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과 사천군에 동명이산(同名異山)인 와룡산(臥龍山)이 이웃하고 있다.
고성군 와룡리를 감싸면서 자란만을 내려다보는 산줄기를 용이 누운 형상이라 예로부터 와룡산(臥龍山)으로 불렸다.
그런데 전국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사천 와룡산의 명성에 가려 고성 와룡산은 그만 ‘와룡’이란 이름마저 슬그머니 빠져 버렸다.
정식 명칭은 ‘와룡산 향로봉’이고, 산 아래 부락도 와룡리 와룡마을, 보물인 운흥사 탱화의 정식 명칭도 ‘고성 와룡산 운흥사 괘불탱’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구분해서 ‘삼천포(사천) 와룡산’과 ‘고성 와룡산’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고성군에선 그냥 ‘향로봉’이라고 명칭 정리를 한 듯하다.
향로봉(香爐峰 578.3m)은 작지만 옹골찬 산으로 한려해상에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의 조망이 압권이다.
오래전 부산의 지역 신문사에서 향로봉과 백암산을 아우르는 운흥사 원점회귀 계획을 차례로 내 놓았고, 수태산(秀泰山 574)과 무이산(武夷山, 청량산 546)도
국제신문에서 사찰순례와 함께 원점회귀 가이드를 내놓았다.
우리는 이 두 가이드를 잇는 계획을 마련한 뒤 B팀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운흥사→문수암>으로 정했다.
이 길은 일부 호사가들이 ‘와룡지맥’으로 부르는 능선.
이 지맥은 ‘낙남정맥’ 대곡산에서 분기하여 삼천포(사천시) 노산공원까지 가는 산줄기로 지맥분류(신산경표) 기준(30km)에 미달(도상거리 29.6km)하지만
극성 산꾼들이 ‘와룡지맥’으로 이름을 붙인 지맥.
들머리의 운흥사(雲興寺)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 활동의 근거지였다.
사명대사가 승병 6,000여 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웠고, 이순신 장군이 수륙양면 작전을 숙의하려 세 차례나 찾은 호국사찰이다.
임란 때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은 불태워졌고, 폐허가 된 운흥사는 방치되다가 1651년에 법성 스님에 의해 중창됐다.
운흥사에는 ‘운흥사 괘불탱’을 비롯한 문화재가 다수 있다.
무이산 아래에 있는 문수암(文殊庵)은 688년(신문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오대산 상원사, 백화산 반야사, 북한산 문수사 등과 함께 대한불교
4대 문수보살 기도성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일출명소로도 이름을 더한다.
휴암당 정천스님이 1962년 문수암을 중창하고, 1983년 수태산 보현사를 창건하였으며, 약사전과 약사대불을 조성하였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普賢)보살을 세우는데, 약사여래불이 있는 약사전 좌우에 문수암과 보현사가 세워진 게 이상하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고,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을 협시하는 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지만 약사전 좌우로 문수암과 보현사가 있는 건 우연이 아닐 것.
클릭하면 원본크기.
10km가 되지 않는 길을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고도표
<참고 개념도> <산&산>
<참고> <국제신문>
<참고> 클릭하면 큰 지도<국제신문>
일명 와룡지맥<블로그 '조은산'>
클릭하면 큰 지도<와룡지맥 2구간. '조은산'>
운흥사 주차장까지 대형버스가 들어온다.
일주문 좌측 천진암과 낙서암으로 가는 포장도로로 일행들은 바삐 올라가지만...
필자는 운흥사를 탐방하기 위하여 일주문으로 들어가며...
편액을 당겨 글쓴이를 확인하니 낙관엔 '삼신산인 고산서(三神山人 杲山書)'. 쌍계사 방장이신 고산(杲山) 스님의 글씨다.
돌계단을 밟고 보제루를 오르다...
자연석을 생긴대로 서로 맞물리게 쌓은 그랭이 공법 석축에 눈길이 간다.
보제루(普濟樓)는 법당 대신 설법을 하기 위하여 지은 누각으로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다.
보제루를 통과하여 돌아본 모습에 또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보제루 편액 또한 고산 스님의 글씨.
스님의 독경소리 은은히 퍼지는 운흥사 대웅전.
명부전과 산신각을 올려다 본다.
그리곤 조용히 명부전 문을 열고 합장~
명부전에 모셔진 목각 조각상 불상들이다.
본존상은 특물이 없고, 지장보살(地藏菩薩), 도명존자 (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의 삼존(三尊)과 시왕(十王)들로 구성되어있다.
좌보처 도명존자가 지옥보살의 석장을 들고 있고, 인왕상은 명부전 입구 좌우에 비치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각상으로 불교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문을 조용히 닫곤 대웅전 앞마당으로 내려서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는다.
운흥사 괘불탱 및 괘(보물 제 1317호).
괘불탱은 야외법회 때 펼쳐 당간지주(幢竿支柱) 등에 걸어 놓는 대형불화이며, 궤는 불화를 보관하는 상자이다.
운흥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대웅전은 불타 없어졌다.
운흥사 대웅전은 영조 7년(1731)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운흥사에서는 숙종 임금(재위: 1675~1720) 때부터 매년 음력 2월 8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영산제를 여는데,
이 날은 임진왜란 때 승병과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가장 많은 수의 승병이 전사한 날이다.
영산제에 사용하는 괘불탱 및 괘는 1730년에 의겸 스님과 그 문하생들이 그렸으며, 2001년 8월 3일 보물 제1317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과 옆면 3칸의 맞배지붕 대웅전 앞에 석등과 안내판이 있다.
필자는 독경소리 은은한 대웅전 문을 열고 감히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산신각 오르는 계단 밑에 이끼낀 비석은...
나무아미타불.
영산전(靈山殿)은 1731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정면 3칸, 옆면 2칸 크기의 맞배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때 산화한 승병과 의병의 명복을 비는 영산제를 매년 음력 3월 3일 이곳에서 거행한다.
국내 사찰 중 유일하게 승병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낙관에 '건융18년(乾隆拾八年)'이라 적혔는데, 건융 18년이면 1753년(영조 29년)이니 중건되고 22년 만에 편액을 걸은 셈이다.
영산전 안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16나한상은 유독 동물들을 안고 있는 게 특이하다.
범종루((梵鐘樓)는 불전사물(佛前四物)인 범종(梵鐘), 운판(雲板), 목어(木魚), 홍고(弘鼓) 등을 비치하는 당우로 주로 사찰 좌측편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편액을 당겨보니 글쓴이는 역시 일주문과 보제루를 쓴 고산 스님. 관지엔 '삼신산인 고산(三神山人 杲山)'
운흥사 범종루에 비치된 불전사물.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운흥사를 답사하는 동안 일행들은 모두다 떠나고, 필자는 그 뒷꽁무니를 물기 위하여 바삐 움직인다. 화장실 푯말이 있는 오솔길로 들어...
해우소를 지나면...
천진암과 낙서암으로 향하는 포장도로에 진입하여...
안내판이 있는 소형차 주차장에서 우측 돌계단으로 오르게 된다.
안내판과...
이 지역 '하이애향회'에서 세운 당부글이 세워져 있다. '하이애향회'는 향로봉 등산객들을 위하여 여러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면...
천진암과 낙서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천진암에 닿고...
다시 돌길을 따라 낙서암에 이르게 되어...
좌측 낙서암을 곁눈질로 바라본 뒤...
대숲 이정표 앞에 섰다. 등로는 'ㅏ'자 갈림길이어서 전망이 좋은 우측 갈림길을 선택하였다.
이 지점의 안내판.
우측 옆으로 조금 돌아 능선에 진입하자 벤치가 있는 곳에서 전망이 트여...
살펴보니 사천 와룡산인 듯해...
더 당겨 보았더니 와룡산 새섬봉과 와룡산이다.
이후 금방이라도 우루루 쏟아 내릴 것같은 너덜지대에 접어들지만...
친절한 '하이애향회'에서 등산로 표시를 해 두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곧장 너덜을 따라 올라가도 나중에 만나게 되겠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천혜의 조망은 누릴 수 없다.
안전밧줄이 쳐진 석문을 통과하면...
안내판이 나타나고, 필자는 좌측 전망대 방향으로...
몇발자국 나아가서...
아주 잘 생긴 소나무 너머로...
와룡산을 바라본다.
좌측 와룡산 새섬봉과 와룡산. 아무래도 와룡산은 사천 고성을 막라해 위풍당당한 산인 듯하다.
조금 더 당겨본 와룡산.
와룡산에서 좌측으로 뻗어내린 곳에 각산인 듯하지만 미세먼지로 인하여 창선대교는 그저 짐작만할 뿐이다.
다시 좁은 석문을 지나...
너덜 상류를 가로질러 능선을 갈아타니 앞서간 일행들의 꽁무니가 보여... ...
살짝 당겨보니 개금 아제와 외숙이 총무가 바위 위에 올라서 그저 喜喜樂樂이다.
필자가 막 닿았을 즈음 이 전망 너럭바위에서 점심 보따리를 풀기로 하였고...
그 새 필자는 주위 조망을 카메라에 담으며 분주해지기 시직한다.
고사목 건너로 좌이산 세 봉우리가 우뚝하고,우측 조그마한 안장섬 너머로 희미한 사량도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 짓는다.
좌이산 좌측의 섬들 중에 제일 큰 섬은 자란도(紫蘭島).
멀리 희미하게 높다란 굴뚝이 있어...
당겨 보았더니 삼천포화력발전소다.
용의 왼쪽 귀에 해당된다고 이름 붙여진 좌이산(左耳山)은 세개의 봉우리로 보이고, 희미한 가운데서도 은빛 물결 찰랑거리는 지점에 안장섬.
그 뒤로 사량도가 뱀처럼 길게 누웠다.
당겨본 사진.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친 뒤 네 여성회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돛단배의 돛대를 닮은 듯한 역삼각형 바위는 다른 각도에서 보니 뒷머리 정수리가 뾰족하고 이목구비가 선명한 사람 얼굴로 보인다.
수직벽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옥분 씨가 기어오르는 모습을 연출한다.
덩달아 세 여성분이 같은 포즈를 취하다...
암벽은 이렇게 기어올라야 된다면서 숙달된 조교처럼 폼을 잡은 미옥 씨.
그 커다란 바위는 뒷쪽으로 기어 오를 수 있어...
올라가 보았더니 사위가 모두 뚫린 조망처. 진행방향 향로봉 정상에 정자의 지붕이 보이고, 그 밑으로 군데군데 도드라진 바위들이 보인다.
돌아본 모습과...
동남 방향의 자란도.
향로봉 정상을 살짝 당겨보니 정자가 보인다.
철교를 건너면서...
애향교(愛鄕橋)는 '하이애향회'에서 산행의 편의를 위하여 자체기금과 노력으로 건설하였다니 애향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도드라진 넙덕(너럭)바위에서... * 넙덕바위는 너럭바위의 강원도 버전.
와룡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였다.
당겨본 와룡산.
사량도가 보이는 바다도 조망권.
우뚝 솟은 향로봉에 올랐다. 향로(香爐)를 닮았으니 향로봉일 것.
둥그스럼한 자연석 표석 앞에서 기념촬영.
Me too.
좌이산과 자란도와 사량도와 한려수도.
이정표의 수태산과 무이산 방향으로...
가노라니 또다시 넙덕바위와 조망.
우측으로 펼쳐지는 조망은 하일면 학림리. 금단1저수지 너머로 아까부터 보아온 좌이산과 자란도. 그리고 고만고만한 작은 섬들.
등로엔 어딘가에서도 보았던 세멘트 구조물. 정수리엔 방향표식인 듯 十자 모양의 표식이 그려져 있고, 산(山)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다.
등로 끝에 제법 널따란 임도가 보이고...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을 계속 이어가노라면...
철탑이 나오고...
수태산 무이산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그러더니 또다시 만나는 아스팔트 2차선 도로.
학동치(해발 240m) 고갯마루이다. 우측 굴다리 방향으로 2~30m 나아가...
굴다리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차량 바리케이트가 쳐진 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데로 산길로 들어서면 355m봉과 415.2m봉을 넘어야 하므로 이제 막 회복기에 들어선 옥분 씨의 무릎 컨디션을 감안하여 임도를 따르기로 했다.
다른 각도에서의 이정표.
산사면을 멀게 빙빙 두르는 길이지만 고도차가 거의 없으니 룰루랄라♬...
새끼가 부화한 뒤 떠난 빈 둥지도 살펴보고...
사뭇 여유있는 걸음으로...
고도차의 피로도를 느끼지 않고 걷노라니 우측 방향 스카이라인에 거대한 인공적 구조물이 보여...
살짝 당겨보니 약사전 약사여래불이다.
사각정자를 지나고...
아까 학동치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내려서는 수태재(350m)이다.
학동치(240m)에서 354.8m봉과 415.2m봉을 거치지 않고 임도를 따라 수태재(350m)에 도착했으니 두 배정도 먼거리는 그저 몸풀기.
내려선 지점에서 불과 50여m 전방의 수태산 들머리.
벤치에서 외숙이 총무가 사과를 깎아 목가심을 하는 참에 원님덕에 나발을 불기로 했다. 보리수 담근 술을 쭈욱 한 잔.
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초록색 주머니. 이 안에 무언가 생명체가 겨울나기를 하고 있을 것.
이제 목가심도 하였으니 수태산을 올라야지.
중간에 만나는 전망대에서 외숙이 총무.
그 뒤로 그림같은 풍광.
가까운 앞 봉우리는 아까 우리들이 우회했던 415.2m봉이고, 멀리 솟은 봉우리가 향로봉. 우측 봉우리는 우리의 동선(動線)과 상관없는 507.8m무명봉.
수태산 오름길 또한 전망이 좋아...
도드라진 전망대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아까부터 보아온 풍광과 멀리 사량도 라인.
커다란 바위를 에돌아...
수태산 정상에 올랐다.
그녀들과...
발걸음을 맞춘 필자.
수태산의 삼각점.
수태산 정상에 돌무더기들이 있어...
살펴보지만 이 인위적인 흔적은 무슨 용도였을까?
이정표의 문수암주차장을 향해...
철탑의...
철망을 돌아...
이젠 일행들을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필자는 무이산을 갔다와야만 하고, 이분들은 주차장에서 산행을 접는다고 했기 때문.
도로에 내려서서...
우측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지만...
필자는 문수암 가는 길 좌측...
이정표 있는 방향의...
편백숲으로 바삐 스며든다.
미륵을 닮은 커다란 바위를 지나 고개를 드니 119 무선중계소라는 건축물이 있고...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
무이산이란 지명은 중국 무이산에서 왔다.
고성 무이산은 공자와 주자사상 중국의 산수에 매료된 유학자들이 우리의 산수도 이와 비견된다 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북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대곡산과 천황산을 지나는 낙남정맥이 보인다.
낙남정맥은 가리고개(추계재)에 내려섰다가 다시 무량산(544.9)으로 솟아 오르며 맥을 이어 나간다.
약사전 대형 약사여래불은 391.3m봉에 조성되어 있어 어느곳에서도 눈에 들어온다.
약사전 뒤로 아까부터 보아온 좌이산과 자란도가 보이고, 한려수도 너머로 희미하게 사량도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긋는다.
살짝 당겨본 약사여래 대불. 약사대불은 동양 최대의 금불상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문수암으로 내려설려면 무선저수지 이정표를 따른다.
문수암 뒤로 내려서자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쳐져있다.
나중에 확인은 못했지만 석벽 사이로 문수, 보현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어 문수단이라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기암절벽 아래 작은 절마당으로 내려서...
문수암을 올려다 본다.
당겨본 편액엔 '시주 남평 문봉수 경술생'이라고 쓰여있고, 글쓴이는 매헌(梅軒)인지 매간(梅杆)인지 알 수가 없다.
아래 저수지는 무선저수지, 건물은 호반그린모텔.
약사여래대불을...
또다시 당겨보니 크긴 크다. 동양 최대의 금불상이라더니...
언제부터인가 최고, 최대, 최상이 지고지순한 최대의 가치가 되고 있다. 과연 베스트(best)라야만 할까?
돌출된 암봉에 전망대와 석물들이 보여 들어가 보았더니...
청담대종사사리탑비(靑潭大宗師舍利塔碑)가 있고...
조성한지 얼마되지 않은 좌불상과...
사리탑 뒤로 데크 전망대가 있다.
이 사리탑은 청담스님의 맞상좌이자 문수암 주지를 지낸 정천스님이 조성하였다.
청담스님(1902~1971)은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과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을 지냈으며, 문수암은 한때 청담스님의 토굴이었다.
바위 벼랑 좁은 공간의 문수암.
문수암에서 내려서면 차량진입 끝지점에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5분정도 더 걸어 내려가야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대형 주차장이 있다.
뒷풀이로 내놓은 떡국과 소주 몇잔을 허겁지겁 들은 뒤 올려다 보는 무이산 (당긴 사진).
-무이산 문수암-
저 만 쌍의 눈을 뜨고 깜빡이는 남해 바다
이처럼 한눈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입구의 어두운 동백들 때문일까,
청담이 살다 관뒀다는 기호, 사리탑에서 내려다보면
언젠가 시력 끊겨도 몇 년은 계속 보일
저 환한 자란만(紫蘭灣), 떠도는 저 배들, 저 부푼 구름들, 저 잔물결들
자세히 보면 자란섬 뒤로
나비섬, 누운섬, 떠다니는 섬들도 있다.
청담 스님이 슬쩍 자리를 비워준다 해도
감을래야 감을 수 없는 이곳에 눈을 파묻지는 않으리.
뒤에 문득 기척 있어
동백이 떨어진다.
동백 뒤에 청담이 나오면 청담을…
바다로 해가 뛰어들고
섬들의 겨드랑이가 온통 빛에 젖는다.
<황 동 규>
첫댓글 역시 산행기는 똑뿌러지게 쓰십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인연 제가 미안 할 뿐입니다.
인연은 길이 기억하겠습니다.
떠난 사람이 뭐 변명의 여지가 있겠습니까마는
어젠가 꼭 한번은 찾아 뵙도록 할께요
늘 건강하세요.
요즘 재미가 좋으시죠? 이곳저곳, 이산저산, 또 이사람저사람 다 그렇고 그래요.
별스런 세상이 있나요? 그저 얼키고 설키면서 살 수밖에요.
그러니 뭐라해도 정붙인 곳이 나아요. 슬슬 외유하였다가 다시 처음처럼 보아요.
운흥사와 여러암자들.. 파노라마처럼 펼처지는 장외의 설명에 절로감탄의 괴음을 토해내곤 합니다~수고했읍니다..언제인지 몰라도 문수암 기암괴석사이로 보이는 동자님의 모습을 본 기억이 생각나는군요..눈길따라 산행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