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체험기와 하복으로 만년설을 보러간 멍청이 주 서플라이어 세심과 메이카인 쥬몽슈나이더와 국제검정회사가 시험을 마치고 마지막 회의를 끝내는 날 세심 시니어 매니저가 개별적으로 보자고 했다. 그는 봉투하나를 주면서 파리는 그 사이 다 보았겠지 하고 물었다. 지난번 회의 때 에펠 탑을 치어다 본일 외는 없다고 했더니 놀라면서 주말엔 무얼 했느냐고 물었다. 빨래하고 한주 내내 작업장에서 서 있어 지친 몸을 쉬었다고는 할 수 없어 그저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더니 웃으며 파리는 돌아와서 보고 제품을 포장해서 파리 국적항공사 적치장으로 이송하는데 3-4일 소요되니 그 사이 스위스에서 하루쯤 쉬다 오라고 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긴 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을 지키는 그런 GM은 처음 보았다며 고생 많이 하셨다며 세심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쿠폰이었다. 쿠폰이란 걸 처음 보아 어리둥절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활인권쯤 되는 줄 알고 사양했다. 아무리 시골 호텔에 머물러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출장비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할 형편이 못되어 스위스를 다녀올 여유가 없었다. 그 사이 발 품을 팔아서 파리나 보아야겠다 고 했더니 그는 또 웃으며 모든 비용은 세심에서 이미 지불되었고 세심에 오는 고객에 대한 인사이니 파리는 다녀와서 보라며 중량물 운송 트랙터에는 당신이 탈 자리가 없다며 제품의 운송은 세심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쿠폰을 펼치며 호텔숙박권과 항공권을 보여주며 공항에서 택시 잡는 법까지 설명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촌스러운 짓인지 모르겠다. 그는 8월 15일은 전승일이라 중립국인 스위스만 제하고 거의 전 유럽이 휴무라서 스위스행 관광이 인기라며 제품이 포장되어 파리로 올 동안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쿠폰을 받았지만 혼자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저녁에 뒤셀돌프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 마자 ‘쿠폰을 받았지’ 했다. 그렇다면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세심이 제의해 와서 스위스를 추천하며 사전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두 달 반이나 유럽에 머물렀건만 프랑스의 변방인 벨지움 국경지역의 작은 마을인 쥬몽(Jeumont, 프랑스 변두리 지명)에만 머물며 일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별로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못 받았는데 파리로 들어오니 그제서야 유럽이 눈에 들어오고 유럽에 온 것을 새삼 느껴졌다. 솔직히 당시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될 수 있으면 유럽을 많이 보고 싶었고 1순위는 당연히 역사가 살아있는 로마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쿠폰은 스위스였다. 8월 14일 파리에서 루체른(Luzerne)`행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로 향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호텔명을 보여주었더니 얼마 안가 도착되었다. 택시 쿠폰에 가격을 써서 주었더니 택시 기사가 웃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서양에서는 쿠폰을 주면 기사가 가격을 써서 신청하는데 한국처럼 바가지 씌우는 기사는 없는 걸 모르고 했던 짓이라 우스웠다. 호텔은 고색창연한 고딕식 건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뾰죽하게 치솟아 있고 건물벽은 회백색의 유럽식벽돌로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았는데 저런 높이까지 어떻게 쌓아 올렸는지 신기했다. 호텔 앞에 도착하자 도어 맨이 짐가방을 받아주며 프론트로 안내해 주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게 어마어마하게 높은 천정에서 길게 내려진 샹데리아 조명등의 화려 함이었다. 프론트에 쿠폰을 주었더니 싸인 만 해 달라고 해서 사인을 해서 그대로 주고 벨보이의 안내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꽤나 올라갔다. 그에게 팁을 주어야 하는데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일본에서 산 프랑스편 책에는 1$정도라고 적혀있지만 그게 이런 고급 호텔에서도 유효한지 걱정스러웠다. 그는 말없이 내민 팁을 받아 들고 고맙다며 돌아갔다. 고색창연한 건물인데 내부는 외부와 전혀 다르게 어리어리했다. 오래된 건물을 외부는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는 리 모델링해서인지 건축당시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 없었을 터인데 내부는 현대식 건물 그대로였다. 침대도 킹사이즈 더블 베드가 있고 화장대의 문양은 아주 오래된 것처럼 고색이 창연하면서도 윤기가 반질반질했다. 욕실은 월풀(Whirpool)식으로 이런 저런 욕실부품으로 화장품과 세제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먹을 만한 음료수와 브랜디까지 비치되었으며 화장대 위에는 TV리모콘과 채널표도 있어서 TV를 틀었더니 호텔가이드가 먼저 나왔다. 휘트니스 시설을 비롯해 사우나 수영장까지 시설을 보여주며 딱딱한 독일어로 설명해주어 또 한번 농아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어방송을 들을 수준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알려면 영어로라도 바꾸어야 하는데 리모콘 조작을 제대로 할 줄 몰라 전화를 했다. 교환수가 연결되자 영어로 일본어가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무어라고 말한 다음에 한참만에 귀에 듣기도 간지러운 일본여성의 음성이 전파를 타고 들려왔다. ‘하이, 니혼진 데수까(네, 일본인입니까?)’ 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래도 일본어는 1967년도 기술연수를 하면서 나고야 주변에 있는 구아나(桑名)시의 민단요구로 거의 두 달 동안 재일교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들에게서 배운 일어는 비록 나고야 벤(사투리)이 섞여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농담도 거의 알아들을 정도여서 외국어 중에는 제일 편안한 언어였다. 그녀는 일본인으로 스위스에 오는 일본관광객을 위해 일하고 있다며 곧 사람을 보내어 TV언어를 바꾸어 주겠다며 묻지 않는 말까지 일러주었다.
냉장고에 가득 찬 음료수는 유료 상품이고 시중가 보다 많이 비싸니 맥주가 필요하면 길 건너에 있는 미니 샵에서 사는게 좋을 거라고 보조설명까지 해 주었다. 당시 일본은 경제 대국화 되어가면서 유럽관광을 휩쓸고 다녔다. 주로 신혼여행이나 하계 방학때는 영어 연수를 위해 영국으로 한 달씩이나 어학원에서 연수를 한 뒤 귀국길에 빠짐없이 프랑스와 스위스는 꼭 투어를 하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덕으로 일본인들이 유럽에 많이 취업해 있다고도 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조금 후 벨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주었더니 TV화면을 일어자막이 나오는 영어화면으로 바꾸어 주고 갔다. 이것도 팁을 주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1$에 해당하는 2프랑을 주었더니 ‘노 생큐’하며 나가 버렸다. 벨 보이가 아니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시설은 어리어리했다.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호텔에 숙박하는 것 같았다. 킹사이즈 더블 베드는 혼자 자기 너무 아까웠다. 어차피 호텔은 2인씩 자도 되는데 식비와 관광비는 개인 부담하더라도 부부가 같이 왔으면 좋을 것 같았다. 쥬몽에서 파티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첫 파티석상에서 마이스터 부인이 ‘왜 GM이 부인을 대동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웃었지만 당시 까지만 해도 한국은 부부 동시 해외 출국은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지도 모르는 비싼 고급 호텔에 자는 것 같아 마음은 들 떴지만 시간은 가고 있었다. 이런 호텔은 도대체 얼마나 할까 궁금해서 도어 안쪽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니 400$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돈이면 당시 하루 출장비에 두배가 넘었다. 400$을 현금으로 선물했으면 3-4성급 호텔에서 하루자고 그 돈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예정대로 루체른(Luzerne)의 명물이라는 카펠교(Kapell bridge)를 찾았다. 가이드 북에 근처 성당 이름을 따서 카펠교라 불리지만 14세기에 도시로 침범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로이스강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유럽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지붕이 덥힌 목조다리로 교각을 지날 때 마다 삼각지붕 내부를 막아 루체른에서 일어난 역사를 그린 그림이 150여개나 되어 17세기의 유럽을 볼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내 눈에는 평범한 목조다리로 이게 유명세를 타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각마다 그려진 그림에 대한 상식이 없어 무식한 탓인지 모르지만 카펠교를 찾은 다른 관광객들도 그저 걸어가며 가끔 그림을 한번 쳐다보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한국의 석교들은 충분히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룻밤을 꿈같이 편히 쉬고 8월15일 체크아웃을 한후 예정대로 필라투스 산(Mt. Pilatus)으로 향했다. 높이는 불과 2100여m이지만 한여름에도 만년설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산이라고 설명 되어있었다. 플랫폼(Platform)에서 부킹을 하고 산악열차를 보니 바퀴가 톱니바퀴였다. 톱니바퀴가 달린 산악열차가 경사진 산위를 타고 오르다니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엔지니어의 눈에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루체른 시가지를 비롯한 스위스의 풍경과 루체른 호수가 그림 같이 보였지만 덜커덩 거릴때 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도 느꼈다. 이렇게 경사진 곳에 톱니바퀴전차를 시설한 스위스인의 지혜가 놀라웠다.
필라투스는 알프스의 연봉이긴 하지만 정상은 불과 2100여m높이인데 한 여름에 도 눈이 덮여 있어 신기했다. 만년설도 만져보고 알프스 봉우리도 조망하는 데 추위를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관광객들은 전부 두툼한 옷을 입었는데 나 혼자만 하복을 입고 떨고 있었다. 더 보고 싶어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여름철이라 두툼한 옷은 갖고 가지도 않았지만 그만큼 아무것도 모르고 정보도 경험도 없이 촌놈 노릇을 했다. 바로 하산해서 그날로 바로 파리로 돌아왔다. 제품은 아직 쥬몽에서 포장중이라고 했다. 그 육중한 물건을 항공수송용으로 포장하는 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건 들었지만 걱정스러워 쥬몽 슈나이더 공장장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도 스위스 투어는 좋았나 며 되물으며 제품은 그 다음날 쥬몽을 떠나 파리로 운송된다고 했다. 그러면 예정일자대로 한국을 향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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