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음 열린생각으로’ 지켜 온 사우동 터줏대감
시민에게 받은 사랑 되돌려주고자 서가 일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김포 시민들의 사랑방이자 꿈을 성장시키고 꿈을 찾아가는 공간 되길”
‘서점이 없는 동네는 영혼이 없는 동네다’라는 말이 있다. 동네 서점은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세대가 소통하고 어울리는 공간이자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는 공간이다. 이런 말에 딱 어울리는 곳이 있다. 바로 사우동 학원가에 자리잡은 열린문고다. 김포 내에 가장 오래된 서점이자, 책만 팔지 않는 곳. 시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자 서가의 일부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이후 김포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공간을 대관해 전시를 할 수 있고, 음악회, 작가 강연, 영화 상영 등을 즐길 수 있는 열린공간, 열린문고를 찾았다.
서울 대형서점과 견주어도 부족함없는 공간
사우동 학원가 중심가에 자리한 열린문고. 200여평이나 되는 공간에 장르별로 정리된 서가와 멋진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한 문화공간, 열린문고 속 작은 카페 책 속의 커피, 세미나 룸. 환하고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열린문고의 목요일 오후는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여 서울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2003년에 문을 열었으니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파주에서 군 생활을 하다가 동생 권유로 서점을 열게 되었어요. 출판사에 다니다 총판과 함께 목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동생이 적극 권유했어요. 처음에는 아내가 반대를 했어요. 군 생활만 해온 제가 사업을 한다니 걱정이 됐나봐요. 하지만 같이 해보자고 나서주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김명섭 사장.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 군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명예전역 후, 아내를 설득해 함께 서점을 열었다. 새로운 일을 하기에 늦은 나이일 수도 있지만 김명섭 사장에겐 문제될 것이 없었다. 군 생활 28년을 무사히 마치고 명예 전역을 한 그였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추진력이 무기였다. 그는 동생이 운영하는 서점에 나가 3개월간 서점일을 배웠다.
“개인 생활을 다 접고 아내와 서점 일에 매달렸어요. 처음엔 직원 네 명과 함께 했지만 지금은 직원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를 띄면서 매출이 줄었지요. 무차별적인 가격 할인을 당해낼 수 없더라고요. 또 사은품에 총알 배송까지 하니 동네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지요. 그래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직원들 덕분이에요. 베테랑이라 최소의 인원으로 200평의 서점을 꾸려나갈 수 있거든요.”
서점이 어디 책만 사는 곳이었던가? 서가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하고, 책장을 훑어보는 척 한 번 보고 말 것 같은 책은 주인 몰래 슬쩍 읽어버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낭만보다 돈의 힘이 더 셌다. 책 표지만 보고 주문해야 하는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비자가 인터넷서점의 할인에 등을 돌려 버렸다. 그 사이 많은 동네서점이 사라졌고, 열린문고 역시 타격을 입었다.
“한 자리에서 오래 운영하다 보니 2017년 쯤 고민이 생겼어요. 서점을 매각할 것인가? 낡은 서가와 분위기를 바꾸고 새롭게 도전할 것인가? 그런데 서점에 놀러오는 어린이 친구들을 생각하니 서점 문을 닫을 수가 없더라구요. 방학이면 매일같이 책을 보러 오는 친구가 있었어요. 4학년 정도 된 아이였는데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그렇게 기특하고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직원들한테 간식도 챙겨주라고 했었죠. 어느 날 아이 부모님이 찾아와 서점 덕분에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었고, 또 서점 덕분에 아이가 공부 잘하는 아이로 컸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히 리모델링을 결정했어요. 종로서적이 문을 닫고 동네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때라 걱정이 많기도 했지요.”
3억 투자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서가의 일부를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제법 큰 공사였다. 3개월간 문을 닫고 무려 3억을 투자해 서가를 바꾸고, 초대형 빔에, 그랜드 피아노, 최고급 음향 시설을 갖추었다. 카페와 세미나 룸도 만들었다. 사람들이 모여 독서 모임도 하고 문학 공부도 하고 강연도 듣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열린문고가 문을 닫는다는 말에 많은 시민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다고. 하지만 3개월 후 더 멋진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열린문고를 보며 많은 시민이 기뻐했다고 한다.
“시민한테 받은 사랑을 돌려주자는 마음으로 결정했어요. 열린문고가 김포의 사랑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점을 열 때부터 사람들이 편히 책을 보고 갈 수 있게 서가를 꾸렸었어요. 그런데 이왕이면 서점에서 영화도 보고, 전시도 보고, 강연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참 잘 결정한 것 같아요. 시민들이 무척 좋아하거든요. 지금 전시는 2024년까지 다 예약되어 있어요.”
2018년 새롭게 문을 연 열린문고는 김명섭 사장의 바람대로 독립영화가 상영되기도 하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대관을 해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고,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돼 3년여간 다양한 강연과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또한 요즘에는 관내의 고등학교에서도 열린문고를 찾아와 다양한 행사를 연다고 한다. 7월 초에도 고촌고등학교 학생들이 열린문고에서 이틀간 도깨비 심야책방 행사를 했다고.
“학생들이 피아노 연주도 하고, 함께 책도 읽는 모습을 보는데 참 뿌듯하고 감동적이더라고요. 오후에는 학생들이 참 많이 와요. 문제집도 사러 오고, 카페에서 공부도 해요. 시험 때는 스터디 카페처럼 조용히 앉아 시험 공부에 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요.”
김명섭 사장의 아내 김청자 사장이 서점 안쪽에서 운영하는 카페 ‘책속의 커피’는 커피와 디저트 값이 싸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10명도 넘게 들어갈 수 있고 대형 칠판에 텔레비전까지 설치되어 있는 세미나룸은 음료만 시키면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코로나 때문에 음악회고 강연이고 많이 축소됐어요. 그런데 요즘 다시 활기를 띄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점이 책만 파는 곳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인데 많이 활성화되면 좋잖아요. 다시 영화 상영도 하고, 음악회도 열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진짜 지식은 상상력이라고 최고의 석학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고, 또 그런 경험들을 통해 사람들이 잊었던 꿈을 찾고, 또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사랑방. 그런 곳이야말로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동네 책방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제일 아쉬운 건 서점 매출의 많은 부분이 참고서라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책을 많이 보지 않는 세상이고 인터넷서점에 고객을 많이 빼앗겼으니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안타까워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문학서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학교에서 정해준 필독서가 아니라 우리 서점 직원들이 권해주거나 애서가의 입소문을 탄 책을 더 많이 찾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운영해보려고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세미나 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설레임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목요일마다 모여 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장의 설명이다. 그 모습을 보니 김사장의 바람이 바람으로만 끝나지는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