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Latin/中南美)의 영광(榮光)과 치욕(恥辱)
1. 대항해(大航海) 시대
15세기 들어 유럽(Europe)은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맞게 되는데 정복자 입장인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흥분의 도가니로 들뜨던 영광의 시기였겠지만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하여 동남아, 아프리카 등 정복을 당하는 지역들은 악몽과 치욕의 시기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라틴(Latin)족-남부 유럽에 살던 민족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이탈리아)를 필두로 바스쿠다가마(Vasco da Gama /1460~1514 /포르투갈), 마젤란(Ferdinand Magellan/1480~1521/포르투갈) 등 이른바 유럽의 탐험가들은 앞선 조선술(造船術)과 항해술(航海術) 및 신무기(新武器)를 앞세워 다투어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기였다.
2. 스페인 이사벨(Isabel) 여왕
스페인의 이사벨(Isabel 1세) 여왕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1492년부터 시작된 4차례의 아메리카대륙 탐험이 불행히(!)도 성공을 거두어 무자비한 침탈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고 아메리카 대륙은 악몽의 시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은 정복자 코르테스(Hernán Cortés/1485~1547)를 앞세워 멕시코의 아스텍(Aztec) 제국을 멸망시키고, 또 피사로(Francisco Pizarro/1502~1548)는 태양의 제국 잉카(Inca)를 멸망시켜 광대한 중부아메리카와 남미를 식민지로 만들고 가혹한 수탈(收奪)을 일삼는다.
스페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사벨 여왕은 엄청난 부를 쌓아 무적함대를 창설하는 등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으로, 영광의 시기였겠지만 라틴아메리카와 남미 인디오들의 입장에서 보면 온갖 핍박으로 고통에 시달리던 치욕의 시기(300년 간)였다.
3. 반 식민 독립운동가들
18세기에 들어와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Simón Bolívar/1783~1830) 등 반(反)스페인, 반식민주의 독립 운동가들은 온갖 고난 끝에 스페인 정복자들을 몰아내고 베네수엘라(Venezuela), 콜롬비아(Colombia), 에콰도르(Ecuador), 볼리비아(Bolivia) 등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발판을 만든다.
콜롬비아(Colombia)는 탐험가 콜럼버스(Columbus)의 이름에서, 볼리비아(Bolivia)는 베네수엘라의 혁명가 볼리바르(Bolivar)의 이름으로 나라 이름을 지었는데 한쪽은 정복자, 다른 한 쪽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지었으니 아이러니이다.
쿠바의 건국영웅으로 추앙받는 호세 마르티(José Julián Martí Pérez /1853~1895)도 스페인 정복자들을 몰아내는데 일생을 바쳐 쿠바에 살디바르(Zaldivar) 민주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보지도 못한 채 제2차 쿠바독립전쟁인 관타나모(Guantanamo) 전투에서에서 전사하고 만다.
관타나모 전쟁은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으로 쿠바를 두고 벌인 강대국들의 전쟁으로 미국이 승리한다.
그러나 이 살디바르 정권은 뒷날 미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여 다시 카스트로에 의하여 밀려나게 된다.
호세 마르티는 쿠바인들로부터 건국영웅으로 추앙을 받을 뿐더러,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상징하는 대문호(大文豪)로 더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쿠바의 민요 ‘관타나메라(Guantanamera/관타나모의 아가씨)’는 마르티가 쓴 시(詩)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다.
그 찬란하게 꽃피웠던 마야(Maya), 잉카(Inca), 아스텍(Aztec) 등의 문명들이 비열한 유럽야만인들의 무자비한 총칼에 무참히 짓밟혀 맥없이 스러지다니... 나는 이 지역을 여행하는 내내 곳곳에 남아있는 유럽 침략자들의 침탈(侵奪)의 흔적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침탈의 죄악감에서 그랬는지 점령한 지역마다 엄청나게 큰 성당들을 수도 없이 많이 지었는데 그 규모는 물론, 내부 장식도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서 성당 안에 들어설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가는 곳마다 성지(聖地)라는 느낌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까지 무수한 군소문명(群小文明)들이 성쇠를 거듭하던 미지의 세계인데 여러 문명 중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던 마야(Maya)문명과 잉카(Inca) 문명에 관해서 알아본다.
4. 마야(Maya) 문명과 잉카(Inca) 문명
올멕(Olmec) 문명(BC 1500) -큰 것은 높이 3.4m, 30톤(원주민인 인디오 상이 아니고 흑인 모습이다.)
테오티와칸(신들의 자리-태양의 피라미드, BC 6~1) / 사자(死者)의 길 /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BC 25)
과테말라 티칼(Tikal, AD 6) / 온두라스 코판(Copan, AD 6) / 코바(Coba, AD 6, 높이 42m) / 코바 정상
치첸이트사(AD 6) / 마야달력(멕시코 인류학박물관) / 삭사이와망 / 비문의 신전(팔렌케)
마추픽추 / 잉카 트레일(Inca Trail) / 티티카카 호수(해발 3,850m) / 안데스 산맥 고개 마루(4,335m)
마야문명은 기원전 25세기(BC 2500) 경부터 멕시코 남부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Guatemala), 벨리즈 (Belize)에 걸쳐 번성하였던 고대문명이다.
현재 남아있는 마야유적으로는 과테말라의 티칼(Tikal) 대 피라미드, 유카탄 반도의 치첸잇사(Chichen Itza)와 팔렌케(Palenque) 대 유적, 뚤룸(Tulum)과 코바(Coba)의 대 피라미드, 온두라스의 코판(Copan) 등이 대표적이다.
고도로 발달하였던 마야문명은 잘 정비된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했으며, 이집트와 유사한 대 피라미드와 신전을 건축하였는데, 태양과 달을 숭배하여 태양신전(Piramide de la Sol)과 달의 신전(Piramide de la Luna) 등이 많이 남아있다.
마야 피라미드와 이집트 피라미드의 차이점이라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꼭대기가 뾰족한데 마야 피라미드는 4면에 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맨 위는 평평하여 신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였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현재 이집트에는 약 80기(基)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하고 멕시코에 있는 마야 피라미드는 약 200기(基)라고 하니 멕시코에 훨씬 더 많은데 거대한 규모도 비슷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이름이 알려진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쿠푸(Khufu)왕 피라미드일 것이다.
마야인들은 특히 건축과 천체관측술(天體觀測術)의 발달로 역법(曆法)을 이용한 정교한 달력을 만들었는데 1년이 365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과 같은 태양력(太陽曆)이다.
멕시코 유카탄(Yucatan) 반도에 있는 치첸이트사의 대 피라미드는 4면이 각각 91개씩의 계단이 있고, 맨 위의 제단까지 합치면 총 계단 수가 365개로 태양력 1년을 나타낸다. 또, 이들은 숫자를 창안했는데 20진법을 사용했으며 0(영:Zero)의 개념도 도입하여 사용하였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들은 주로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경부족이었지만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물론, 그림문자(神聖文字)도 만들어 기록을 남겼다.
한 때 마야 달력을 보고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지구 종말론’이 퍼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기원전 3114년에 시작하는 마야달력의 순환 사이클이 2012년에 끝나는 것을 표시한 것이고, 2013년부터 다시 사이클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 종말론은 난센스였던 셈이다.
잉카문명은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남미(南美)의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는 나라인 에콰도르(Ecuador), 페루(Peru)와 칠레(Chile)에 걸쳐 번성하였던 잉카제국의 고도로 발달하였던 문명을 말한다.
현존하는 잉카유적으로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 쿠스코(Cuzco)의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있는 태양의 신전 꼬리칸차 등 유적들, 삭사이후아망(Sacsayhuaman) 유적, 신비의 공중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 등이 유명하다.
기원전부터 수많은 부족국가 형태의 집단을 이루며 토착문화를 꽃피웠던 잉카 고대문명은 15세기 잉카족(일명 케추아족/ 태양의 사람들)이 나타나 잉카제국을 건설하며 통일되었고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Francisco Pizarro)에 의하여 멸망하기까지 잉카제국은 150여 년간 서구(유럽)문명을 능가하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다.
정교한 직물직조기술, 금세공, 가파른 산비탈을 일구어 만든 계단식 밭 등의 농업 문화가 발달하였고, 종교는 태양신(인티:Inti)을 숭배하였다. 거석(巨石)의 이음새 부분을 요철(凹凸)로 다듬고 파내어 퍼즐모양으로 짜 맞추는 정교한 석축술(石築術), 치밀하게 계획된 도시설계, 뇌수술까지 했던 뛰어난 의술, 완벽하고 놀라운 고산지역의 관개시설과 고산지역에서의 맞춤한 농업기술 개발 등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5. 그 밖의 중남미 군소문명(群小文明)들
그 밖의 중남미 군소문명들을 살펴보면 BC 1500년 경 멕시코 지역에서 나타나는 올멕(Olmec)문명도 오래된 문명인데 거대한 석조두상(石造頭像) 유물들이 있다. 또, 멕시코 북부의 떼오띠와칸(Teotihuacan), 와하카(Oaxaca)지역의 자포텍(Zapotec), 그 후에 나타나는 뚤라(Tula)지역의 똘텍(Toltec)문명도 있다.
13세기에 멕시코 중부에 나타나는 아스텍(Aztec) 문명도 많이 알려졌고, 그 밖에도 호치칼코(Xochicalco), 따라스코(Tarasco), 또또낙(Totonac), 믹스텍(Mixtec) 등 수많은 문명들이 중남미 지역에서 성쇠(盛衰)를 거듭한다.
해방신학(解放神學/Liberation Theology)
중남미에서 혁명의 불씨를 지핀 카스트로(Fidel Castro)와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쓰면서 그와 같은 선상(線上)에 있는 남미의 해방신학(解放神學/Liberation theology)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방신학(解放神學/Liberation theology)은 세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와 콜롬비아 메데인(Medellin)에서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메데인 회의/1968년) 이후 중․남미 대륙에서 시작된 진보적인 가톨릭 신학운동으로, 민중(民衆)이 지주(地主)들과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착취와 억압을 받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뿌리는 페루(Peru) 출신의 신학자이며 가톨릭 사제였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érrez)가 쓴 ‘해방신학(1917)’ 이라는 책인데, 구티에레스는 이후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1960년대 말, 중남미(中南美) 등 제3세계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중 해방운동에 바탕을 둔 가톨릭 해방신학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경제적 착취, 정치적 탄압, 제국주의의 횡포 등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가톨릭 교인들의 임무라고 믿는 신학이다.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일부 혁신적인 신학자들과 가톨릭 사제들이 ‘하느님은 민중의 편에 서시는 민중의 하느님’ 이라는 슬로건으로 해방신학을 표방하자 로마 가톨릭은 전통적인 교의(敎義)의 유지를 주장하는 보수적인 입장에서 해방신학을 마르크시즘(Marxism)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여 엄격히 단속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회정치적으로 이해하는 해방신학은 전통적인 교리를 위협하는 반 기독교적 사상으로 여겨 탄압하였던 것이다. 1978년 교황으로 선출된 고(故)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현장에서 사목하는 진보 성향의 사제들을 대폭 보수적인 사제로 교체하였고, 브라질에서는 1980년 진보성향의 엘데르 카마라 대주교를 강제 은퇴시키고 보수적인 대주교로 교체했다. 새로 임명받은 대주교는 성직자 교육기관 폐쇄, 해방신학 성격의 신학교 교수 해고 등으로 해방신학을 탄압하였다.
해방신학을 언급하며 또 한 분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엘살바도르(El Salvador)의 오스카 로메로(Óscar Arnulfo Romero/ 1917~1980) 주교님이시다. 남미 해방신학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받는 로메로 주교님은 1980년 엘살바도르 우익 군사정권에 맞서 저항하다가 미사도중 총을 맞고 사망한다.
1993년, 할리우드의 존 듀이건 감독은 이 총격사건을 영화로 만드는데 제목이 ‘로메로’로, 이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암살된 로메로 주교는 로마교황청에서 복자(福者)로 추대하였다.
중남미 여러 나라들은 200여 년간 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가혹한 식민정치를 겪었고, 20세기 들어 대부분 독립을 쟁취하지만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의 팽배로 우익정권이 들어서면서 식민시대보다 더 가혹한 경제적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게 된다. 해방신학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와 착취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순수한 출발이었지만 유럽의 식민정책,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 이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충돌,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의 득세로 더욱 심해진 경제적 착취 등으로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들 속으로 파고든다.
이 자본주의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혁명의 선봉에 섰던 대표적인 이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인데 결국 중남미 반미(反美) 공산정권 수립의 빌미가 되어 중남미 대부분 나라들이 공산화로 기울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상(理想)과는 달리 독재정권을 낳았고, 극심한 경제적 궁핍을 가져와 오늘날까지도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1980년, 엘살바도르에서 로메로 주교님이 미사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그 해,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니 세계사는 동서를 막론하고 유사한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天主敎正義具現全國司祭團/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 CPAJ)은 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들로 구성된 가톨릭 사회운동 단체로 언뜻 해방신학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지만 전연 별개이다. 이 단체는 1974년, 천주교 원주교구의 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가 군사정권에 항거하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사건/民靑學聯事件)에 연루되어 구속되자 이를 계기로 결성된 단체이다. 이 정의구현사제단(CPAJ)은 유신헌법 반대운동,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 민주헌정 회복요구, 광주민주화운동 지지 등 반 군사독재운동을 벌였고,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 확보운동 등 사회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1987년 6월,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여 6월 항쟁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종교인들이 사회문제에 너무 깊숙이 관여한다는, 또 지나친 좌경 색채를 드러낸다는 우려를 받기도 한다. 이들의 공과(功過)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주교님1,2 / 로메로 주교님 1,2 / 해방신학
인류문화(人類文化)의 아이러니(Irony)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제법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영국은 신사(紳士)의 나라이다.’, ‘독일인은 정직(正直)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 신앙의 나라이다.’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사실일까?
나는 그 나라들을 두루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꼈는데 과연 그러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여러 가지 이치에 맞지 않는, 아이러니가 읽혀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라틴아메리카(Latin America) 침략사(侵略史)를 약술(略述)해 보면....
나는 스페인 전역을 3주간 배낭여행하면서 골고루 둘러보았는데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가는 곳마다 성지(聖地)나 다름없어서 여행 내내 벅차오르는 기쁨과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 마드리드(Madrid) 대성당, 바르셀로나(Barcelona)의 성가족(Sagrada Familia)성당, 몬세라트(Montserrat) 수도원의 검은 성모자상(聖母子像)....
중세(中世), 항해(航海)의 대국으로 영국과 어깨를 견주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남미로 눈길을 돌린다.
16세기 초(1519), 스페인의 정복자(征服者) 코르테스(Cortes)와 피사로(Pizarro)는 숱한 만행을 저지르지만 그 중 하나만 소개하면, 멕시코는 국토면적도 넓고 수많은 부족들이 사는데 당시에는 아스텍(Aztec)제국의 수도(首都)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현재 멕시코시티)을 점령한다. 아스텍인들은 흰 피부에 처음 보는 말을 타고 온 스페인 정복자들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테노치티틀란은 당시 둘레 10km의 호수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고 건설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도시(首都)였다고 한다.
코르테스는 당시 왕이었던 몬테수마 2세를 잡아 가두자 깜짝 놀란 아스텍인들이 제발 놓아달라고 빌자 왕이 갇혀있는 방에 금을 가득 채우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아스텍 국민들은 집에 있던 모든 금붙이를 가지고와서 방에 가득 채우는데.... 코르테스는 복수가 두려워 약속을 어기고 왕을 죽여 버린다.
뿐만 아니라 잉카제국, 마야제국 등 모두 무너지는데 속죄의 의미인가 가는 곳마다 화려한 성당이다.
페루(Peru)를 여행하면서 보면 정복자이자 약탈자였던 스페인 피사로(Pizarro)의 흔적이 곳곳에 있는데 피사로의 무자비한 학살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지만 계속 패배하자 잉카의 왕은 쫓기면서 요새를 세우지만 끝내 대적할 수 없어 달아나 종적을 감추는데 최후의 보루로 알려진 빌까밤바(Vilcabamba)는 수수께끼 속으로 사라져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빌까밤바에는 잉카의 왕이 가지고 도망간, 엄청나게 많은 황금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찾기에 혈안.....
수도였던 쿠스코(Cuzco)에서 신성계곡(神聖溪谷)으로 불리는 삐삭(Pisac)은 가는 곳마다 지금도 요새(要塞) 유적이 있고 이곳에서 멀지 않는 우루밤바(Urubamba) 강가의 고대도시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도 요새가, 그리고 숨겨진 공중도시 마추픽추(MachuPicchu)도 온전히 유적이 남았는데 이곳 봉우리에서 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계곡 절벽의 잉카길(Inca Trail)도 곳곳에 보인다.
쿠스코 삭사이후아망 유적 / 신성한 물/ 마추픽추(태양을 묶는 기둥) / 쿠스코 산토도밍고 성당
영국을 예로 보면, 1600년에 ‘동인도 회사(東印度會社)’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아시아권과 무역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을 내 걸고 인도에 첫발을 내 디디는데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의 몇몇 나라들도 앞 다투어 인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18세기 초, 영국은 제1차 산업혁명(産業革命)으로 경제적인 부를 쌓게 되자 1757년에 인도에 눈독을 들이고 첫 영·인(英·印)전쟁이라 할 수 있는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를 기점으로 인도를 정복해 나갔고 프랑스도 함께 앞 다투어 인도의 영토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1876년에 이르러 가장 세력이 우세했던 영국은 인도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묶어 인도제국(印度帝國)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최고 통치자인 황제 자리를 영국여왕 빅토리아가 겸임했으니 명실 공히 인도 대부분 지역이 영국의 속국(屬國)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세한 인도인들의 수난과 고통은 생략하고....
1947년에야 인도는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났으니 거의 300여 년이나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셈인데 가장 야비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영국이 중국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 인도에서 아편(阿片)을 생산하고 중국에 밀수(密輸)하여 엄청난 부(富)를 쌓았음은 물론, 중국을 마약중독자들의 천국으로 만든 일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엄청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기어코 중국 청(淸)나라와 전쟁이 벌어지는데 바로 ‘아편전쟁(阿片戰爭-일명 英·中 전쟁, 1839~1842)’이 그것으로 아쉽게도 중국이 패배하고 불평등 조약인 난징(南京)조약으로 홍콩(香港)을 넘겨주고....
과연 영국은 신사(紳士)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세계 1,2차 대전의 중심이 되었던, 유대인 대학살의 원흉(元兇) 독일의 히틀러(Hitler),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Fascist)였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Mussolini), 남미정복에 나섰던 포르투갈(Portugal), 태평양 전쟁의 원흉(元兇) 일본(日本)은 미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가미가제(神風) 특공대를 보내 진주만(眞珠灣) 공격....
살인마 히틀러 / 아우슈비츠(유대인 400만 명 독가스) / 일본의 진주만 기습 / 푸틴 공격으로 불타는 우크라이나
세계 2차 대전의 비극으로 전쟁터에서 희생된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유태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하고 400여만 명을 독가스로 살해한 히틀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살인마(殺人魔)??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인물이 현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Putin)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병원이고, 백화점이며 민간인 시설까지 미사일을 쏘아대어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하니... 불쌍한 우크라이나...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의 반열(班列)은 물론,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되었다고들 하는데 사실인가?
전직 대통령은 모조리 감옥생활을 하게하는, 잘한 일들보다 잘못한 일들만 파내어 감옥행....
조선시대에도 사색탕파(四色黨派)라 하여 노론(老論), 소론(少論), 남인(南人), 북인(北人)으로 정파가 갈리어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귀양가고....
의협심에 불타오른 강원도 철원의 임꺽정이 ‘이 천하에 몹쓸 쓰레기 같은 놈들 모조리 잡아 목을 쳐서 들고 임금님 앞에 나가 엎드려 용서를 빌고야 말겠다.’ 고 분연히 일어난 것이 ‘임꺽정(林巨正)의 난’인데 관헌이 잡으러 오자 바위 밑에 물고기가 되어 숨어버려서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바로 ‘꺽지’이다.
현재 우리나라 관광명소로 알려진 철원 한탄강(漢灘江) 계곡의 고석정(孤石亭)이 그곳이다.
우리나라도 국민성이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정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미국 러시모어(Rushmore) 산에 있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아브라함 링컨은 과연 잘못이라고는 전연 없는 성인(聖人)들이었을까?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Native American)들은 여기에 반발하여 역사상 최고의 추장이라 일컬어지는 성난 말(Crazy Horse) 두상(頭狀)을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주 블랙힐스(Black Hills)에 건립 중이다.(세계최대)
러쉬모어(미국) / 인디언 추장 성난 말 조각(작업 중) / 한탄강 고석정(철원) / 의적(義賊) 임꺽정
# 이번 학부모를 대상으로 파워포인트로 영상을 띄워 설명하던 강의자료임<강의 제목은 '세계 인류 문화기행':22년 9월1일>
첫댓글 폭넓은 세계 현대사~ 실제탐방하며 얻어낸 지식이 참으로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