담후
1949년3월 전남 보성 벌교지구 유격대사령관(통칭 '홍司令', 무자비하기로 악명 높음)을
맡아
조계산, 모후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50년 7월 북한 인민군이 광주에 들어오자 광주에
들어가 인공통치의 주체가 되었다. 1950년 9월 인민군이 패퇴하자 윤기남은 지리산, 백아산,
유치산 등에서 유격대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기남은 1953년 고향 해남으로 비밀 잠입했다가 체포되어
1954년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4.19혁명으로 감형 받아 1968년 비전향으로 출소하였다. 그러나 1971년 5월 호남지역
'통혁당'사건에 연루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재복역하다 1973년 6월 비전향으로 출소했다.
그후 198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1983년까지 복역했고, 다시 보안감호 처분을
받아 1989년 7월까지 보호감호소에 있다가 출소하여 1995년2월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출소공산주의자 그들은 누구인가' PP.
246~248)
<태백산맥>에서 실명이 언급된 빨치산 사령탑의 최후를 살펴
보면 "당시 전북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1구에서 출생한 '남부군'사령관 이현상(가명
盧明尙)은 1953년 9월18일 지리산 빗점골
에서 토벌대에 사살되었고, 전북 도당위원장
방준표(경남 거제 태생, 대구사범 졸업)는 1954년
1월31일 남덕유산 아지트에서 토벌대의 수류탄 공격으로 폭사하였다. 전남 도당위원장 박영발
(경북 봉화 태생)은 1954년 1월중순 지리산 뱀사골의 비트(비밀아지트)에서 토벌대에 포위돼
권총으로 자결했고, 전남 유격사령관
김선우는 1954년 2월27일
광양 백운산 아지트를 습격
받자 수류탄으로 자결했다. 김선우는
백아산과 백운산을 오가며 빨치산들을 지휘했는데,
지식인이었던 그는 역사와 이론서적을 탐독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그의 아지트에서도 2천권
정도의 책이 발견됐다." (백선엽
육필 증언록, 실록 지리산 PP. 365~368)
그동안 후배를 아끼는 마음으로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 선배님들께 감사드리고,
매회 마다 성원하는 글을 남겨주신 선배님들께 일일이 답글을 올리지 못한 게으름을
피운데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선배님들의
자상한 보살핌이 저에게 피곤을 잊고 자료를 섭렵하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활력소 구실을 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선배님들의 건안을 빕니다.
- 이홍기 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