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제4, 「의해(義解)」제5
1. 원광서학
불교의 종지를 듣고 나서는 도리어 세간의 전적을 썩은 지푸라기처럼 생각했다.
2. 원광서학
이에 인사(人事)를 끊고 성인의 자취를 두루 유람하며 생각을 푸른 하늘처럼 하여, 속세를 영원히 사절하고자 했다.
3. 원광서학
원광(圓光)은 천성이 겸허하고 조용하였으며 정이 많아 사랑을 두루 베풀었으며, 말할 때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노기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4. 원광서학
늦게서야 심학(心學)에 귀의했는데 높은 자취로 세속에 섞여 살았다.
5. 원광서학
지금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있으니, 첫 번째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것이고[사군이충(事君以忠)], 두 번째는 효로 부모를 섬기는 것이고[사친이효(事親以孝)], 세 번째는 벗을 사귐에 있어 신의가 있어야 하고[교우유신(交友有信)], 네 번째는 전투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하고[임전무퇴(臨戰無退)], 다섯 번째는 살생을 함에 가림이 있어야 한다[살생유택(殺生有擇)]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것을 행함에 소홀함이 없게 하라.
6. 원광서학
원광은 성품이 허정(虛靜)함을 좋아하고 말할 때 항상 미소를 머금었으며 얼굴은 노한 빛을 띠지 않았다.
7. 원광서학
航海初穿漢地雲 바다 건너 처음으로 중국 땅 구름을 뚫고
幾人來往挹淸芬 몇 사람이 왕래하며 맑은 향기 배웠을까
昔年蹤迹靑山在 옛날의 자취가 청산에 남아 있어
金谷嘉西事可聞 금곡과 가서의 일을 들을 수 있네
8. 보양이목
법사가 이목을 침상 아래에 숨겨 주니 조금 뒤에 하늘의 사자가 뜰에 와서 이목을 내어놓으라고 하였다. 법사가 뜰 앞에 있는 배나무를 가리키자 사자가 그것에 벼락을 치고 하늘로 올라갔다. 배나무가 시들고 부러졌으나 용(龍)이 어루만지자 곧 살아났다.
9. 양지사석
양지는 여러 기예에 능통하여 신묘함이 비할 바 없었으며, 글씨 또한 잘 썼다. 영묘사 장륙삼존상과 천왕상과 전탑의 기와, 사천왕사 탑 아래의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10. 양지사석
齋罷堂前錫杖閑 재 끝난 불당 앞엔 석장 한가로운데
靜裝爐鴨自焚檀 조용히 향로를 차려 두고 전단향을 사른다네
殘經讀了無餘事 남은 경 읽고 나니 다른 일이 없어
聊塑圓容合掌看 원만한 불상을 빚어 놓고 합장하며 보노라
11. 귀축제사
천축인들이 해동을 불러 구구타 예설라라고 하였다. 구구타는 닭이라는 말이고 예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다. 저 나라에서는 서로 전하여 말한다. 그 나라는 계신을 공경하여 떠받들므로 그 깃을 꽂아서 장식한다.
12. 귀축제사
天竺天遙萬疊山 천축의 하늘 멀고 멀어 첩첩이 겹쳐진 산
可憐遊士力登攀 가련하다 힘써 오르는 유학사들이여
幾回月送孤帆去 달을 따라 외로운 배 몇 번이나 보냈건만
未見雲隨一杖還 구름 따라 돌아오는 이 볼 수 없어라
13. 이혜동진
처음에 저는 공이 어진 분이어서 자신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다른 사물에도 생각이 미칠 것으로 보아 공을 따른 것입니다. 지금 공이 좋아하는 바를 살펴보니, 오직 살육을 즐겨 다른 것을 죽여서 스스로를 기를 뿐입니다. 어찌 어진 이와 군자(君子)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14. 이혜동진
지극한 성인이 우리 집에 계신지 모르고 제가 망령된 말과 예의에 어긋난 행동으로 더럽히고 욕되게 하였으니 그 죄를 어찌 씻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이제부터는 도사(導師)가 되어 저를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5. 이혜동진
어느 날 두 사람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 먹고 돌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농담으로 말했다. “너는 똥을 누고 나는 고기를 누었다.” 이로 인해서 오어사(吾魚寺)라 이름하였다.
16. 이혜동진
草原縱獵床頭臥 들판에서 사냥하고 여자의 침상에 눕기도 하고
洒肆狂歌井底眠 저자에서 술 취해 미친 듯 노래하고 우물 속에 자기도 했네
隻履浮空何處去 신발 한 짝 남긴 혜숙과 공중에 떠 입적한 혜공은 어디로 갔나
一雙珍重火中蓮 불길 속 연꽃 같은 한 쌍의 진귀한 보배일세
17. 자장정율
홀로 깊고 험준한 곳에 살면서 이리와 호랑이를 피하지 않고, 고골관(枯骨觀)을 닦았다. 혹시라도 게을러지고 피곤할 기미가 있으면, 곧 작은 집을 지어 주변을 가시덤불로 막고, 알몸으로 그 안에 앉아서 움직이면 바로 찔리게 하였으며, 머리는 대들보에 매달아서 혼미함을 없앴다.
18. 자장정율
저는 차라리 하루 동안 계(戒)를 지키고 죽을지라도 백 년 동안 계를 어기고 살지는 않겠습니다.
19. 자장정율
자장은 이 좋은 기회를 만나 용기를 내어 널리 불교를 펼쳤다. 승니(僧尼) 5부(部)로 하여금 각각 구학(舊學)을 늘리고 반달마다 계(戒)를 강설하고 겨울과 봄에 모두 시험을 쳐서 지계(持戒)와 범계(犯戒)를 알게 하였으며, 관원을 두어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순사(巡使)를 파견하여 지방에 있는 사찰을 돌며 점검하게 하여, 승려들의 잘못을 살피고 경전과 불상을 엄중하게 정비하여 일정한 규정을 삼았다. 한 시대의 불법을 보호함이 여기에서 가장 융성하게 되었다. 공자(孔子)가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돌아와 악(樂)이 바로잡혀 아송(雅頌)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은 것과 같았다.
20. 자장정율
문인(門人)으로 하여금 그 수만큼 나무를 심어서 신이함을 드러나게 하였는데, 이로 인해 지식수(知識樹)라고 불렀다.
21. 자장정율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22. 자장정율
曾向淸涼夢破廻 일찍이 청량산에 갔다가 꿈을 깨고 돌아와
七篇三聚一時開 칠편삼취(七篇三聚)를 한꺼번에 열었네
欲令緇素衣慚愧 승려와 속인이 입는 옷을 부끄럽게 여겨
東國衣冠上國裁 동국의 의관을 중국처럼 만들었다네
23. 원효불기
스님의 아명[小名]은 서당(誓幢)이고, 제명(第名)은 신당(新幢)이다. 처음에 그의 어머니가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었다. 해산을 하려고 할 즈음에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
24. 원효불기
誰許沒柯斧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랴
我斫支天柱 나는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 내리니
25. 원효불기
설총(薛聰)은 나면서부터 지혜롭고 영민하여 경서(經書)와 역사(歷史)에 두루 통달하였기에, 신라 십현(十賢)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과 외이(外夷)의 각 지방 풍속과 사물의 이름에도 통달하고 잘 알아 육경(六經)과 문학을 우리말로 훈해(訓解)하였으니,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경전(經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를 전수한다.
26. 원효불기
우연히 광대들이 춤을 출 때 사용하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이하였다. 그 모양대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華嚴經)의 “일체 무애인(無㝵人)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라는 글귀에서 따서 무애(無㝵)라고 이름을 짓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27. 원효불기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명호(名號)를 알게 되었고, 모두 나무아미타불을 일컫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참으로 큰 것이었다.
28. 원효불기
角乘初開三昧軸 각승(角乘)으로 처음 삼매경을 열었고
舞壺終掛萬街風 표주박 차고 춤추며 마침내 거리마다 교화했네
月明瑤石春眠去 달 밝은 요석궁의 봄잠도 지나가고
門掩芬皇顧影空 문 닫힌 분황사에 돌아보는 소상만 허허롭네
29. 의상전교
전생에는 같은 인연이었고 금생에서는 같은 학업을 닦았으니, 이 과보를 얻어 함께 대경(大經)에 목욕을 하며, 특별히 스승으로부터 이 오묘한 경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30. 의상전교
분수에 따라 받은 것은 능히 버릴 수 없으므로 이 업(業)에 의지하여 내세의 인연을 맺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31. 의상전교
악업(惡業)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미계(迷界)에 굴러 떨어지더라도 엎드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옛일들을 잊지 마시고 어느 업의 세계에 있든지 간에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32. 의상전교
또한 법계도서인을 저술하고 아울러 간략한 주석을 붙여 일승의 중추가 되는 요점을 모두 포괄하였으니 천 년의 귀감이요 다투어 차고 다닐 보배라 하겠다.
33. 사복불언
태어나지 말아라, 죽는 것이 괴롭도다. 죽지 말아라, 태어나는 것이 괴롭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