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11장, 12장
돌감람나무 참감람나무, 몸과 영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 은사도 믿음대로
11~29절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이스라엘이 완악해진 것은 최종적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넓어짐'이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열도록 구원 역사를 계획하셨고 유대인은 결국 이방인이 구원받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모습을 볼 때 질투심이 유발되게 될 것입니다(11절).
'세상'이라는 말은 여기서 '이방인'의 뜻하는 또 다른 단어입니다. '충만함'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를 고대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점충적인 방법으로 논증을 전개합니다. 이스라엘의 지혜가 이방인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는 그 구원의 복이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12절).
바울은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특별한 소명과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자신의 사역을 유대인에게 유익을 끼치는데도 이용합니다. 더 많은 이방인이 구원에 이를수록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더 많은 질투심을 일으켜 많은 유대인이 구원받기를 소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3~14절).
뿌리와 가지,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서 '감람나무'로 묘사됩니다. 바울은 가지 '얼마'가 꺾였다고 말할 때 아마도 당대의 대다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돌감람나무같은 이방인들은 그 감람나무에 접붙여졌고 이제 그 뿌리(족장들이 받은 약속)에 함께 참여합니다(17절).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그들을 구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약속(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감람나무에서 유대인 가지들을 꺾으시고 그 대신 자신들을 접붙이셨으므로 교만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로인해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18~20절).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언하심'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준언하심은 믿지 않은 유대인들의 몫이었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이방인들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불신자들처럼 심판 받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감람나무에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을 누구든 다시 붙이실 것입니다. 바울은 점충적으로 논증을 전개합니다. 하나님이 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을 접붙이셨다면 그 나무의 원가지인 유대인들은 분명히 다시 그 감람나무에 접붙일 수 있고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22~24절).
바울은 이방인들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한 가지 '신비'를 공개합니다. 신비라는 말은 반드시 무언가 종잡을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감추어졌지만 지금은 드러난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신비에는 다음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구원 역사의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대다수는 완악해졌습니다. (2) 바로 이 시기 동안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미래에 새 일을 행하셔서 모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25절).
'너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불신은 이방인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즉 이때는 역사상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시기인 반면 이스라엘의 대다수는 불신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받은 하나님의 선택의 약속은 미래에 성취 될 것입니다(28절).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결코 철회하시지 않으시므로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은사', 헬헬 카리스마는 하나님 이갑 없이 주신 것을 뜻하며 이 말은 다양한 종류의 은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이 말은 영적인 은사를 가리키며 때로는 구원의 선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29절).
바울은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제시하는 일은 마무리하면서(1~11)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길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능가하며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합당합니다. 이사야 40장13절의 말씀은 어떤 인간도 계시가 아니면 '주의 마음'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마찬가지로 욥 41:11의 장엄한 말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도리어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33~35절).
만물이 하나님에게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모든 '영광'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하나님께 큰 영예와 찬양과 영광을 영원토록 가져다 줍니다(36절).
12:1~21절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때문에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삶을 지칭하는데 구약의 제사적 표현이 사용되며 이는 '몸'과 '영혼'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으므로 여기서 '몸'이라는 말은 전인격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을 가리킴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산 제물'이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누리므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의미합니다. "산"이라는 말은 또한 그들이 구약의 짐승 제물처럼 죽임당하지 않을 것임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가 이 '제사들'이 예언한 바를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성전에서 짐승 제사를 바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넓은 의미에서의 영적 예배는 이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포함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예배라는 말을 보다 좁은 의미로 경배와 찬양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말하는데도 사용합니다(1절).
현재의 악한 시대는 여전히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을 위협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시대의 압력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새롭게 될 때 그들의 삶은 변화되며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분별'할 수 있습니다(2절).. 하나님은 그의 자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믿음의 분량'을 허락하셨고 바울은 각 사람에게 자신을 현실적으로 평가할 것을 요청합니다(3절). 교회의 다양성과 통일성은 인체와의 비교를 통해 예시됩니다. 인체가 많은 지체(직역하면, 신체 각 부분, 사지)를 가진 한 몸인 것처럼 교회도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통일되어 있습니다(4~5절).
몸의 다양성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다양한 은사를 보면 명백합니다. '믿음의 분수대로', 바울은 예언자들에게 성령이 참으로 무언가를 자신에게 계시하고 계신다는 믿음 내지 확신이 있을 때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함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믿음을 넘어서지 말라고 지시합니다(6절).
그리스도인은 남을 '섬기는 일'이든 하나님 말씀을 인내심 있게 '가르치는 일'이든 또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이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에 집중하고 거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특정한 은사를 발휘하는 데 필요한 다음 세 가지 태도에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1) 남을 재정적으로 돕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이들은 결코 인색하지 않고 언제나 관대하게 베풀어야 합니다. (2) 대체로 남을 인도하는 이들은 자신은 아무에게도 책임을 추궁 받지 않으므로 게으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 아파하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는이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기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7~8절).
이 장의 나머지 내용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한 묘사입니다. 당연히 '사랑'이 맨 첫머리에 등장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은 사랑에 대한 호소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없나니', 사랑은 감상주의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미워하고', 그리스도인은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9절). '손 대접하기'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여행할 때 호텔(하숙집)을 구할 형편이 안 되었고 동료 신자들의 숙식제공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13절).
'축복하라....저주하지 말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영합니다(마 5:44).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이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암시합니다(마 5:39). '할 수 있거든', 바울은 노력한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과 화평한 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또 다른 암시입니다(마 5:39). 복수의 감정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바로잡으실 것이고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들에게 진노를 쏟으실 것이라는 점을 깨달음으로써 극복할 수 있습니다(14~19절).
'숯불'은 잠 25:21~22에서 인용한 표현입니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회개하도록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숯불'은 언제나 형벌을 상징합니다(삼하 22:13 그 앞에 있는 광채로 말미암아 숯불이 피었도다 시 18: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따라서 또 다른 해석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은 잘못을 행한 자들이 만일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그들을 벌하실 것임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는 롬 12:19의 사상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에는 보통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행위가 포함되겠지만 바울이 13:3~4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때때로 우월한 힘(군사력이나 경찰력)의 사용을 통해 악을 저지 시키는 정부의 '선'도 포함될 것입니다(참고, 잠 25: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20~2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