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의 힘으로 마련한 공간
많은 시민 단체들이 활동과 교육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듯이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아래부터 법인)도 사무실을 자주 옮겨 다녀야 했다. 2005년 3월, 회의와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보자고 ‘공동육아 교육 공간 마련’이라는 과제를 시작했다. 총회에서 사무 공간과 교육 공간이 안정되어야 공동육아운동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고 마음을 모았다.
일 년 동안 약 1억 원의 기금이 모여 교육실을 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회원들 힘으로 공간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한 회원이 만들어 준 나무 현판을 달면서 새집을 마련한 기쁨을 누렸다.
기금을 모아 공간을 마련하는 동안 회원들은 공동육아운동에서 법인이 하는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동육아 현장에서 활동하는 부모나 교사들은 자기 터전에서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공동육아를 하는 회원이라는 것, 연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공동육아 교육 공간 마련’ 과제가 진행되는 동안 회원들은 ‘왜 우리가 성금을 내야 하지?’하는 물음부터 시작해 연대의 중요성, 교육의 필요성, 법인의 필요성을 묻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공동육아 회원 제도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이나 방과후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법인 회원으로 가입되어 월 회비를 내게 된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 가입을 하려는데 법인에 반드시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왜?”, “거기는 무엇을 하는 곳이지?” 처음에는 이렇게 묻고, 조금 당황해한다. 그런데 기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그 까닭이 또렷해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회원들은 또 한 번 힘을 합친다. 해송지역아동센터가 2007년 2월, 불이 나 집이 모두 타 버린 일이 일어났다. 20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던 집이 타 버린 사건은 해송 식구들에게도, 회원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다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새집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 약 73퍼센트가 육 개월 동안 모금으로 마련되었다.
종교단체, 기업들, 후원자들이 기금을 내주었지만 회원들이 기꺼이 마음을 내준 것이다. 해송의 부모님들은 옷을 만들어 팔았다. 조합원이던 한 식구가 그 옷을 입고 판매 광고를 낸 기억이 새롭다. 공동육아운동이 35년을 이어서 유지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연대의 힘이 있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이 부모협동어린이집으로 되고, 공동육아는 ‘누구나 누리는 공동육아’를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하게 된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조합으로만 운영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기회를 막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어느 정도 안정되던 시기였다. 잘 운영되고 있다는 만족에 빠져 처음에 했던 실험정신이 후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 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때였다.
법인은 공동육아가 사회에 널리 퍼지기 위한 활동으로 협동조합 형태를 고집하지 않고 여러 활동을 시도하게 된다.
‘별난 놀이터’ 운영
공동육아는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여성플라자에서 4년 동안 별난 놀이터를 운영하였다. 별난 놀이터는 여성플라자를 지을 때부터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까 함께 고민하여 만든 것이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운영했는데, 첫 2년 동안은 어린이 문화 공간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운영했다. 그 뒤 2년은 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곳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본보기를 제시했다.
일시 돌봄, 작은 책방, 영상 놀이터, 생태 놀이터, 아이와 부모를 위한 활동을 운영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집단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공동육아 교육 활동을 시작했다. 별난 놀이터에서 진행한 활동에 늘 사람이 북적였다. 여성플라자가 있는 대방동 지역 엄마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이름 그대로 별난 놀이터였다. 그 뒤 여러 곳에서 별난 놀이터 활동을 도입하여 여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성산동 주민센터와 함께 ‘육아 사랑방’ 운영
2009년 6월부터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자치위원회와 협력하여 ‘육아 사랑방’을 운영했다.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이 함께한 사업이었다. 별난 놀이터에서 했던 운영을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일시 돌봄, 부모와 관계 맺기, 소통, 육아 정보 교류가 가능한 육아 사랑방이 되도록 했다. 지역에서 돌봄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달마다 육백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지역 주민들은 열띤 호응을 보내 주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마음 놓고 아이를 데려가서 놀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부모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육아 사랑방 또한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육아 나눔터, 마을 커뮤니티 공간, 여러 공동육아모임 같은 돌봄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본보기 역할이 되었다.
대전 ‘뿌리와 새싹 커뮤니티센터’
대전에서 테크노밸리 사업을 진행하던 ‘대덕테크노밸리’가 지역주민에 대한 약속으로 노인정을 짓게 되었다. 노인정을 지으면서 어린이집도 함께 지어 ‘뿌리와 새싹 커뮤니티센터’ 사업이 시작되었다. 뿌리와 새싹 커뮤니티센터는 대덕테크노밸리로부터 건물을 1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 받았다. 시설비 일부도 지원 받아 ‘공동 직장 어린이집’과 ‘뿌리 문화원’으로 출발했다. 이는 공동육아가 기업과 협력하여 어린이집과 노인 시설을 만든 것이다.
어린이와 노인이 관계 맺고 커뮤니티센터를 운영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6년부터 연구팀을 구성하여 연구를 시작했으며 2008년에 문을 열었다.
첫 구립어린이집 위탁 운영 시작
2009년 5월에 법인이 구립성미어린이집을 위탁 받아 운영하게 되었다. 이 일은 사회가 공동육아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조합형 공동육아어린이집 경험을 국공립어린이집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시간이었다. 공동육아 교육철학을 상징하는 나들이, 부모가 어린이집 운영과 교육에 참여하기, 원장과 교사회가 중심인 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 가치와 철학을 적용해 보았다.
성미어린이집 위탁 운영은 많은 성과를 낳았다. 아이들과 부모들 변화는 놀라웠다.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동육아 철학은 조합이 아니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은 두 곳에서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공동육아 안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2001년에는 우리나라 첫 초등대안학교인 산어린이학교가 만들어졌다. 산어린이학교 중심에는 공동육아조합원 부모들이 있었다. 공동육아 부모들은 대안교육 현장을 만들거나, 대안교육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이는 공동육아의 경험과 실천이 교육운동으로 구체화되고 넓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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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이네 집>, <개똥이네 놀이터> 신청하기
위 글은 <개똥이네 집> 2014년 9월_106호에 실린 글입니다.
<개똥이네 놀이터>는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겠다는 보리 출판사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 펴내는 어린이 잡지입니다.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에는 오랫동안 어린이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 온 분들이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교육 이야기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