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찬양대 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 봉사가 되려면 나라나 사회를 위해 혹은 남을 위해 자기의 무엇인가를 바치거나 희생해야 제대로 된 봉사일 것이다. 나는 찬양대에서 노래를 했지만 한번도 나라나 사회를 위해 혹은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면서 노래한 적은 없다. 힘을 다해 정성껏 노래한 적은 있다. 그것은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지금도 찬양을 할 때는 정말 기쁘고 즐겁다. 언젠가 찬양을 그칠 날이 있을 텐데 그 날이 두렵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찬양대를 위해 봉사한 적은 없고, 찬양대가 나를 위해 봉사한 셈이다.
돌이켜보니 노래와의 인연이 퍽이나 깊다. 말을 배우면서 노래를 배웠다. 올드랭자인에 맞춰 부르던 애국가를 비롯한 몇 개의 레퍼토리로 동네 사랑방을 순회하면서 할머니의 자랑이 되어드렸다. 그러다가 처음 무대에 선 것이 1950년 12월 25일, 피란길에 머물렀던 황해도 연백의 한 예배당이었다. 참으로 슬프게도 그 예배당에서는 그날이 마지막 크리스마스였다. 물론 재롱수준이었지만 무대는 무대니까 이렇게 따지면 50년은 훌쩍 넘는다. 제대로 된 음악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이다.
1960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TV방송을 시작하기 전인데 부산에서는 높은 안테나를 세우고 현해탄을 건너오는 일본 TV를 보았다. 덕분에 염소수염의 Mitch Miller아저씨의 합창을 들을 수 있었다. “You are my sunshine”, “Red river valley”, 휘파람이 잘 알려진 “콰이강의 행진곡”등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들인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전혀 슬프지 않은데 말이다. 그들의 노래 “Good night ladies”는 지금도 우리 “The Silver Voice”의 마지막 앵콜곡이다. Mitch아저씨는 내가 여드름 났을 때 이미 턱수염이 무성하였으니 지금 아흔은 훨씬 넘으셨을 것이다.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중학교에서 음악선생님을 만났다. 나라 정씨에 집우자 영화영자를 함자로 쓰시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화내시는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음악을 들어라. 결코 불행할 수 없다.” 그리고는 Hi-Fi Stereo라는 첨단 기계에 번쩍번쩍하는 LP판을 올려놓고 음악을 들려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목소리도 영글지 않은 머슴아들 50여명을 모아 합창을 가르치셨고, 덕택에 우리는 Schubert의 “숭어”, Foster의 “오,스잔나”, 우리민요 “몽금포타령” 등 동서양을 넘나들며 신나게 노래했다. 변성기의 한가운데 있는 여드름 바가지들을 데리고 합창을 만들려면 마술보다 더한 신통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70mm로 만든 영화중에 남태평양이라는 것이 있다. 시네마스코프의 두배나 되는 커다란 화면에다 스피커 여섯개가 꽝꽝 울어댄다. 예쁘고 싱싱한 간호장교 Mitzi Gaynor를 사이에 두고, 목소리가 부드러운 중후한 중년신사 Rossano Brazzi와 젊은 장교 John Kerr가 남태평양의 노을을 배경으로 부르는 달콤한 노래에 흠뻑 취했다가 깨어나면 세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영화이다. 그 영화 초반부에 장난꾸러기 수병들이 “여자만큼 좋은 것은 없네”라고 합창한다. 수병모자를 삐뚜로 쓴 한 개구장이의 베이스를 듣는 순간 가슴에서 지진이 일었다. 나는 그날 저음에 반해버렸다.
뉴질랜드에 몇 년 살아본 적이 있다. 동네마다 합창단이 있어 매주 모여 노래하고, 가끔 교회나 양로원을 찾아 노래하고 함께 논다. 12월에는 캐럴 콘서트를 열고 입장수입은 복지시설에 기증한다. 연말에는 호스피스를 방문하여, 그 해에 세상 떠난 이를 추모하고, 길 떠날 채비를 차린 이들과 작별하면서, 언젠가는 떠나야 할 길섶에 서서 마음을 여민다. 여름이 끝나는 2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오클랜드의 공원에서 “별빛아래의 합창”이라는 음악회가 열린다. 전국에서 2,000명이 넘는 단원들이 모여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한다. 30만명의 청중이 잔디밭에 앉아 음악을 즐기는데, 피날레는 언제나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다. 이곡을 연주할 때는 현역군인들이 출동하여 지휘봉에 따라 연막탄을 터뜨리고 대포를 쏜다. 자욱이 덮인 포연에 붉은 조명이 투영되면 총검을 들고 달리는 병사들의 실루엣 사이로, 레이저는 하늘에 전차를 그린다. 불꽃놀이의 재가 악보위로 떨어져 내릴 때쯤이면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합창은 하늘을 울리는데, 노래를 하는 건지 구름을 탄 건지 무아지경에 빠진다.
이번에 Joyful Sinners라는 남성합창단이 창단 연주를 가졌다. 모두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어서 큰 성황이었다. 우리는 즐겁게 놀기 위해 모였다. 봉사나 선교등 거창한 목표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는 그냥 노래하지 않을 수 없어서 노래할 뿐이다. 나는 혼자 하는 음악 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음악이 더 좋다. 사람이 만든 악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 더 좋다. 그래서 합창은 어쩌면 땅에 사는 예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미리 맛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맛뵈기일지도 모른다.
옳다. 합창은 하늘나라를 보여주는 모델하우스이다.
첫댓글 음악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하나의 길이 아니겠소. 특히 우리와 같은 Silver Age 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