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집에 왜 깃발을 꽂는가? [펌]
우리는 무당 집을 찾을 때는 먼저 깃발이 꽂혀있는 집을 찾는다. 그리고 무당들도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신당을 꾸미고 집 앞에다 깃발을 꽂는 것이다.
무당들은 이것을 '천왕기' 또는 '서낭기'라 부르지만, 왜 꽂는지 모른다. 그냥 선배 무당들이, 선생들이 꽂으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긴 대나무에다 붉은 천과 흰 천을 매달아 꽂고 있는 것이다.
이 깃발은, 한웅천왕시절에 어떠한 지역을 성역화하기 위하여 소도라는 것을 설치하였는데, 소도의 가운데 모(旄)라는 깃발을 세운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단고기, 단군세기>를 보면 「11세 단군 도해께서 경인원년(BC1891년)에 오가에 명을 내려 열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象)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사 지내며 '웅상(雄常)'이라 이름 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웅상의 그림은 집안(輯安)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장전 1호에 나타나 있다.
또 기록하기를 「무리를 지어 노래하며 춤추며 술 마시기를 밤낮 쉴 사이 없이 한다. 그 춤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며 몸을 낮췄다 높였다 하며 손발이 서로 장단에 맞춘다. 귀신을 믿으며 국읍으로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 천신을 제사 지내는 것을 주관케 한다. 이를 이름 지어 천군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엔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를 소도라 이름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 북을 매어 달고 귀신을 섬긴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 외 여러 곳에서 웅상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당들의 집에 세우는 깃발은 바로 웅상(雄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웅천왕 시절에 정부의 최고기관은 소도(蘇塗)라고 할 수 있다. 소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백성에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며 천제를 올린다. 또한 소도에 서면 언제나 '참전계경'이란 계(戒)가 있어 충 ․ 효 ․ 신 ․ 용 ․ 인 오상의 도를 닦았다.
또한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하여 만든 언덕을 '구(邱)'라고 하였다. '구는 앞을 높이고 뒤를 낮게 하여 모를 꽂는다.'라고 하였다. 구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땅을 말하는데, 14대 한웅천왕인 치우천왕이 세운 나라가 청구이다. 청구의 중심에 세웠던 깃발이 '모(旄)'이다.
모(旄)를 불교에서는 '당(幢)'이라고 부른다. 오래된 고찰을 가보면 반드시 절 마당에 철물로 높은 깃대 모양으로 세워 놓은 당간지주를 보게 될 것이다. 당간지주가 높을수록 그 절의 위상을 말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는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웅천왕 시절 하늘을 숭상하는 순수한 우리 민족의 정신이었다.
「강희자전」에 「땅이 높은 것을 구(丘)라고 한다. 높으므로 하늘을 섬기는 일을 한다. 고로 땅 위에 세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청구의 높은 언덕에서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뜻이다. 이를 줄여서 말하면 구사천(丘事天)이 된다. 구사천은 하늘의 일을 하는 언덕이니, 하늘에 제를 지낼 땐 '굿'을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또 「땅을 낮게 하므로 땅을 섬기는 일을 한다. 고로 못의 한가운데서 하는 것이다. 이 곳을 구사지(丘事地)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언덕이 높은 곳에서는 하늘에 제를 지내고, 못 가운데 언덕이 낮은 곳에서는 땅에 제를 지낸다는 말이다. 이 구사천과 구사지가 굿의 어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곳에 꽂는 깃발을 '모'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모가 변형되어 지금 무당집 앞에 꽂혀 있으니, 무당집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즉 굿을 하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즉 한웅천왕 시절 때부터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곳으로 여긴 소도라는 표시인 것이다.
이렇듯 소도에 세운 모가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의 무당집 앞에 대나무에 걸린 천 조각으로 변형이 되었지만, 그 숭고한 뜻은 알고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깃발을 다는 순간 무당집은 일반 사람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백성들을 교화하고 오상의 계를 닦도록 하는 아주 중요하고도 신성한 소도의 성격을 가지는 중요한 곳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무당들이 모(旄)기에서 시작된 깃발의 유래와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스스로 내성(內省)을 하여 오계의 도를 닦고 언행에서 모범을 보이면 무당집도 성당이나 사찰과 같이 성역화 된 장소로, 아니 옛날의 소도로 돌아가 나라의 중심이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남 보기도 이상한 깃발을 세우는 대신 솟대를 세우는 것이 삼신신앙을 이어가는 우리에게는 더욱 성스러운 일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는 일이라 생각된다. 또한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문화로서, 많은 사람들의 거부감도 덜어줄 것이다.
글 ; 조 성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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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과 크리스마스 트리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2월이 되면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시청 앞을 비롯한 전방 등 곳곳에서 화려하게 장식하여 점등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독일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유래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 바로 그 지방의 토속종교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가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현지인들의 야만적 종교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해, 옆에 있는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뭇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 데서부터 비롯되어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그 지방의 토속신앙은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사상을 믿었다고 할 수가 있다. 즉, 우리 무교와 같이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종교적 가치에 따라 나무를 숭배하였고, 신을 모시기 위해 나무를 가정에 들여놓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은 대추야자 나무를 집안에 들여놓았고, 드루이드교를 믿던 켈트족들은 오딘 신을 숭배하기 위해 참나무에 금박의 사과를 매달거나 헌물을 바쳤다. 또 로마인들도 나무를 숭배하여 <새터날리아> 축제 기간 중에 완구와 장신구 따위로 나무를 장식하였다.
우리도 한웅천왕 시절엔 소도에 큰 나무를 골라 웅상이라고 하여 옷을 입히고 방울과 거울 그리고 북 등을 걸어 놓고 숭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강릉 단오굿을 할 때 신목이라고 하여 나무에다 옷을 입히고 방울을 비롯한 장신구로 치장을 한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트리 역시 기독교보다 이교적인 풍습에서 등장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이용되는 나무의 종류를 보면, 사철 푸른 나무로 사용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어둡고 추운 겨울이 오래 지속되는 북유럽에서, 태양이 정기를 잃지 말고 사철 변함없이 밝고 따뜻하게 비춰주길 바란다는 뜻이 있다.
우리는 박달나무를 신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박달나무 또한 껍질이 하얀 것이 밤에 되면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희게 보여진다. 또 박달이란 말의 어원은 ‘밝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북유럽의 나무들과 그 뜻은 서로 통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는 그 지방의 토속종교의 애니미즘 사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기독교의 상징적인 전유물이 되어버렸으며, 길고 어두운 겨울밤이 지난 후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재해석 하고 있다.
또한 12월 25일은 <미트라> 라는 로마의 태양신이 탄생하는 날로 우리의 동짓날이라고 할 수 있다. 짧아졌던 태양이 다시 길어지는 그 날을 <미트라>가 탄생하는 날이라고 제사를 올리고 축제를 벌였다. 이것을 기독교에서 교세 확장을 위해 토속신앙의 종교 축제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어 버렸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미트라> 즉 태양의 신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포교를 위하여 무교의 신들에게 불교의 옷을 입혔듯이, 그렇게 기독교도 그 지방의 토속종교 행위를 흡수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옛날 우리의 웅상과 유럽 지방의 토속종교, 그리고 지금의 크리스마스 트리의 공통점은 나무에 장식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크리스마스트리는 기독교의 독창적인 문화가 아니라, 바로 삼신 할머니의 한 자손인 백소(白巢) 무리의 후손인 유럽인들이 웅상을 섬기던 우리 문화에서 비롯된 종교의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은 나무를 섬기는 우리의 민족종교, 즉 무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 외에도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의 행위들을 들여다보면 무교의 변형종교임이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글 ; 조 성 제
출처: 사랑산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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