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그 열네 번째
손옥철
방장님,
열네 번째 나무 이야기는 느티나무 편입니다.
나무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혹시 지루해 하시는 분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언제라도 그럴 우려가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고르지 못한 날씨에 건강하십시오.
손옥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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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파트에서 식물을 기를 때 알맞게 물 주는 것 못지않게,
적당한 햇빛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나무에 햇빛이 필요하지만,
어떤 나무는 너무 양지바른 곳에 있다가 말라죽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에게 햇빛은 물만큼 중요하다. 나무의 키가 크는 것도
다른 나무보다 더 햇빛을 받고자 하는 나무끼리의 경쟁이다.
같은 나무라도 우거진 숲에서는 더 높이 자라고, 혼자 있을 때는 옆으로 더 퍼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양수(陽樹) 중의 양수 소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하고 구불구불 굽어 자라는 것은
다른 나무에 햇빛이 가려지면 나무의 끝에서 성장을 이끄는 우듬지가 햇빛을 찾아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모든 나무가 햇빛을 풍족하게 받을 수 없을 테니,
키 경쟁을 포기하고 햇빛을 좀 적게 받아도 살 수 있도록 적응한 음수(陰樹)도 있다.
등나무나 칡 같은 덩굴나무는 키 대신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햇빛을 빼앗는 전략을 취한다.
나무가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은 생명을 지탱할 에너지를 만들 광합성(photosynthesis) 때문이다.
광합성은 나무를 비롯한 모든 식물의 엽록소(葉綠素)가 빛 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대기 중의 탄산가스(CO₂)와 뿌리로부터 올라온 물(H₂O)로
생명체에 필요한 포도당(C₆H₁₂O₆)과 산소(O₂)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화학 반응에 필요한 것이 햇빛으로, 화학식을 표시하면
‘햇빛 + 6CO₂ + 6H₂O → C₆H₁₂O₆ + 6O₂’이다.
이는 마치 하느님이 모든 생명체가 숨 쉴 공기와 먹을 양식을 동시에 생산할 공정(工程)을
미리 마련하신 후, 순서대로 첫째 날 빛을, 둘째 날 궁창(穹蒼)을 나누어
탄산가스와 물을 만들고, 셋째 날 생명을 창조하신 것처럼 보인다.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 중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무는 느티나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교목으로 수형이 아름다워 마을이나 공원의 조경수나 가로수로
즐겨 심는다. 짐작건대 햇빛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숲속보다
공지에 혼자 있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느티나무는 예로부터 고궁이나 사찰을 짓는 데 쓰였으며,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해서
가구, 악기나 불상 조각 등 고급 목재로 쓰였다.
가야분 등 고분에서 느티나무로 짠 관이 나오기도 했다.
『주례(周禮)』에 ‘동취괴단지화(冬取槐檀之火)’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겨울에 느티나무와 박달나무를 비벼서 불씨를 만든다는 말이다.
느티나무 산이란 뜻을 가진 충청북도 괴산(槐山)에는 유난히 느티나무가 많고
느티나무 마을이라는 곳도 있다. 숙종 때 괴산군수 조정례(趙正禮)가
문법리 전법마을에 심은 느티나무가 자라 숲이 되었다고 하며,
현재 국가 산림문화자산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순조 때 이곳에서 『송남잡지(松南雜識)』를 저술한 송남(松南) 조재삼(趙在三)이
그의 증손이다. 조선 3대 유서(類緖) 중 하나로 불리는 송남잡지는 천문, 지리, 외국,
농정, 방언, 음악, 동물, 초목 등 다양한 부문의 지식을 망라한
백과사전으로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괴산은 과연 느티나무 고을이다. 가는 곳마다 느티나무가 많고,
특히 장연면 오가리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경사지 위쪽에 있는 나무를 상괴목(上槐木), 그 60미터 아래쪽에 있는 나무를
하괴목이라 부르는데 나무의 높이는 각각 25미터와 29미터, 나이는 약 800년으로 추정된다.
가까운 곳에 또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어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삼괴정(三槐亭)이라고 부른다.
이곳 주민들은 이 두 그루의 느티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보아
극진히 보호하며 매년 정월 대보름날 하괴목에 성황제를 지낸다.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는 천연기념물 제407호인
학사루(學士樓) 느티나무가 있다. 신라 시대 문장가였던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재임할 때
동서남북 사방에 제운루(齊雲樓), 청상루(淸商樓), 망악루(望嶽樓), 학사루를 지어
자주 올랐다고 전한다. 조선조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金宗直)이
함양 현감으로 있을 때 이곳 학사루에 심은 느티나무가 현재 수령 약 500세로 살아있는 것이다.
특히 김종직이 이곳 학사루에 걸려 있던 유자광(柳子光)의 시를 철거시킨 것이
무오사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마을 입구에는 정자나무로 불리는 오래된
느티나무나 팽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농촌의 정자나무로 느티나무가 많다면
팽나무는 바닷가 거친 바람에 강하여 웬만한 어촌 포구에 한 그루씩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무들이 정자나무로 자리 잡은 것은 키가 크고 수관(樹冠)이 아름다우며
잎이 풍성해서 사람들이 쉴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키며 마을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고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도 보여준다. 지금은 옛 얘기처럼 들리지만,
정자나무는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의 쉼터일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빌거나 대소사를 의논하는 광장 역할을 해왔다.
정자나무 중에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무도 있다.
전국에 세 그루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토지를 가진 나무는 경북 예천군,
금남리에 있는 수령 500년쯤 된 팽나무다. ‘황목근(黃木根)’이란 이름을 가진 이 나무는
약 3,700여 평의 토지를 가지고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매년 정월 대보름과 7월 백중날 마을 주민이 모여 당제를 올리고 잔치를 벌인다.
경남 고성군, 삼락리에도 논 400평을 소유한 푸조나무 ‘김목신(金木神)’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나무에 배를 묶고 적을 무찔렀다고
‘전승목(戰勝木)’이라고도 부른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에 있는
‘석송령(石松靈)’도 토지를 소유한 나무다.
그늘 면적이 320평일 만큼 큰 반송(盤松)으로
백여 년 전 이 마을 주민으로부터 토지 1,200평을 증여받았다고 한다.
인간과 나무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식물이 생산하는 산소와 포도당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광합성 연구를 통하여 인류가 당면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편 지구는 현재 종말을 우려할 만큼 지독한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화석 연료 남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숲이 사라지는 것도 그 이유로 지목받고 있다.
식물의 광합성을 통하여 지구에서 매년 100억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탄수화물로 전환되는데,
숲이 줄어들면서 지구에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우리가 나무와 숲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은 또한 자신의 삶을 나무에 비쳐 보며 정서적 교감을 갖기도 한다.
자신의 희로애락을 나무에 빗대기도 하고 나무를 벗 삼아 말하고 노래하거나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하소연을 나무에 쏟아내기도 한다.
마을이나 국가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나무에 비는가 하면,
나무를 중심으로 모여 이웃과 크고 작은 매듭을 풀기도 하였다.
인간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주기만 하는 나무,
그들은 우리의 생명이요 희망이다. 그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돌보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돌보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현대중공업 입사, 현대엔지니어링 부사장 역임/남성고~ 서울대 공대 기계과(65학번) 졸,
방송통신대학 영문학과 졸/정읍産>
괴산 산막이 길을 걸으며
2023 7 12
이승신
괴산을 가는 날은 비가 쏟아졌다.
괴이한 괴상한 그리고 최근 듣는 괴담까지, 산뜻한 의미가 떠오르지 않는데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했는데, 그게 느티나무 괴槐 라는 걸 알게 되었고 과연 마을 어귀 등 큼직한 느티나무가 어디에고 듬직하게 서있는 걸 보게 된다. 느티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벌레가 끼지 않는다고 했다.
괴산에는 '괴산 타임즈' 신문이 있는데 거기에 내 글이 실린 지 몇 해가 되는
그런 인연이 있다. 여러 해 전 한운사 선생이 가시고 기념관이 그가 태어난 자리에 서는 날, 기념관 식순 만 참석하고 바로 돌아갔기에 괴산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호수 곁 '산막이 마을'이 좋다며 거기에 숙소를 잡아주었는데 큰 길에서 차로 20여 분 오르는 구불구불 마을 길이 낭만적이고 사랑스럽다. 언덕 위 하얀 집에 짐을 풀고 서너 걸음 내려가니 내가 좋아하는 수제 두부 집이 늘어서 있다.
거기서부터는 나만 처음이지 잘 알려져 전국에서 찾는다는 '산막이 옛길'이 시작된다.
폭우가 내리지만 대도시를 빠져나와 자연 속에 있다는 게 참 좋아 그걸 걷는다.
손바닥 만한 양산이어 옷도 폰도 젖지만 소나무 숲길 바로 곁이 댐으로 생긴 큼직한 괴산호여서 에메랄드 빛 물길 따라 걷는 게 딴 나라 온 것처럼 새롭고 신선하다.
강한 비로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소문난 그 길은 호수에 배도 뜨고 물길을 우편으로 끼고 걷는 나무를 깐 데크로 길게 이어지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그걸 벤치 마킹 하러 온다고 한다.
그런데 갈라지는 길을 잘못 들어 물을 그 반대인 왼 편으로 끼고 걷던 길이 나는 더 좋았다. 잘 못 들은 감이 들어 비 속에 불안해 하며 한참을 걸으니 끝에 높은 구름다리가 보인다. 봄도 가을에도 걸으면 좋을 풍광이다 싶은데 친절한 신문사 사장은 겨울 눈이 오면 최고라고 강조를 한다.
16세기 이곳에 유배 왔던 노수신盧守愼 후예들인지 식당 주인도 더러 보는 사람들도 다 노 씨 천지다. 그를 기념하는 수월정水月亭도 있고 비도 서있고 그런 깊은 역사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최근 신문에 괴산의 계곡이 전국 1위라는 기사를 보고 괴산 타임즈에서 한 번 오시라는 말을 몇 해 들어도 못 가다가 시간을 빼서 갔었다. 바다를 면하지 않은 충북 괴산 산 속에는 화양구곡 쌍곡계곡 선유동계곡 갈론계곡 등이 있다는데 폭우로 보지 못 했지만 어디를 보아도 푸른 산봉우리가 눈을 시원하게 하고, 소나무 숲을 끼고 물길 따라 걷고 배도 타본 넉넉한 인상의 산막이 마을이다.
거기에 문화 예술이 빠지면 서운인데 우리나라 방송 드라마 원조요 빨간 마후라 등 수 많은 영화 집필 제작으로 한 획을 그은 한운사 선생 기념관이 있고 화가 운보 김기창 선생의 생가 미술관도 있으니 대단한 문화 도시다.
뜨거운 여름, 몇 해 못 가던 해외를 간다고 공항이 법석이라고 한다.
나는 국내를 택했고 거칠어 가는 정서를 부드러이 아름답게 가다듬을 수 있었던 평안한 시간이었다.
여기가 같은 나라인가 싶은
진초록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빗속의 산막이 옛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