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0
과도기 전쟁에서 단층선 전쟁으로(p407)
<과도기 전쟁:아프가니스탄과 걸프 전쟁>
걸프 전쟁을 첫번째 문명 전쟁이라고 하나 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이 최초의 문명전쟁이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소련의 패배는 공산정권에 대한 레이건 독트린의 실효성이 입증되었고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에 대한
굴욕을 소련에 안겨주는 쾌거였다.
아프간 전쟁의 성격은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의 원칙에 바탕을 두지 앟고 외세를 이겨낸 최초의 사례다
서구가 자유세계의 승리로 보지만 이슬람교도는 이슬람의 승리로 간주한다. 미국의 자금지원과 무기 제공이 소련을 패퇴
시기는데 긴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슬람의 집단적 노력도 결정정 역할을 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미국의 기술, 사우디아라비아의 돈, 이슬람교도의 수적 우세와 열정이라는 세가지 요인에 소련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산물로 비이슬람 세력에 맞서 이슬람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열의를 가진 이슬람 기구들의 불안한 동맹관계를 남겼다.
전투경험이 많은 노련한 전사들, 막사, 훈련장, 병참시설,이스람세계를 두루 연결하는 정교한 인적. 조직적 연계, 미국의 군사
장비와 무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성취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 새로운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유산으로 남겼다.
걸프전쟁이 문명 전쟁으로 비화한 것은 서구가 이슬람권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했고 서구인은 그 개입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반면 세계 전역의 이슬람교도는 그런 개입을 자신들에 대한 도발로 해석하고 서구 제국주의의 또 한 차례 폭거에 맞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이슬람 권에서도 분열은 있었지만 점차 미국의 개입을 이슬람에 대한 개입으로 보고 반대했다.
아랍인과 그밖의 이슬람교도들은 후세인이 잔혹한 독재자라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문제라
고 생각한다. 쿠웨이트 침공은 자민족 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집안 문제이며 국제 정의라는 거창한 이론을 앞세워 개입하는
세력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거나 서구에 대한 아랍의 종속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들은 이것을 '십자군과 시온주의자'의 동맹이 이슬람과 이슬람 문명'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고 규탄했고
이라크 국민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공격 앞에서 이라크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서구인과 시온주의자의 음모에서
나온 십자군 전쟁이라는 논리는 지하드를 정당화시켰고 더욱 광범위한 모병의 필요성을 낳았다.
전쟁을 통해 이슬람 내부의 반목들은 사라지고 와해되었다. 이란과 이라크관계 요르단정부와 팔레스타인 관계 갈등들이 사라지고
그들의 유대감만 커졌다.
걸프전쟁은 이처럼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전쟁으로 시작되었다가 이라크와 서구의 전쟁이 되었고 다시 이슬람과 서구의 전쟁으로
변모되더니 종국에 가서는 많은 비서군들에게 동양과 서양의 전쟁, '백인의 전쟁', 해묵은 제국주의의 새로운 분출'로 간주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뉴욕과 런던에서 승리의 행진이 있었지만 아랍인들에게는 환호해야 할 이유를 전혀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배적
분위기는 실망, 환멸, 굴욕, 원한의 감정이였다.
전쟁이 끝난 뒤 페르시아 만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에 점차 비판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걸프 전쟁은 탈냉전 시대의 문명과 문명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자원 전쟁이었다. 세계 최대의 유전을 서구의 군사력에 안보를 의탁
하는 사우디아리비아와 아랍 토후국들이 관리하느야 아니면 서구에 석유를 무기로 활용할 능력이 있고 또 그럴 의사가 있는 독립
적인 반서구 국가들이 관리하느야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전쟁 전에는 이란, 이라크, GCC, 미국이 페르시아 만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전쟁이 끝난 뒤 페르시아 만은 미국의 호수가 되었다.
<단층선 전쟁의 특성(P418)>
종교적, 문화적 차이가 근본적인 원인
국가 간 전쟁보다 내전 또는 국지 분쟁 형태(나라 안의 분쟁이 국가간 분쟁보다 6배나 기간이 길다)
더욱 잔혹하고 무자비하며, 종종 민간인 학살 발생
승패 판가름 어렵고, 장기화 가능성 높음
국제 사회의 개입에도 해결 어려움
첫째 상이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둘째 A1집단과 B1 집단이 싸움을 벌이고 이들은 전쟁을 확대시켜 문명적 친족 집단인 A2, A3, A4 집단, B2, B3,B4 집단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노력하며 이들 친족 집단은 전투를 벌이는 당사자들과 일체감을 느낀다. 현재의 발달된 교통망과 통신망이 더욱더 그렇게 만들었다.
<발생률: 이슬람의 피 묻은 경계선(P422)>
단층선 전쟁의 압도적 다수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 교도를 가르는 경계선을 따라 일어났다.
이슬람 집단과 비 이슬람집단의 분쟁 양상이 다른 문명에 속한 집단들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
1. 테드 거
1993!1994년 사이 50건의 민족간 분쟁 가운데 26건이 이슬람교도와 연루되어 있다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 사이의 분쟁은 모두 20인데 이중 15건이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의 분쟁이였다.
2.뉴욕타임스
1993년 59개의 분쟁 중에서 31개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들 간의 싸움이였는데 이 문명 간 분쟁 가운데 2/3가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의 분쟁으로 파악된다.
3.루시 시버드
1992년 진행된 29건의 전쟁을 확인했다. 모두 12건의 문명 간 분쟁 중에서 9건이 이슬람과 비이슬람교도 사이에서 발생
이슬람 국가들의 평균 군사력 비율과 평균 군사 노력 지수는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2배였다.
이슬람과 전투성 사이에는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고 제임스 페인은 결론지었다.
그들은 폭력이 분쟁을 처리하는 음뜸가는 수단이였으며 폭력을 구사할 때도 아주 강도 높은 폭력을 사용했다.
이슬람국가들의 무력 의존도가 53.5%, 영국 11.5%, 소련 28.5%, 미국 17.9% 중국은 더 높다.
<원인: 역사 인구 정치(P430)>
한 집단의 수적 팽창은 다른 집단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압력을 가해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한 집단의 인구 팽창이 인구 증가율이 미미한 다른 집들에게 군사적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20세기 막바지에 이르로 왜 유독 이슬람교도가 다른 문명 집단들에 비해 집단 간 폭력에 훨씬 많이 연루되는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첫째: 이슬람은 처음부터 검을 앞세운 종교이며 군사적 미덕을 찬양한다고 보는 주장이다.
둘째:이슬람은 대륙을 통해 주변으로 전달되어 주변과 마찰을 빛기 쉬웠다. 반면 서구는 대양을 넘어 팽창해서
비서구인들과 지리적으로 맞부딪히지 않았다.
전투성, 화합 불능성, 비이슬람교도 집단과의 물리적 근접성은 이슬람의 지속적 특성이다.
이슬람 진영이 제시하는 한 가지설명은 19세기 20세기에 걸쳐 서구 제국주의의 이슬람 사회 정복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이슬람이 나약하다는 인상을 낳았고 따라서 비이슬람 집단들은 이슬람교도들을 만만한 공격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 핵심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갈등을 중재할 만한 강력한 지위에 올라선 나라는 아직 없다.
Chapter 11
<단층선 전쟁의 역학 관계(P443)>
정체성:문명의식의 대두
만약 아프리카 부족 간의 국지전에 한 부족이 자신을 이슬람 집단으로 다는 보족이 자신을 그리스도교 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전자는 사우디아리비아의 자금,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이란의 무기와 군사 고문단의 지원을 기대할수 있고 후자는 서방의 경제적
인도주의적 지원, 서방 각국으로부터의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층선 전쟁의 예시:
구 유고슬라비아 분쟁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분쟁
카슈미르 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문명의 단합: 친족국과 단합(452)>
친족국과 재외동포
단층선 분쟁은 길어질수록 더 많은 친족국들이 지원, 견재ㅐ, 주제에 나서게 된다. 이런 '친족국 증후군' 때문에 단층선 분쟁은 문명 내부의 분쟁보다
전면전으로 확산될 가능서인 높고, 따라서 이 분쟁을 중제하고 종식시키기 윟새너는 문명 간의 협조가 요구된다. 냉전과는 재조적으로 단층선 분쟁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분출된다.
<단층선 전쟁의 억제(487)>
모든 전쟁은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단층선 전쟁은 꼭 그렇지 많은 않은 것 같다.
단층선 전쟁이 일시적이라도 중단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있따. 첫째는 양쪽이 탈진해서 더 이상 전쟁이 어렵다고 도달할 때이다.
그러나 이러한 휴전은 자체적으로 한계가 있다. 어느 한쪽이 힘을 비축하면 바로 재발할 수 있다. 다른 하나 조건은 전쟁 당사자들을 협상 테블로 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협상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비1순위 참가국들이 개입해야한다는 것이다. 전쟁 당사자들 끼리는 서로 합리적인
논의를 해서 협상을 하기는 어렵다.
전쟁 종식의 단계는 대체로 아래의 순서를 따른다.
-2.3순위 관련자들의 적극적 개입.
-전쟁을 끝내기우해 3순위 관려자들이 포괄적 조건으로 벌이는 교섭
-2순위 관련자들과 1순위 관련자들이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3순위 관련자들이 구사하는 당근과 채찍
-2 순위 관련자들이 1순위 관련자들에겍 지원을 중지하거나 사실상 등을 돌리는 조치
-이런 압력에 따라 1순위 당사자들이 조건을 수락하는 것(물론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판단이 설 때)
https://iamcsh.tistory.com/1238
4부 | 문명의 충돌
보편성을 자처하는 서구의 자세는 다른 문명 특히 이슬람,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국지적 차원에서는 주로 이슬람권과 비
이슬람권 사이의 단층선 분쟁에서 "형제국의 규합"을 통해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분쟁을 저지하려는 핵심국의
노력도 두드러 진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들과 집단들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고 대체로 적대적인 경향을 띌 것이다. 그
주엥서도 특히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는 관계는 문명간의 관계다. 미시적 차원에서 보면 폭력으로 치달을 가
능성이 가장 높은 단층선은 이슬람과 이웃한 정교, 힌두, 아프리카, 서구 크리스트 문명 사이에 놓여 있다.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지배적 대림은 서구 대 비 서구의 양상으로 나타나겠지만, 가장 격렬한 대립은 이슬람 사회와 아시아 사회, 이슬람
사회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
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
서구는 도전 의식이 강한 이슬람 문명, 중국 문명에 대해서는 늘 긴장감을 느끼며 이들의 관계는 대체로 적대적이다. 세력이
약하며 서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와의 관계에서는 갈등의 소지가 높지 않고 특히 라틴 아메리카와
서구의 관계는 원만한 것이다. 러시아, 일본, 인도와 서구의 관계는 이 두 범주의 중간적 성격을 띠면서 협력과 갈등의 요인
을 모두 안고 있다. 이 세 나라는 사안에 따라서 때로는 이슬람, 중국의 편에 서고 때로는 서구의 편을 들 것이다. 이들은 서구
문명과 이슬람, 중국 문명사이에서 '그네'역할을 하는 문명이다.
이슬람과 중국은 판이한 문화적 전토을 가지고 있지만 둘 다 서구에 대한 크나큰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문명의 실
력과 자금심은 서구와의 관계에서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며 가치관과 이익을 둘러싼 서구와의 충돌 역시 다각화되고 심화되
고 있다. 이슬람에는 핵심국이 없으므로 이슬람과 서구의 관계는 나라별로 크게 다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서구에 대
함 반감이 지배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군비 확산은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파생물이다. 일본, 중국, 아시아 각국은 경제력이 커지면서 강한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며
이슬람 국가들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경제 개혁이 성공할 경우 러시아의 군사력 강화도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들어가서도 당상 기간 동안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개입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문명은 미국
이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 아래 주도하는 서구 문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공습을 감행할 수 있는
공군력을 가진 유일한 나라는 여전히 미국일 것이다.
탈냉전 세계에서 핵무기가 서구에게 지니는 의미는 냉전 시대릐 그것과는 정단대이다. 냉전 당시 서구는 핵무기를 통하여 소
련에 대한 재래식 무기의 열세를 만회하였다. 핵무기는 균형추였다. 그러나 탈냉전 세계에서 미국은 재래식 군사력에서 압
도적인 우위를 확보하였으며, 이제는 미국의 잠재적 적수들이 핵무기를 봉하려고 한다.
탈냉전 세계에서 대량 살상 무기와 그것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련ㄴ 노력은 이슬람권과 유고 권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파키스탄과 북한은 소수의 핵무기를 가졌거나 아니면 적어도 단기간 안에 핵무기를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것이다. 군사 부문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유교-이슬람 결속에서 중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많은 이슬람 국각들에게 재래식 무기와 비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정책은 핵 확산 대응에서 핵 확산 조절로, 그리고 만약 미국 정부가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만 있
다면 , 핵 확산을 통하여 미국과 서구의 이믹을 도모하는 길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1995년 현재 미국과
서구는 억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것을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핵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은 다 문명 세계
에서는 느리지만 필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권력 분산의 중심적 현상이다.
미래에는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와 집단이 제3의 문명에 속하는 대상과 겨루어 자신들의이익을 증진시키거나 그 밖의
공동 목적을 추가하기 위해 제한적이고 임기응변적이며 전략적인 연대과 결속을 맺을 것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지도자들이
한때 공언한 바 있는 문명 사이의 긴밀한 '동반자 관계'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과 서구의 관계는 상당수의 중요한 문제들을 놓고 이들의 임장 차이나 대립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꼬인다. 역사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영토에 대한 지배권이였지만, 오늘날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서구와 이슬람의
갈등은 영토보다는 무기 확산, 인권과 민주주의, 원유 지배권, 이민, 이슬람 테러주의, 서구의 간섭 같은 문명 사이의 포괄적
쟁점에서 표출된다. 이슬람의 문제를 우려하는 쪽은 CIA나 미 국방석이 아니라 서구다. 자기 문화의 보편성을 철석같이 믿고
비록 쇠퇴하고는 있지만 자기들은 아직도 우월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할 사명감이 있다는 믿는 사람들을 거느
린 상이한 문명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을 불 지르는 핵심 성분이다.
탈냉전 시대의 다극 다 문명 세계세는 과거 냉전 시대를 지해하던 중추적 대립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의 급
격한 인구 증가와 아시아의 고속 경제 성장이 지금의 속도를 유지한다면 서구와 서구에 도전하는 문명사이의 갈등은 세계
정치에서 그 어떤 대립보다 중심적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슬람 국가 정부들은 서구에 점점 덜 우호적인 정책을 취할 것이
고, 이슬람 집단과 서구 사회 사이에서 간헐적이 ㄴ소규모의 폭력, 때로는 심각한 폭력 사태가 빚어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그밖의 아시아 국가들은 점점 갈등 관계에 빠져들 것이고 만일 중국이 아시아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미국이 저지
하려 들 경우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명과 그 해심국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양면적이며 자주 변화한다. 전반적인 추세는 명백하며 문명들과 핵심국들 사이에
서 벌어지는 이합집산과 대립의 양상은 어느 정도 일반화 시켜 말할 수 있다. 냉전 시대의 비교적 평이한 양극성은 사라지고
다극 다 문명 세계의 훨씬 복잡한 관계가 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