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몰트만의 종말론
발표: 황동하목사
目 次
I. 서 론 ------------------------------------------------------- 1
II. 현대 종말론 연구사 --------------------------------------------- 1
A. 성경속에서의 종말론 이해 ----------------------------------- 1
B. 현대주의 신학의 종말론 이해 ---------------------------------- 2
III. 몰트만의 종말론 형성 배경 ------------------------------------- 3
A. 유대 묵시문학 --------------------------------------------- 3
B.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 --------------------------------------- 4
C. 에른스트 볼프 (Ernst Wolf) ---------------------------------- 4
IV. 몰트만의 종말론 ----------------------------------------------- 4
A. 희망의 근거 : 예수 십자가와 부활 ---------------------------- 4
B. 희망의 과정 : 세계와 역사 ---------------------------------- 5
C. 희망의 동인 : 약속과 계시의 하나님 --------------------------- 5
D. 희망의 추진력 : 교회의 파견 --------------------------------- 6
V. 결 론 ---------------------------------------------------- 6
※ 참 고 문 헌
I. 서 론
탈무드에 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즉 한 랍비가 최후의 심판날에 유대인은 어떤 질문에 답변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이는 무엇을 물어보실까? 그런데 그 랍비는 신의 물음은 아주 자명하고 누구나 아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너는 너의 일에 충성을 했느냐, 너는 지혜를 사모하였느냐, 혹은 너는 율법으로 너를 단련했느냐 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돌연 그는 자신에게 깜짝 놀랄만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는 너의 메시야를 희망했는가?’ 였다. 왜냐하면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본질적으로 유대의 신앙경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래에의 기대를 가지고 종말론적인 희망론을 전개한 사람이 바로 몰트만(Jurgen Moltmann)이다.
그는 칸트가 했던 세가지 물음 곧,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에서 마지막 물음에 관심을 보여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를 물었고 이 희망의 전망 속에서 또한 종말론적 지평 아래서 그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본인은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희망의 신학’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이 종말론적 미래에서 기대되는 희망론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현대 종말론 연구사
A. 성경 속에서의 종말론 이해
먼저 성서 어디에서도 ‘종말’ 내지는 ‘종말론’이란 용어는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서속에서 종말론적 이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멀리 구약으로 소급해 올라간다.
구약성서 속에서 볼때에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했다. 그런데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 세계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 바벨론의 노예가 되었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으며, 예루살렘이 초토화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악과 고난의 현실 속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나 그의 뜻이 이 땅위가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역사이해를 한 것이다. 현 시대는 악의 세력이 장악하는 ‘흑암의 세계’요, 의로운 자들에게 제시될 세계는 현 세대와는 단절된 ‘새로운 시대’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예언자들에게서 있어왔던 예언 운동에서 묵시운동을 배태하게 하였고, 묵시문학을 낳게 한 것이다. 묵시문학에서는 질적으로 다른 ‘시간적 이원론’을 언급하고 임박한 종말신앙을 가져왔기 때문에 구약 묵시문학의 종말론은 ‘극단적 종말론’(Radical Eschatology) 혹은 ‘임박한 종말론’ (Immidiate Eschatology)이라 부를 수 있다.
다음으로 신약성서속에서도 종말 이해를 볼 수 있다.
복음서의 예수에게서와 신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울에게서 종말론적 시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복음서의 예수에게서 종말론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알아보자.
희망의 신학자인 몰트만은 이렇게 말했다. “19세기 말에 바이스(Johnannes Weiss)와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를 통해서 시작된 예수의 메시지와 실존 그리고 원시 기독교에 대한 종말론의 중심적인 의미가 발견” 되었다.
예수와 왕국에 대한 바이스의 견해는 슈바이처에 의해 동의되고 확대되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명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바이스는 옳았다고 하면서도 바이스가 좀 더 철저히 그것을 주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다. 바이스는 예수의 설교에 있어서 종말론적 요인들을 강조했음에 반하여, 슈바이처는 종말론적 개념들이 예수의 설교 뿐 아니라 그의 온 생애를 주관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와 왕국에 대한 슈바이처의 해석은 ‘철저한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 이라고 알려지게 되었고, 왕국의 미래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예수는 유대 묵시문학으로부터 취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바울에게서도 종말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몰트만이다. 그는 “신약과 구약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물으면서 철저하게 서로 배치되는 이 두 개념들은 서로 접근하여 있고, 이것의 연속성을 한 구속사적 역사 이해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바울은 구약과의 연속성을 아브라함의 약속에서 찾았다’고 보면서 “바울은 구약성서의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보편적 종말론적 지평에 넣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신약성서 속의 예수와 바울에게서도 종말론적 내용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도시대이후 교부들의 시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당시에도 원시 기독교 시대 모양으로 철저하게 종말론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 임박한 예수의 재림을 시대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대와 함께 사람들은 예수의 재림이 실현될 때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점점 다가오는 종말을 주시하고 시대의 징조를 관찰하게 되었다.
B. 현대주의 신학의 종말론 이해
첫째, 내재적 종말론(Internal Eschatology).
이것은 현대정신을 신학에 반영하여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하려 한 것으로 그 종말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려우나 여기서는 예수를 인류의 모본이나 교사로 보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면보다는 현재적인 면을 강조하여 인간의 종교적 경험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왕자라 불리는 알브레흐트 리츨(Albrecht Ritsch)과 자유주의 신학을 대중화시킨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이 대표적이다.
둘째, 철저한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
이것은 종교사학파에 속했던 바이스나 슈바이처가 대표적인데 여기서는 예수의 설교나 생애, 사역의 중심이 종말론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 묵시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종말논의로 하나님나라의 현재적이며 윤리적인 면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종말론적이며 미래적인 면만을 강조한다. ‘내재적 종말론’의 입장을 고수하는 하르낙이 예수의 가르침 속에 있는 유대 묵시문학적 미래의 소망이 껍질이라고 본 것과는 정반대로 바이스는 예수의 가르침이 종말론적 중심을 이루는 알맹이였고, 슈바이처는 그의 생애 전체까지도 미래 종말론이 중심을 이루는 알맹이였다고 보았다.
셋째,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
찰스 다드(Charles Harold Dodd)에게서 볼 수 있다. 그는 슈바이처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이 예수의 교훈에서 중요한 주제라고 했으나, 슈바이처와는 다르게 하나님나라를 미래적인 것이 아닌 현재적인 것으로 보면서 예수에게서 종말론이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바이스와 슈바이처에게 있어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적이 아니라 임박한 미래였지만, 다드에게 있어서는 이 왕국이 이미 도래했고 예수의 사역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다드는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의 날, 새 하늘과 새 땅등과 같이 신약에서 발견되는 미래 종말론적 요소들은 교회가 예수 재림의 연기를 설명하기 위해 유대인의 묵시문학으로부터 도입하여 나중에 첨부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런 ‘실현된 종말론’의 원리를 처음으로 충분히 공평하게 다룰 수 있는 장소는 바울의 서신들이라고 본다.
넷째, 실존적 종말론(Exsisten Eschtology).
이것은 불트만이 대표적이다. 그는 신약성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적인 것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위한 적절한 도구로 실존주의의 철학, 특히 하이데거의 철학적 개념들을 사용했다. 불트만은 하나님나라, 지옥,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의 심판 등의 개념을 신화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비신화화의 방법을 통해 실존적 종말론을 제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종말론(Political Eschatology).
이것은 몰트만에게서 강조된다. 먼저 몰트만은 불트만이 “종말론이란 세계의 끝에 관한 교리” 라고 하는 이해와는 정반대로 “종말론은 하나의 부록이 아니라, 전적으로 희망이며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다. 종말론은 마지막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고 보았다.
Ⅲ. 몰트만의 종말론 형성배경
A. 유대 묵시문학
유대인들이 포로기 이후에 묵시문학의 영양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묵시문학의 성격과 몰트만의 이해를 살펴보면,
첫째로, 묵시문학은 현재의 역사에 대하여 비관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몰트만 역시 “묵시문학에서의 세계는 모든 악의 세력 아래 있기에 묵시문학적 기대는 오고 있는 ‘의의 세계’를 통한 ‘악의 세력 아래 있는 세계’의 해방”이라고 본 것이다.
둘째로, 묵시문학자들은 예언자들과는 다르게 닫혀지고 예정된 역사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몰트만도 “예언에는 종말(Eschaton)이 태초의 시간 이후 움직일 수 없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개념이 없는데 묵시문학은 하나의 종교적 결정론적인 역사 이해를 소중히 하며, 종말이 운명이 되었는데 이런 묵시문학적 사고에서는 근본적으로 역사 상실적인 사고가 나타나지 않느냐 고 개탄한다.
셋째로, 묵시문학에서는 우주적 종말론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오는 왕국은 이 땅과 세계의 진화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우주적 대사건으로 이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몰트만도 “묵시문학에 있어서는 종말론이 우주론적이 되고, 따라서 정지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우주론이 종말론적이 되고, 우주가 역사적으로 종말의 과정속에 끌려 들여질 것이다. 묵시문학은 확실히 그의 종말론을 우주론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B.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
블로흐는 1960년대의 사람들이 20세기의 교부라고 할 정도로 걸출한 인물이었다.
몰트만에 의하면 “그의 ‘희망의 원리’에서 두 개의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이다. 그러나 그의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레닌 철학노선에 충실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고 인간학, 우주론, 역사철학에 관해서 마르크스에 의해서 열려진 영역안에 있는 자유한 사고, 독일 관념론의 지도자들이 항상 기대하는 사고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교의 메시야주의와 카시딤주의이다” 는 것이다.
또한 블로흐는 ‘현실적인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았다고 했는데, 이런 사고가 몰트만에게 영향을 미쳐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정적으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세계와의 모순과 투쟁 속에서 기대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이해도 마찬가지로 ‘닫혀진 메카니즘’으로가 아니라 미래에로 열려진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몰트만은 블로흐와 같은 이해를 갖기도 하는데, 두 사람이 ‘희망’이라는 공통된 개념을 그들 사상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으며, 종말론적이고 미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이다. 그리고 희망의 상을 미래속에서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일치를 한다.
C. 에른스트 볼프 (Ernst Wolf)
괴팅겐 대학교시절 몰트만이 영향받은 스승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에른스트 볼프가 있다.
바르트에서 시작하여 볼프에게 영향을 미쳤던 기독겨 사회윤리와 본훼퍼의 세상에 대한 책임윤리가 몰트만에게 소화되어 그의 종말론은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이론인 동시에 이 희망을 위한 행동의 이론이 된 것으로 그의 종말론속에 기독교 사회윤리가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몰트만의 종말론에 영향을 끼친 것은 구약성서의 역사를 ‘약속의 역사’로 이해한 폰 라드(G. von Rad)와 “절대적 미래를 믿게되면 정치적 투신을 하려는 충동도 받게 된다”고 말한 멧츠를 따라 ‘정치적 종말론’의 길을 열었던 것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들이다.
Ⅳ. 몰트만의 종말론
A. 희망의 근거 : 예수 십자가와 부활
몰트만은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현실로써 서고 넘어진다”고 말하므로 기독교 신학의 근간은 바로 예수 십자가와 부활임을 선고한다.
그는 원시 기독교의 선교 설교의 핵심은 1)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행 2:24, 3:15, 5:31, 고전 15:3 등)는 것과, 2) “우리가 그것에 대한 증인이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3) 그 이 안에 죄인을 의롭다 인정하는 미래와 죽음에 내던져진 자에게 생명을 주는 미래가 근거해 있다고 하셨는데, 이것으로 계시의 핵심사실과 증언, 종말론적 희망이 부활절 설교에서 한데 엮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바울이 정열적으로 고린도에 있는 헬라주의적 열광주의에 대해 비판한 것은 두 가지였다고 보는데, 하나는 그가 종말론의 완성을 믿는 열광주의에 대립하여 ‘묵시문학적 신학의 유물’ 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종말론의 보류’를 내세웠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가 서 있는 땅을 버리는 저 열광주의에 대립하여 십자가의 신학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몰트만은 이런 바울의 기초는 ‘십자가의 종말론’을 이루었다고 보았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단 한 번’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약속의 하나님, ‘존재의 본질로서 미래’(E. Bloch)를 가진 하나님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단 한 번으로 된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역사적 사건이 던져 놓은 보편적, 종말론적 지평을 통하여 일반화되는 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예수 십자가와 부활은 ‘단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과 삶이라는 모순이지만 이 속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모순 속의 동일성’을 볼 수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묵시문학적 종말론을 능가하여 그리스도의 미래에로 열어놓는 기독교 희망론의 기초요, 틀임을 알 수 있다.
B. 희망의 과정 : 세계와 역사
이민호 교수는 “역사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말부터 산발적으로 쓰여지기 시작하였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주의의 위기’라는 국면과 결합되어 보다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며 이러한 ‘위기의식은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불신, 장래를 전망할 수 없는 불안의식 등과 깊이 연관되어 나타났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파국을 경험한 뒤 1920년대부터 역사적 사고와 역사적 인식에 대한 심각한 반성의 소리로 나타난 것으로 일체의 것을 역사화하는 그릇된 상대주의를 야기하였다’고 말한다.
몰트만은, ‘현대의 역사의식은 위기의식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탱하던 전통과 제도가 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전통의 제방을 넘어 흘러가고, 전통과 질서들의 댐은 여러 곳에서 구멍 뚫리기 시작하며, 새로운 역사체험을 견딜 만큼 성숙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자명한 것으로 드러낸다’ 고 하였다.
몰트만은 불트만에게 있어서는 “실존적 하나님의 증명이 즉, 인간의 실존의 질문에서 찾아진 것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말과 사고가 세계와 역사로부터의 하나님의 증명을 대신한다”고 보며, 그에게 있어서는 케리그마(Kerigma; 선포된 말씀)가 신앙의 사건이며, 신앙은 이처럼 들음에서 결단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몰트만은 “세계사의 종말을 안다는 것은 하나의 ‘교만’이라며, 중요한 것은 역사의 개방성(Offenheit)에 있으며 역사의 개방성 속에서 비로소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의미와 중요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바로 그가 이해한 역사와 세계는 닫혀지고 감추어진 카테고리가 아니라, 그의 표현대로 ‘점진적 계시’이고, 하나님의 미래가 전개되는 ‘희망의 열린 장’이 되는 것이다.
C. 희망의 동인 : 약속과 계시의 하나님
몰트만은 “하나님은 약속의 방식으로 그리고 약속의 역사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하며, 그러므로 “계시는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약속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기독교의 계시론은 종말론적으로, 그러니까 진리의 미래의 약속과 기대의 범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몰트만은 ‘초월적 종말론’이라 불리우는 것도 거부하고 또한 ‘현재적 종말론’이라 이름할 수 있는 ‘실존주의적 종말론’도 거부하며, 단지 약속과 계시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님, 성취속에서도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미래를 기대하게 하시는 희망의 동력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다.
D. 희망의 추진력 : 교회의 파견
우리가 역사나 세계를 몰트만의 시각에서 봤을 때, 닫혀지거나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에로 열려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파견이라는 지평에서도 인간은 미래를 향하여 열려있고, 세계도 완전한 미래로 무한하게 열려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파견이라는 전망에서 인간이나 세계, 역사현실을 언제나 미래로부터 이해하기를 힘쓴다. 파견은 복음과 관계를 가진다.
몰트만은 “복음의 선포는 종말론적 사건의 통고요 계시요 선포이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부활한 자의 지배를 계시하고 사람을 믿음과 희망으로 장차 올 구원을 기다리게 해방한다. 복음은 선포로서 장차 올 그리스도의 지배의 도래에 관계되며 도래의 동기가 된다”고 하면서 이 복음선포와 온 세계의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파견이 바울에게서 보여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파견은 부르시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고, 전적으로 앞을 향하여 있으며, 열려진 역사와 세계속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아니’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중에 모든 것 되시는 것’을 바라고, 또 ‘만물의 회복’이나 ‘하나님과 피조물의 화해’를 기대하면서 전개되는 희망의 추진력임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또 ‘하나님 없는 자’ 와 ‘ 신앙 없는 자’에게 종말론적 전망과 파견 속에서 ‘하나님 있음’과 ‘신앙의 회복’을 전염시키면서 희망의 보균을 꿈꾸는 집단이 된다.
Ⅴ. 결 론
지금까지 본인은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을 중심으로 현대 종말론 연구사와 그의 종말론적 신학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준 배경연구, 그리고 그의 종말론 등을 다루었다.
몰트만은 그의 종말론을 근본적으로 성서를 텍스트(Text)로 하고 있고, 따라서 약속과 성취를 이루시는 하나님, 무(無)에서 존재(存在)를 있게 하신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하는 종말론적 희망의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또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와 그의 부활사건은 ‘모순’ 이지만 이런 모순 속에서 동일성을 발견할 수 있고, ‘비 동일성 속에서 동일성’을 볼 수 있는 사건이요, 이것이 희망의 종말론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종말론 연구는 ‘마지막에 대한 일들’, ‘최종적인 일에 대한 논의’로 기독교 교의학의 ‘부록’이나 ‘별첨’ 정도로 이해되어 왔고 이에 대한 논의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을 정도로 소홀히 취급하여 왔다고 보면서 종말론은 그와 같지 아니하고 시작이며,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몰트만은 현대사회에서의 교회상을 ‘출애굽의 공동체’ 곧 해방하는 공동체로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개인들에게 상속된 전유물이나 피안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피조물이 고통받는 세상속에서 변혁과 투쟁으로 이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평화는 세상과의 갈 등을 의미하고, 하나님과의 갈등은 세상과의 평화를 의미하는 모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몰트만의 ‘종말론의 신학’, ‘희망의 신학’은 ‘아직 아니’의 도상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희망만이 삶과 신앙의 근거를 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參 考 文 獻
● 김균진. 헤겔철학과 현대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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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익산호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