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은 이상성 선생님의 아호 이자 은사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들 모임 중 하나이다.
2003년 7월,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의 모임을 마지막으로 17년 만에 모임이 이뤄졌다.
글샘모임 카페장인 양길영(69세, 청산초 49회) 목사가 중국선교사로 15년간 파견 나가며 활발하던 다음카페모임《청산은 엇지하여 만고에 푸르르며》도 일시 중단되었는데 이번 모임을 통해 다시 재개될 움직임이다.
7월17일 오전11시 서울 서초동 쉐라톤 팔레스 호텔 로비, 청주서 아침 일찍 상경하신 이상성 선생님을 뵈온 글샘 12제자들은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양길영 목사는 그동안 모임이 이뤄지지 못한 자책감인지 호텔로비에 넙죽 엎드려 큰절로 예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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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 뷔페 테라스 룸으로 옮겨 ▲양진권 목사의 경과의 말씀 ▲참석자소개와 인사 ▲박진권 사장의 환영의 말씀 ▲한광수 제독의 건배의 말씀 ▲은사님 말씀 ▲삼행시 잔치 ▲고향의 봄(이상성 선생님 개사) ▲청산학교 교가 ▲ 글샘모임 노래 순으로 3시간여 흥미진진하게 이어졌다.
이상성 선생님은 모임에 앞서 일주일 전 고지한 '삼행시 우수작' 심사를 하며 제자들의 뜨거운 사랑에 감정이 복받치셨는지 눈시울을 적셨다.
백발이 성성한 은사님께 바치는 제자들의 삼행시는 소중한 보물을 선물하듯 형형색색 정성이 녹아있었다. 삼행시를 하나하나 살피던 스승은 제자들의 사랑에 감동했는지 눈물이 고였다. 이날 삼행시 시상식에서 차하 홍경의(청산초 53회)회원, 차상 홍영숙(청산초 51회)회원, 영예의 장원 상엔 양길영 목사님 사모인 박은옥님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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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해군 소장으로 퇴역한 예곡 출신 한광수 제독의 건배로 본격적인 모임이 시작 됐다. 퇴역 후 제복차림이 부담스러워 정장을 거의하지 않는다는 한 제독은 이날 감색정장으로 예를 차리고 굵직한 목소리로 “청산이여 영원하라!” 건배제의를 하는데 수많은 장병들을 지휘하던 백전노장의 기가 살아 있었다.
이어 이번 모임을 위해 호텔식사비와 숙박비 등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희사한 박진권 사장에 환영의 말씀에 서 "앞으로도 그동안 받은 스승의 은혜에 보은 하는 마음으로 매달 모임시 식사제공을 하겠다. "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 사장은 현재 서울, 경기, 충북 등지 4곳 공장에 "100여명의 직원들 월급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날을 보내면서도 은사님을 찾아뵈지 못해 늘 죄송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라도 모시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고 말했다.
이상성 선생님은 인사말을 통해 “방금 건배제의를 한 한 제독은 내가 웅변 조금 가르쳤는데 잊지 않고 나를 도와주고 내가 덕을 많이 받았다.” 며 감사해 하고 “내가 삼행시를 심사하며 아주 감탄을 했다. 전부다 상을 줘야겠구나, 제자들이 이렇게 나를 생각 하는구나 나는 제자들에게 준 것이 별로 없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잊지 않고 있구나 하며 눈물을 흘렸다." 며 소회를 밝혔다.
이상성 선생님은 “제자들의 바람을 잊지 않고 건강히 살아야 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나는 제자들을 만날 때 마다 삶의 의욕이 생겨 오랜만에 만나보니 더욱 반갑고 좀 전에도 얘기 했지만 양 목사가 17년 동안 소식이 없어 혹시나 중국에서 감옥살이를 하지 않나 만약 감옥소식이 들리면 면회라도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양목사를 다시 만나니 참 반갑고 몸 둘 바를 몰랐다. 제자들이 이렇게 잘 되고 끝까지 생각하는구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 전했다.
특히 이 선생님은 “여기 있는 제자들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필요한 직책을 갖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다.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늘도 오면서 우리모임에 투스타(한광수 제독) 까지 온다 하니 깜짝 놀라고 젊은 사람들도 부러워했는데 오늘 모임도 뜻 깊게 보내고 가능하면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이런 자리를 가끔 마련해서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만나 추억도 더듬고 앞날에 계획도 서로 상의해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갖도록 간절히 바라겠다.” 며 인사말을 마쳤다.
이상성 선생님은 어떤 모임이든 철저히 준비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모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은사님의 배낭가방엔 오랜만에 만나는 제자들과의 모임을 위해 준비한 족자시, 삼행시 표창장과 상금봉투 등 제자들을 위한 선물꾸러미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어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삼행시 잔치’ 잔치가 열렸다. 제자들도 그동안 활동해 온 책자와 유인물들을 나누며 서로의 건승을 빌었다. 이윽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회원들은 고향의 봄, 청산교가, 글샘모임 노래를 부르며 다음모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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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모임 직후 이상성 선생님은 424호 숙소로 자리를 옮겨 소설가 홍영숙 제자의 사회로 41년 교직생애를 되돌아보는 〈가제〉 ‘일촉 이상성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 다큐방송 인터뷰를 2시간여 진행했는데, 홍영숙 소설가는 인터뷰를 마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시고 성실하고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면서 살아오신 일생이 아름답습니다, 감사 합니다, 저희들도 본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원래 이날 밤 인터뷰 진행예정이었는데 일과를 마치신 이상성 선생님은 호텔에서 일부러 잘 이유가 없으시다 며 청주 요양원에 입원중인 사모님이 걱정되셨는지 양길영 목사내외의 배웅을 받으며 저녁식사 후 곧바로 귀가 하셨다.
■글샘 모임
이상성 선생님은 41년 교직생활 중, 청주 한벌초등학교 교장 시절 한국글짓기 지도회 충북지부장을 역임하고 충북 어린이 글짓기 지도분야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오셨는데 이때가 생애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바른 맘 · 고운 꿈」을 가꾸기 위해 충북글짓기지도회(1970년)를 창립하고 28년간 총무, 부회장, 회장, 고문을 역임하며 매년 알찬행사와 글짓기 지도에 관한 연구를 하는데 앞장서 충북 글밭을 갈아 온 실적은 전국적으로 인정받아 1974년 한인현 글짓기지도상을 받았고 1998년 5월 한국교육자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글샘모임이 탄생 된것도 이즈음, 글짓기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상성 선생님의 수제자들 중엔 소설가, 동시작가, 시인 등 대부분 이상성 선생님과 고향이 같은 청산면 출신으로 다수의 제자들이 문단에 등단해 활동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