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1-17
찬송가 207장 ‘귀하신 주님 계신 곳’
바야흐로 오늘날은 이미지의 시대입니다. 한 유명 디자이너는 말하기를 아무리 말로 잘 설명해도 한 장의 잘 그린 그림 하나를 못 당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눈을 통해 얻는 정보는 모든 정보 중에 80퍼센트나 됩니다. 그렇게 눈으로 보는 것이 우리 감각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 ‘디자인’이나 ‘비주얼’ 같은 단어가 각광을 받습니다. 이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중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의 외모가 ‘얼짱’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뉴스로 접한 누리꾼들이 “이러니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보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솔로몬이 고백한 것처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까닭은 사람에게 있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솔로몬은 당대 가장 진귀하고 좋은 것들을 재료로 삼아 화려하게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성전 건축의 시기와 장소(1-2)
먼저 성전의 개략적인 정보에 대하여 1절과 2절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1-2절)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
성전이 지어진 장소에 대해 역대하 기자는 두 가지 단서를 말합니다. 하나는 ‘모리아 산’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입니다. 두 가지 단서는 사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신 곳입니다. ‘모리아 산’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만나 주신 장소이고, ‘오르난의 타작 마당’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다윗에게 나타내 주신 장소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신 동기와 시간은 다릅니다. 하지만 위도와 경도가 같은 바로 그 위치, 바로 그 장소입니다. 동기와 시간이 다르더라도 성전은 하나님과 만나는 바로 그곳에 지어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의 성전은 제 위치에 건설되고 있습니까? 인생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받으시는 곳, 그래서 나와 만나시며 나에게 명령을 내려 주시는 곳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마음에 모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며 내가 주도하는 인생이라면 하나님께서 처음 나와 만나 주시며, 내 죄를 용서하셨던 그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우리 삶을 다시 성전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외부 규모와 내부공사(3-7)
성전 건축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한 이후에 역대하 기자는 성전 내외부 규모에 대해 알려줍니다. 이런 설명 방식은 성전을 바라보고 있는 독자들의 시각을 멀리서부터 천천히 성전 건물로 줌인하여 당기는 효과를 나타내어 줍니다.
(3-7)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놓은 지대는 이러하니 옛날에 쓰던 자로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며 그 성전 앞에 있는 낭실의 길이가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백이십 규빗이니 안에는 순금으로 입혔으며 그 대전 천장은 잣나무로 만들고 또 순금으로 입히고 그 위에 종려나무와 사슬 형상을 새겼고 또 보석으로 성전을 꾸며 화려하게 하였으니 그 금은 바르와임 금이며 또 금으로 성전과 그 들보와 문지방과 벽과 문짝에 입히고 벽에 그룹들을 아로새겼더라
성전 전체의 규모는 가로로 20규빗(대략 9미터), 세로로 60규빗(대략 27미터)의 직사각형 형태입니다. 4절에 낭실이라는 공간이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의 건물에서 현관, 로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이 갖는 특징은 높이가 다른 곳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4절에서는 그 높이를 120규빗이라고 했는데, 이를 환산하면 55미터에 달합니다. 대략 아파트 18층 정도의 높이가 되는데, 이는 고대 건축 기술로 볼 때, 지어지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래서 병행구절인 열왕기상 6장 3절과 비교해 보면 열왕기 기자는 30규빗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대개 열왕기서의 기록이 정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역대하 기자가 이토록 성전 로비의 규모를 높게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대기 전체의 기록 목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이 책의 1차 독자인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에게 역대기 기자는 다시 성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면서 성전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했는지를 더 장황하게 설명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자극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역대하 기자가 성전에 대해 마냥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닙니다. 5절에 설명되고 있는 성소 내부를 꾸미는 내장재가 잣나무, 곧 당대 최고의 품질이었던 페니키아산 전나무를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내부 장식에 있어 엄청난 양의 금과 보석을 사용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금을 사용할 때는 흔히 아는 일반적인 순금을 벽과 천장에 입히기도 했지만, 6절에 언급된 대로 바르와임 금을 사용해서 장식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라비아 동남부 지역에서만 나는 붉은빛이 강한 금입니다. 한 마디로 어느 하나도 쉬운 방법으로 대충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얄팍하게 도금 처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법 상당한 두께의 금을 펴 바르는 형식으로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작업한 이유는 그곳이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변하지 않는 금을 사용하여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자 한 것은 오늘 작은 성전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솔로몬 성전과 다르게 우리는 작은 것 하나에도 세상과 너무 쉽게 타협해 버리지 않습니까? 변하지 않음을 추구하기보다,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해야 잘산다고 말하며 이익이 될 만한 것을 찾아 그 주변에서 기웃거리지 않습니까? 그런 이유로 주일의 삶과 평일의 삶이 너무도 다른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과연 그 모습을 성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삶이 정금 같은 진리로 둘러지고,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정직한 모습으로 장식하는 성전 닮은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한 곳, 지성소(8-14)
역대하 기자는 독자들의 시선을 조금 더 줌인하여 이제 지성소로 향하게 합니다.
(8-14) 또 지성소를 지었으니 성전 넓이대로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도 이십 규빗이라 순금 육백 달란트로 입혔으니 못 무게가 금 오십 세겔이요 다락들도 금으로 입혔더라 지성소 안에 두 그룹의 형상을 새겨 만들어 금으로 입혔으니 두 그룹의 날개 길이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왼쪽 그룹의 한 날개는 다섯 규빗이니 성전 벽에 닿았고 그 다른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오른쪽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 오른쪽 그룹의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성전 벽에 닿았고 그 다른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왼쪽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 이 두 그룹이 편 날개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그 얼굴을 내전으로 향하여 서 있으며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고운 베로 휘장문을 짓고 그 위에 그룹의 형상을 수놓았더라
지성소는 성전 내부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공간으로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고도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길이와 넓이는 각각 20규빗(대략 9미터)정도 되는 정사각형 형태인데, 흥미로운 점은 그 내부 전체를 순금(곧 영어로는 ‘finegold’ 불순물을 첨가하지 않은 금)으로 둘렀다는 것입니다. 8절에 따르면, 그 공간에 투입된 금의 양이 무려 600달란트입니다. 오늘날 무게 단위로는 20.5톤이나 됩니다. 심지어 이 공간에는 못도 금이고, 다락도 금으로 입혔습니다. 10절 이하에는 그룹, 즉 날개를 펼친 천사의 형상이 지성소 이쪽 벽에서부터 저쪽 벽에까지 가득 차게 서 있었음을 말해주는데, 이 거대한 형상 역시 금으로 입혔습니다.
온 사방이 찬란하게 꾸며진 지성소는 다른 곳과 달리 휘장으로 문을 만들었습니다. 공간을 정확하게 구별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을 맞아 대제사장만이 이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 외에는 누구도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이 휘장문을 찢으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 길을 알려주시지만, 성전이 지어질 당시에 휘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사람이 엄연히 구분되는 정확한 구분 선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땅에서 제아무리 큰 권력을 지녔어도 그는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가 스스로 대단한 진리를 깨우쳤어도 그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사람이지, 경배받을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모신 성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이것입니다. 사람으로 존재해야지, 선을 넘어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교제와 만남을 가로막는 성전 휘장은 매일 찢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구분 없이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욕망과 욕심으로부터는 존재를 규정하는 경계의 휘장이 늘 똑바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성전을 받치는 두 기둥(15-17)
성전 안쪽 끝에 위치한 지성소까지 안내한 역대하 기자는 다시 성전 밖으로 나와서 건물을 떠받치고 있던 두 기둥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15-17) 성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성전의 전면에는 건물 전체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두 기둥에 이름을 붙였는데, 오른쪽에 있는 것은 ‘야긴’, 왼쪽에 있는 것은 ‘보아스’라 라고 하였습니다. ‘야긴’이라는 말은 “그가 세운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성전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보아스’라는 이름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역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다스리시는 능력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을 담은 두 기둥이 솔로몬 성전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우리 삶이 성전이 되도록 견실하게 세우는 것도 개인의 신앙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을 성전으로 지어가는 우리 각자가 ‘보아스’를 고백하는 삶, 곧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는다면, 성전의 한 축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또 ‘야긴’을 고백하는 삶, 곧 하나님께서 인생을 세우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이 또한 성전의 한 축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시편 127편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정 우리 삶이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굳건한 신앙고백을 기둥 삼아 그 아래에 세워야 안전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전 건물이 제아무리 화려한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을 용납하기에 적당한 건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와 같은 모습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신 것은 사람은 보는 것에 좌우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당대의 사람들이 입을 벌릴 만큼의 화려한 모습으로 성전을 짓고 그곳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구별된 삶의 모습으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여기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삶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각종 화려한 것들이 그 재료였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각종 의로운 것들이 재료입니다. 진리, 성실, 정직, 친절, 용기, 겸손과 같은 재료가 오늘 우리 삶을 성전으로 지어가는 재료일 것입니다. 부디 이 같은 의로운 재료들로 우리 삶을 솔로몬 성전처럼 아름답게 지으십시다. 그리하여 인생이라는 성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머물고 계심을 이웃과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복음의 통로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한 모습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만난 그 장소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재료로 삼아 성전이 지어졌음을 보았습니다. 부디 우리 삶도 성전과 같이 되어, 하나님과 만난 그곳에다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운 삶을 짓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이 말씀과 겸손과 정직을 재료로 삼아 하나님이 거하실만한 아름다운 성전으로 지어지게 하시고, 이를 이웃과 사람들에게 보여 줌으로 참으로 영광된 삶이 무엇인지도 전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갖추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창문을 열고, 주님만 경배하며, 주의 말씀만을 목적 삼아 살아가는 저희 모두에게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솔로몬은 어디를 성전을 지을 터로 삼았습니까?
2. 성전 내부를 장식하는 주재료는 무엇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휘장문은 어느 장소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4. 성전 앞에 세워진 두 기둥의 이름은 무엇이며, 왜 그와 같은 이름을 지었습니까?
(작성: 황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