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은 드넓다. 14개 읍·면을 거느려 군 단위로는 전라남도에서 제일 크다. 높은 산은 없지만 두륜산, 달마산 등 바구니를 엎어놓은 듯한 야트막한 산들이 들판을 감싸고 있다. 산허리 한 굽이를 넘어서자 시야가 넓게 펼쳐진다. 붉은 황토밭에 배추와 고구마 등 농작물을 짓는 시골의 정경이 안온하게 느껴진다. |
시선을 잡아두는 남도의 붉은 황토밭
|
|
|
바람에 흔들리는 녹우단 비자나무숲
|
|
|
삼재불입 고찰 대흥사와 다문화의 성지 일지암
|
|
|
|
한반도 땅끝에서 설움과 희망을 노래하다
|
|
|
|
뒤는 달마산, 앞에는 남해를 품은 미황사
|
|
|
|
'이충무공의 고함이 생생' 우수영 명량대첩지
|
|
|
해남에서 가볼만한 곳(해남의 산)
땅끝관광지(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해남 간척지 담수호 주변 철새도래지
고천암 갈대밭은 고천암호 에는 14Km의 둘레를 따라 갈대들이 광활하게 서식하고 있고, 해남읍 부호리에서 화산면 연곡리 까지 3Km의 갈대밭은 50만평으로 국내 최대의 갈대군락지이다.
또한 고천암 갈대밭에는 먹황새, 독수리 등 희귀조류는 물론 전세계 98%의 가창오리가 겨울을 나면서 환상적인 군무를 하기도 한다.
•해남군에 철새들이 찾아오는 이유
- 간척지의 기온이 따뜻하고 새로 조성된 호수가 철새들에게 새로운 서식처가 됨
- 주변의 넓은 농토와 바다 개펄이 오염되지 않아 먹이가 풍부함
- 중국∼일본간, 시베리아, 알레스카∼호주, 뉴질랜드간 이동통로의 중간 기착지
•철새관찰의 유의할 점
- 새들은 경계심이 많기에 빨간색 옷차림을 피할 것
- 돌을 던지거나 차경적, 폭음탄 등을 사용하지 말 것
- 제방도로는 저속으로 운행할 것
•철새도래지 찾아오시는 길
고 천 암
- 해남읍 → 삼산면 시등리 → 화산면 해창리 → 고천암방조제
- 해남읍 ∼ 고천암방조제 : 17.9㎞
- 해남읍 → 황산면 소재지(사거리신호등) → 완도방향 → 황산면한자리 → 징의리 → 고천암방조제
- 해남읍 ∼ 황산 ∼ 고천암방조제 : 25.7㎞
당 두 리
- 해남읍 → 마산면 상등리 → 화내리 → 영구리 → 당두리
- 해남읍 ∼ 당두리 뜬섬 : 11㎞
우항리 공룡화석지(우항리 공룡 박물관)
해남 우항리 고생물화석지는 해남읍에서 서쪽방향(진도방향)으로 약 20㎞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의 이곳은 해남만의 남쪽에 위치한 바닷가였으나 지금은 금호방조제에 의해 막혀진 대규모 담수호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퇴적층은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형성(약 8300만∼8500만년전 추정)된 것으로 약 5㎞의 해안에 교과서적인 퇴적구조를 가지며 연속적인 수평층리가 잘
발달된 정교한 퇴적층군을 형성하고 있다. 우항리 고생물화석지는 1996년부터1998년까지 수행된 발굴 및 종합학술연구(연구책임자 : 전남대 허 민 교수)에 의해 노출된 대규모 화석지인 것이다.
과거 우항리 지역은 상부와 하부 퇴적층의 수평 노출이 평균 약 30㎝ 정도에 불과하였고 지층의 경사가 해안 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어(평균 20˚SW) 발굴 및 복원연구에 의하지 않고는 오늘날 같이 세계적 규모의 고생물 화석산출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곳이였다.
발굴 및 연구수행결과 용각류, 수각류, 조각류등의 다양한 공룡발자국 화석 514점, 익룡발자국화석 443점, 새발자국 화석 약 천여점, 규화목 및 탄화목
화석 수십점, 개형충 미화석 수만점, 생흔화석 수십점 및 새로운 발굴이 요구된 익룡 및 공룡뼈 화석 수십점 등이 발견 및 발굴된 곳이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번지 일대)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의 유적지(遺蹟地)이다. 선생의 자(字)는 약이(約而), 호(號)는 고산(孤山)또는 해옹(海翁)이다.
선생은 광해(光海)4년(1612)에 진사(進士)되고, 4년후 성균관유생(成均館儒生)으로서 권신(權臣)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鄕里)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6년(1628) 별시문과(別試文科)의 초시( 初試) 에 장원한 후 봉림(鳳林)과 인평(麟坪)을 모시는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고 한성서윤(漢城庶尹)과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후에는 주로 완도(莞島)의 보길도(甫吉島)와 해남(海南)의 수정동(水晶洞) 및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苑林)을 경영하고 산중신곡(山中新曲)과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등 불후(不朽)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造景文化) 및 국문학(國文學)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종(孝宗)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顯宗) 12년에 85세로 졸(卒)하였는데 숙종(肅宗)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종되고 시호를 충헌(忠憲)이라 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海南尹氏) 종가(宗家)의 고택(古宅)과 녹우당(綠雨堂)(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漁樵隱祠堂) 외에 고산사당(孤山祠堂) 및 추원당(追遠堂)이 있고 유물전시관(遺物展示館)에는 윤공재자화상(尹恭齋自畵像)(국보 제240호)을 비롯하여 해남윤씨가전고화첩(海南尹氏家傳古畵帖) (보물 제 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尹孤山手蹟關係文書)(보물 제 482호) 지정(至正) 14년 노비문서(奴婢文書)(보물 제 483호) 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로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 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樹林)으로 알려져 있다.
송호해수욕장(전라남도 해남군송지면 송호리)
송호해수욕장은 땅끝마을로 가기 전에 펼쳐져 있는 해남의 가장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송호(松湖)는 해변가로 노송이 무성하고 바닷가의 고운 모래와 맑고 잔잔한 물결이
호수 같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송호 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나 가족들이 놀기에 좋으며
수백년된 해송(海松)이 풍치림(風致林)을 이루고 있다.
제방을 따라 약 1km가량 이어져 있어 송림 숲 아래에서 야영을 하기에 적합하다. 이 송림 숲은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 14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이 약 2백년
가량 된 6백여그루의 소나무가 해안방품림의 기능으로 펼쳐져 있다.
명량대첩공원(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에 위치한 명량대첩공원은 임진왜란 3대 수군대첩지의 한곳으로 이순신이 대승리를 이룬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종식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곳으로 당시 최후의 교두보였던 울돌목을 성지화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공원으로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역사성을 지닌 전라우수영이 표면에 드러난 계기는 다름아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이룩한 명량대첩이다. 이순신장군이 옥에서 풀려나 권율 휘하에 있다가 백의종군하던 중
나라의 위태로움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을 받고 그날로 장흥 회령포에 이르러 간신히 12척의 범선을 수습하여 이곳 우수영에 당도했다. 이때 왜군들은 4백여척에 2만명의 군인을 싣고 울돌목을 통과하여 예성강으로 진출 이미 직산에 머물러 있던 육군과 합세해 서울을 침범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일본군에 있어 울돌목 장악은 중요한 과제였다.
임진년 전라수사로 있을때부터 울돌목의 지형조건을 파악한 장군은 치밀하게 준비해 나갔다. 쇠사슬 두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도록 울돌목에 장치해 두고 장수들을 불렀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지금의 우리를 이름이라. 공들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 명령을 어기지 말라' '나라를 위해 죽기로서 싸워라, 만일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는 자는 군법을 시행하리라' 하여 임전결의를 다졌다.
1597년 9월 16일 새벽. 드디어 어란포에 머물고 있던 일본수군들이 밀물을 타고 명랑으로 공격해 왔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이를 공격하니 왜선이 이순신의
배를 포위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장군은 적장 마다시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때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수가 썰물로 돌아서자 마다시와 기함을 잃은 왜군들은 혼비백산 도망가느라 바빴다. 이때 대파된 왜선은 1백 33척으로 세계해전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승리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대첩이다.
두륜산(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8-1)
두륜산(703m)은 해남의 영봉이며 여덟개의 높고 낮은 연봉으로 이루어진 규모있는
산이다. 북서쪽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빼어난 경관을 이루며 산행코스가 험하지
않아 2~3시간 정도면 가련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
8개 암봉이 이룬 연꽃형 산세를 이루고 있다. 두륜산은 가련봉(703m)을 비롯해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능허대 685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 봉(469m), 연화봉(613m)의 8개 봉우리로 능선을 이루었다. 이 여덟 봉우리는 둥근 원형으로, 마치 거인이 남해를 향해 오른손을 모아 든 듯한
형상이다.오른 손을 가지런히 펴고 엄지를 집게손가락에 붙인 다음 손가락 끝을
당겨 오목하게 물을 받을 듯 만들면 영락없는 두륜산의 지세가 된다.
두륜산은 대둔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산이란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대듬→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한다. 때문에 과거 대둔사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따서 두륜산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두륜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두륜산행은 여러 고승 대덕의 발자취를 뒤따라 적당히 땀을 흘리며 산봉을 오르면 되는 산행이라기보다는 유유자적한 소요에 가까운 행위가 된다.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은 산이기도 하다. 이른 봄은 지천으로 핀 동백, 여름에는 울창한 수림과 맑은 계류가 가을에는 찬란한 단풍이 길손을 맞아준다.
달마산(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이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른 산맥은 둔덕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암릉으로 급격히 모습을 바꾼다.
이 암릉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8㎞에 거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러뜨리지 않으며 이어진 다음 땅끝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야 갈무리하는 것이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잡은 미황사 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소 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 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 를 일구었다고 한다.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다.
흑석산(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비오는 날 흑석산의 모습은 검정색으로 변한다. 산의 색깔이 검다하여 유래된 듯하다. 흑선산에서 가학산(577m)~별매산(465m)으로 이어진 능선은 영암 원출산의
여세가 남서로 뻗으며 솟구쳐놓은 산줄기다. 주능선은 영암군 학산면과 해남군
계곡면 의 경계를 이룬다.
설악산 공룡릉을 뺨치는 암릉 풍치와 지리산의 일맥처럼 길게 뻗은 능선줄기는 누구든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지만 아직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물론 영암 원출산의 유명세에 밀려서다. 하지만 이 산줄기의 주인이자 배경으로 버티고 선 월출산의 후광을 걷어내고 이 산이 가진 고유의 멋에 주의를 돌린다면 내륙지방의 어지간한 산은 모두
부끄러이 몸을 숙이고 이 산의 뒤로 물러서야 할 것이다.
이 산은 기암들이 서로 업치고 덮친 모양새가 멀리서 볼때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별매산이라 부른다.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가 줄지어 얹힌 능선 곳곳에는 소나무들이 억세게 뿌리를 박고 있다. 한겨울에도 눈이 쌓이는 일이 별로 없어 등행을
즐기기엔 문제가 없다. 또한 이 산은 기품 높은 난의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병풍산(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병풍산(313.1m)은 해남읍의 지형 옥녀탄금형의 병풍에서 유래된 산이다.
금강산이 선녀라면 호산은 가야금에 해당되고, 병풍산은 병풍에 해당된다.
고산문학 산중신곡의 산실 수정동 , 금쇄동 , 문소동 을 머금고 있다.
갈두산(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은 해남군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예부터 산자락에 칡이 많았다는데에서 산이름이 유래됐다. 일명 사자봉으로도 불리는 갈두산의 모산은 해남군
최고봉인 두륜산(頭輪山·703m)이다.
같두산 등산로는 땅끝마을(갈두항) - 구초소 - 삼거리 - 땅끝탑 - 당꼭비
봉화대(정상) - 전망대 - 주차장 -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가 노멀루트이다.
1시간이 소요된다. 요즘은 승용차를 이용해 여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상기의 코스를 역으로 갈두산을 오르기도 한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는 갈두지서에서 푸른모텔 앞을 지나 주능선상의 주차장까지 올라간 다음 담쪽 오솔길로 250m 거리인 봉화대와 전망대를 다녀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승용차를 주능선 주차장에 세워놓고 봉화대 - 땅끝비 - 땅끝탑 - 삼거리 -
구초소를 경유해 갈두항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돌았다면 다시 승용차를 가지러 또 다시 지서 앞으로 가서 주능선 주차장까지 올라가야만 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승용차는 지서 앞이나 관리사무소 옆 주차장에 세워두고 주능선 주차장으로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나중에는 오히려 편리하다.
해남지도(해남관광안내도)
<자료출처> Naver 아름다운한국 , 해남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