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토 5강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1 분량은? 단락장은?
2 어떤 느낌을 받았나? 그 이유는?
나에게 고향, 엄마품 같은 사람이 있었나..
아빠에게 꾹꾹 누르고 있던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동시에 아저씨 목을 꼭 끌어안은 소녀의 눈빛, 표정, 몸의 떨림을 상상할 수 있었다. 퇴근길 차 안에서 <맡겨진 소녀>의 마지막 장면을 오디오로 들으며 목구멍이 아파오고 코끝이 찡할 정도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장면의 소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맡겨진 소녀가 나인 듯 서러웠다. 지구에 혼자 떨어진 아이처럼. 그것이 사실이지만. 나에게도 킨셀라 아주머니 아저씨처럼 꼭 안겨 울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니를 찾아서>가 떠올랐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가여운 조니..
소녀의 감정을 따라 마음이 움츠러들었다가 안도했다가 펴졌다가 했다. 아저씨가 자선 복권을 사기 전까지는 내내 이 부부가 진짜 친절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다른 무서운 일이 일어날까 하는 불안 때문에 편하게 읽어나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인간 존엄이 없는 한국 사회에 살고 있어 그렇구나 하며 씁쓸해졌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소녀가 줄곧 불안해하고 있었다.
처음엔 “집에 보내졌으면 좋겠다. 더 심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등의 아이러니한 마음들이 자주 서술되어 조금 인위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소녀의 진짜 바람이나 기대가 아니라 곧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 집에 보내질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렇게 잘해주다가 나중에 자기가 어떤 실수를 하면 어른들이 자기를 버릴까봐 더 크게 혼나기 전에, 더 상처받기 전에, 먼저 버림받기 전에, 자기가 먼저 버리려는 것이다.
3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에 남는가? 그 이유는?
마지막 장면. 소설 속의 마지막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영화는 조금 아쉬웠다. 내가 감독이라면 마지막 장면을 다르게 연출했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소녀가 아빠를 발견하고 보며 "아빠"라고 한번 말하고, 아저씨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눈을 감고 속삭이듯이 다시 아빠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아빠라고 부르는 대상이 각각 너무 분명해져서 중층적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진짜 아빠는 소녀가 부르는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그가 딸의 말과 표정, 행동을 지켜보며 일었을 심경의 변화를 독자에게 상상하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라면, 아빠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고 소녀는 아저씨를 꼭 끌어안고 ‘아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간절하게 두 번 아빠라고 외치게 할 것 같다. 한 번은 진짜 아빠에게 "아빠!(내가 아저씨에게 어떻게 하는지 잘 보세요. 아빠가 지금까지 나에게 했듯이 그러면 안돼요)."라는 ‘경고’의 의미로, 그다음은 아저씨를 더욱 꼭 끌어안으며 "아빠!(나를 놓지 마세요. 사랑해요)."라는 의미로. 그러면 더욱 입체적인 장면이 될 것 같다.
4 소녀의 친부모와는 다른 킨셀라 부부의 특성을 서술해 보자,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어준다. 아이가 필요한 것, 불편한 것을 살펴서 아이가 말하기 전에 미리 해준다. 아이와 집안일, 농장일에 정성을 다한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배려한다.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친절한 언어를 사용한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살아가는 법과 세상에 대해 가르쳐준다. 자신감을 준다.
5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는가? 소개해보자.
5살 여름. 우리집이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되어서 엄마가 어린 동생들 때문에 힘드니까 한 달간 외갓집에 맡겨진 적이 있다. 낮에는 들일 하시는 외할머니도 따라다니고 동네 친척 언니, 아이들과 잘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매일 툇마루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픈 외할아버지가 보다 못해 “할애비가 업어줄까?” 하면 내가 싫다고 해서 “내가 느그 엄마도 안 업어줬는데 손녀딸이 뭐라고 업어주겠냐. 엣다 말아라.” 하셨다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정이 많고 아이들을 예뻐하시던 할아버지였다. 외할머니는 글자를 모르셔서 옛날식 부엌[정지] 흙바닥에 아궁이 불 땔 때 쓰는 막대기로 내가 할머니 이름을 써주면 할머니가 읽으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두 분 다 세상을 떠나셨는데 늘 안타깝고 그립다.
열아홉 살 때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어서 이모집에 맡겨졌었는데 그 집엔 두 살 위 오빠와 동갑내기 남자 사촌이 있었다. 이모와 이모부, 사촌들은 모두 킨셀라 부부처럼 나에게 잘해주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엄청 내성적이었던데다 낯선 친척집에서 난생 처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려니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사촌애가 갑자기 쌀쌀하게 굴어서 눈치를 견디다 못한 나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같은 과 선배에게 SOS를 해서 아무도 집에 없을 때 쪽지만 남겨놓고 짐을 싸서 학교 앞 하숙집으로 이사를 했다. 졸업 후 다시 만나 물어보니 사촌은 그때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에 질투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고 나는 이모이모부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하려고 한다.
지금 나에게 킨셀라 부부 같은 사람은 정혜신, 이만교 선생님인 것 같다. 항상 곁에 있을 수는 없지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곳. 내 마음에 언제나 눈 맞춰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앞에서 등불을 밝혀주는 사람. 삶의 의미와 세상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분들. 늘 감사하다.
반려빚 – 김지연
1) 분량과 단락장
2) 읽은 느낌과 그 이유
요즘 젊은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빚’에 매인 채 살아가는 고달픈 현대인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다. 웃픈 유머도 재미있고 자기를 곤란하게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어하는 정현의 마음에 대한 묘사들도 좋았다. <맡겨진 소녀>도 그렇지만 잘 쓴 작품들은 모든 문장들이 주제와 관련되어 있고, 불필요한 문장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3)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정현은 자신이 서일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주고 싶었다.
정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열과 성을 다해서 서일을 아꼈다.
돌고 돌아 마침내 귀의해야 할 종교를 만난 것처럼 정현은 다시 서일을 믿었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돈이든 사람이든 욕심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담담히, 꿋꿋이,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그때그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정현이라는 인물이 좋았다. 서일과 정현이 여-여 커플인 것도 좋았다. 얼마 전 여자친구에게 고백도 못 하고 차였다며 속상해한 나의 여조카가 생각났다. 요즘 같은 세상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부디 세상에 상처받지 않기를..
딱 좋은 날 - 정신
1) 분량과 단락장
2) 읽은 느낌과 그 이유
담이와 곰이 쌍둥이 토끼가 일기를 쓰기 싫어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를 바라고 아무 일도 하려고 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오히려 여러 자잘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재와 부분적인 에피소드들은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문장이나 인물, 짜임새가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이어서 아쉽다. 아이들다운 소재인 만큼 아이들다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면이 그려졌으면 좋았을텐데 서로 바보라고 놀리고, 때려주고 싶다고 하고, 사탕으로 다투는 등 한국 동화의 전형적인 정서가 그대로 들어있다.
특히 엄마 캐릭터는 스테레오타입이다. 내가 읽은 한국 동화의 엄마들은 90%가 이런 모습이다. 이런 권위적이고 아이들 마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엄마에 대해 약간의 풍자적인 묘사(벌칙을 말할 때 엄마 눈동자는 새벽별처럼 반짝입니다) 외에 제대로 된 문제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동화를 읽고 아이들은 어른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배울까. 동화는 주인공과 주제뿐만 아니라 배경과 조연들도 모두 인권, 아동권, 동물권에 민감히 다루어져야 하고 어떤 요소도 비교육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나마 주인공들을 토끼로 설정해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지 사람 아이들이었다면 엄마의 체벌은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고, 곰이 담이의 사고 수준이나 정서(반항적 말투, 비웃기, 때리기)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8~9세 연령과 맞지 않아 다소 언밸런스한 글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문학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아무리 한국의 엄마들이 대부분 숙제를 강요하고 잔소리쟁이더라도(몹시 찔린다) 표면태를 넘어 그 이면의 실질태, 심층태까지 다루어져야 독자가 인물에 공감할 수 있다. 동화는 희망이다. <맡겨진 소녀>처럼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지, 어떻게 살아가도록 격려되어야 하는지,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3)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휴우.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엔 하루가 너무 길어."
"맞아."
"오늘 일어난 일을 다 쓰면 열 줄도 넘을 걸?"
"한 열두 줄?"
"하지만 절대로 열 줄은 안 넘길 거야."
아무렇지 않게 오줌 싸기, 아무렇지 않게 사탕 먹기 등 아이다운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들이 좋다. 특히 엄마가 죽을 뻔 했는데도 그 때문에 엄마가 일기 검사를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열 줄은 안 넘기겠다고 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일기를 쓸 때 글씨를 깨알같이 쓰는 한이 있더라도 열 줄을 절대 안 넘기려고 하는 나의 11살 아들 같다.
2024 신춘문예 시, 동시
눈이나 마음을 끄는 시가 없었다.
진부한 비유와 상징들, 혹은 직접적인 묘사들
툭탁거리는 단어와 문장들
내가 이해를 못해서 그럴수도 ..
I’ll Be Seeing You – 최연희
세밀한 관찰과 묘사에 노력과 정성을 들인 것 같다. 하지만 주제가 분명하지 않아 각 단락들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임신과 입덧, 불면과 악몽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의 서너 단락과 맨 마지막 단락을 빼고 핵심 이야기 하나를 잡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나’가 왜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지 왜 이십 년 가까이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제목도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결혼 전, 결혼 후 – 한유경
가부장제는 한국 여성들에게 공통된 문제이지만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현실이어서 공감도 가는 한편, 너무나 많이 다루어진 소재여서 좀 더 개별적이고 새로운 이야기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인 유진은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문제에 직면하거나 헤쳐 나갈 의지가 없어 보인다. 남편 선우는 나이에 비해 말과 행동이 철없는 중고생 같아 반주인공의 무게에 비해 매력이 부족해 보인다. 주인공 화자만의 인간관, 세계관이 보이지 않고 일어났던 일들과 순간순간의 감정을 시간 순서로 단순하게 서술하는 데 그치고 있어 소설보다는 일기나 기록물처럼 보인다. 인물 설정과 심리 묘사, 중심 사건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