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두꺼운 관습으로부터
어느 날 홀연히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
그들이 잠망경을 통해 들여다본 자연과 삶의 풍경들
동트는 새벽하늘처럼
오랜 열망 하나가 깨어나기 시작하더니
그토록 닿고 싶던 피안의 감성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파인더를 통해 만났던 순간들
우리를 황홀하게 감쌌던
깨달음 같기도 하고 아픔 같기도 했던
그 찬란한 이야기들이
드디어 상상마당에 한 자락의 옷깃을 풀어 놓았다
무심재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글과 사진으로 빛을 더했던
보리 임연희님, 엇모리 엄순자님, 피엘 이연옥님, 무무 지성옥님...
그동안 윤광준 작가의 문하에서 벼리어온 아름다운 솜씨를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펼쳐놓았으니
벗들! 고운 발걸음으로 한번 다녀오시라.
저는 여전히 여행길에 있어
10월 5일 축하마당에는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 아쉬움과 미안함을 초대의 인사로 대신합니다.
![um.jpg um.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hotovil.hani.co.kr%2Ffiles%2Fattach%2Fimages%2F84%2F872%2F093%2Fum.jpg)
엄순자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여는 주부님들이 보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이름을 잃고 아내와 엄마와 할머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심정을 대신하는 일곱 분의 전시 제목은 ‘엄마가 뿔났다’입니다.
사진을 보면 왜 뿔이 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진에선 곱디고운 심성들이 보일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왜 뿔이 났다고 했는지 짐작 못할 일이 없습니다. 결혼하면서 갑자기 아이로 변하는 남편 뒷바라지부터 진짜 아이가 태어나면 제대로 ‘감옥’생활을 해야 합니다. 언제 철이 들지 알 수 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면 엄마들은 어느새 귀밑머리가 하얗게 쇠어버립니다.
이 일곱 분들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결혼 생활 8년차부터 40년차까지 있다고 합니다. 결혼한 지 8년밖에 안되었으니 ‘집 안 사람’ 노릇을 얼마하지 않았다고 볼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하루는 모두 길이가 다릅니다. 그러니 8년이나 40년이나 각자에겐 모두 긴 세월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들이 카메라를 만나게 된 것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은은한 장면이 많습니다. 여성들이니 예쁜 사진을 찍었을 거라는 짐작을 하는 것은 실수하시는 겁니다. 발견하기 힘든, 감춰진 물속의 그루터기, 안개가 자욱해야만 특성이 드러나는 적성산의 숲……. 모두 깊이가 있는 풍경들입니다. 처음엔 이 일곱 분에게 카메라는 일탈의 ‘희망가’ 였을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중요했던 것은 결혼과 더불어 잊고 있었던 바깥 세상에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카메라가 되었던 붓이나 원고지가 되었던 큰 차이는 없겠습니다. 다시 발견한 세상은 더 아름답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사진을 보니 이 일곱 분들은 한두 번 자유를 만끽하고 다시 새장으로 들어간 카나리아가 아닙니다. 외출이 아니라 본격적인 사진 활동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10월 5일에 개막한다고 합니다. 개막식에서 가장 이들에게 박수를 보낼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일곱 분 사진가의 남편과 자녀들일 것입니다. 세상의 엄마와 아내들에게 박수를!
-곽윤섭 기자
배정희
최은봉
지성옥
정초희
임연희
이연옥
□ "엄마가 뿔났다."사진전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독립 선언한 여성 7인의 사진 전시회
□ 참여작가
배정희∙엄순자∙이연옥∙임연희∙정초희∙지성옥∙최은봉
□ "엄마가 뿔났다“
결혼의 햇수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비슷한 고민으로 속앓이를 한다. 육아의 부담에서부터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로 굳어진 일상의 딱딱한 함몰 때문이다. 누군들자신의 이름이 없으랴. 결혼으로 아내와 어머니의 이름으로 바뀐 여자의 시간은 단단한 자물쇠가 되어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 놀라운 자각은 희망이고 절실함이었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선 언젠가 가족들과 독립선언을 해야 한다. "엄마가 뿔났다!"를 외쳤던 탤런트 김혜자를 부러워 할 수 만은 없다. 결혼 8년차 30대에서 부터 40년차 60대에 이르는 엄마들도 똑 같이 외쳤다. 그리고 사진을 선택했다. 사진은 신선한 바람이며 그리던 자유의 모습이었다.
디지털의 속도는 두렵고 난감하기만 했다. 멈추었다면 오늘의 모습은 없다. 들어도 모르고 봐도 보이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를 친구 삼아 보낸 몇 년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아름다움의 유혹은 어려움을 이겨내게 했다. 전국을 돌며 만난 이 나라의 속살은 다채로운 모습과 풍요의 색채로 가득했다.
이들 사진에 담겨있는 섬세함과 매혹적 색채를 유심히 보시라. 대한민국 엄마들이 지닌 감수성의 층차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산수의 풍경은 넓이와 폭이 아닌 울림으로 바뀌게 된다. 7명의 시선은 단조로운 듯 복합적이고 차분하면서 현란하다. 사계의 감흥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세월을 살아낸 인간의 선택은 미세한 떨림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엄마가 뿔났다!" 사진전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낡은 일상을 떨쳐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누군가의 업적으로 전이되는 피상적 대리만족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통사람의 위대한 성취는 "나도 할 수 있다."를 실천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진의 관심이 넘치는 시대에 진정 좋은 작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은 커다란 축복이다. 엄마가 뿔났으니 이제 아빠들도 뿔 한 번 내보시길...
2011.10.5. 사진가 윤광준
![](https://t1.daumcdn.net/cfile/cafe/1619313E4E87A536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