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비보와 염승
산천비보란 산천이 풍수 즉 장풍득수(藏風得水)에 모자르거나 부족한 부분을 더하여 보탠다는 뜻으로 풍수지리의 꽃인 산천비보를 국토에 최초로 전개한 사람은 신라말의 도선국사입니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은 후대왕들에게 '훈요10조'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 제2조에 "모든 사원은 모두 도선(道詵)이 산과 물의 순역을 헤아려 살펴 보고서는 시작한 것이다.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자세히 살펴서 정한 이외에 함부로 더 창건한다면 척박한 지덕(地德)을 손상시켜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祚業)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짐이 생각건대, 후세의 국왕 공후 후비 조정의 신하들이 각기 원당이라 말하면서 행여나 더 창건한다면 크게 근심스러울 것이다. 신라의 말기에 부도(浮屠)를 앞다투어 짓다가 지덕을 손상시켜 내부에서 망하였으니,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할 만큼 도선의 산천비보가 국가의 대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슴니다.
[훈요10조 참고문헌]
其二曰, 諸寺院, 皆道詵推占山水順逆而開創, 道詵云, ‘吾所占定外, 妄加創造, 則損薄地德, 祚業不永.’ 朕念後世國王公侯后妃朝臣, 各稱願堂, 或增創造, 則大可憂也, 新羅之末, 競造浮屠, 衰損地德, 以底於亡, 可不戒哉?
신단(神壇), 즉 사찰 부도 묘(廟 =사당) 등이 지세(지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지가서에 종종 나오지만 이것을 함부로 전개하면 조업(祚業)에 까지 손상을 준다는 것을 태조 왕건이 도선국사의 말을 빌려 훈요십조에 명문화한 사실에 주목합니다. 특히 신라가 부도를 많이 지으 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금낭경(錦囊經)에 禍福不旋日, 是以君子 奪神工改天命. (화복불선일, 시이군자 탈신공개천명.)이라는 말이 있슴니다. '화와 복은 날을 가리지 않지만 군자는 신이 할 바를 빼앗아 천명을 바꾼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신은 날을 돌려 천명을 바꾼다는 말로서 이 신물을 이용하여 산천을 비보한 예를 한가지 들어 보겠슴니다.
신라시대에 경주는 지진이 빈발하였답니다. 이런 지세를 비보하기 위하여 지진을 촉발시키는 지역에 절을 짓고 지진 양지층에 걸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을 세웠는데 이 것이 불국사의 석가탑입니다. 최근에 석가탑을 해체 보수하면서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발견되어 지금은 경주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답니다
2016년 대지진 때 까지 신라시대에 빈발하던 경주 지진을 석가모니 신단이 막고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사례입니다.
그러면 신단이 지세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학적 근거는 무엇일가요?
질량을 가진 물질이 끌어 당기는 힘을 중력(重力)이라 하는데 중력이 시간과 공간을 회절시킨다는 이론이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입니다
예를들면 버뮤다 삼각지, 제주도 노형동과 칠곡의 도깨비 도로는 질량이 큰 지하의 철광석 등으로 인해 주변의 공간이 회절된 증거입니다
그런데 질량이 없거나 미미한 물질이 거대한 질량을 가진 지세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오직 모를 뿐'입니다.
산천 비보(裨補)에다 주술적 의미를 가한 것이 염승(厭勝)입니다.
대구의 경우 주산인 비슬산이 화산이라서 불기운이 강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대구 제일여중이 있는 연구산에 돌거북을 갔다 놓고 앞산을 향하게 하고 서울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중턱의 샘에 구리로 만든 용을 집어 넣었으며 연주대 봉우리에 방화부 9개를 묻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또, 서울사대문중 숭례문도 화기진압을 위해 그 이름을 붙혔는데 숭(崇)과 예(禮)란 글씨는 오행중 화기인데 두글자가 겹쳐져 불탈 염(炎)이 되도록 숭과 예를 횡으로 편액에 새겨 관악산 화기를 설기시키려 하였슴니다.
남녀 성기 상징인 남근석(男根石) 여근산(女根山)도 염승에 이용하는데 조선시대 안동읍의 여근산이 읍내로 보고있는 탓에 음기가 발동해 여자들의 음풍이 더 셋답니다. 그래서 산기슭과 이 산이 잘보이는 읍내 그곳에 남근석을 새워 이를 진정 시켰다는 것이지요.
산천비보의 기념비가 된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