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걷기. 2002~2018.
제1장 여기도 서울이다
서울은 사대문안(성저십리라고 하여 성에서 10리 까지는 한성부 관할)에서 1936년 , 1963년에 대폭 확장되었음. 영등포 동쪽이 영동, 영등포 서쪽은 영서(강서)였음.
우리동네 유적지를 가보아야지. 대방초등학교 벽면의 숙종왕자연령군의 묘지비석.
노원구의 한글비석(연대가 나타난 최초의 한글비석1536년)
제2장 나의 서울답사 40년(4대문 밖)
1잠실, 2부천시 소사. 3안양시 평촌,4방배동, 5신반포와 구반포, 6종로와 광화문,7중계동 ,8고양시일산, 9개포동
(내가 살았던 서울 55년 동네는 금호동, 행당동, 노량진동, 신길동, 흑석동, 상도동, 압구정동, 서초동, 방학동, 사당동, 중계동, 노량진동이다.
종교집단 지역: 부천 소사 집단종교, 시온고등학교, 할미산 종교시설 , 덕소 신앙촌 , 부산 기장군: 공업발전과 더불어
방배동: 함지박 사거리(당시에도 함지박 식당이 있었나보다)
신반포 한신2차 거주: 1987-1996 (이 당시 나는 서초동에 거주), 뉴코아, 반포 주공, 고속터미널
삼풍백화점 붕괴 위령탑: 양재 시민의 숲에 위치
성수대교 참사 위렵비: 성수대교 북단에 서울숲공원내
개포동 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
토마손: 일본에서 발견한 개념. 그것이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수 없지만, 무의미하고 아름답게 부동산에 붙어 있는 것.
제3장 서울 걷기 실전편(청계천에서 시흥금천구청역 까지)
청계천 복개전에 지하 답사. 수표교(장충동으로 이전)
최순영 노동가(yh사건) 마장동 공장의 기억
청계천 6가: 전태일 분신
청계천 빈민의 이주: 광주, 성남
을축년 대홍수비(1925년 7월 18일): 양수리부터 한강어귀 까지 침수, 한강대교 피해, 살곶이다리 피해, 유원아파트 옆 노강서원 표지판, 한강수자자 조혼비
영등포, 노량진, 흑석동은 일제시대 '강남'이었다. 강남아파트(당산 래미안 4차), 강남중학교, 강남초등학교, 강남교회 등/ 지금의 강남은 영동이라함(영등포 동쪽)/ 지금의 영서(강서)에 영서교회, 문래공원(6관구 사령부, 박대통령 흉상)/ 노량진 수산시장, 흑석동 효사정(한강신사터), 심훈의 시비, 명수대 중앙보육학교 (1928년), 동작동 국립현충원(1955년 창설), 강남의 시작과 말죽거리
☞노량진교회 1906년 설립, 강남교회 1954년 설립, 강남초등학교 1945년 설립, 강남중학교 1959년(대방동),
1979년 면목동 YH무역사건(김경숙, 58년생, 광주광역시)과 박정희정권의 붕괴 관련
1985년 가리봉동 봉기 노동자와 전두환 정권 위협, 87년 6월 항쟁
녹색병원설립(2003년 설립)과 구리시 원진레이온 사건
가리봉+독산=가산 디지털 단지
서울 시흥역(시흥행궁, 시흥향교 등)--→금천구청역, 경기도 시흥시와 구분하기 위해
목동 쪽방촌(서울에서 철거된 이주민거주, 안양천 수재지역)→1988서울올림픽을 위한 개발
서울 변두리의 이단종교(문선명과 박태선)의 재평가
제4장 서울 어떻게 기억할까(은평 뉴타운과 은평한옥마을)
아파트의 의미: 안전과 동질감
은평뉴타운: 5천여기의 공동묘지, 성종의 후궁 숙용 심씨묘지표
북촌: 조선시대 양반촌이 아니라 1930년 건설업자(정세권)가 지은 한옥 집단 지구를 만든 것임
서대문형무소와 안산 선감학원(소년원) : 해방이후에도 '사법살인'이 있었음
조선왕실이 한민족은 아니며, 조선 왕조가 곧 현대 한국인 것은 아니다.
(평론) 2023내가 참여하였던 서울 문화유산(궁능성시길) 답사와 달리 도심의 지리적특성과 서울의 역사, 서울의 변화를 구석구석 살펴본 책이다.저자는 75년 생인데 서울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찾았을까? 문헌학자이고 규정각 교수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규장각의 시민강좌를 듣고 있는데, 그 연구의 깊이에 놀라 따름이다.
나보다 어린데 옛추억과 동네 구석구석은 더 오래된 서울을 예리하게 기술하고 있다. 1994성수대교 붕괴, 1995 삼풍백화점 붕괴(나는 회계감사 중이었다).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노동자측면에서 기술하고 있는 느낌이다. 개발과 발전과 노동자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