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중앙고 김현석 감독, "내친김에 21년만에 정상탈환 희망한다"

[37박순용]

▲31일 경남 김해시 진영운동장에서 열린 '제54회 청룡기 전국고교축구대회' 대신고와의 8강전에서 승리를 만들어낸 강릉중앙고 김현석 감독의 모습 ⓒ 사지 이 기 동 기자

축구 도시 강원도의 선두주자 격인 강릉중앙고의 '미러클'이 심상치 않다. 저학년 위주로 구성됐다는 핸디캡에도 당당히 청룡기 대회 4강 입성을 일궈내며 전통의 강호로서 저력을 뽐냈다. 축구부 창단 80주년을 맞아 3년만에 전국대회 상위 입상이라는 풍족한 수확물도 함께 거뒀다.

강릉중앙고는 31일 김해 진영운동장에서 열린 제54회 청룡기 전국고교축구대회 8강전에서 대신고(서울)를 2-0으로 눌렀다. 강릉중앙고는 김영욱(경남FC)이 활약하던 2012년 춘계연맹전 우승 이후 3년만에 전국대회 입상을 달성하며 모처럼 전통의 강호로서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16강에서 우승후보 창녕고(경남)를 승부차기 접전 끝에 돌려세운데 이어 이날도 전통의 강호 대신고에 승리를 거두는 등 축구부 창단 80주년의 상징성을 더욱 빛냈다.

"사실 청룡기 대회를 대비해 준비를 많이 했다. 저학년 선수들이 많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해줘서 당초 목표였던 4강 진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리저브 자원이 풍족하지 못한 상황임에도 대신고 선수들보다 한 발 더 뛰는 축구를 구사한 것이 잘 먹혀들어갔다. 오늘 승리의 기쁨을 접어두고 준결승에서도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저학년 선수들이 많은 강릉중앙고의 이날 키워드는 바로 체력이었다. '퐁당퐁당'으로 치러지는 일정 속에서 체력적인 안배가 승부의 큰 분수령이나 다름없었다. 전반 초반부터 신중한 경기운영에 포커스를 맞춘 강릉중앙고는 수비 뒤 이어지는 빠른 역습으로 대신고의 지친 수비를 공략하며 조금씩 실마리를 찾았다. 에이스 안수현과 장호승 등이 폭넓은 활동량으로 상대 수비를 끌어내며 좋은 장면들을 연거푸 연출했다.

강릉중앙고의 패턴은 대성공이었다. 한 경기를 더 치른 대신고 포백 수비라인의 집중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좀 더 공격적인 플레이로 경기 주도권을 장악했다. 결국, 엄형진과 임현우가 연거푸 대신고의 골네트를 가르며 승기를 잡았다. 골키퍼 김연수를 축으로한 수비라인도 몸을 아끼지 않는 육탄방어로 상대 김치얼과 강경훈 등의 발을 꽁꽁 묶으며 대회 첫 무실점 승리를 일궈냈다. 양과 질 모두 두둑하게 챙기면서 불볕 더위에 좋은 선물을 장만했다.

"불볕 더위에 경기를 하면 피로도가 분명히 쌓인다. 경기 전부터 훈련보다 휴식, 영양 섭취 등을 통해 선수들의 피로 회복에 포커스를 뒀다. 우리와 상대하는 팀은 약팀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더운 날씨에 선제골을 내주면 어려운 경기가 될 확률이 높다. 전반에는 안정된 경기운영을 펼치려고 했다. 후반에는 1학년 선수들을 투입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 적중했다. 대신고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잘 파고들었다."

"고교축구에서 1살 차이는 굉장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체력적인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대회 전부터 조직 훈련을 많이 했다. 조직이 잘 갖춰지면 체력적으로 열세를 보여도 효율적인 경기운영이 가능하다. 조직 훈련과 체력 훈련을 병행하면서 경기운영의 묘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오늘 승리로 선수들이 자신감을 한층 축적했고, 분위기 또한 밝아졌다. 모든 승리의 공은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다."

에이스 안수현과 장호승, '슈퍼 서브' 임현우는 왕년의 스타 김현석 감독이 낳은 최고의 걸작들이다. 안수현과 장호승은 이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최전방과 측면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활동량으로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슈퍼 서브' 임현우는 이날 멀티골을 쏘아올리는 등 새내기 답지 않은 대담한 플레이로 팀 승리의 주춧돌을 놨다. 공격축구를 지향하는 김 감독의 스타일에 일맥상통하는 이들은 대신고 격침에 큰 수훈갑이었다.

"(안)수현이는 볼 키핑과 헤딩력, 득점력 등 스트라이커로서 갖출 조건을 고루 갖췄다. (장)호승이는 스피드와 득점력 등이 뛰어나고 플레이 자체가 확 튀는 선수다. 2학년 선수들이라 올 하반기만 지나면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자원들이다. (임)현우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스카웃한 선수다. 스피드와 지구력 등이 좋은 선수인데 오늘 2골로 제 역할을 다해줬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기대된다."

"저학년 선수들이 많아도 수비 지향적인 패턴보다 공격 지향적인 패턴을 선호한다. 1골을 내주면 2골을 넣는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고, 공격적인 부분에 대해 주지시키고 있다. 매 경기 2골을 넣어주고 있는데 공격 지향적인 플레이를 성장 과정에서 익히면 성인 무대에서 좀 더 좋은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 부분을 염두해두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편이다."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현석 감독은 지난 시즌 모교 강릉중앙고 감독으로 지도자 인생의 '제2막'을 열어젖혔다. 이미 기술과 정신적으로 완성도에 다다른 프로 선수들과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야하는 고교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선수들과 눈높이를 최대한 맞춰주면서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울산 현대 코치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향후 발전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확립 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강릉중앙고는 내가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는데 좋은 밑바탕이 된 나의 모교다. 프로에서 워낙 오래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니까 선수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코칭스태프들과 미팅과 의견 수렴 등을 통해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 딸이 고교 2학년이라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하고 있다. 프로에서 오래 있다보니 프로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다."

"부임 첫 시즌 3학년 선수들의 진학 문제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선수들에게 내 스타일과 성인 무대 진출시 가야할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학이 잘 이뤄지고, 대화와 훈련 등을 통해 선수들과의 거리감을 해소하고 있다. 부임 초반 선수도 부족하고 팀을 꾸려가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3~4년을 내다보고 팀을 지도하려는 계획을 가졌는데 선수들이 다행히 잘 따라주는 중이다."

축구부 창단 80주년에 전국대회 상위 입상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완성한 강릉중앙고는 내친김에 21년만에 정상 탈환을 꿈꾸고 있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춘계연맹전 준우승팀인 오상고(경북)와 경남 리그 우승팀 창녕고 등 강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자신감은 어느새 선수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됐다. 김 감독의 조련 아래 팀 조직력도 점점 완성 궤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다. 준결승 맞상대인 거제고(경남)가 우승후보 0순위로 손색없는 팀이지만, 지금 분위기만 놓고보면 결코 못 넘을 산은 아니다.

강릉중앙고에게 백록기 우승팀인 강릉문성고는 신선한 자극제다. 올 시즌 권역 리그에서 우승(강릉문성고)과 준우승(강릉중앙고)을 나눠가진 가운데 축구 도시 강원도에 신-구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불볕 더위를 시원하게 씻겨주고 있다. 총동문회와 학교 측의 열성적인 지원도 축구부 창단 80주년을 맞은 강릉중앙고에 든든한 지원군이다. 2012년 춘계연맹전 우승 이후 한동안 주춤했기에 이번 청룡기 대회 상위 입상은 명가재건의 좋은 주춧돌이다.

"거제고는 공격과 미드필더, 수비 모두 안정된 경기를 펼치는 팀이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좋고 조직력 역시 잘 짜여졌다. 코칭스태프와 미팅을 통해 상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백록기 우승팀인 강릉문성고가 우리에게 좋은 자극제였다. 강릉문성고보다 전통이 깊은 팀이라 자존심과 승부욕 등이 발동한 것도 사실이다. 강릉문성고와 라이벌 구도를 통해 발전하는 것은 한국축구 전체에도 좋은 현상이다. 올 시즌은 강릉중앙고 축구부 창단 80주년이다. 마지막까지 가진 힘을 다 짜내서 학교와 동문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금 교장-교감-부장 선생님께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계신데 응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모교의 옛 명성을 찾는 것이 나의 임무다." -이상 강릉중앙고 김현석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