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해변시인한교 시콘서트 강의자료>
나의 보령 체험과 시
- 공광규/ 시인
1.
보령은 내 고향 청양에서 서쪽에 있다.
어렸을 때, 대천해수욕장은 이름으로만 잘 알고 있었고, 무창포해수욕장이 보령에 있는 것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서 멀고 높게 보이는 월산과 청태산 넘어, 더 멀리 오서산 넘어 대천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천에 나와 본 기억이 없다.
아무튼 우리 동네 서쪽인 대천은 노을이 아름답고, 철새가 멀리 날아가는 곳이고, 겨울바람이나 눈보라가 쳐들어오는 곳이었다.
2.
이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내가 대천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어려서다.
고향에서 한 집에 같이 살던 작은어머니가 딸 둘을 데리고 나가 산 곳이 대천이라고 했다.
딸 둘 중에 하나는 나보다 한 살이 많고, 하나는 나보다 두 살이 적었다.
3.
나는 보령군 청라에 산 적이 있다.
그러니까 1960년 4월3일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뚝섬에 가서 살다가 홍성 옥암리에서 살다가 청라에 내려와 산 것이다.
아버지 고향인 청양으로 가기 전이었고,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다.
청라 탄광촌이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밀가루빵을 쪄서 나와 여동생에게 아버지께 가져다드리라고 한 모양이다.
두 살 아래 여동생과 서로 쟁반을 빼앗으려고 하다가, 내게 쟁반을 빼앗긴 여동생이 입을 크게 벌리고 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에 청라에 있는 갱스카페에 두 번 다녀왔다.
한번은 청양 가는 길에 여동생 둘과, 한 번은 보령 가는 길에 김순진 시인과.
갱스카페는 청라탄광 광부들의 교육장과 목욕탕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카페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에 옛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페에 앉아, 갱도에서 시커멓게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나와 여기저기 걸어 다녔을 30대 초중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젊은 아버지가 그곳 교육장과 목욕탕에 드나들었을 모습을 상상하다 돌아왔다.
공터에 세워놓은 거대한 발동기도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어려서 구봉금광에서 시골동네까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거대한 발동기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4.
대천에 처음 온 기억은 시인으로 등단을 한 뒤 문학기행을 오면서였던 것 같다.
『분례기』를 쓴 방영웅 소설가의 생가와 마을, 『만다라』를 쓴 김성동 소설가의 생가와 마을, 『관촌수필』을 쓴 이문구 소설가의 생가와 마을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
물론 방영웅, 김성동, 이문구 소설가가 동행했다.
아마 도서출판 한길사에서 주관한 ‘한길문학기행’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현재 한국작가회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한 문학기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5.
나는 서울 또는 고양시에 살면서 시골에 내려갈 때 대천역이나 예산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청양에 들어갔다.
어느 해인가도 대천역에 내려 보령의 문인들을 불러 대천해수욕장에 나가 술을 마셨다.
아마 마흔 무렵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눈발도 간혹 보였던가.
해수욕장 모래 위에 세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탁자에는 술병이 뒹굴고, 뒹굴던 술병이 모래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디선가 붕붕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뒹굴던 빈 소주병이었다.
아니었나, 착각이었나.
아무튼 술병이 우는 이 신비한 소리를 시로 써보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어느 문학잡지인지 기억이 없지만, 시를 발표할 기회가 있어서 끙끙거리며 시를 다듬었다.
그리고 발표를 하고 2004년에 낸 시집에 실었다.
시간이 지나, 김유제 시인이 이 시를 돌에 새겨 자신의 마당가에 세워놓았다.
아주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거기보다는 내가 술 마시며 시를 썼던 장소가 확실한 해수욕장 시민탑광장 어디쯤에 옮겨두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소주병」 전문
6.
아무튼 나는 대천해수욕장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이 시를 썼다.
그리고 이 시는 어쩌다가 내 대표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좀 낡은 심상이라서 마음에 썩 안 들기도 하지만, 소주가 워낙 대중들에게 친숙한 술이니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 같다.
뜻밖에 시 「소주병」은 고등검정교과서 국어1(비상교육, 268)쪽에 실렸다..
저작권회사에서 보내온 목록을 보니, 이시 말고도 「얼굴반찬」(중등검정교과서 국어3-1, 비상교육, 174쪽/ 중등인정교과서 기술가정2, 지학사, 16쪽/ 고등검정교과서 사회문화, 비상교육, 233쪽), 「별국」(중등검정교과서 국어2, 좋은책신사고, 14~17, 수필 ‘맑은 슬픔’), 「별 닦는 나무」(고등검정교과서 문학, 해냄에듀, 16쪽)가 실려 있다.
교과서들이 이전에는 국정이었다가 2007년부터 검정으로 바뀌면서, 예전과 달리 교과서에 실리는 기회가 많은 것 같다.
7.
아무튼 시 「소주병」은 쉽게, 아니 너무 쉽게 읽힌다.
시는 쉽게 써야 한다.
시는 잘 읽혀야 한다.
시는 취미와 교양으로 읽고 써야 한다.
시는 문자를 아는 사람이면 쓸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많을수록, 문학잡지는 많을수록 좋다.
이런 내 주장을 설명하기에 좋은 시다.
시에서 소주병을 아버지로 비유했으니, 독자들이 알아차리기 쉽다.
젊어서는 자식에게 다 퍼주고, 늙어서는 빈 소주병처럼 버려지는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요즘에는 빈 소주병을 분리수거라도 하지만, 이 시를 쓸 당시만 해도 빈 소주병은 길거리에 버려지고, 진창에, 시궁창에 버려졌다.
길가는 사람들이 함부로 발로 차면 뒹굴뒹굴 굴러가 도랑에 처박히기도 했다.
8.
물론 「소주병」을 쓸 무렵 대천에 여러 번 왔었고, 해변 카페 여주인 백모라는 분도 기억난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누나뻘이었다.
그 카페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시를 썼던 기억이 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소주병」을 쓸 때는 대천에 오면 동시작가 안학수 선배와 자주 만나던 때였다.
9.
김유제 시인과 인연이 되면서 보령에 자주 드나들었다.
보령에서 이것저것 강의와 심사를 여러 번 했다.
그리고 2018년 보령여름시인학교에 왔다가 이런 시를 써서 「문학사상」에 발표했다.
2018년 10월호다.
여름날 해변에
어린아이가 손으로 쌓아놓은 모래탑을
파도가 무심히 가서 무너뜨리고 있었지
어린아이는 천진하게도
다시 파도가 와서 부숴버릴 줄 알면서도
다시 모래탑을 쌓고 있었지
내가 해변 끝까지 갔다 되돌아와 보니
모래탑은 무너져 있었고
어린아이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지
나는 생각했지
무너진 모래탑을 보며
천진했던 어린아이를 생각하며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린아이가 쌓아놓은 모래탑을 무너뜨리듯
시간이 와서 무너뜨리면 어쩌나 하고
그렇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시간의 모래탑일지언정
인생 끝까지 쌓아가기로 했지
- 「시간의 모래탑 일지언정」 전문
행사에 왔다가, 해변을 끝까지 걸어갔다 오면서 착상한 시다.
아무리 손으로 쥐어도, 아무리 높이 쌓아도 파도가 오고 시간이 가면 무너져 내리는 모래탑에 인생과 사랑의 무상성을 비유했다.
그렇더라도 사랑만은 인생 끝까지 쌓아가자는 의지를 얘기했다.
페츄니아 꽃바구니가 매달려 있던 우연프로라호텔 앞 광장이었던 것 같다.
이 시를 김유제 시인이 보령의 남포벼루 명장 분께 부탁하여 벼루 뒷면에 새겼다는데, 보령 어디에 실물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난다.
10,
2018년 9월7일, 서해의 먼 섬 외연도에도 다녀왔다.
하룻밤 자고 왔나?
아무튼 보령시정살펴보기 보령문협 도서탐방이었다.
서해 멀리 있는 섬들이 오래전부터 궁금했었고, 잘 다녀와 시를 한 편 썼다.
《보령문학》 16집에 실었다.
밤새 파도와 아랫도리를 주고받아
바위 벼랑이 붉은 섬 둘레길
맨발을 들이밀자
잠을 깬 산비둘기와 풀벌레가 울었어
돌삭금 모래알을 반지로 앉힌 누리장나무 꽃
사위질빵 덩굴에 올라앉은 흰 포말
인기척에 놀라 나방을 물고 도망가는
피부가 까만 어린 뱀이 귀여웠어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건너간
은실로 짠 거미줄
빨갛게 영그는 제피 열매
동백나무 숲 지나 봉화대에 오르면
등이 예쁜 횡경 대청 중청 세여 황도
이런 섬들이
햇살 부스러기를
짐승처럼 주워 먹고 있었어
- 「외연도」 전문
11.
생각해보니 보령을 제재로 한 시들이 몇 편 더 있는 것 같다.
장항선을 타고 오다 청소역을 지나다 쓴 시가 있었던 것 같고, 갱스터카페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가 있는 것 같지만 생략한다.
2013년에 낸 시집 『담장을 허물다』 표제시 「담장을 허물다」에 이런 문장이 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해 보령 쪽에서 아직 응답이 없다.
보령 영주가 아니면 보령 문인이라도 응답 바란다.
시가 길어 전체 인용을 생략하니 핸드폰으로 ‘공광규 담장을 허물다’ 연관검색을 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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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1960년 생. 1986년 월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담장을 허물다』 『서사시 금강산』 『서사시 동해』 등과 산문집 『맑은 슬픔』. 윤동주상, 신석정문학상, 녹색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