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8:9-18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다윗이 왕이 된 뒤 블레셋과 모압을 쳐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바 왕 하닷에셀과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었고 하닷에셀을 돕기 위해 찾아온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까지 모두 무찌르게 됩니다. 오늘은 그 승리 이후 높아진 다윗의 위상과 변치 않는 그의 중심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다윗의 높아진 위상(8:9-14절)
(9-10)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하맛 왕 도이와 소바 왕 하닷에셀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무찔러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도이는 자연스럽게 경쟁국을 어부지리로 누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도이는 그의 아들 요람을 다윗 왕에게 보내어 문안과 축복을 하게 하고 은 그릇, 금 그릇, 놋 그릇을 선물로 전달하게 합니다. 여기서 문안은 ‘샬롬’ 곧 화친과 평화를 말하며 축복은 ‘바라크’로 다윗을 높이고 축하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곧 승리를 축하해주며 그와 화친을 맺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강대국들이 이웃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직접 통치를 하는 방법이 있었고, 왕을 세우거나 그 나라의 기틀은 유지시키면서 조공을 바치도록 하는 방법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자발적 화친을 요청한 국가들이 비정기적 자발적 조공을 바치도록 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오늘 하맛 왕 도이는 자신과 비등비등한 소바 왕 하닷에셀이 무너진 것을 보고 다윗이 자신들을 침공해오지 않도록 축하의 명분을 두고 미리 찾아와 화친을 맺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다윗과 이스라엘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대한민국이 지금 IT, 문화 강국이 되어 한류를 이끌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것처럼 다윗과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늘 본문의 모습은 놀랄만한 변화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민족이었고, 다윗은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얻은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고, 이 전리품들은 훗날 성전 건축의 재료들이 됩니다.
(11-12)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이번에 받은 선물만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다윗은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과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까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는 다윗이 가진 삶의 목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왕이 된 사람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국가를 위해 더 많은 권력과 물질을 소유하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얻은 전리품들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자신이 여타 다른 민족들의 왕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왕의 자리에 세워졌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자신의 왕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승리와 성공을 주시고 또 많은 권력과 물질을 주시면 스스로 왕인줄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윗은 변치않고 자신의 삶의 목적이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줄을 잊지 않고 있었고, 승리와 권력과 물질에 취해 잠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위상이 참 많이 달라졌고 바뀌었다 생각하지만 그것은 보여지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런 것이지 하나님과 다윗과의 관계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양을 치는 목동일 때 그를 불러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맡긴 양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사자와 곰과 싸우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모습을 보시며 이런 다윗에게 자신의 양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맡기시기로 택하십니다. 다윗은 지금도 목동일 때와 동일하게 양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하는 사자와 곰같은 블레셋, 아람, 모압,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목동일 때나 왕이 된 때나 동일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움을 하며 충성되게 전투에 임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다윗의 사회적 위치와 싸움의 규모와 대상일 뿐 다윗의 모습과 자세는 동일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고 위치가 바뀌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자세와 중심이 변질 되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왜 자신을 그 자리에 세우셨는지 그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왕이 된 뒤에도 변치않고 목동때의 모습 그대로 양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건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처음 부르신 모습, 그 자세, 그 중심을 지키고 계십니까? 환경이 달라지고 자리가 달라지고 사회적 입지가 달라짐에 따라 혹여나 처음 모습,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첫 모습과 자세를 간직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큰 명성과 승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소금 골짜기는 사해 남쪽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리고 에돔에 수비대를 두고 에돔을 다스렸는데 에돔 사람 모두가 다윗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모든 지역 근방 국가들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신명기 28장 13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높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높이며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그 백성을 동일하게 존중하시고 높여 주십니다. 이 말을 마치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세상의 명예, 인기, 물질을 많이 얻게 된다는 기복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가정, 재산, 삶의 환경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사람의 가정, 재산, 환경을 탐내서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애초에 상대방이 목적이 되느냐 수단이 되느냐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과 수단으로 삼는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실 정도로 무지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자신의 것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다른 나라의 왕들처럼 자신을 위해 전리품을 쌓아두고 자신의 창고에 들이지 않았고 먼저 하나님을 위해 전리품을 드렸습니다. 곧 하나님 중심으로 자신의 왕된 권리를 내려놓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한량없는 은혜와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적과 방향이 바로 선 다윗에게 복을 주셔도 그것이 고이거나 썩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복과 은혜를 받기 원하면서도 그 받은 복과 은혜를 바르게 흘려보내고 있는지는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국가의 영예나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많은 물질을 쌓아두기 위해 전투에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사자와 곰같은 이방 백성들을 무찌른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다윗에게 힘과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기 이전에 먼저 내가 하나님께 받은 것들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받은 그 선물로 인해 오히려 내가 고이고 썩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훌륭한 동역자, 조력자들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15-18)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다윗은 외부의 적들만 무찌른 것이 아니라 내치에도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나라 안에 억울한 이가 없도록 애쓴 것이며 또한 삶에 어려움이 없도록 돌아본 것입니다. 이는 다윗의 마음이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헛되고 허망한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백성들에게 마음을 두고 돌보는 선왕의 길을 걸어간 것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훌륭한 조력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다윗의 조카인 요압이 군사령관이 되었습니다. 훗날 요압의 힘이 너무 강해져 그를 컨트롤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요압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기에 충성심 가득한 모습으로 전쟁을 수행한 용맹한 장군이었습니다. 또한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었는데 그의 이름이 요압 다음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반적 사관이라기보다 군대의 제반 행정사항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독은 ‘의로운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사독 계열의 제사장의 출발이 되어 훗날 ‘사두개파’의 기원이 됩니다. 사독은 다윗에게 충성되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참여했고 압살롬 반란 사건 때 다윗을 지지하였으며 아도니야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솔로몬의 편에 선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기록 전반을 다루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훌륭한 장수로 모압 두 장수를 죽이고, 구덩이에 빠진 사자를 죽였으며, 애굽 거인을 죽인 용맹한 장수였고, 이 사람도 압살롬 반란과 아도니야 사건 때 끝까지 다윗에게 충성하였으며 솔로몬이 왕이 된 뒤 군사령관까지 맡았던 다윗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렛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여 다윗의 친위대 용병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렛과 블렛 사람은 블레셋 사람들이 건너온 ‘크레타 섬’ 이름과 블레셋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블레셋과 관련된 사람들로 추측합니다. 이들은 압살롬 반란과 세바의 반란, 솔로몬 즉위식 때에도 큰 공과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대신’은 원어로 ‘코하님’ 곧 제사장을 의미하지만 실제 제사장들이 있었기에 역대상 기록에 따라 ‘왕을 모시는 사람들의 우두머리’ 혹은 왕실의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했거나 제사장을 돕는 종교적 역할을 감당하는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기록된 사람들이 다윗 왕 초기에 중요한 역할들을 맡아 다윗 왕이 위기를 겪는 모든 순간순간 함께 곁에 있으며 다윗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조력자들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보시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각자 세워진 자리는 달랐지만 다윗을 도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든든히 세워가는데 최선을 다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신다면 분명히 그에 맡는 동역자들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요압, 여호사밧, 사독, 아히멜렉, 스라야, 브나야와 같은 충성된 사람들을 곁에 두고 함께 일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애굽의 종살이 하던 민족 이스라엘을 열방이 두려워하는 이름으로 만들어주시고, 양치던 목동 다윗의 이름을 높여 주신 은혜를 돌아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것을 취하기 위해 몸부린 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높여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목적 삼고 그 말씀을 존중하고 배워가며 순종하는 주님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던 높이시던 관계없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늘 주님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때로는 외롭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충성된 동역자들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동역자들을 허락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세워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세워가며 사랑하는 주님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다윗이 자신이 취해도 되는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린 것과 사울이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명하신 아말렉의 양과 소를 취한 것을 비교하여 둘의 중심이 무엇이 달랐는지 묵상해 봅시다.
2. 다윗이 양 떼를 지키던 모습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는 모습에 차이가 없었음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나를 심어주신 장소에서 과거의 나의 모습과 달라진 부분은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3.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신실한 조력자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는 내 곁에 허락하신 동역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