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울산바위
- 위 치 :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 높 이 : 780m
1. 일 시 : 2012. 5. 13 08:00 ~
2. 장 소 : 설악산 울산바위
3. 참석인원 : 32명 (새내기 6명)
4. 탐방코스 : 소공원 - 신흥사 - 흔들바위 - 계조암 - 울산바위
5.다녀온 길 : 중앙고속도로춘천JC - 서울.춘천고속도로동홍천IC - 44번국도인제.속초방면 - 설악동소공원
6. 오늘활동 상황
○ 08:00 --- KBS앞 출발(설악휴게소 경유)
○ 10:12 --- 설악동소공원주차장 도착
○ 10:17 --- 일정안내 및 단체기념사진촬영
○ 10:21 --- 들머리 진입
○ 10:30 --- 통일대불
○ 10:35 --- 신흥사
○ 10:40 --- 안양암
○ 10:59 --- 내원암
○ 11:16 --- 계조암, 흔들바위
○ 12:14 --- 울산바위정상
○ 13:05 --- 계조암, 흔들바위 원점회귀
○ 14:30 --- 신흥사 원점회귀
○ 14:40 --- 통일대불 원점회귀
○ 14:55 --- 주차장 도착(후미)
○ 14:56 --- 주차장 출발
○ 15:48 --- 스끼다시천국횟집 하산행사
○ 17:06 --- 스끼다시천국횟집 출발
○ 19:40 --- KBS앞 도착(설악백담휴게소, 철정휴게소 경유)
7. 울산바위 살펴보기
□ 개관
- 울산바위는 설악산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암봉으로 둘레가 4km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30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의 전망대까지는 관광객을 위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걸어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 소공원에서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 비선대쪽으로 가다보면 곧 오른쪽으로 신흥사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곳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선 후 신흥사 앞을 지나면 울산바위 바로 밑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외길이다.
- 신흥사 사천왕문 앞을 지나 넓은 길로 10분을 가면 다리를 건넌다.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는 안양암이 있고, 길은 왼쪽의 계곡 옆으로 이어진다. 안양암에서 5분을 더 가면 가동휴게소라 부르는 음식점 서너 개가 모여 있다. 그곳을 지나 25분을 더 가면 왼쪽으로 내원암이 나온다. 내원암에서 10분을 더 오르면 나동휴게소라 부르는 음식점 몇 개가 모여 있는 곳을 지난다. 이곳 휴게소 앞에서부터는 가파른 등산로가 나온다.
- 이곳 휴게소에서 계조암까지는 10분 거리이며, 계조암에는 사람 혼자 밀어도 흔들리는 것으로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다. 계조암은 천연바위동굴을 이용해 만든 암자이며, 흔들바위 앞에 서면 계조암 뒤로 펼쳐진 울산바위의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계조암에서 울산바위의 바로 아래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 울산바위 바로 아래에서 정상까지는 바위높이만 200여m에 달하며, 30~40분이 걸리는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울산바위 정상부의 전망대는 두 군데이며, 두 곳이 바로 옆으로 나란히 있다. 울산바위 정상에 서면 대청, 중청봉과 천불동계곡, 화채능선, 북주릉을 아우르는 전망이 아주 빼어나며 동해바다와 달마봉, 학사평저수지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
- 울산바위의 이름은 3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울타리같이 생겼다 하여 ‘울산’이라는 설과 경남 울산(蔚山)의 지명을 딴 전설적인 이름이고, 또 하나는 울산(鬱山) 즉 ‘우는 산’이라는 뜻의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이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때 산전체가 뇌성에 울리어 마치 산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으므로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까지 한다는 기록이 신흥사지에 실려 있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양양부 북쪽 63리, 쌍성호(지금의 청초호) 서쪽에 있는 큰령 동쪽 가닥이다. 기이한 봉우리가 꾸불꾸불하여 마치 울타리를 설치한 것과 같으므로 울산이라 불렀다.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설악산국립공원안내도>
- 설악산국립공원은 최근 몇 년 동안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계절을 바꿔가면서 수 없이 다녀온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때 마다 새로움을 맛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가고 싶은 산으로 꼽히는 산이다. 우리 모두산악회에서는 내설악권, 외설악권, 남설악권 지정탐방로 16개 코스 중 당일코스로 운영하기에 부적절한 코스로 판단되는 비룡폭포와 권금성코스를 제외하고 대부분 산행일정에 반영하여 체험하였다. 특히, 금년 1, 5 설악산 오색 - 대청봉코스를 시산으로 무사고 안전산행을 염원하고 임진년 산행일정 문을 활짝 연 산이기도 하다. 또한 오는 6월 마지막 주 정기산행지로 오색 - 대청봉 - 중청 - 소쳥 - 봉정암 - 영시암 - 백담사로 이어지는 장거리 종주코스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 울산바위코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연말연시 해돋이 산행지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차일피일 기회만 엿보고 있던 코스였는데 금년 봄 산불조심 입산통제 기간 종료를 눈앞에 두고 탐방기회를 만들었다.
- 설악산국립공원은 398.237㎢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에 수많은 동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며, 수려한 경관자원을 가지고 있는 공원이다. 최고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북서쪽의 마등령,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설악산맥, 서쪽의 귀때기청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 북북동쪽의 화채봉 칠성봉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 등 3개의 주능선으로 크게 지형구분을 할 수 있으며, 이들 능선을 경계로 그 서쪽은 내설악, 동쪽은 외설악, 남쪽은 남설악으로 불리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악경관으로서 호박바위, 기둥바위, 넓적바위 등이 공룡능선, 용아장성, 울산바위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어 우리나라 제일의 암석지형의 경관미를 갖춘 국립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상경관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서 십이선녀탕, 구곡담, 천불동계곡을 중심으로 많은 폭포와 다양한 크기의 소, 담 등이 암석지대와 조화되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베리아아구와 중국아구의 동식물이 교차되는 지역으로서 지리적으로 시베리아구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형상 북한의 고지대와 연접하는 태백산맥 북쪽에 위치한 높은 지대이기에 시베리아구의 동물들이 남하하여 서식하고 있다. 설악산은 천연보호구역, 국립공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보고이며, 온대중부의 대표적인 삼림지대이다. 이 지역은 낙엽활엽수와 상록침엽수의 혼효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부분적으로 단순림을 형성한 곳도 있다. 식물분포로는 북방계식물(눈잣나무 등)의 남한지대인 동시에 남방계식물 (때죽나무 등)의 북한지대로서 그 중요성이 있다. 또한 설악산 일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자연자원의 분포 서식지로 1982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설정되었으며 2005년 12월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으로부터 카테고리Ⅱ(국립공원)로 지정되었다
<울산바위등산지도>
- 설악산국립공원에는 흘림골코스, 용소폭포코스, 울산바위코스, 권금성코스, 비룡폭포코스, 금강굴코스, 양폭코스, 백담사코스, 수렴동코스, 남교리코스, 대승폭포코스, 대청봉코스(오색, 백담사, 한계령, 설악동) 4개코스, 공룡능선코스 등 16개의 탐방코스가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체험한 코스이기 때문에 그 이름만 들어도 기억이 생생하시리라 본다. 이중 권금성코스와 비룡폭포코스는 앞으로 계절을 잘 골라 두 코스를 연계하여 하루일정으로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한다.
- 오늘 사용한 등산지도는 설악산국립공원 울산바위탐방코스 탐방지도를 그대로 사용하여 설악동소공원주차장을 등산기점으로 원점회귀코스로 준비하였다.
□ 산행안내
<단체기념사진>
- 이른 새벽부터 천둥번개를 치며 쏟아지는 소나기가 선잠을 깨웠다. 부랴부랴 인터넷에 들어가 속초시 설악동 일원 기상도를 검색해 본 바 오전 중으로 비가 그칠 것이라는 예보를 접할 수 있었다. 아침에 총무님께서 설악산국립공원에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확인해 본 결과 설악동 역시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어쩌면 좋아요? 라면 안절부절 이었다. 오전 중에 비가 그칠 것이라는 날씨예보를 믿고 정기산행일정을 취소하지 아니하고 강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마도 비가 오는데도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가느냐고 확인하는 전화가 쇄도하였던 모양이다. 지난주 정기산행일정을 현장상황을 감안하여 취소하고 번개산행으로 대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주 비 때문에 일정을 또 다시 취소하게 되면 산행 리듬이 깨질 것이 염려스러웠다.
-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춘천을 출발하였다. 중앙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하여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들어서면서 길바닥이 바짝 말랐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호전되었다. 울산바위 전망대를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울산바위 전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으로 연출되었다. 암봉에는 흰 구름이 걸려 운치를 더했고 산복은 연초록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산객을 부르며 유혹하였다.
- 설악동소공원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주차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을 염려했었는데 수학여행 버스 여러 대가 선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정차 상황이 의외로 좋았다. 매표소 앞 대형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으니 일정운영시간 20여분은 단축한 셈이다. 아래주차장까지 이동하려면 20여분 남짓 걸어 내려가는 불편을 늘 감수했었는데 오늘 아침 비가내린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 비는 완전히 멈췄기 때문에 일정운영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설악 산하에 운무가 짙게 깔려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 모두 나가신다! 먹구름아 멀리 물렀거라! 를 외쳐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 속내를 알아차린 지인으로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고 비가 그친 것에 만족해야지요! 라는 충고를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 권금성 협곡에 폭포를 이룬 물줄기가 설악동에 내린 비의 양이 상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비가 멈춘 것만으로도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아침처럼 비가 계속 쏟아졌다면 별수 없이 일정을 접을 수밖에 없을 터였지만 비를 거둬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 설악산국립공원안내도 앞에서 산행일정 안내와 더불어 단체기념을 남기고 소공원을 시작으로 일정을 열었다. 오늘은 왕복 7,6km/4시간을 운영시간으로 잡고 14:30까지 소공원주차장까지 하산하고, 점심식사는 정상에서 하산하여 계곡안부에서 먹기로 예고하였다.
<통일대불>
- 10:30 통일대불 경유
- 통일대불은 최근 몇 년 동안 수차례 둘러보았기 때문에 멀리서 눈길만 주고 지나쳤다. 먼저 통일대불의 제원을 살펴보고 건립과정을 소개한다. 불상은 석가모니불로서 높이 14.6m, 좌대높이 4.3m, 좌대직경13m, 소요청동 108톤, 좌대조각 통일기원 16나한상, 착봉일 1987. 8. 30 (음력 7.7), 점안대법회 98. 10. 25 거행되었다.
- 소공원을 빠져나가면서 눈에 꽉 차 들어오는 통일대불의 위용에 압도된다. 민족통일의 비원(悲願)을 안은 청동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곳 설악에 대자비로 비추사 분단의 아픔 을 끌어안았다. 속초 설악산 신흥사(주지 度吼)는 10년간의 통일청동대불좌상(統一靑銅大不坐像) 조성 불사(佛事)를 마치고 드디어 '97년 10월 25일 점안' 대법회를 봉행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을 형상화한 청동대불은 거불(巨佛)로서 좌대 높이 4.3m, 대불 높이 14.6m, 좌대 직경 13 m, 아파트 6층 높이에 1백8t의 청동이 사용되었다. 8면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십육 나한상(十六羅漢像)이 섬세하게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밝혀주듯 찬란한 광채를 발광한다. 점안식에서는 '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도 봉안되었다.20세기 불상양식으로 기록될 신흥사 통일대불(新興寺統一大不)은 불상의 대가 황수영(전 동국대 총장), 정영호(교원대 박물관장), 고(故) 홍정식(전 동국대 교수), 김정기(한림대 교수)가 자문하였다. 불모(佛母) 김성호(불교미술관장)와 자문위원들은 수시로 만나 청동대불의 석고, 주물, 조립을 비롯한 모든 과정을 점검하며 제작에 헌신하였다.
- 87년 8월 공사를 시작한 청동대불 법사는 4년 동안 석고로 불상의 원형을 만들었고 '94년에는 주물 작업을 끝냈으며, '95년에는 청동조각조립을 마무리하는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10년간의 조성 기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30만 명이 동참하여 무사하게 봉안될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 인종과 종교, 종파를 떠나 우리 민족의 최대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는 뜻이 불상 조성에 녹아들었다. 특히 실향민이 많고 북한과 인접한 신흥사에 통일대불이 봉안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강 같은 세월은 청동대불이 봉안되기까지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스님이 세불이 나(慧法 · 知洪 · 度吼) 바뀌는 동안 이룬 대역사(大役事)로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불교 문화사에 큰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현대를 칠기 시대라고 한다면 철기 시대의 유산으로 후대에 또한 기억될 것이다.
- 점안의식(點眼儀式)은 불교 신앙의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으로 개안 의식(開眼儀式)이라고도 한다. 불상(佛像)을 점안할 때에는 팔부신장을 청하여 도량을 옹호하게 하고 시방의 불보살님께 오늘의 불상, 탱화에 대한 내력을 설명한다. 또한 오색실을 사용하여 부처님의 천안통과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누지통, 신통력, 용맹력, 자비력, 여래력이 청정하게 성취되기를 기원한 뒤에 불상의 눈을 붓으로 그리게 되는 의식이다.
<신흥사>
- 10:35 신흥사 경유
- 신흥사 역시 몇 번 다녀온 곳이기 때문에 경내에 접어들면서 극락보전(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눈팅만하고 서둘러 빠져 나왔다.
- 신흥사는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 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신흥사 경내에 보물 제443호인 향성자지삼층석탑이 있다. 신흥사사적(新興寺事蹟)』에 의하면 향성사는 신라 고승 자장(慈藏)이 652년 (진덕여왕6)에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현존 신흥사의 전신이다. 이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세운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어 졌다. 각 층 몸돌에는 양쪽으로 모서리 기둥을 지붕돌 아래로는 5단의 지붕돌받침을 조각하였고, 탑 꼭대기에 있던 상륜부(相輪部)【탑의 맨 위에 놓인 장식】는 모두 없어졌지만 전체적으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다. 처음 해체 수리할 때 3층 탑신석 중앙에서 사리구멍을 확인하였으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석탑의 높이가 4.33m로 장엄하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안양암>
- 10:40 안양암 경유
- 신흥사에서 5분 남짓 오르면 탐방로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법당 한글 현판이 눈길을 끌었다. 안양암은 新興寺의 부속암자이다. 기록에 의하면 1785년(정조 9년)에 俊鏡이 創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는 근년에 신축된 법당 1채와 요사채가 있다. 안양암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2기의 無名 석조부도가 건립되어 있는데, 각각의 형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는 석종형부도로 지대석·기단·탑신과 상륜을 구비하고 있다. 지대석은 각변의 모를 죽인 일변 107cm 크기의 방형이다. 기단은 부등변팔각형으로 각 면에는 雲紋 및 단엽 32판의 앙연이 조식되어 있고, 상면에는 복연 24판의 伏蓮이 조식되어 있다. 다른 하나도 석종형으로 기단과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전체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하단은 각변의 모를 죽인 방형이고, 중단은 부등변 8각형, 평면을 보이고 있다. 석종형의 탑신 상면에는 원형의 돌대 상면에 연봉형의 보주를 놓았다.
<내원암>
- 10:59 내원암 경유
- 안양암에서 약 20여분 남짓 오르면서 진행방향 왼쪽 계곡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내원암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표석이 없었다면 무슨 암자인지 식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원암 역시 新興寺의 부속암자이다. 기록에 의하면 1679年(新羅 眞德女王 6년 壬子) 慈藏이 創하니 초명 能仁庵이라, 1725에 災하니 1671년에 龍岩이 중건하고 내원암이라 개칭하고 1887년에 재하니 당년에 慧峰이 중건하고 1912년에 災하니 勁峰이 중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근년에 신축한 법당, 삼성각, 요사채, 석불입상 등이 있다. 본래는 현 암자의 남동쪽에 구축된 약 100여 평의 대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계조암>
- 11:16 계조암. 흔들바위 경유
- 내원암에서 약 15분 남짓 오르면 계조암에 이른다. 계조암 바로 앞에 흔들바위가 있다. 신통제일나한석굴 이란 현판이 붙은 석굴을 둘러본 다음 중간 그룹과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계조암 역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부속 암자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6년에 자장이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 東山·覺知·鳳頂이 주지로 주석한 바 있고, 元曉와 義湘大師 등이 수도하여 계조암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석굴사원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석굴은 입구에 목조전실을 짓고 전면에 「천연동굴계조암」이란 현판을 달았다. 전실을 들어서면 새롭게 축조한 3개의 원형 석조기둥과 이를 받치고 있는 아치형의 석재와 석축이 원형을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석굴의 내부에 원형으로 법당을 조성하고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는데, 뒤편의 후불탱화는 폐쇄하였다. 본래는 석굴의 내부에서 밖으로도 출입이 자유로웠으나 현재는 석축을 다시 쌓아, 원형을 상실하고 있다.
- 설악산 울산바위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흔들바위가 나오는데 바로 그 뒤쪽의 커다란 바위 에 조그만 암자가 있다. 바위 속에 법당을 마련했는데, 바닥엔 온돌까지 놓여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수도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는데 그 뒤 원효·의상·지각·봉정 등 여러 조사(祖師)들이 대를 물려 수도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계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계조암이 들어앉은 바위가 목탁 바위인데 이 암자는 목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 10년 걸릴 공부도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 계조암은 다른 암자와는 달리 지붕과 모든 벽이 바위로 되어 있다. 커다란 바위 밑에다 온돌을 놓고 문을 닫아 놓았다. 이 암자의 이름이 계조암(繼祖庵)이라 불리는 것은 수도를 하면 득도를 하기 쉬워 조사(祖師)라고 일컬을 만한 고승이 계속해서 났다고 하여 계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언젠가 계조암의 내력을 들은 중 한사람이 왜 수도가 빨리되는지 내력을 캐려고 계조암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게으름을 피우며 낮이면 낮잠을 밤이면 밤잠으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불상 앞에서 낮잠을 자는데 잠결에 은은히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잠을 깨어 돌아보니 주위는 고요할 뿐이었다. 다시 잠이 어렴풋하게 들었는데, 또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잠을 자려고 하면 목탁소리가 들려와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목탁소리를 쫓아 밤낮으로 염불을 아니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어느 사이에 이 중은 수도가 쌓여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도를 닦고 계조암을 떠나야할 기일이 되었는데, 잠결에 노승 한 사람이 찾아와 '그대는 애 목탁속에서 살고 있으며 목탁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몰라 고민하느냐, 내일 날이 밝거든 계조암 앞의 달마봉에 올라서서 계조암을 바라보면 목탁이 보일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다음날 달마봉에 올라보니, 계조암의 지붕인 큰 바위덩이가 꼭 목탁과 같고 그 옆으로 흘러내린 산줄기는 목탁방망이와 같이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큰 목탁인 계조암에서 수도를 하니 득도가 빠르지 않겠느냐는 계조암의 득도 내력을 알았다고 한다.
<흔들바위>
- 흔들바위는 계조암 바로 앞에 있는 바위로 설악산 팔기(八奇)가운데 하나이다. 바위의 크기는 네댓 사람이 팔을 벌려 감싸 안을 수 있는 정도이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흔들바위가 예전 같지 않고 좀 작아진 느낌이 들었다. 일행 중 몇몇 분께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써가면서 용을 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흔들바위가 유명한 것은 크기나 생김이나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는 분명 아니다. 흔들바위는 한 사람이 흔드나, 두 사람이 흔드나, 여러 사람이 흔들어 대도 그 흔들리는 정도가 한결같기 때문이다. 흔들흔들 거리다 때가 되면 제 자리를 잡는다. 그 어떤 경우에도 굴러 떨어지지 아니하고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 흔들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황당 뉴스가 얽혀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흔들바위 추락사고” 를 치고 들어가면 유사한 내용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올라 있다. 그 중 한 건을 소개한다. 강원도 속초경찰서는 5월 23일 오후15시 30분경에 설악산 관광 중에 가이드 홍모씨(36.여행업)의 설명을 듣다가 중요지방문화재 37호 "흔들바위"를 밀어 떨어지게 한 관광객 앤드류 강군(15세. 호주 교포)등 일행 11명에 대해 문화재 훼손 혐의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이날 새벽 5시 일출관광을 마친 뒤 흔들바위 관광을 하면서 이 바위는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기만 할 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가이드 홍모씨의 말에 따라 평균체중 49Kg의 거구인 11명이 힘껏 밀어낸 끝에 바위를 추락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에서 가이드의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해 밀어본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며 범행의 고의성을 완강히 부인했다. 아버지의 모국에 가을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한국에 온 호주 시드니 출신의 이들은 호주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시드니 그레머 8학년에 재학중인 학생들로 함께 지난 주 일주일 관광 예정으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버지 강 모(59세)씨의 고향은 경기도 양평인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소식을 전해들은 문화관광부와 강원도청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편 근처에서 관광 중이던 일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흔들바위"는 추락시 엄청난 굉음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사하구에 거주하는 목격자 김모씨에 따르면 흔들바위가 떨어질 때 이런 굉음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라는 내용인데 말미에 뻥! 이요! 라고 마무리하였다.
<울산바위>
- 12:14 울산바위 정상 도착
- 울산바위는 80년대 중반 직장 단체산행으로 다녀온 후 오랜만에 올랐다. 그 당시에는 한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화에 허름한 간소복 차림이었다. 안전시설도 지금처럼 잘 갖춰지지 아니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고전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설악산 근거리탐방로 중 가장 힘든 코스로 정평이 나있음에도 불구하고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 계조암에서부터 급사면 계단으로 이어진다. 계조암에서 정상을 향해 첫 걸음을 떼면서 눈에 들어오는 “울산바위 정상가는 길”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808계단 정상에 오르시면 검푸른 동해바다와 설악의 절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설악의 주봉 대청봉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라는 문구가 산객을 반긴 다기 보다는 주눅이 들거나 겁먹게 하였다.
- 정상 0,4km를 알리는 이정표에서부터 마의 철계단 구간이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게 깔린 운무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파고들었다.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신선이 따로 있나 바로 이것이 신선이지! 바람타고 구름타고 특별함을 맛 본 하루로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싶었다.
- 굽이굽이 이어지는 마의 808계단은 끊임없이 이어져 갔다. 예전에도 이런 구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정상에 이르면서 포장을 치고 음료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산악구조대원 두 분의 영접을 받았다. “808계단을 오르신 모두산악회 회원님들 환영합니다” 라는 인사말과 함께 울산바위 홍보에 열을 울리셨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808계단인지 구분할 수 없어 산악구조대원에게 자문을 구해본 결과 철계단 숫자라고 귀뜸해 주셨다. 정상에서 속초방향으로 구름에 가린 전망대가 오락가락하였지만 그 구간은 오늘 기후가 좋지 않아 입산통제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 정상에서 후미일행 분들과 합류하여 하산길에 올랐다. 자칭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엄살을 부리는 한 분께서 대장님! 제발 멀리 앞서가시지 말고 바로 앞에 가시라는 주문이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죽을 지경이라고 하시면서 난간에 매달려 내려오다시피 하였다. 다 내려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대장님! 제 손 좀 잡아 보세요! 열이나 죽을 것 같아요. 얼마나 난간에 매달려 씨름을 했는지 손바닥이 군불 땐 아랫목같이 후끈후끈하였다. 언니!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시 지저귀 필요하시지는 않으셨는지요? 라고 응수하자 주변에 계시던 분들의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소개한다. 전설에 따르면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잘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에 모이도록 불렀다. 그 당시 경상남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빚어지고 말았다. 울산바위는 그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고향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도 없어 설악산에 눌러앉고 말았다. 한편 설악산 유람 길에 나셨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 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이니 신흥사에서 그 차지한 대가(對價)로 셋돈을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를 받아 갔는데 어느 해인가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부터는 세를 줄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이에 울산 고을 원님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하였더니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草)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 새끼를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다. 그러자 울산 고을의 원님은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으려니와 세를 내라는 말도 더는 “자와 ”풀 초(草)“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점심식사 장면>
- 오늘 점심식사가 다소 늦었지만 오랜만에 모두가 한자리에서 거의 같은 기간대에 안락한 식탁에서 먹을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울산바위휴게소를 지나면서 호객하는 주인댁의 안내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궂은 날씨에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풀면서 점심식사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막걸리 몇 통 마시고 땡잡은 셈이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하산행사>
- 오늘은 국립공원 특성상 현장에서의 하산행사는 접고 귀로 버스 내 하산행사로 준비하였다. 그러나 소공원주차장을 출발하면서 상도 차려보지 못하고 상황이 180도 확 바뀌고 말았다. 속초까지 일부러 회 먹으로 올 판인데 어찌 그냥 갈 수 있나요?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날씨도 궂은데다가 점심 먹은지도 얼마 안됐으니 오늘은 그냥 가자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달라는 넘과 먹자는 넘 못 당한다고 다수의견을 존중하여 횟집으로 직행하였다. 주차장을 출발하면서 비가내리기 시작하였다. 시원한 조망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 보다는 이만하기가 참으로 천만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복받은 하루로 점지해 두고자 한다.
□ 산행을 마치고
- 해발876m에 위치한 울산바위 정상에서 설악산 주봉인 대청봉일원을 비롯하여 속초시내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니올시다! 이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뿐 이만하기가 천만다행이구나 하는 입장으로 급선회하기에 이르렀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귀로에 오르면서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휴 ~~~ 오늘 축복받은 하루가 틀림없네!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얘기가 절로 나왔다.
- 궂은 날씨에 탐방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은근히 걱정스러웠는데 기우에 그치고 말아 다행이었다. 예정시간대에 안산, 즐산해 주시고 일정운영에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면서 설악산 울산바위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