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의 봄나들이
지천 보탑사의 봄
천연 기념, 미선나무 앞에서
보탑사 경내에서
327세의 느티나무
초평호
다보탑에서
초평호에서
3월 27일. 얼마나 더 살아야 물소리가 될 수 있소-진천 초평호, 보탑사
어린 아이 소풍날처럼 기다려진 곰나루 21 연례 모임, 남자 9 명, 여자 4명이 충북 좌구산 자연휴양림에서 만났다. 와인과 두부해물찌개처럼 어울리지 않는 술과 안주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모임이었다. 육칠십대의 팔팔한 노인들은 대학시절 얘기, 사는 얘기, 문학 얘기, 학술 얘기, 정치 얘기에 밤을 지샜다.
3월에 <삼국유사 여행>을 출간한 호완 회장님은 본인의 시조 세 수를 모두 외워 낭송한 총무 윤수선생이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되었을까?
얼마나 더 살아야 물소리가 될 수 있소
어떻게 깨달으면 저 소리를 들을 수가
작은 새 울음 소리에 들국화가 피더이다.
5월에 <지식곳간과 가게>를 출간하는 중회 선생은 과거보다 앞으로 남은 명을 보자고 역설한다. ‘인명재천’ 내 명일지언정 내 소관이 아닌 것을...
대학 졸업 사십 년이 넘으니, 떠난 이도 있다. 30 명 동기 중에 먼저 가신 이가 여섯이다. 수학과 20명은 모두 살아 있다는데......
곰나루 21의 카페 주인 고 최병두 시인의 ‘갈치장수’ 의 일절이 심금을 울린다.
당신은 햇병아리 갈치장수 나는 이름없는 시인
“시인은 시집 하나쯤 있어야지요”
이름 없는 시인의 아내는 이름 있는 시인의 아내를 위해 갈치판 머리에 이고
“갈치 사세요, 싱싱한 갈치 사세요”
팔자에 없는 갈치장수, 팔자에 없는 시를 읊었지
운동과 산행을 좋아했던 석주 선생은 대학교 다닐 때는 성대묘사 선수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저명한 숲 해설가로, 히말라야 오지학교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진천 초평호 둘레길을 가는 길에서 제비꽃을 만난 석주 선생은 제일 밑에 있는 꽃잎에 있는 줄들은 벌들을 유인하기 위한 착지장이라 해설한다. 또, 꽃이름에는 가족 명칭이 들어가는 것이 적은데 ‘며느리’ 만은 예외라고 했다. 작은 들꽃 하나, 벌레 하나도 예사로 넘기지 않는 석주 선생의 숲해설은 갈수록 흥미를 더한다. 석주 선생의 진면목은 진천 다보탑 경내의 석비(백비) 문화재 해설에서 극에 달한다. 혼자 갔으면 금방 끝날 석비 관람이 삼사십 분 걸렸다. 글자가 없는 석탑 머리의 아홉 용의 아들에 대한 해설이 백미다. 석주 선생은 국어교사답게 한 편의 시를 인용했다. 시가 있는 숲해설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진천 다보탑 경내에 있는 꽃들 중에 무더기지어 피는 하얀 꽃 ‘아리삼’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운 이름인가? 뉴질랜드의 이웃집 담장에 피어 있던 꽃이기에 더 정이 간다. 이름 모를 노란 별꽃, 금송화의 진한 황금색, 튤립의 진빨강, 봄은 색깔로 온다. 자연사랑은 보는 즐거움보다 지키고 보호하는 노력이리라. 수억대를 들여 만든 전천의 아름다운 초평저수지가 4대강 사업으로 녹조가 많이 생겼다고 하니, 한심하다.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어제 일이 먼 일인 듯 아련하다. 색스폰을 배워서 녹음해 온 은수선생, 하모니카를 배워 바위고개를 불어 준 동록선생, 마음이 부유한 학자 호완 회장님, 모든 식비를 혼자 내겠다면 고집부리는 병륜선생, 스스로 속이 비었다고 말하면서 우리 모두를 웃게 해 준 수홍선생, 소리 없이 회장님을 도와 모든 일을 총괄하는 윤수 선생, 일로 불참하면서도 거금을 보내 준 준곤 선생, 모든 것을 알고도 웃기만 하는 복규 선생, 우리 여성 회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해 준 남자 회원들 모두 고맙다. 이제 가면 언제 만나?
3월 17일. 매일 보던 계룡산-동학사- 남매탑- 갑사
남매탑에서
남매탑의 전설
갑사 근방 칠성암에서
남매탑에서
3월에 떠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은 외롭지 않다. 빨간 등산복을 입고 가는 분과 동행한다. 그분은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다. 나는 방해하지 않으려 입을 다문다. 어린 시절 눈만 뜨면 보이던 계룡산! 초등학교 때 나의 선친께서는 내 소풍가방 속에 선생님께 드릴 초코렛과 음료수 한 병을 넣어 주시곤 하셨다. 더위와 가방의 무게에 짓눌릴 즈음, 동학사 그늘진 바위 밑 계곡물에 맴돌다 흘러 내리던 단풍잎을 보며 나는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거쳐 갑사로 넘어간다. 내가 공주에 첫 발령을 받은 해 겨울 처녀교사 셋이 갑사에서 연천봉을 향해 올랐었다. 눈이 만든 고드름으로 목을 축이고, 하얀 눈밭에서 고염나무를 발견하고, 그 고염을 한 개 따서 입에 넣었을 때의 시원함, 그리고 입안에 가득했던 씨앗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 친구가 애인을 동반하고 온 날도 나는 그들과 함께 연천봉에 올랐었다. 지금 그 친구의 남편은 미망인에게 수많은 재산을 남겨 두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전번 고국 방문길에서도 나는 혼자 눈 쌓인 계곡을 올랐었다. 추억을 더듬으며, 작년 낙엽을 밟으며 남매탑에 도착했다.
남매탑에는 전설이 있다. 통일시대 때 한 수도승이 토굴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목에 가시가 걸린 호랑이가 찾아왔다. 수도승은 호랑이 입속의 가시를 뽑아 주었다. 어느 날 수도승은 굴 앞에서 처녀를 발견했다. 호랑이가 처녀를 등에 업고 온 것이다. 수도승온 처녀를 치료해 주었고, 처녀는 친절한 수도승을 사랑했지만, 수도승을 그녀를 그녀의 고향 상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처녀의 부모는 처녀를 다시 보냈다. 수도승은 고심 끝에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살다가 한 날 한 시에 열반에 들게 되어 후인들이 그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만들고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나와 동행한 친구는 아직도 귀에 리시버를 빼지 않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많이 남매탑에 와서도 전설을 읽어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라 했다. 그녀는 이제 처음으로 나와 같이 갑사까지 동행하겠다고 했다. 남매탑에서 삼불봉, 금잔디 고개를 지나면 갑사로 내려가는 돌길이다. 남매탑까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갑사로 가는 길에는 우리 외엔 인적이 없다. 오늘이 월요일인데다가 비소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산정을 일깨우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내 발자국 소리, 그 얼마만인가?
어릴 적 계곡물은 우주 공간에서 떠돌다 어디론가 사라져 돌아오지 않지만, 봄이면 여전히 나뭇가지에서 터질 듯 돋아나는 봉오리들이 안쓰럽다. 그들의 옹알이를가 들리는 듯. 3월의 나무는 신비한 기운에 둘러싸인다. 며칠 후면 봄의 기지개 소리에 놀란 신록들이 봄의 합창을 시작하리라.
3월 23일,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옥천 정지용 생가
실개천
“별똥떨어진곳에마음해두었다다음날가보려벼르다벼르다인제다자랐오”
“얼골하나야손바닥둘로폭가리지만보고싶은마음호수만하니눈감을밖에”
대전에서 남동쪽인 금산 방면으로 삼십 분쯤 가면 충북 옥천이다. 옥천에는 공산군에 의해 구금되었던(1950,48세) 정지용 생가가 있다. 한국전쟁이후 정지용은 월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그의 시는 금서가 되었었다. 그러나 2001년 제 3차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서 정지용의 셋째 아들 정구인씨가 아버지 정지용과 그의 형을 상봉 희망자 명단에 올리면서 시인 정지용의 월북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다. 시인 정지용은 느닷없이 찾아온 장정 세 명에게 끌려갔다는 것이다. 1988년 시인 정지용은 복원되었다. 시인이 끌려간 후 월북자의 아내로 살았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따가운 시선을 받고 살았을 터였다.
시인 정지용이 열네 살까지 살았던 생가에 정지용 문학관이 문을 연 것은 2005 년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앞집의 개나리와 뒷산의 진달래는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지만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그가 14 살까지 살았던 생가에는 그가 지은 140 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 시인이 입던 옷이나 사용하던 책상이나 펜같은 것들은 전쟁통에 다 없어졌으리라.
시인 정지용은 경향신문 주간, 칼럼니스트, 대학교수직에 있으면서 청록파 시인들을 등단시키는 등 우리 시단에 큰 공을 세웠다. ‘별똥 떨어진 곳에 가고 싶었던 소년’ 이 그리워하던 이는 누구였을까?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할 때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매년 5월 15일(정지용의 생일)에는 옥천에서 <지용문학제>가 열린다고 한다.
3월 23일. 대청호, 청남대
초가정의 솟대
김대중 대통령 초가정
중간에 보이는 점선은 호수 밑으로 접근하는 모든 것을 막는 구조물
대통령 광장
20 년 동안 대통령의 공식 별장이던 청남대에 가기 위해 하루 전에 인터넷으로 온라인 결제로 승용차 입장예약을 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5공 때부터(1983) 대통령의 공식 별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여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인에게 개방한 것이 2003년이다. 20년 동안 여섯 대통령이 89회를 사용 또는 방문하였다고 하니 일 년에 네 번이 좀 넘는다. 내가 머문 곳은 대통령 광장이었다. 별장 개방이 충북 도민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짐이 되었을까, 힘이 되었을까?
역대 대통령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습을 청동상으로 제작 설치한 곳에서 관람객들이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일 인기 있는 대통령은 단연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어떤 관람객은 고 김대중 대통령을 쓰다듬으며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인사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초가정에 들렸다. 김대중 대통령 생가인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문의 지역에서 수집한 전통생활도구 7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초가정에는 유독 솟대가 많다. 땅과 하늘, 신과 인간을 이어준다는 솟대, 그것은 새의 모습은 한 천사가 아닐까?
3월 24일. 보문산은 보물산
연희는 보문산을 보물산, 보약산이라 했다. 한 번 갔다 오면 보약 한 첩을 먹은 것 같은 보물 같은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보물산에는 지금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한창이다.대전 둘레길은 대전시를 포근히 감싸는 식장산(598m), 보문산(467m)을 비롯하여 도솔산 같은 나지막한 산들이 대전 시내를 둘러 있고, 사람 인자 모양으로 이어져 금강으로 합류하는 유등천, 대전천, 갑천을 포함한다. 대전 둘레길은 보문산을 기점으로 대전동물원 담으로 이어지는 133 km, 12 구간, 삼백 사십 리 길이다. 보문산에는 14 코스가 있다. 오늘은 보문산성에 오르는 8 코스다. 보문산성(407m)에 오르다 길동무 둘을 만났다. 숨을 고르려고 벤치에 앉아 만난 경애씨와 그 친구는 내 친정집 가까이에 산다고 했다. 경애씨는 간식도 많이 가져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경애씨의 쑥덕, 파프리카, 과일을 나누어 먹고 내려오는 길에 보리밥집에 들렸다. 경애씨는 처음 만난 나의 점심값까지 지불했다. 우리는 국립 현충원 둘레길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3월 26일. 봄에 나는 없었다-세종시중앙국립도서관
미숙이의 아침 식사, 고구마도 먹었는데......
잘 보면 화면 밑에 송소희 씨와 박범신 선생, 아나운서가 보인다.
국립 중앙 도서관 문화가 있는 날 -매주 넷째 수요일 행사
도서관 뒤 호수가에서
세종시에 사는 미숙이가 내일 세종국립도서관에 소설가 박범신 선생이 온다며 같이 가자고 전화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이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나는 미숙이가 말한 대로 재하철과 시내버스를 티고 도선관에 도착했다. 도서관 입구에 늘어선 사람들은 헌 책 한 권을 가져와 새 책 두 권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미숙이는 나를 위해 헌 책 한 권을 더 가져왔다. 나는 미숙이가 준 헌 책을 내놓고 신간 서적 두 권을 받았다. 내가 받은 책은 오늘 아침에 읽던 <문학지형과 공간성 연구>와 연관이 있다. 우연의 일치다. 내가 받은 책 제목은 <디스턴스>와 <봄에 나는 없었다>이다. 거기에, 미숙이 남편 윤교수의 들꽃이야기 <눈따라 마음따리> 책도 받았다. 오늘은 책이 날개를 편 날이라고 하지 않는가?
논산이 고향인 박범신씨는 아침에 일찍 와서 호수를 돌다 여기 와서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전국에서 제일 큰 국립도서관도 좋지만, 마을마다 작은 도서관이 생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음 순서는 국악소녀 송소희의 <아리랑>이었다. 17세의 나이에 언변도 좋고 소리도 잘하는데,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젊음의 성공과 변화, 그것에 대한 두려움, 가슴이 찡하다. 저녁 실내악 콘세트에는 아이들이 많이 왔다. 진행자는 아이들을 모두 무대 위로 초청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답게 수준이 높다.
2012년 7월에 시작한 세종시는 아직도 타워크레인이 여기저기 서 있는 공사중 도시다. 세종시에 없는 것 다섯 가지는 쓰레기 수거차, 전봇대, 담장, 광고판, 노상주차라고 한다. 또 하나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은 청와대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청사 주차장에는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버스 몇 십 대가 대기중이다.
미숙이의 아침식사는 삶은 계란, 아사이베리를 믹스에 갈아 요쿠르트와 잣을 얹은 쥬스, 고구마, 쑥떡, 그리고 해독쥬스와 딸기, 사과였다. 식사 후 우리는 호반 둘레길을 걸었다. 호수 주변 정원에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뽀얀 쑥에 눈이 간다. 요즘 아이들은 쑥을 캐지도 잘 먹지도 않는다.
용모양으로 이어진 모든 정부청사 건물 옥상에 만들어진 녹지는 하늘길이다. 세종시는 ha당 68명의 인구밀도로 제한했다. 도로는 거칠 것 없이 넓고 , 자전거 도로폭은 3.9m인데다, 시의 53%는 공원이다.
땅을 사서 쫄딱 망한 사람도 있고, 땅을 팔아 벼락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지만, 미숙이같이 혜택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첫댓글 글 잘 읽고 사진도 잘 보았습니다. 역시 필력도 좋고 사진도 보통 실력이 아니군요. 하여튼 우리나라에서 추억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칭찬해 주시니 감사하고 또 부끄럽네요. 벌써 많은 추억 만들었어요. 고국에서 봄을 맞는 것이 얼마만이던가요. 겨울에만 왔었거든요.
가다가 해가 지면 더욱 설레는,
꽃지는 달밤을....
늘 청청한 글과 모습으로 살고지고. 우리 함께 흘러갈 것이외다. 감내 두손
지난 월요일 ktx 타고 부산에 가는 길에 동대구역을 지나며 회장님 생각했어요.
부산에 갔다가 거제도와 외도도 가고, 센텀호텔에서 하루 자고 왔지요.
오늘은 국립 현충원 둘렛길을 돌며 꽃비를 흠벅 맞았지요.
세 번째 만나는 친구가 싸온 김밥도 먹고, 쑥도 캐고 이렇게 2014년 봄도 멋지게 지나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