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인간시장(8권) 82. 악마와의 악수

[고향설]

악마와의 악수 



사건이 해결되고 여러 날이 흘렀다. 
순딩이 엄니가 겪었던 고통이나 소년의 
슬픈 표정, 남편 잃은 부인네의 가슴 아픈 
얘기나 용돈 벌기 위해 남의 택시 끌고 
나갔다가 엉겁결에 큰 사고를 친 뒤 
순간적으로 사건을 묻기 위해 사람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지 않았던 
종철이의 참회의 눈물 따위도 어느 정도 
잊어 버리고 있었다. 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이라도 순간적으로 못된 마음을 먹으면 
수많은 사람을 고통의 늪에 빠지게 하는데 
하물며 가진 자와 쥔 자가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어 악마와 악수를 했을 때는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무리들은 법으로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의 
징벌로도 해결되지 않을지 모른다. 정의란 
것은 편리한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진 자와 쥔 자 편에 서면 정의가 
되고, 갖지 못하고 주지 못한 자 편에 서면 
무용지물이 되거나 초라한 자격지심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봉이한테 연락이 온 것은 한여름 
더위가 주춤해질 무렵이었다. 도저히 꺾일 
것 같지 않던 폭염이 어느 날 아침, 정말 
갑자기 느긋해졌다. 가을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바람 부는 곳에 
나서면 이상하게 선선한 느낌이고 아침 
햇살이 차분하게 길어진 느낌을 받았다. 
늘어졌던 잎새들이 조금은 누릇해진 것 
같았다. 그 땡볕에 노랗게 변색되지 않은 
많이 삼키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한풀 꺾인 
여름 날씨는 아침 햇살이 길게 눕는 것과 
바람기가 신선해지는 것, 또는 잎새가 
한여름보다 생기 있게 보이는 날 아침에 
느닷없이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내친 김에 내려와라. 그눔 자석덜 
뿌랭이를 캐뿌리자. 승질나서 더는 못 봐 
주겠드라. 내가 우째구우째구 하니꼐 
상대두 않드라. 빌어묵을 눔덜, 힘이 
있으면 월매나 있길래 그리 배짱 내밀구 
땅땅 튀기는지 모르겄다." 
우리가 엉겁결에 약속한 보험 문제가 
이제사 드러난 것이었다. 정관이나 
상식으로 보아 보험증서의 약정대로 마땅히 
지불해야 될 보험금을 무슨 핑계로 만들어 
지불하지 않게 조작한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것이었다. 

"다른 하자는 있는 거 아니냐? 상세하게 
검토해 봐야지 괜히 덤볐다가 창피당한다. 
그 아주머니 쪽에서 문제가 있는지 잘 
알아봐야 돼. 보험회사가 괜히 그럴 리가 
없잖아. 돈 많은 회사가 그거 몇 푼 
알겨먹으려고 그러겠냐?" 
상봉이 녀석이 행여 가엾은 사람 편에 
서서 덤벙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두 서류 봤잖냐." 
"봤지만 혹시나 우리가 법을 몰라서 그럴 
수두 있잖냐." 
"내려와 보믄 안다. 내가 변호사한티두 
쫓아가 봤구 다른 보험회사에두 알아봤다. 
담당자 눔두 수차 만났구 말이다. 이젠 
있다. 변호사가 자살하지 않은 게 드러난 
이상 당연하게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더라. 그란디두 법에 호소해 달라니께 
보험회사와 붙는 건 싫다구 발뺌하구 있다 
말이다. 보험회사가 워낙 막강해서 
대적하기 싫은가 보더라. 서울가서 큰 
변호사 찾아봐야 한다구 귀띔하는디...... 
시상에 그런 수두 있냐? 담당자 놈이 
이랬다저랬다 개판 치구 있다니께. 첨엔 
사망원인이 불분명하다구 버티더니 그 담엔 
보험 정관의 낱말을 가지구 따지더라. 
그러더니 증서의 약정의 낱말과 보험금 
지급 사례집을 펴 놓고 낱말의 해석을 
저희들 편리한대로 풀어넣고 버텼다. 갸들 
주장대루 하자믄 보험금 지급받을 사람은 
힘 있거나 여유 있거나 빽 좋은 눔만 
제때제때 돈을 내서 만기가 된 
사람이거나." 
"정관하구 약정하구 뭐가 틀리냐?" 
"아녀. 낱말 가지구 그런대니께. 
그러더니 인제는 신청기일이 법적으로 
지났으니께 자연 소멸이라든가 뭐시가 
어쩠다든가 해서 끝났다는 겨. 증말 
말루다는 할 말 없게 돼 버렸다." 

나는 상봉이 말대로 내친 김에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보험회사 담당자가 
교묘하게 장난을 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상봉이가 변호사와 소비자 보호단체, 
법률구조단체 등에 문의한 바에 따르면 
마땅히 보험금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더구나 상봉이가 
나서서 이곳 저것에 문의를 하고 말썽을 
주려고 생각했었던 걸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생색까지 내고 있는 것이었다. 
사정이 딱해서 얼마간 혜택을 줄 
생각이었다는 건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보험에 
가입했을 터이고 일단 문제가 생기면 
정관대로 지급하거나 거절하거나 할 일이지 
서정이 딱해 어느 정도 혜택을 줄 여유가 
있다는 건 궁여지책으로 자작한 말이거나 
중간에서 보험금을 가로챌 계획을 세웠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만 같았다. 

나는 알 만한 곳에 연락해서 억울한 
부인네의 사정과 그간의 경과를 얘기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땅히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사연이라고 했다. 
민원실 담당자도 보험에 얽힌 억울한 
보험회사의 횡포가 더 지능적이고 
교묘해져서 사건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관은 한글로 씌여 있지만 낱말의 
해석에 따라서,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상당히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기가 되어 지급하는 경우는 큰 
문제가 없지만 가입 당시 외무사원의 말만 
믿고 건강진단을 받지 않고 계속 보험료를 
납입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거나 
상식적으로 그러리라 생각한 채 넘긴 
일들이 사고가 난 뒤에 문제가 되어 손해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였다. 

내려가 보아야 상세한 내용을 알 수가 
있겠지만 소비자 보호단체와 법률구조단체, 
변호사들과 민원실, 신문사의 민원 
담당기자나 보험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을 폭 
邦막?시커먼 모습이 보이자 
보험회사가 여러가지 형태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 번인가 정관을 
정리했고, 법정에서 가려진 사례가 있지만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보험에 가입한 힘 
없는 사람들만 손해를 보거나 골탕먹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세상 일이란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구멍을 뚫을 수 
있고 뚫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장난질을 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상식이라고 하는 바탕에서 법을 존중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보험회사와 가입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언제나 
그 손해의 당사자는 가입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정책 당국이나 그 담당자가 
그렇다면 어째서 이대로 방치하는 
것일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막강한 
보험회사의 눈치를 볼 만큼 얻어먹은 게 
가려워서 잠자코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른다는 의혹을 안고 있다. 더더구나 그럴 
리가 없겠지만 행여나 보험회사와 당국자가 
밀착되어 법의 구멍을 뚫을 만큼 나누어 
먹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험에 얽힌 
횡포나 장난질이 숱하게 많다는 게 이곳 
저곳에서 드러났는데도 그것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지 않고 뒤로 주저앉아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도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일은 억울한 서민이 늘어나기가 
무섭게 신문이건 방송이건 국회의원의 단상 
발언에서건 떠들썩거리면서 어찌해서 보험 
문제는 억울한 사람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있을 것 
같았다. 

청정한 의지와 정의감으로 이 땅의 
억울한 이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는 
법조인들이 많은 반면에 일부 법조인들은 
보험 가입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알면서도 
수임받기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도 
돌아다니며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일부 
법조인들이 거대한 힘을 가진 보험회사와 
겨루는 걸 기피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 내게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노라며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 보호는 어느 정도 
잘 되어 가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흥정과 거래로 
횡포를 일삼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귀띔했다. 

종교가 인간의 정신적인 것을 맡아 주는 
것이라면 현실적으로 보험은 인간의 경제적 
미래나 불행을 현실적인 에너지로 막아 
주는 기대치인 것이다. 보험의 근본적 
의미는 가입자가 미래를 위해 맡겨 놓은 
작은 경제력을 맡아 필요한 때 도와 주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인 것이다. 아무리 
불행이 닥쳐도 불항을 모른 채 계열기업의 
돈줄 역할을 한다는 보험회사가 힘 없는 
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찬탈해 간다는 건 
어머어마한 범죄인 것이다. 
더 중대한 문제는 보험 문제에 있어서 
피해자가 가진 자나 쥔 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실이다. 재벌들이 부동산 투자로 
서민들의 행복권을 몇 십 년씩이나 목 조른 
엄청난 집단 대학살을 저지르고도 전보다 
훨씬 비대해진 몸뚱어리를 거들먹거리고 
있다. 가입자의 대부분이 피해자는 물론 
아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횡포를 부려 피해자를 만드는 
건 더더욱 아니다. 보험회사가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더 많은 보험 
가입자에게 행복한 미래를 주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 가면서 가입자의 소수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피해자는 
소수라고 하기엔 너무 많고 대개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이었다.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로 
남지 않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론이 그렇게 잠잠하고 마땅히 
서민의 편이 되어 문제를 제기해야 할 
지식인이나 매스컴 종사자들이나 
정치가들이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반 상품은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고 
팔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보험이란 일단 처리 과정에서 
상대자의 신분이 확인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거나 보험회사의 
횡포를 까뒤집을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 받고 있는 
억울한 사람들의 심정이 그렇게 숨겨져 
어째서 신문이며 방송이며 잡지며 말깨나 
한다는 지식인이며 이 땅의 사람들 
편이라고 큰소리 치는 정치가며 이 나라 
사람들에게 풍요를 주기 위해 피땀 
흘린다는 주둥아리 애국자들이며 소비자를 
보호하는 일과 법률로 억울한 이들에게 
행복권을 주겠다는 사람들까지도 이 숨겨진 
횡포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할 말이 맣은 사람은 
보험회사일 것이다. 

그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따질지 
모른다. 나더러 보험회사에 와서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면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으며 얼마나 가입자를 위해 철저히 
서비스를 하는지 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 정도 말은 말투 나쁜 사내의 
것이다. 이 정도 잔말에 외눈 하나 깜짝 
않고 지낼 배짱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웃기는 사내 취급을 할 것이다. 
하기사 그만한 배포 없이 짧은 기간에 
그만한 회사로 성장시켰을 리도 없다. 
하나님, 보험회사가 나보다 부자고, 
나보다 힘이 있고 거들먹거리는 게 
싫어서거나 그런 점에 질투를 품고 있어서 
이렇게 까탈스러운 면박을 주는 게 
아닙니다. 보험 회사는 지금보다 더 
건실하게 성장하고 더 알찬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모아 더 많은 기업이 
성장해야 됩니다. 
그래서 강대국이라고 우리나라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험회사는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단 몇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짚고 넘어가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종교에 영혼을 맡기고 
의사에게 육신의 병을 맡기고 선생에게 
자녀의 교육을 맡기듯 우리들은 우리의 
미래 가운데 한 부분을 보험회사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신 차릴 때도 
됐잖습니까? 그럴 리 없겠지만 어떤 결탁이 
이루어져 있거나 그 피해가 힘 없는 사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병원병인지 뭔지 그놈의 야릇한 병이 
터뜨려지니까 그때서야 혼비백산한 것은 
사실 병원측만 국민을 우롱한 게 아니고 
태만죄가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됩니다. 
하나님, 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함정이 되고 그럴 
경우에 가진 자와 쥔 자만 득을 보게 
된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 당신도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인류의 죄악을 이렇게 팽개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당할 여러가지 형태의 
손해를 보상할 그런 보험 말입니다. 
하나님, 일단 내려와서 보험회사 책임자를 
한번 만나서 인류를 위해 보험 하나 
드시지요. 별수 없는 당신의 의무 가운데 
하나일 터이니 말입니다. 

한 번 더 확인해 보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만큼 보험 
민원창구는 붐비고 있었다. 상냥한 
여사원은 내가 당사자가 아니고 이렇게 
억울한 사연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느 지점이냐고 물었다. 

"이 회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보험회사니까 법이나 정관은 같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려서 다른 회사 문제라니까 말씀 
드리기가 거북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정말 그런 일이라면 
보험회사가 잘못한 겁니다. 연생보험이라면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이 보험 혜택을 
받는 제도인데 정관의 낱말이 어떻다는 건 
민원 업무를 여려 해 해보면서 느낀 것인데 
계약자나 피보험자 쪽 얘기를 일방적으로 
들으면 보험회사가 횡포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방국에다 대고 
막 소리를 지르다 보면 계약자들이 
일방적으로 자기만 유리하게 조작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반드시 양쪽 주장을 꼭 들어서 
판단하셔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제가 
말씀 드린대로라면 어떻습니까?" 
"말씀대로라면 보험회사가 잘못입니다. 
그러나 담당자를 만나 확인하시면 쉽게 
드러납니다. 옛날엔 어떻다어떻다 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급 
못할 사연이 있더라도 너무 딱해서 
할 경우에 지불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 만약에 담당자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경우 지불하지 않도록 
장난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거야 사람이 많다 보니까 더러 그런 
사람도 있을 수야 있겠지요." 
"그런 경우에 회사에 유익한 일을 한 
직원이 되는 셈이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게 큰 보험회사들이 그 
정도로 궁색할까요?" 
"아니죠. 한 건 두 건 잘만 해서 
지불하지 않으면 그 액수가 엄청날 거 
아닙니까?" 
"설령 그렇더라도 사람이 근본적으로 
도둑 심보가 아니라면......" 
입장에서 유공사원이 아닐까요? 천만 원 
지급할 걸 한 이백만 원만 지급하게 해 
주면 나머지 팔백만 원은 벌어 주는 거 
아닙니까?" 
"이론적으로 그렇지만 실제는 안 그래요. 
소문이 나서 계약자가 줄어드는 것은 더 큰 
손해니까요." 
"연생보험인 경우에 계약자가 죽으면 
피보험자자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게 
되나요?" 
"말씀하신 경우라면 계약자가 삼백만 
원짜리에 가입했으니까 그 두 배인 육백만 
원이 양육비 형태로 지급되고 매달 
정기적으로 납입하던 걸 면제받습니다. 
그리고 피보험자인 계약자의 아드님이 
학교에 갈 때는 정관대로 학자금을 
"보험회사는 큰 손해를 보게 되고 
가입자는 큰 혜택을 보게 되는군요." 
"가끔 신문에 보도되는대로 가입한 뒤에 
바로 사고가 나도 큰 혜택을 받게 됩니다. 
그만한 건 당연히 각오하고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거죠." 
"통상 사고가 나면 사망신고를 하고 
서류를 만들고 하면 시간이 걸리는데 
정관에는 사건 처리를 보름인가에 하라고 
돼 있더군요." 
"행방불명인 경우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망으로 취급해서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역시 큰 회사의 민원을 담당하는 
여직원이어서 그런지 끝까지 친절하게 
말대꾸를 다해 주었다. 관공서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서 한결같이 
느끼는 것은 관청의 민원실에서 받는 
불친절한 인상을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돈 버는 회사라고 
친절하고 국민에게 서비스 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도도해 보인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면서 아직도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한 번 짚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고 
깊게 짚고 넘어갈 문제인 것이다. 하도 
많은 사람이 비슷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수없이 들랑거리기 때문에 친절하고 싶어도 
친절할 수 없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마땅하게 친절해야 될 
장소에서 친절하지 않는 것은 너무 
익숙해져서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았다. 
상품 파는 곳은 대개 친절했지만 관청이나 
입장이면 아직도 불친절이 대명사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상봉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낱낱이, 언성을 
높여 가며 말했다. 흥분해서 하는 소리지만 
피해자 부인 쪽에 잘못이 있거나 사고 
처리에 하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안았다. 
연생보험 약관이 붉은 줄로 어지럽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읽어 보아도 보험금이 
마땅히 지급되어야 할 내용이었다. 약관 
제1조 2항에 계약자가 보험기간 중 
사망했거나 생사불명한 경우로 실종선고를 
받았거나 회사가 사망한 것으로 인정한 
경우라면 해당 피보험자는 당연히 계약 
보험금액의 전액을 양육자금으로 받고 차회 
있었다. 다른 조항을 찬찬히 살펴보면 
계약자와 보험회사 사이의 분쟁이 있을 
경우에 보험분쟁심의위원회 심의 조정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이 년이 경과하기 전이면 정당한 
권리가 인정되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보험회사 담당자가 
장난질을 하지 않고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요약된 보험 
약관에도 분명히 피보험자가 해당 연령에 
도달했을 때나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사망하였을 때나 폐질상태가 
되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이미 보험 계약자가 경찰 조사에 의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것이 확실하게 
유발도 아니었다. 계약자나 피보험자가 
계약에 관하여 사기행위를 했거나 보험료를 
연체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네 생각엔 어때?" 
상황을 대충 정리해 가다가 상봉이에게 
물었다. 
"그눔이 장난하는 거라니께 드럽게 안 
믿네." 
상봉이는 내가 믿어 주지 않는 게 
속상했는지 이렇게 투덜거렸다. 
"근거를 대 봐야지. 그래야 그놈을 잡든 
그 부인네가 억지를 쓰는지를 알 거 
아니냐." 
"그만한 건 죄 조사를 했단 말이다. 
그눔이 첨엔 해 줄 것처럼 청구서두 써 
주구 사체검안서두 받아가구 보험증권이나 
말이다. 그리구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구서는 나중에 부인네가 떼를 쓰니까 
마지못해서 환급금이라도 받아다 살림에 
보태라며 얼러댔다 이 말이다. 부인네두 이 
사정 저 사정 들어 보니 그동안 불입한 
돈만이라도 찾는 게 현명하다 싶어서 
그거라두 달랬다잖여. 그게 장난질 
아니구선 될 법이나 할 일여?" 
"그러니까 그동안 불입한 돈을 받았단 
말이냐?" 
"받았지. 해약돼 버렸기 때문에 
법적으루다 방법이 없게 돼 버렸다 이거여. 
부인네가 마음이 조급하니께 기다리지 
못하고 몇 푼 받아먹고 두 손 바짝 들은 
겨." 
"그럼 뭐하러 날 내려오라고 했냐? 이미 
일이 글러 버렸는데." 
"그라니께 니가 필요한 거여. 그눔이 
무신 장난질을 했는지 파헤치자 이거여. 
분명히 농간을 부린 겨." 
"빌어먹을......"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법적으로 이미 
끝난 문제였다. 이미 부인네가 모든 걸 
포기한 채 서류 정리를 끝낸 상태여서 더 
이상 정당한 방법으로 따질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상봉이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까짓거 해 보자. 밑지면 본전이야 
네놈이 찾아 주겠지." 
"우리 회사 술도가를 통째루다 마시믄 
안되겠냐." 
"조오치." 
"종성이 성을 끌어댕길까?" 
"안 돼. 만약에 일이 잘못 되면 종성이 
형 입장만 곤란해진다." 
"그건 그렇겄다." 
"단칼에 잡아채는 방법이 없겠냐?" 
마구잡이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우리들의 판단이 잘못 되었을 때는 
영락없이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힌 
파렴치한이 되는 것이었다. 
"있지. 있어야 하구 말구." 

자신 있다는 투였다. 그 일로 여러 날을 
고민해 온 처지여서 별의별 생각을 다해 본 
것 같았다. 
"뭐냐?" 
"가장 쉬운 것은 그 김가 눔하구 직접 
충돌하는 거여." 
"증거두 없이 말이냐?" 
"내가 아무리 헐렁하게 사는 눔이라구 
"양조장집 상속자를 어떻게 믿냐? 맨날 
비틀거리고 살 텐데." 
"술냄새가 지겨워서 술집 간판만 봐두 
울렁거리는 눔여." 
"누룩만 봐도 토하겠다." 
"지금 우리는 심각해야 할 때 아니냐? 
심각해지자." 
"먼저 심각해져 봐라." 
녀석은 덩치며 사람 좋게 생긴 표정이며 
어디 한 군데 심각해 보이는 구석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럼 심각하게 말하겄다. 김가 눔 
뒷조사를 해 보니께 가관이드라 이거다. 
월급은 몇십만 원 밖에 못 받는 눔이 한 달 
삼십 일 쓰구 댕기는 게 아주 푸짐 
뻑적지근하드라 이거여. 거기다가 감쪽같이 
아니냐구 할 만큼 돈을 푼푼이 뿌리구 
다녀. 살림 차렸던 애덜이 그리는디 생기는 
게 많은 눔이랴. 그 돈이 다 워디서 
나겄냐? 보험금을 중간에서 낚아챈 거 
아니겄냐? 집안 내력이 워떤 눔인가 조사두 
했는디 별루 재산두 없는 눔이구 그렇게 
펑펑 쓰구 댕길 처지두 아녀. 그라니께 
인제 자명해진 거 아니겄냐. 내 말 줌 한 
번 믿어다구. 지금 살림하는 기집애 말구 
또 갈아챌 기집애가 생겼으니께. 이리 치구 
저리 치구 하믄 단서가 안 잡히겄냐 
이거여." 
"그렇게 해먹는 놈이라면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 법이다." 
"그라니께 그 김가 눔을 잡아다 물고를 
내자 이거여." 
좀 들더라두 확인을 해 보자." 
"무신 방법이 있냐." 
"보험증서에 고유번호가 있으니까 문제는 
간단하다. 서울 본사로 조회를 하는 거다. 
영국이한테 부탁하면 금방 조회를 해서 
알려 주겠지." 
"영국이가 그 회사에 있냐?" 
"재작년인가 그리루 옮겼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될 거고." 

우리는 급히 수소문해서 영국이를 찾을 
수 있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인지 영국이는 
보험회사에 있었고 전후 사정을 다 듣더니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우리를 들뜨게 할 
만한 사실을 통보해 주었다. 
이미 그 보험은 납입이 면제되었고 
양육비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지급되었다는 
것이었다. 
"봐라 이눔아. 내 말이 맞았잖냐." 
상봉이는 기쁨 가득 찬 얼굴로 책상을 
치며 말했다. 
"곰이 재주 넘다 보면 더러 주인 따귀 
때리는 수도 있는 거니까." 
"으쨌거나 내 혁혁한 공적을 인정해 
주라." 
"일 끝나면 네 모교에다가 공덕비 세워 
주께." 
"문교부 어르신네덜이 깨부시라믄 
워째냐?" 
"아예 공덕비로 울타리를 치면 되겠다. 
아니면 읍내 보도블럭을 죄 공덕비로 깔아 
주든가." 
상봉이가 추정한대로 김가라는 담당자는 
배를 채워 나가는 사내라는 게 드러난 
것이었다. 사정이 딱해 위로한답시고 
해약금조로 그동안 불입한 돈만 내 주고 
나머지를 챙겨먹은 그 사내를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끌어내자." 
"몸 푸나 보다. 으쩐지 오장육보가 
근질근질하더라니." 
상봉이 녀석은 신바람 나서 앞장섰다. 
보험회사 아래층에서 전화를 걸자 김가 
녀석은 거만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능숙하게 단체로 보험에 가입할 일이 있어 
상의 좀 드릴까 한다는 말에 갑자기 
목소리가 점잖아졌다. 
김가는 주살나게 뛰어 내려왔다. 
일단 내 차에 태웠다. 
"우리 회사로 갑시다." 
자동차를 드세게 몰자 김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공동묘지로 
들어가는 산길에 다다르자 얼굴색이 조금 
변하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거요?" 
"보믄 알 거시다. 공동묘지루 가고 
있잖냐. 거기가 니네 집이잖아." 
"쌔애끼. 니 눈깔루 우덜이 
염라대왕님하구 친한 거 같지 않냐? 널 
잡아다 생으루 묻어 놓구 오라는 분부를 
받잡고 이렇게 수고하러 왔다." 
"왜들 이럽니까?" 
겁먹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묻는 말에 바른대로 대지 않으면 널 
대충 묻어 버릴란다. 묻기 전에 벙긋 말고 
말이다." 

상봉이가 손목을 비틀어 쥐고 있어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잠잠해졌다. 공동묘지 
뒤쪽 계곡은 사람 그림자 하나도 없었다. 
자동차에서 끌어내 계곡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허리띠를 풀어내고 구두와 
양말까지 벗겨냈다. 
"물 속으로 들어가라. 널 악착같이 물 
먹여야 할 엄청난 임무를 띠고 우리가 
왔다." 
계곡의 물을 가리켰지만 사내는 쉽게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꼿꼿하던 사내가 
한주먹에 물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물에 불려서 공동묘지에 파묻기 
싫으니까 묻는대로 시키는대로 순순히 
말해라." 
사내는 대번에 나긋나긋해졌다. 
"보험금을 네가 타먹은 걸 알고 왔다. 
본사에 조회를 했다. 그것 말고도 넌 꽤 
먹어치웠더구나. 사실이냐?" 
"......"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잔뜩 숙였다. 
상봉이가 달겨들어 물 속에다 머리통을 
한참이나 쳐박았다. 물을 잔뜩 마신 녀석이 
비틀거렸다. 
"사실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해먹었냐? 몇 건에 
얼마를 가로채 먹었냐 이 말이다." 
"잘 모릅니다. 하긴 했어요." 
상봉이가 모지락스럽게 두들겨 팼다. 
그리고 물 속에 집어 넣고 아예 깔고 앉아 
버렸다. 사내는 물을 실컷 먹어서 금방 
"제가 이쪽으로 온 게 이 년밖에 
안됩니다. 대여섯 건쯤밖에 안 됩니다. 한 
오천만 원 정도일 거예요. 정말입니다. 
믿어 주세요." 
"그렇게 어려운 사람 갉아먹느니 차라리 
공동묘지에 누워서 편히 쉬는 게 어떠냐?" 
"제발...... 다시 그런 짓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맹세하겠습니다." 
"임마, 함부로 하나님 팔지 말고 
시키는대로 해라. 웬만하면 그동안 네가 
벗겨먹은 거 갚고 공동묘지에 편히 누워 
줄래!" 
"아이구 선생님!" 

물 속에서 무릎을 털썩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녀석은 무지한 
가입자들을 골탕먹이는 수법이 
지능적으로 가로채 온 것을 낱낱이 
실토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직접 
법정으로 나서도 타먹은 완벽한 서류 
때문에 무고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마음 아픈 것은 녀석이 너무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무지한 
피해자들에게 보상해 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집도 전셋집이었고 그의 
가족이 가진 재산도 별로 없었다. 이 
사내를 법정으로 끌고 가고 보험회사를 
상대로 다시 민사재판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방법밖에 구제할 길이 없었다. 

보험회사 제위께 부탁 드립니다. 정말 
이렇게도 저렇게도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그리고 억울한 이에게 신속하게 
상을 해 주기 바랍니다. 우리 이제 그 
정도 멋쟁이가 될 때도 됐잖습니까? 지옥이 
있다는 걸 한 번 믿어 보십시다. 

실컷 물먹어 맹꽁이가 된 사내를 
끌어내며 우리는 쓰게 웃었다. 

[올포유]

즐감 하고 갑니다

[사보덴]

즐감하고 갑니다.

[청바지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