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립다**
그리운 이들이 보고싶어
저 바람처럼 떠나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늘 흔들리며 살아가는 내 생에서
아직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은
살아있다는 증거일까요.
어디서부터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움이 밀려오는 날이면
자꾸만 떠나고 싶습니다.
친구를 만나 본 지 오래 입니다
사랑을 나눠 본 지는 더욱 오래입니다.
기약없는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없이....
사람이 그리워지는 날
자꾸만 뒤돌아 봅니다
살아갈수록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마음은
깊어만 갑니다.
2008년 5월 4일 백두대간 2기 17구간
지기재 - 신의터고개 - 329.6봉 - 무지개산 갈림길 - 437.7봉 - 윤지미산 - 화령 (도상거리 15.9km)
비소식이 있어서인가, 요즘 유행하는 감기 때문인가 양재에서 버스에 오르니 한산하다. 16구간의 만석은 일장춘몽인가..
신청인원도 적은데다가 문복림,김명희부부가 감기로펑크를 냈고 나뭇꾼님은 바빠서 선녀님만 양재에 내려주고 생활전선으로 나갔다고 하고,
진표씨도 출장관계로 빠지게 되어 그 동료들중 근수씨만 나왔다. 상래씨와 산오르미님이 한사람씩 초청해 와 그나마의 명맥유지 ( 고맙습니다.)
달리는 버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은 이제 초록의 물결이다.
초록은 농도를 더해가면서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벌써 기온이 삼십도 가까이 오르고 있다.
9시경 지기재,
너와나님이 안주거리로 준비해 온 매운닭발을 몇사람에게 나눠주고 ( 손 큰 너와나님 닭발을 5kg씩이나 영등포 시장에서 사다가
밤새워 준비 했다는데....이 많은걸 어떡하나 - 저번의 만석인원을 염두에 뒀던 모양) 나도 한팩 베낭에 담고..
대간 분수령 표지판 아래에 모여 출석첵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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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총원 15명, 몇사람 되지않으니 함께 움직이자고 얘기 했는데도 발걸음들이 바쁘다.
백두대간의 상주구간, 산이 사람들 사는 곳으로 내려와 평화롭게 어울리는 곳이다.
농로를 따라 과수원 과일꽃 향기 속으로 빠져든다. 포도의 새 순들이 손을 내밀고, 소담스런 함박눈이 내린듯 사과꽃이 만발했다.
사과꽃은 꽃보다 잎이 먼저나고 꽃이 피기 때문에 매화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그 향내가 유난히 짙다.
'유혹'이라는 꽃말 그대로 사과꽃 향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인삼재배단지의 울타리도 푸른잎들이 돋아났고 감나무와 뽕나무에도 푸른싹이 돋았다.
대간길 숲 속으로 들어서며 가슴 가득 산의 향기를 먹는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반긴다.
순 우리말로는 '들꽃' 얼마나 하찮은 대접을 받았으면 각기 제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들꽃이라는 대명사로 뭉뚱그려 불릴까,
하지만 엄연히 우리 산하를 물들이는 귀한 존재다. 더불어 살고있음을 느낀다.
얼핏 보라색이 보인다. 작디작은 제비꽃이다. 작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모습이다.
'이토록 작은꽃도 최선을 다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진다.
풋기운이 가신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들의 그늘이 짙다.
숲의 유혹에 빠진 두 다리는 벌써 두뇌의 통제에서 벗어나 버린 것 같다.
자꾸만 고개가 기울어진다. 둥굴래의 은종꽃 때문이다. 수줍은 듯 큰 잎 아래 오종종 매달린 그 꽃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다가서면 비로소 꽃은 향기를 나누어 준다. 이 꽃의 매력은 고혹과는 거리가 멀다. 교태가 없기 때문이다.
소박한 듯 은근하면서도 돋보이는 존재감,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런게 아닐까.
10시 20분경 신의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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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고을 화동면과 내서면을 오가는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신은현{新恩峴)이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에 신의터재로 불리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산재로 바뀌었고, 다시 1995년 신의터재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해발 280m인 이 낮은고개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 1592년(임진년)4월 14일 부산진성, 15일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은 19일엔 언양성을 넘어뜨리고,
22일 영천성을 거쳐 별다른 저항도 없이 북진에 북진을 거듭했다. 그사이 조선은 18일에 유성룡을 도체찰사, 신립을 도순변사,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해
백두대간의 조령, 죽령, 추풍령에 방어선을 편성하였지만 조선의 앞날은 풍전등화였다.
이때 신은현에서 가까운 상주 화동면 판곡리의 김준신(1561~1592)은 이 재에서 의병을 모은 후 25일 60여 명의 관군과 6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상주성을 지키기 위해 왜군 17,000명과 싸우다 장열히 전사했다.
이는 임진왜란때 내륙에서 본격적으로 벌어졌던 첫 접전이었던 것이다. 중과부적으로서 처음부터이길 수 없는 싸움임에도 김준신은 "남아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장소에서 죽어야 한다."며 부하들과 함께 왜군 수백명을 죽였다.
왜군은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타격을 입게되자 분풀이를 하기위해 김준신의 가족이 살고있는 화동면 판곡리로 몰려가서 남자들을
거의 학살했고 부녀자들은 왜군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마을에 있던 연못에 몸을 던졌다. 지금도 낙화담이란 연못이 남아있다.
300여 년 뒤 한일합병에 성공한 일제는 임진왜란 때 신의터재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이름을 어산재로 바꾸었다. '백두대간 가는 길'중에서]
기다리던 선두팀을 만나 사진도 찍고, 같이 다니자고 투정도 부리며 다시 대간마루금 따라 산책을 시작한다.
산기슭 켜켜히 쌓인 낙엽을 헤집고 분홍빛 꽃을 틔운 얼레지는 한줌 햇살에도 속살을 훤히 드러낸다.
가녀린 줄기로 제 몸 하나 못 가누며 무에 그리 탐스러운 꽃을 열어졌혔을까
산과 들이며 도심이든 어디든 터잡고 뿌리내릴 흙만 있다면 모질게도 뿌리밖아 꽃을 피우는게 들꽃이다.
생김도 빛깔도 이름도 제각각 이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꽃을 층층으로 매단 현호색의 푸른꽃에 눈이 시리고, 봄볕에 조는 듯 고개숙인 젊어도 늙어도 할머니 모습인 할미꽃의 흰머리는 보는 것 만으로도 애잔하다.
그저 스스로 피는 꽃이라 귀한 대접을 못 받는 들꽃이지만 그 꽃잎마다 넉넉한 봄을 한 아름 품었다.
게으르미님과 여회원님들의 막걸리 타령에 올들어 처음 지고 온 아이스박스에서 냉막걸리와 명희씨가 챙겨 준 불끈주를 꺼내고 너와나님이 준비한 닭발을
안주삼아 술 잔 돌리기.. 농담과 진담속에 웃음이 담겨, 우리의 마음도 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게으르미(이석규)님은 옻순의 맛을 아는가보다. 개옻나무를 자꾸 들여다 본다.
옻순은 드릅과 비슷한 생김새 이지만 '우루시올'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있어 면역력이 없는 사람은 이 물질에 닿으면 참을 수 없이 가렵다.
그래서 식약청에서는 옻순을 식품의 원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를 조리해 팔거나 먹을 것으로 만들어 유통 시키는 사람이 없는 이유다.
위험한만큼 맛은 뛰어나 '땅 위의 복어'라 할 만하다. '죽어도 좋을 맛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맛에 홀린 사람들은 봄이면 옻순 나는 곳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도 한단다.
옻에 대한 어릴적 기억은 산에 놀러갔다가 옻을 만진 후 온 몸에 열꽃이 피고 살갗이 터지도록 긁어대는 친구가 있었고 약이라고는 쌀을 씹어서
온 몸에 바르는 민간요법이 고작으로, 고생하는 걸 보고 옻은 멀리해야만 하는 것으로 각인 돼 있었는데 맛예찬을 듣고 먹어보았지만 속마음의 찝찝한 기억에
맛을 모르겠더라. 옻닭도 몸에 좋다니까 먹지 기분은 역시 찝찝..
12시 20분경, 어느 안부에서의 점심시간
나를 끔찍히 생각 해주시는 여회원님들 도시락을 두개 준비하고, 밥을 많이 가져와 서로 먹으라 내미니 몸 둘바를 모르겠다.
반찬 역시 맛있어서 산에 와서 밥먹고 나면 며칠은 굶어도 버틸 수 있겠다 ^&^ ㅎㅎ
윤지미산으로 오르는 길따라 화사한 철쭉이 보이기 시작한다. 매화,벚꽃,진달래로 이어지는 봄꽃 행진의 끝은 철쭉이다.
지나온 낮은 곳은 시들어가는 꽃들만 보여 실망했는데 고도를 높여가니 아직 봄꽃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리 잘난것 없다 싶다가도 떼지어 피고지는 기세 앞에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누가 '化無十日紅' 이라 했던가, 개화시기는 고도따라 한달은 너끈하다.
백두대간을 처음 시작했던 지리산의 새끼봉인 바래봉에서 붉은 빛 토해내며 숨고르기 하고있을 철쭉,
사람들은 전국 유명산의 철쭉군락지들의 이름에 가려 이름없는 대간길의 능선엔 철쭉이 피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철쭉은 마루금따라 불을 지르고 있다.
산불이 아니라 꽃불이다. 이몽룡의 가슴에 불을 지른 춘향의 치마속이 저처럼 예뻤을까....
철쭉나무의 크기가 2m를 넘는다. 철쭉사이로 걷는게 아니라 철쭉속으로 걷는다.
명색이 백두대간 길이지만 꽃향기에 취해 걷다보니 발걸음이 가뿐하다.
14시경 윤지미산 정상(538m)
오늘구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지만 나뭇잎에 가려 사방을 조망할 수 없다.
이제는 하늘과 구름과 숲만 보이는 계절, 시원한 바람도 나무에 막혀서 오지 못해 석규씨와 근수씨 땀수건 짜는걸 보면 한바가지는 되겠다.
윤지미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이다.
길따라서 반질거리는 나무를 보면 얼마나 많은 대간꾼들이 붙들고, 사정하며 내려갔을까 미루어 짐작한다.
이제 인삼은 개성이나 강화,풍기,금산등의 특산품이 아닌가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삼재배지를 많이 본다.
논농사보다 수입이 높고 힘들지 않아서 라는데 지질에 따라 약효랄지 그런 영향이 많을 듯 한데....
이러다가 너무 흔해서 더덕이나 도라지 정도의 대접밖에 못 받는건 아닌지..
15시 20분경 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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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간길 날머리로 '백두대간 화령'이란 이정비가 우뚝 세워져 있다.
여기서도 흔적을 남기려고 폼을 잡고, " 빨리 내려왔으니 가다가 식당에 들렸으면" 했더니 이대장 혼쾌히 그러자네요.
술 맛을 모르는 김대장과 이대장은 우리들의취태가 보기 싫겠지만, 이 맛에 산에 온다면 좀 그렇지만, 어느정도 그 영향도 있답니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산도 좋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한 情이 들었거든요.
서울에선 문복림,명희 부부가 기다리겠다며 동대문으로 오랍니다. 산엔 같이 못 갔어도 얼굴 보고싶다구요.
선녀님이 선녀같은 마음으로 고기와 술값을 치뤄주셔서 감사히 먹었습니다. 나뭇꾼님의 은덕입니다.
종로에서 연등행렬 구경하고 동대문시장 골목에서 곱창에 소주,막걸리로 다시 정을 나누고 안녕을 고합니다.
명희씨 고맙습니다. 산행후나 심지어 서울에서까지 늘 챙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구간에 뵙겠습니다. 안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