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흙으로 빚은 도자기로 지역에서 보다는 바깥에서 더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신동수(죽변면, 45세) 도예가를 만났다. 자신만의 질박한 맛과 고유한 멋을 추구하며 울진흙의 우수성을 도자기에 담아내는 신도예가의 작품들에서는 지역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 인사동 아름다운차(茶)박물관에서 지난 6월2일부터 15일까지 달항아리전을 개최하여 호평을 받았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며 다완과 막사발은 일본까지 수출되고 있다. 신동수 도예가로부터 그의 작품세계를 들었다.
아버지의 '끼'를 이어받다
신동수 도예가는 1995년 지금의 장소인 죽변면 화성리에 둥지를 틀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토지감정평가에 대해 자격증 공부를 하게 되면서 흙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선친이 석수(石手)와 대목(大木)이셨는데, 그런 끼들이 나에게도 많았습니다. 내가 가야할 길이 흙이며 27살 때부터 본격적인 도예가로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사촌형님의 소개로 경기도의 여주 이천 광주 안성 등지의 공장시스템에서 기능을 배우고 안성에서는 옹기도 배웠지요. 절제된 자유분방함과 회화적인 여러 기법을 사용하는 우승보 선생으로부터 도자기의 절제된 선과 형태, 조각 등 도자기의 기초적인 것을 사사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흙(유약)에 대한 기초, 조형에 대한 선(線), 물레를 이용한 성형 기능들을 익혔다. 그리고 문경의 고(故) 서선길 선생으로터 배우면서 사발의 출발점이 됐다. 다양한 흙을 이용한 다완을 전통유약과 장작을 이용하는 것을 배워 나갔다.
신도예가는 스승 서선길 선생에 대해 "독특한 전통장작가마(동해안 전통장작가마 1호)를 몸소 지어 주신 송산 서선길 선생님으로부터는 여러 형태의 다완에 대한 유래와 제조기법 등 전반적인 사항과 다완의 특성에 따른 장작가마 소성법(燒成法, 높은 온도로 구워 도자기를 만듦) 등에 대해 사사받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여주 이천 등지의 도자기는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대규모의 유약이라면, 문경에서는 개인 스스로가 찾아낸 유약으로 인해 개성이 있었다. 본인만의 고유한 것이 있었다고. [신동수 도예가는 일월요 보은(寶垠) 우승보(禹承甫) 선생에게 사사했고, 문경시 진안요(陳安窯) 고(故) 송산(松山) 서선길(徐仙吉) 선생의 수제자이다.]
'토원(土源)'은 '흙의 근본을 알라'는 뜻
신도예가는 "흙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며 힘줘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요즈음 조형(외형)을 떠나 흙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토원(土源)'이라는 말도 흙의 근본을 알라고 불영사 주지인 일운스님이 지어줬다고. 즉 "기본(기초)이 단단해야 도예가로서의 삶이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먹고살기 위한 그런 상품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지요"라고 덧붙였다.
"정신적인 압박감도 크지만 기반을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도예가로서 단명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시간들이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라면 이제는 그것을 기반으로 성숙함을 더해가는 작업입니다."
흙을 알지 못하면 도자기를 만들 수 없어
도예가는 흙에 대해 잘 알고 성향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신동수는 지역에서 채취한 황토 백토 분청토 백사질토 장석 도석 등 여러 가지 흙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이를 통해 그는 흙 본래의 색이나 성질을 최대한 살려 제각각인 흙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때론 그런 작품들 속에서 울진의 느낌과 자연스러움을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회에 출품하면 다른 곳에서 출품한 작품들과 비교해도 울진의 흙이 아름답게 나온다는 것이 신도예가의 설명이다. 그래서 흙 때문에 관심을 받는다고.
"흙이 높은 온도를 견뎌내야 진정한 흙이라는 생각입니다. 주로 1,230℃ 내외에서 도자기를 굽었는데, 요즈음 온도를 올려 1,300℃에 육박하는 1,280℃까지 불을 지피면 온도는 50℃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도자기는 엄청 차이가 나게 되요." 때론 가마가 쓰러질(?) 때까지 불을 떼고 싶지만 전통가마로서 보존해야 될 가치도 충분히 있어 조심(?)하고 있다고.
겉옷에 치중하지 않아야
"오랜 세월 흘러가면 도자기가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저절로 나타납니다. 일례로 차 맛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잔이 좋은 도자기죠. 가마의 온도가 고온일수록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적어요. 흙이 견디지 못하면 작품으로서 스스로 가치를 잃는 것입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금전적 타협을 하여야 하는 가에 대한 애로사항을 많이 겪었다.
"그래도 전시장에 가게 되면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죠. 가령 중국전통차 전문점인 최가다인(崔家茶人)에서도 저의 도자기가 보이차 맛을 그대로 전해준다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울진흙이 문헌을 보면 하품(서민들이 쓰는 것)이나 미뤄 보건데 울진은 흙이 좋아요. 도자기 파편을 보면 흙이 아주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지역명에서도 '사계리, 북면 두천의 사기장골' 등과 같은 이름은 도자기와 연관되어 있고. 정호다완에도 울진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장석을 보면 울진흙의 우수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신동수 도예가는 흙을 구하기 위해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는 공사장에 직접 가서 물물교환(?)으로 구하기도 했다.
'막사발'은 특별한 이름이 없는 서민들의 생활그릇이다
"막사발은 특별한 이름이 없는 서민들의 생활그릇입니다. 이에 비해 옹기는 발효그릇이라 할 수 있죠. 흙차이, 온도(불)차이, 유약차이가 결국 도자기의 질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가장 좋은 흙은 높은 온도에서 견디는 흙이며, 불 온도가 높아지면 백색에 가까운 색을 내게 됩니다."
신도예가는 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이제는 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겨울철 가마에 불을 피우면 찬공기와 더운공기가 서로 얽혀 그릇이 견고해집니다. 또 겨울철에는 흙의 수축율이 적어 불떼기에 유리하기도 하고요. 가마 불구경은 도자기신과 자연과의 교류이며 기복적인 성격도 내포돼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는 매번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석잔을 올린다. 한잔은 오백년전에 있었던 사기골을 향해, 또 한잔은 고 서선길 선생을 향해, 나머지 한잔은 토원도예 가마신에게...
후배들 위한 작업 공간 확보하고 싶다
"현재 토원도예가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것은 민선1기 전광순 군수시절, 행정으로부터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이 점에 대해 감사드리며, 이런 연유로 지난 10년 동안 나름대로 보답하고자 노력하면서 내적으로 부족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많이 완성되어가는 중입니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신도예가는 지역에서 도예를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뒤를 이어줄 후배들을 위한 작업장의 공간을 확보하여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다.
"스스로도 고향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자신감을 가집니다. 지역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요. 감사드립니다."
지역에서 기회가 되면 달항아리전을 열고 싶다
"망양정이나 연호정과 같은 장소에 하얀 달항아리 80~100개를 긴 시간을 두고 전시해 지역의 볼거리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울진다운 그릇이어야 하죠. 항아리가 깨어지고 잃어버릴 것에 대한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전시된 작품들을 볼 수 있고 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울진문화원에서 예전에 한번 하고 말았었는데 '지역향토작가 초대전'을 부활할 필요가 있어요. 개인전은 서울이나 울진이나 소요되는 비용은 차이가 없습니다. 울진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면 최소한의 판매가 있어야하고 가격선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울진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는 그에게 현실적인 문제다. "분야별로 지역 명장(明匠)제도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동수의 선은 촌놈"
건국대학교 이호준 교수가 신도예가의 도자기 작품들을 보면서 도자기들이 가진 선에 대해 내려준 평가다. 신도예가는 이 말을 듣고 "좋았다"고 짤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사발도 찾았고, 자신의 선을 찾아 인정받았다. 인증받기 위해 공모전 출품도 좋지만 '신동수표 울진다완'을 만들기 위해 계속 담금질을 해야 한다.
"백자 다음에 무슨 흙이 나올지 지금부터 궁금해요. 아마 황토를 이용한 시커먼 흙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백자를 이을 다음 흙을 찾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흙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매력입니다."
한편으론 "도예를 하면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방향전환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라는 말에 지난날의 어려움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신동수 도예가는는 원남면 신흥리에서 태어나 1살 때 울진읍(새마실)으로 이사. 이후 울진초등학교와 울진중고를 졸업했다. 국립 강원대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한 신 도예가는 문경 한국전통 사발전 특선 등 각종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했고, 개인전 4회를 비롯해 한·중 도자명인 100인전 등에 참여했으며, (사)한국도자문화협회 회원과 (사)한국전승도예협회 회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9살 아들과 7살 딸이 있다. "소질은 7살짜리가 더 있지만 이 길에 대해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도예에 대해 제대로 배운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주고, 그동안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예요"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