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6. 2. 4 - 5(1박2일)
누구랑 : 나 홀로
일 정 : 첫째날 - 한계령- 희운각
둘째날 - 희운각- 미시령
날 씨 : 첫째날 - 쾌청 바람조금
둘째날 - 쾌청 바람조금. 황철봉 바람 약간 강
* 소 제목 : 설악산의 雪. 雪로. 설 설
백두대간 대 장정의 마지막 구간인 설악산 구간이다.
많이 기다려 왔던 구간이다.
그리 낮설지 않은 구간이기도 했지만, 오가는 사람들도 지리산 주능선 구간처럼 많아 심심치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동안 대간길을 걸어 오면서 그져 막연히 사람이 그리웠던 때가 한두번 이였든가.
지난번 구간(구룡령-한계령)을 마친지 한달이 다 되어가고, 구정까지 끼어 있어 몸이 많이 무거워 졌다. 그것도 3kg이나...
1kg의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데, 3kg이나 몸이 불었으니 이번 산행은 심상치 않다.
불구하고 2월 4-5일 결행키로 한다. 홀대모 황달연님도 나와 같은 구간을 2월 2일 들어가시기로 계획이 올라와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예보다. 입춘땜을 할 모양이다. 나의 결심을 한번도 꺽지 못했지만, 집사람의 만류가 대단하다. 애들도 하필 꼭 추울때만 산엘 가시냐고 거든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나의 결심(고집?)에는 이상이 없다.
황달연님도 심사숙고 끝에 출발을 하시기로 최종 글이 올라 온다. 먼저 가시면서 등로 상태를 알려 주시겠다고 핸펀 번호를 남기는 고마운 배려까지 하신다. 무사히 잘 가시길 빌어 본다.
2월 4일 06시30분 동서울발 한계령 버스를 예약한다. 좌석이 4석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시간대에 한계령이라면 거의가 설악산 등반객일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좌석 예약을 가까스로 하였음을 안도 한다.
소속된 클럽에서도 설악산 매바위 빙벽공지가 올라온다. 4일 오후에 봉화산역 출발이란다. 가는길은 나와는 시간이 맞지 않아, 올때나 시간이 맞으면 미시령에서 픽업을 해줄것을 부탁한다.
이래 저래 설악 대간길은 나 홀로가 아닌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지하철로는 06시30분까지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이 어려울것 같아 아들에게 부탁을 한다.
아들의 선잠을 깨워 05시에 집을 나서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너무 이른 05시40분이다. 예약한 표를 찾아 한참을 기다려 정시 탑승을 한다. 예상대로 절반 이상이 등산객이다.
원통을 거쳐 한계령에 09시 도착을 한다. 휴게실 내로 들어가 산행 준비를 한다. 휴게소 옆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매표소 전방 간이막사 앞에서 지나온 구간쪽을 잠시 살펴본다.
<지나 온 구간인 만물상 면모>
가는 방향쪽으로 눈을 돌리니 매표소가 눈 앞에 있다. 지금까지 대간길 들머리 매표소 통과시 직원이 근무중에 있는곳은 한계령 매표소가 처음이다. 들머리의 통과 시간대가 새벽녘이였기 때문이지,고의로 그러한것은 아니였다. 오늘은 당당히 입장료를 내고 통과를 한다. 매표원에게 오늘의 입장 등산객 숫자를 물어보니 내가 오늘 147번째 입장객이란다.
<한계령 매표소>
09시 40분 한계령 매표소를 통과하면서 13번째 출정 대간길이 시작된다.
앞서간 등산객들이 적당하게 러셀을 하여, 아이젠도 하지 않고 스틱에 의지해 된비알을 오른다.
900m지점 한계령에서 1,400m지점 귀때기청 갈림길까지는 잊어버리고 걸어야 할것 같다.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수구리" "아까맨치로" 를 복창하며 나무를 피하며, 재미있게 가고 있다. 작은귀때기골로 하산 한다고 한다.
추월을 하기도 하고, 추월을 당하기도 하면서 몸이 훨 무거워 졌을을 몸소 느끼며, 지그 재그 철구조물 오름길에 접어든다.
<철 구조물 오름길에서 서북능쪽 기암을..>
지그재그 철 난간을 따라 힘든 오름을 한참하고 나니, 귀때기청봉 갈림길에 도착을 한다. 배낭을 내리고 모처럼 조망을 한다.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쉬지도 않고 끝청에서 밥을 먹자며 선걸음으로 올라간다.
<갈림길에서 바라본 중청과 대청봉>
<가야 할 공룡능선 구간>
<공룡능선 다음 황철봉까지>
<용아장성이 숨어 있는 외설악의 속살>
1,400m 지점을 통과 하였으니 이제 숨고르기를 하면서 오를것 같았으나, 만만치 않다. 항상 느낀 거지만, 눈(目)과 생각과 발걸음 차이에서 온 괴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오르고 내림이 눈길과 겹치니, 두 다리의 게으름에 엉덩이를 자주 내려 놓는다.
끝청을 앞두고 안부에 도착하니 개선문이 나를 반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가끔 등장한 이상한 나무, 바로 그 나무다.
난 개선장군답게 그 문을 통과 다시 돌아와 사진을 담아본다.
<개선문 통과 의식을..>
드디어 끝청에 도착을 한다. 이름은 끝청이지만 나의 이번 산길에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쉬는 산객들이 여럿이다. 나도 더불어 쉬어가기로 하고 사방을 조망해 본다. 언젠가 가 보아야 할 서북능이 눈앞에 웅장하다.
<귀때기청과 멀리 가리봉산>
<끝청 안내판>
<서북능에서 내려 뻗은 능선들>
<오색에서 대청 오르는 능선과 양양시내>
끝청에서의 쉼을 끝내고 완만한 능선을 올라 중청의 축구공을 우회하여 사면길로 접어든다. 중청 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피소와 대청 오름길이 하얗게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대청을 오르는 모습이 가물 가물하다.
<중청을 우회하여 돌아가며..>
언제나 사면길은 반갑고 걷기에 행복하다. 이런 길의 연속이라면 누가 산을 마다하리...
소청쪽에서 오는길과 마주치는 삼거리다. 대피소를 내려 서기전 공터에서 내설악을 조망해 본다. 언제 보아도 천하 절경이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설악의 비경을 보기 위하여 대청을 오른고 있다.
설악 정상의 대피소를 아름다운 산상의 별장으로 접하려던 환상이 왠지 대피소 옆 마당에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에 무참히 깨져버리고 만다.
어느 외계인이 갖다 놓은것도 아니고, 바로 사람, 우리가 가져다 놓은 쓰레기가 아닌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청 대피소와 대청 오름길과 대피소 옆 쓰레기 더미>
다시 한번 각심을 하게 된다.
우리의 금수강산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연의 준엄한 응징이 있을것이라고...
우울한 마음을 시원하게 펼쳐진 화채능의 설산으로 눈을 시원하게 씻어본다.
<설산의 화채능>
내설악의 속살인 천화대와 각 능선들이 하얀 눈들을 멋있게 이고 있다.
눈으로 인하여 능선들의 윤각이 뚜렷하니, 울산바위도 지척이고 학사평과 동해바다도 가까히 닥아온다.
<내설악 속살과 울산바위, 동해바다>
바람을 피하여 대피소 취사장으로 들어가 점심으로 떡 라면을 끓여 배고픔을 해결하고,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대청봉(1,707.9m)으로 오른다.
한계령에서 중청까지는 내내 바람은 크게 느끼고 오지 않았는데, 대청은 역시 다르다. 중청 산장에서부터는 유명한 대청바람이 불고 있다.
발 딛기가 쉽지 않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걸음 걸이가 술취한 것처럼 휘청거린다.
대청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대청 정상에는 남여 두사람만이 사진을 찍느라 바람과 싸우고 있다. 바람 때문에 머물지 못하고 오색쪽으로 하산을 한 모양이고, 희운각쪽으로 내려갈 사람은 아예 대청을 생략하고 바로 내려들 간 모양이다.
나도 바람을 버티고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배낭을 벗어, 정상석에 기대놓고, 얼른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대청봉 정상>
어디로 내려 갈 것인가?
원칙을 따르자니 (?) 울고, 변칙을 따르자니, 나 자신 용납이 않되고, 진퇴 양난으로 고심 끝에 순간의 선택을 한다.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죄송함을 금할길 없으나,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바라 본 대청의 모습>
러셀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길에다가, 떡 눈에 허벅지까지 빠져 발을 빼지도 못하고 바둥거리는 등, 엎친데 겹쳐 경미한 사고까지 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종착지인 희운각에 안착을 한다.
<희운각 대피소>
입실 신고를 마치고, 처음 착용한 체인 아이젠이 여러곳이 끊어져 대피소에서 연장을 빌려 수선하고 있자니, 중청대피소 취사장에서 보았던 부부 산객이 내려온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입실자가 칠팔명밖에 되지 않는다.
설악 눈꽃축제 기간이라 희운각 대피소도 복잡 할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날씨 때문인지 그 시간, 몇 안되고, 석유난로도 불을 피고 있는지 마는지, 어두운 실내에 불조차 켜져 있지 않으니, 도둑님 소굴 같다.
밖의 날씨가 추워 숙소 내부에서 조용히 취사를 하는 팀들도 있다. 그래도 날이 어두워지니 산객들 몇분이 더 찾아든다. 나도 한켠에서 조용히 떡라면을 끓여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다.
산에서 산꾼들의 사람 반기는 것이야 당연지사지만, 희운각 대피소에서의 예사롭지 않는 상황이 전개된다.
상황인즉, 부부 산객이 돼지고기찌게를 끓여 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팩 소주 한통을 내밀면서 조용히 술을 권한다. 나 혼자 술 얻어 먹기가 미안하여, 적은 술이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자고 청한것이 빌미가 되어, 한 두사람 모인것이 방 전체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석을 하게된다. 와중에 소주 대병이 나오고 각자 가지고 온 반찬이 안주가 되어 산상 주연이 시작된다.
산 이야기로 시작하여 온갖 재미있는 인생담이 오고간다.
술이 떨어지면 어느새 누군가 살며시 매점으로 나가 술을 사오기를 여러차례, 그 옛날 대피소의 정경이 재현되고 있다며, 다들 즐거워 한다. 각자 피곤함도 잊고 밤 9시까지 주연은 계속 되어진다.
산장지기가 소등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아쉬움에 30분을 연장하여, 자리가 계속되었음은 근래에 맛보지 못했던 산사람들만의 행복이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날밤 희운각에서 같이 한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마음 이였으리라 감히 자신해 보고 싶다.
다음카페 굿모닝 산악회 조은산님, 한뫼 산악회 이충희님, 50대 부부 산객님, 또 다른 젊은 부부 산객, 3년에 걸쳐 백두대간을 한 젊은이, 그 친구분, 속초의 대머리님, 고성 수협에 근무하는 마도로스 이춘식님, 그외 등, 여러분께 이 지면을 통해 인연의 고마움을 전합니다.
5일..
깊은 잠이 들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던차에 아랫층에서 조은산님이 조용히 깨운다." 2층에 대간 가실분 5시가 넘었습니다". 하신다. 일어나 보니 05시15분이다.
옆에 자고 있는 고성의 마도로스를 깨운다. 마도로스 이춘식씨는 예정에 없었으나 마등령에서 미시령구간을 가 보고 싶다고, 나와 함께 동행키로 되어 있었다.
간단한 식사로 스프를 끓여 대신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06시에 제일 먼저 대피소를 빠져 나온다.
해드 랜턴을 키고 반짝이는 눈길을 나서는 기분이 상쾌하다. 무너미 고개를 지나 본격적인 공룡능선길로 들어선다.
마등령에서 희운각쪽으로 공룡능선을 두번 타 보았으나, 희운각에서 시작한 공룡능선은 처음이다. 잘 갈수 있으려나 걱정도 되지만, 뜻밖의 동행자가 생겨 다행이다.
가야동 계곡길 갈림길만 주의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걸었으나, 갈림길은 어딘지 모르게 지나가고, 오르막 자일 구간이다. 눈이 깔린 자일 구간에 어려움이 제법이다. 암벽을 하고있는 나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구간이다.
마도로스 이춘식님은 잘 따라 오고있다.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짖눌린다. 배낭의 무게가 빨리 전달되는 날은 산행이 힘들다. 고로 오늘 산행은 어렵다는 예감이 든다.
바로 아래 불빛이 따라 오고 있다. 희운각에서 출발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니, 오색에서 출발한 무박 산행팀이란다. 그러고 보니 대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오는 불빛이 반짝거린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신선봉을 지났는가? 동이 훤하게 터온다.
<신선봉을 지나서 기암들에 홀려..>
랜턴을 철수하고 오름길에 잠시 쉰다. 기암괴석이 금강산 못지 않다. 귀때기청봉을 바라보니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다.
아쉽게도 해 뜨는 반대 방향을 걷고 있어, 일출을 보지 못하고 만다. 가야 할 전방의 1,275봉도 환하게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신선봉을 지나면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귀때기청봉>
<눈부시게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1,275봉>
나의 진행이 많이 더딘가 보다. 오색에서 출발했다는 무박 산객인듯 3명이 비선대로 하산 한다면서 또 추월을 한다.
이상하게 마등령쪽에서 오면서 보았던 천화대 절경을 보지 못하고 1,275봉까지 와 버렸다. 반대 방향으로 가다보니 보이는것도 많이 다르다. 그래서 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도 다르고 이름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북진하였던 대간꾼이 남진을 하는 이유도 조금은 알것 같다.
오르고 내리고 우로 돌고 좌로돌고 전형적인 공룡등의 형상이다. 제법 넓은 공터에 5-6명 혼성 야영팀을 만난다. 텐트와 비박 장비를 챙기느라 바쁘다.
야영팀이라 물이 충분 할까바, 물이 있는가 물어보니 물이 바닥이란다. 희운각에서 물을 많이 챙기지 못한것이 약간 후회스럽다.
그러나 여름철 물 없을때 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다. 사방에 눈이 있기 때문이다. 바위에 있는 깨끗한 눈을 입에 물어 본다.
금방 물로 변한다. 갈증 해소는 문제 없지 싶다.
멀리 울산바위와 세존봉이 우뚝 솟아 있다.
마등령이 가까워 온 모양이다.
<세존봉과 울산바위>
마등령이 닥아오니 물 걱정 말고도 큰 걱정이 또 있다. 처음 가보는 마등령에서 황철봉쪽으로 러셀이 이 시간에는 과연 되어 있겠는가가 관건으로 대두된다. 희운각에서의 어제 저녁 정보로는 러셀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과 힘듬에도 어느덧 마등령 0.5km 전방 이정목이 서 있는 고개머리에 도착하니 저만치 마등령 정상이 눈에 들어 온다.
<마등령 정상에서 황철봉쪽 능선>
이어서 지난 겨울 공룡능선 종주때 잠시 길을 잃고 해맷던 너덜지대가 나오니 반가움이 앞선다. 편한 능선길을 조금 걸어가니 보기에도 넉넉하고 편안한 마등령 안부인 독수리 돌탑이있는 곳이다.
<나무 독수리 석탑>
<마등령 안부에서 내려다 본 내설악과 설악동>
지도를 보니 물을 구하려면 오세암쪽 곰골로 약 200여미터 내려가야 할것 같다.
그러나 가보지 않아서 분명치 않으니 갈팡 질팡을 한다.
결론을 내린다. 일단 마등령 정상까지 가서 있는 물로 점심을 해먹고, 황철봉으로 갈것인지를 결정 한후에 물 문제를 해결 하기로 한다. 10시 20분 비선대 갈림길인 마등령 정상이다. 정상의 야영터에는 눈이 잘 다듬어져 있는것이 누군가 야영을 하고 간 모양이다. 이 자리는 명당자리라 올때마다 항상 텐트가 쳐 있었던터라 오늘도 혹시나 하고 확인을 먼저 해 본다.
그리고 나서 출입금지 안내 표시판 뒤, 황철봉쪽의 등로를 확인한다.
분명히 러셀이 되어 있다. 혹시나 하고 제법 올라가 확인을 해보아도 계속 진행한 발자국이다.
미시령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이른 점심을 준비 한다. 점심이라야 떡 라면이 전부다. 물은 라면을 끓이는데 다 소모해 버리고 완전히 바닥이다. 앞으로는 눈을 녹혀 해결 할 수 밖에 없다. 지도상 미시령까지는 5시간 25분이 소요 된다고 되어 있으나, 초행길에 눈까지 있는 너덜지대가 변수로 등장을 한다. 마등령에서 11시에 출발을 한다면, 넉넉히 보험까지 들어 7시간을 잡고, 18시에 미시령에 도착을 할수 있으리라 계산을 해 본다. 떡 라면을 후다닥 해치우고 황철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동행자인 고성의 마도로스 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장시간 산길을 걸어본다고 한다. 그래도 젊어서인지 발걸음이 나보다 가볍다.
러셀이 되어 있지만 눈은 갈수록 점점 깊어만 간다. 너덜지대(잔돌)가 나온다. 이정도는 닥쳐 올 너덜의 연습구간에 불과 하였음을 알게 된다.
설악동 입구가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곳에 처음으로 상고대 같지 않은 상고대를 본다.
<바람을 피해 간신히 붙어 있는 상고대>
연습 너덜지대를 지나 계속 내림길이다. 러셀이 되어 있으나, 빠짐은 점점 깊숙하다. 안부를 지나 또 다시 오름길이다. 반대편에서 젊은 산객 두분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등로 사정을 주고 받는다. 바로 앞에 여자를 포함한 10여명이 미시령으로 가고 있다고 하면서, 어제 오후 늦게 미시령에서 출발 러셀을 하고 오다가 황철봉 밑에서 야영을하고, 아침에 바람이 너무 불어 텐트를 철수하지 못하고 10시경에 겨우 철수하여 온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며, 지금부터 갈길은 눈이 사타구니까지 빠질뿐 아니라, 바람에 몸 가누기가 힘들다고 겁주는 소리만 잔뜩한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든 판에 주눅까지 들게 한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1,249.5봉을 힘겹게 오른다. 가끔씩 만나는 대간표시기가 반갑다. 더구나 매단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시 산악연맹의 대간 표시기는 연두색으로 생생하다.
<기암 괴석은 여기에도>
저항령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지도상으로 보면 저항령에서 황철봉을 오르면 오늘의 산행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 간다고 생각하니 저항령이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간다. 직하 내림길을 지나니 안부인 저항령이다. 벌써 14시 08분이다. 지도상 2시간 10분 거리를 3시간 10여분이 걸렸다. 이거 참 야단났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쉬나 마음이 바쁘다.
지도상으로 사거리로 표시되어 있지만, 발자국은 황철봉 한 방향뿐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황철봉을 오르기 시작 한다.
<저항령 안부>
지루한 오름에 힘이 다 빠진다. 눈으로 입을 축이는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 물을 꿀꺽, 꿀꺽이 들이키고 싶다. 염치 불구하고 지나쳤던 산객에게 물 부탁을 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에 이른다. 아니 되겠다 싶어 하는 수 없이 눈을 녹이기로 한다. 코펠에 눈을 퍼담고 버너에 불을 붙인다. 쉽게 녹을 줄 알았던 눈이 쉬 녹지 않는다. 눈 물을 마시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녹은 눈 물을 급한데로 우선 한 모금씩 하고, 눈을 더 녹혀 각각 물병에다 담는다.
눈 물이라도 확보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황철봉 전에 있는 작은 황철봉이다. 제법 시원하게 시야가 터진다. 지나 온 길과 사람이 살고 있는 설악동이 자꾸 내려다 보인다.
<멀리 대청과 중청, 그리고 가까히 걸어 온 길>
<동해바다, 설악동 입구와 달마봉 우측 속초시내>
<칠성봉 과 노적봉 쪽 능선들>
작은 황철봉이라니? 처음 황철봉으로 희망속에 착각을 하고 올랐으나, 황철봉이 아님에 실망하여 작은 황철봉이라 내 마음대로 명명한것일 뿐이다.
정상 완만한 등로가 지속되면서 조망이 좋아 몇컷 담아본다.
<황철봉에서 문바위골로 내리는 능선>
진짜 황철봉을 오르기 전, 편안한 등로에서 마지막 간식인 찐빵을 쪄 먹기로 한다. 처음 시도해 본 식단인데 성공적이다. 깨스가 얼어 열을 가하니 김이 무럭무럭 난다. 이제 깨스도 바닥 직전이다. 맛있게 쪄진 찐빵을 먹고 황철봉으로 향한다.
<찐빵을 찌고 있다>
예행 연습으로 약간의 눈 덮힌 너덜지대를 올라보니 작난이 아니다. 황철봉을 올라 내림길을 지나고 1,318.8봉에 이른다.
삼각점과 좌로 내리라는 빨간페인트 화살표가 선명하다.
오름 너덜지대에도 가끔씩 표시되어 있어 대간길임이 확인되니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미시령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멀리 다음구간을 조망해 본다.
<상봉과 신선봉>
가야할 다음 구간인 상봉과 신선봉을 조망하고, 다시 마산과 흘리를 가늠하니 진부령도 위치가 대충 파악된다.
<마산과 흘리>
본격적인 너덜지대가 눈 앞에 나타난다. 눈덮힌 너덜이라 초 긴장 상태로 발을 뗀다. 한발 한발이 잘 못하면 사고로 직결된다는 생각으로 조심성있게 내려간다.
< 잼버리가 열렸던 학사평>
계속되는 너덜지대를 지난다. 우측에 서있는 나무에 대간기가 보인다. 선답자의 표시가 중요한 길잡이를 한다. 방향 표시를 하기 위하여 돌탑을 쌓아놓은 정성이 눈물겹다.
등로가 나무 숲으로 이어져 너덜지대가 끝 난는가 싶었는데 또 다시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 너덜지대에서 본 울산바위와 내려가는 능선>
너덜지대 저만치 세 사람이 내려가고 있다. 오늘 러셀을 하며 길을 편하게 안내해 준 장 본인들이다. 반가움과 고마움에 큰소리로 인사를 하니 응답이 온다. 속도를 더하여 너덜지대를 내려간다. 너덜지대를 다 벗어난 지역에서 상면을 하여 인사를 건낸다. 대간 표시기에서 본 고양시 산악연맹 소속 일산 알프스 산악회 대간팀으로 11명이 설악동에서 마등령으로 올라 대간 땜빵을 하는 중이란다. 나도 사는 곳이 일산이라고 하며 알프스 산악회는 익히 들어서 알고있으며, 온라인 상에서 여성대장(노성임)의 활약상을 알고 있다고 하니, 노대장은 선자령으로 산행을 갔다며 더욱 반가워 한다.
인터넷이 있어 산중에서도 인연이 계속되니, 새삼 인터넷의 위력이 실감난다.
계속되는 미시령으로의 내림길이 눈 때문에 성가시고, 눈을 박차고 내려가는 발길이 쉽지 않다.
저멀리 미시령으로 이어져 올라오는 차량의 불빛이 보이고, 휴게소의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다 왔다는 안도감에 휴게소 전경과 줄지어 올라 오는 차량의 불빛을 담아본다.
<줄지어 올라오고 있는 차량의 불빛>
<미시령 휴게소 전경>
도로 직전 철망을 우회하여, 입산 통제소 옆으로 하산을 함으로 12시간에 걸친 오늘의 산행과 백두대간 13차 출정을 마무리 한다.
우연히 만나 동행자가 된, 고성의 마도로스 이춘식님의 배려로 속초 터미널까지 택시로 편안하게 갈수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찰라에 불과한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좌우명으로 모든 이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 하겠습니다.
첫댓글 노짱님!! 미시령도착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엄동 설한에 설악산 구간을 통과 하신 님의 뚝심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면서 지난해 늦은 가을 실버팀들이 미시령에서 한계령으로 남하 종주를 했던 악몽이 떠오릅니다. 평생을 살아 오면서 이런 고생은 처음이였다는 고광순씨의 절규가 귓가에 쟁쟁 하고 ......
새벽2시50분 황철봉 너덜지대에서 다리가 바위틈새에 끼여 성문이 깨젖지만 정신이 없어 피가 범벅이 된줄도 몰랐던 일이며 희운각 입실이 안돼 공터에 비닐 천막을 치고 비박을 했던 아품이 가슴에 절절 합니다. 설악!!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픈 곳, 마지막 진부령 구간은 외롭지 않는 축제의 산행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