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산문 대상
섬
김가현(정명여고 2)
7살 무렵,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시에서 신안 비금도라는 낯선 섬으로 우리가족 모두는 설레는 마음을 한 가득 안고 이사를 시작했다. 처음 타 보는 배, 찰랑이는 물결을 타고 배는 천천히, 천천히 신안 1004개의 섬 중 하나인 비금도로 향했다. 그 낯선 섬에서 처음 만난 초라한 학교와 그 옆에 자그마한 병설 유치원 처음 보는 곳에서 7살의 나는 긴장과 설렘을 안고 유치원에 들어섰다.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 그 곳에서 낯설어 하고 있는 내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준 10년 지기 단짝친구 예림이는 낯설어하고 있는 내게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어느덧 낯선 섬에서의 생활은 적응 되어져갔고 나는 초등학교를 예림이와 같이 입학했다. 한 학년 당 학생수가 8명밖에 없는 정말 작은 학교에서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놀았다. 초등학교 3학년, 나는 처음으로 8명 중 한 남자아이와 공동 1등을 했고, 그 남자아이와 난 선의의 경쟁 상대가 되어 열심히 경쟁했다. 학교가 끝나고 근처 학교 관사에 가면 항상 날 반겨주던 강아지 엠마가 있었고 개구쟁이 내 동생도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는 항상 5시쯤에 퇴근을 하셨고 엄마도 직장을 다니셔서 나와 내 동생은 사냥개 엠마와 추억을 쌓으며 즐겁게 놀았다. 평소와 같이 학교가 끝나고 집을 가려던 중 나와 공동 1등을 했던 남자 아이 혁재가 같이 집에 가자고 해서 혁재의 집에 가 봤는데 혁재의 집은 정말 낯설었다. 엄마, 아빠가 아닌 할머니께서 날 반겨주었고 강아지가 아닌 소, 닭이 날 반겨주었다. 그 때 당시에는 신기하고 부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철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서울로 돈을 벌러 가셨다는 혁재는 얼마 후 내게 스티커 한 장만을 남기고 떠났고 내 친구 예림이도 엄마를 따라 도시로 떠났다. 또 다른 친구들이 떠날까봐 두려웠고 나만은 절대 이 섬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도 결국 이 섬을 떠나게 되었고 난 가기 싫다고 울며 떼쓰고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목포로 떠났다. 비금의 아름다운 하트바다 해느넘, 그 뱃고동 소리, 그곳에서 키조개를 잡던 우리가족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키우던 사냥개 엠마는 학교 직원 분께 부탁하고 정들었던 학교 관사 강아지 번개와 작별인사를 했다. 목포에서 맞은 첫, 생일 날 비금친구 유나는 내게 편지를 썼고 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엄마, 아빠께 말씀드리자 엄마는 머뭇머뭇 거리시다가 나의 재촉에 입을 열었다. 엄마가 하시는 말에 난 충격을 받았다. 내 유년시절이 당겨있는 비금동초등학교의 학생 수 급감으로 폐교되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내 유년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듯 허전했고 어딘가 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재촉으로 다시 가 본 비금도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내 고향이었고 여전히 내 추억이었다. 목포에 사는 나와 예림이는 만날 때 마다 비금에 관한 얘기를 한다. 소박했지만 아름다웠고 초라했지만 즐거웠던 우리들만의 추억이 신안 비금도에 숨 쉬고 있다.
섬, 비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의 친구들, 선생님, 지금은 볼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강아지 엠마, 혁재가 남기고 간 스티커 한 장, 또 친구에게서 온 편지... 잊혀 질 수 없는 내 추억들은 모두 비금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곳에서 끝났다. 아름다운 비금, 내 고향 비금에 다시 간다면 많은 것들이 변해있겠지만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있는 추억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내 눈으로 본 비금은 예전의 모습과 다름없을 것이다. 학교도 폐교가 되고 남아있는 친구들도 몇 없겠지만 여전히 비금은 아름다운 나의 고향, 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