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 비행기표를 한 사람당 약 삼만원에 편도를 예약했다. 몇일전 막내가 Pizza Hut 작은 피자를 약 이만욱천원에 사먹었는데 말이다. 비행기를 탑승하지마자 약 십분만에 이륙을 한다. 내가 버스를 탄건지 착각이 들 정도다.
듀크님과 반갑게 해후를 하고 카페의 성지(?)중에 하나인 Chez Olivier 카페로 갔다.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Mr Olivier와 Irene님이 고마웠다.
여행은 인생과 같다. 다음의 여정이 어떻게 이어질지 또 그 사이에 어떤 복병이 존재할지 미리 알지 못한다. 제주에서의 첫날밤에 민박은 일반 아파트의 한 방을 쓰는 형태였다. 문제는 더운 날씨에 창을 얼 수 밖에 없었고 바로 큰 길에서 들리는 차소리로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듀크닝은 약속대로 아침 7:45경에 왔다. 주인아줌마가 해준 계란후라이, 보리빵을 커피와 마시고 비자림을 향했다. 좋은 바둑판을 만든다는 비자나무는 만져보니 그 촉감이 보드랍고 약간의 쿠션이 느껴졌다. 아 그 숲은 마치 천년의 신비를 은밀히 품은듯 축축하고 부드럽고 시원했다.
입구의 커피샵에서 커피를 마시고 성산일출봉으로 행했다. 제주의 느낌은 아름다운 시골처녀에게 어색한 화장을 해 놓은 느낌이다. 수줍음과 느릿함이 섞여있다.
일출봉은 내가 모국에서 접한 경관으로는 가장 멋진 곳이다. 검게 곳곳에 솟아있는 바위들과 요세미티를 축소한듯한 벼랑, 초지를 거니는 말들 가파른 계단 정상에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감격을 안겨준다.
내려와서 갈치조림을 푸짐하게 먹고 민속촌과 천지인폭포등을 구경했다.
지금이 새벽 다섯시인데 듀크님은 벌써 일어났는지 물소리가 들린다. 아 오늘은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기대가된다.
아침에 일어나 찬 물에 샤워를 했다. 듀크님의 인도로 아톰님의 집에서 지내는 것은 좋았는데 말이다. 새벽 네시경에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Seaes라는 휴양지에 들러서 이쁜 카페에 들려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가장 자주 등장했던 것은 이민와서 겪은 아이들과의 문제였다. 제주시가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도시라면 중문은 플로리다에 올랜도를 연상시키는 휴양지로 다가온다. 주상절리를 돌아보고 산방산으로 향했다.
산방산에 굴속에 있다는 절을 보려니 낙석의 위험으로 출입이 막혀있다. 멀리 해변에는 하멜이 표류했다는 지점에 배가 서있었다. 제주의 토속 먹거리중에 하나라는 산방산밀국수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바빠서 놀랬다. 밀국수도 괜찮았지만 함께 먹은 수육이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해서 참 맛있었다. 제주에 절경중에 하나라는 용머리해안은 비바람이 몰아쳐 보는 것을 포기했다.
제주로 향하는 길에 도치형님댁에 들렀다. 시기는 틀려도 뉴욕부근에서 살았던 세사람의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커피와 매실차 그리고 직접 구우신 보리빵을 맛있게 마시고 먹었다. 주인분의 삶이야기를 들으니 사람마다 갖고있는 인생의 다양함과 그 다른 시각이 흥미로왔다.
제주시 초입에서 전통오일장에 들렀다. 수많은 차들이 다 그곳으로 몰린듯 좁은 길 양쪽으로 주차를 하고 그 가운데 서로 차가 엉키면 풀어가는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건어물, 생선, 과일, 야채, 나물등도 풍성했고 이쁜 강아지들 고양이들 토끼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탑동이라는 동문시장뒤에 흑돼지와 횟집들이 줄서있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 팔충짜리 건물에 우리가 유일한 투숙객인듯 착각이 될 정도로 조용했다.
여장을 풀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해변을 산책했다. 늘어선 횟집에서는 주인들이 길가로 나와서 맛있게 해준다고 말들을 건넨다. 결국 그 모든 요청을 어렵게 뿌리치고 제주흑돼지를 먹었다. 솥두껑 모양의 철판위에 구워먹는 그 맛은 부드러운 소주와 어울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지금은 돌아가는 날 새벽 다섯시 반이다. 메시지를 보니 듀크님이 사라오름을 가잔다. 잠시 눈을 붙여본다. 숙소는 낡았지만 편안하고 저렴했더.
오전에는 사라봉을 올랐다. 어디를 가도 절들이 많다. 제주사람들은 불과 오십여년전까지도 하루에 두끼를 먹으면 형편이 좋은 편이고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토양때문에 벼농사를 지을 수가 없단다.
어디를 가도 밭에 필요없는 담들이 보여서 그 이유를 물으니 수많은 돌들을 처리할 길이 없어서 그렇게 모아놓는 것이란다.
사라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김만덕의 묘비를 보았다. 그는 1800년경 정조때의 사람이었는데 온 재산을 팔아 어려운 사람을 구휼하여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단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기녀의 수양딸로 들어가 한 때는 기적에도 이름이 올랐다. 스무살에 양민의 신분을 회복하고 객주를 운영하여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가 죽은지 28년 후에 제주로 유배온 추사 김정희는 그의 행적을 듣고 감동을 하여 은광연세라 글을 싸서 헌정을 했다고 한다.
듀크님과는 카페를 통해 만난 분들 그리고 주변에 분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아톰님의 자유로운 정신과 두분이 틈나면 걸으며 나누었던 교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유명한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앉은 자리는 대형TV 바로 앞이었다. 사람들은 스페인과 여자축구시합을 보고 있는데 점수가 1:1이었고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예선탈락을 한다. 식사를 마쳐갈 때 센터링을 한 볼이 골문속으로 들어가 승리를 했다. 한국에서 여자축구의 선수층을 감안하면 확실히 한국여자들이 한국남자들 보다 우수한 인종인듯 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이다. 제주에서의 짧았던 삼일을 생각해 본다. 가는 곳마다 검은 돌들이 쌓여있고 절들의 분위기는 토속신앙을 아우른 모습이다.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오른 오름들은 한라산을 경배하고있는 작은 무당들같은 느낌이다.
슬쩍 지나쳤지만 그 아름다움에 내 마음은 벌써 제주가 그립다. 그냥 지나친 무수한 제주의 이야기들과 풍광들이 끊임없이 내 머리맡에서 나에게 소곤거릴 것이다.
빨리 돌아와요 사랑하는 사람
내 영혼을 보여주고 싶어요.
李仲燮 3
김춘수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남쪽으로 쓸리는
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위 주상절리 아래 이중섭이 지냈다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