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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글/음악/그림 스크랩 단원 김홍도 "송하맹호도"
새샘 박성주 추천 0 조회 65 13.08.24 14:3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산의 신령스러움이니, 호랑이의 산어른다운 위세로다"

 

<단원 김홍도, 1745~1806년 이후,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조선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90.4×43.8㎝, 삼성미술관 리움>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의식한 듯 정면을 향했다. 순간 정지한 자세에서 긴장으로 휘어져 올라간 허리의 정점은 정확히 화폭을 정중앙을 눌렀다. 가마솥 같은 대가리를 위압적으로 내리깔고 앞발은 천근 같은 무게로 엇걸었는데 허리와 뒷다리 쪽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금방이라도 보는 이의 머리 위로 펄쩍 뛰어 달려들 것만 같다. 그러나 당당하고 의젓한 몸집에서 우러나는 위엄과 침착성이 굵고 긴 꼬리로 여유롭게 이어지면서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굽이친다.

 

 

화가는 바늘처럼 가늘고 빳빳한 붓으로 터럭 한 올 한 올을 무려 수천 번 반복해서 세밀하게 그려 냈다. 이런 극사실 묘법을 썼는데도 전체적으로 범의 육중한 양감이 느껴지고, 동시에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민첩 유연한 생태까지 실감나게 표현된 점이 경이롭다. 화면은 상하 좌우가 호랑이로 가득하다. 이렇게 꽉 들어찬 구도 덕에 범의 '산어른'다운 위세가 잘 살아났다. 긴 몸에 짧은 다리, 소담스럽게 큼직한 발과 당차 보이는 작은 귀, 넓고 선명한 아름다운 줄무늬와 천하를 휘두를 듯 기개 넘치는 꼬리, 세계에서 가장 크고 씩씩하다는 조선 범이다.

 

 

여백 또한 정교하게 분할되어 범을 돋보이게 한다. 호랑이 다리 근처 오른쪽에서부터 하나(1), 둘(2), 셋(3) 점차로 커 가는 여백의 구조는, 위쪽 소나무 가지의 여백에서도 하나(4), 둘(5), 셋(6) 같은 방식으로 펼쳐졌는데, 꼬리로 나뉜 작은 두 여백(7, 8)과 더불어 완벽한 조응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한복판에 몸통을 뒷받침하는 넉넉한 여백(9)이 있다.

 

 

소나무 둥치를 보니 한가운데 이상한 것이 있다. 주위가 하얗게 벗겨졌고 이파리도 없으니 이것은 나뭇가지가 아니다. 바로 범이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고 깊고 길게 발톱으로 훑어 냈던 상처 자국이다.

 

호랑이는 단군 신화 이래 겨레의 상징이다. 야담에서도 단골손님이었지만, 특히 연암 박지원(1737~1805)의 '호질虎叱'에서는 썩어빠진 선비를 꾸짖고 호통을 쳤던 장본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는 호라잉로 상징되는 조선 혼의 부활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대대적인 박멸 작전을 펼쳤으니, 그 결과 호랑이 종주국인 한국에 야생 호랑이가 한 마리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범은 영물이다.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눈에 쉽사리 띄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야담 속 호랑이는 보은의 존재고 그 자신이 산신령이다. 옛글에

"산이 높아 훌륭한 게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라고 했는데 나는 "호랑이가 깃들어야 신성한 산"이라 고쳐 말하고 싶다. 생태계 먹이 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호랑이는 그 자체가 산의 건강함, 신령스러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고故 외우畏友 오주석지은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3. 8. 2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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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27 09:52

    첫댓글 해설을 읽고 그림을 보니 더 실감이 나네, 근데 새샘은 다방면에 취미가 있어서 좋겠소..

  • 작성자 13.08.27 16:48

    10년전쯤 오주석이란 사람의 특강을 한번 듣고서 반해버렸지.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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