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4일[임인/10월24일] 맑다. 임준영이 육지를 정탐하고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적선 이백 여 척 가운데 쉰 다섯 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또 "적에게 사로잡혔던 김중걸이 전하는데 김중걸이, 이달 6일 달마산으로 피난갔다가 왜놈에게 붙잡혀 묶여서는 왜선에 실렸습니다. 김해에 사는 이름 모르는 한 사람이 왜장에게 빌어서 묶인 것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날 밤 김해 사람이 김중걸의 귀에대 대고 하는 말이, '조선 수군 10여척이 왜선을 추격하여 사살하고 불태웠으므로 할 수 없이 보복해야겠다. 그리하여 여러 배들을 모아 조선 수군들을 모두 몰살한 뒤에 한강으로 올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비록 모두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도 없지 않으므로,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어 피난민들을 타일러 곧 뭍으로 올라가라고 하였다.
9월15일[계묘/10월25일] 맑다. 수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다. 그래서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9월16일[갑진/10월26일] 맑다. 아침에 별망군이 나와서 보고하는데, "적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곧장 우리 배를 향하여 옵니다"고 했다.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330여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이 중과부적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 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는 물러나 아득히 먼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여 지자포·현자포 등 각종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마치 나가는 게 바람과 우레같았다.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히 서서 빗발치듯이 쏘아대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하곤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 싸여 앞으로 어찌 될지 한 가진들 알수가 없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나는 침착하게 타이르면서,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는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이다. 일체 마음을 동요치 말고 힘을 다하여 적선을 쏘아라"고 하고서,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으면서 관망하고 진격하지 않았다. 나는 배를 돌려 바로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그 목을 베어 효시하고 싶었으나, 내 배가 뱃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차차로 멀리 물러날 것이요, 적선이 점점 육박해 오면 일은 아주 낭패다. 곧 호각을 불어서 중군에게 명령하는 기를 내리고 또 초요기를 올리니, 중군장 미조항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차로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내가 배 위에 서서 몸소 안위를 불러 이르되,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살 것 같으냐"고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다시 김응함을 불러 이르되,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고 하니,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싸우려 할 때, 적장이 그 휘하의 배 세 척을 지휘하여 한꺼번에 개미 붙듯이 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 가려고 다투었다. 안위와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어지러이 싸우다가 힘이 거의 다하게 되었다. 나는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선 세 척이 몽땅 다 엎어지는데, 녹도만호 송여종, 평산포대장 정응두의 배가 줄이어 와서 합력하여 적을 쏘았다. 항복해온 왜놈 준사란 놈은 안골포의 적진에서 투항해온자이다. 내 배 위에서 내려다 보며, "저 무늬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놈이 적장 마다시다"고 하였다. 나는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구리를 던져 이물로 끌어 올렸다. 그러니 준사는 펄쩍 뛰며 "이게 마다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명령하여 토막으로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린다. 이때 우리의 여러 배들이 일제히 북을 치며 나아가면서 지자포·현자포 등을 쏘고, 또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그 소리가 바다와 산을 뒤흔들었다. 적선 서른 척을 쳐 부수자 적선들은 물러나 달아나 버리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이것은 실로 천행이다.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도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무안군 암태면)로 진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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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다만 난중일기나 그 기록이 장군에게 참패한 왜의 농간으로 조작되었다는 기록이 있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난중일기와 기록의 연고를 올려봅니다.
윗 부분의 난중일기는 명량해전이 있기 전 이틀과 명량의 전투기록을 적은 장군의 일기입니다.
아마 밑줄 부분이 백병전의 증좌로 보고 논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우리가 흔히 [난중일기]로 알고 있는 장군의 일기는,
장군을 지극히 높이 인정하신 정조의 영(令)으로 윤행임과 유득공이 그 원본을 초록하여 다른 글과 함께 묶은 [이충무공전서]로 묶은 책의 한 부분으로 기록된 이름입니다. 왕명으로 장군의 일기를 다시 정리.교감한지라, 오.탈자를 바르게 고쳐 기록하여 웬만한 부분은 다 원전에 가깝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실학자라 일컫는 중인계층의 신분을 등용코저하는 정조의 배려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하겠습니다.
다만 충무공의 인간적인 부분인 원균이나 권율 등에 대한 노여움과 평가 부분은 일부 빠졌습니다만, 이 또한 후대의 학자에 의해 전부 탈초되고 해석 되었습니다.
그럼에 일본에 의하여 왜곡되었다 함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임란에 대하여 많이 아시는 분이시니, 일제시대 바로 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도고 헤이야치로가 그 전쟁에 임하기전 한산도의 제승당으로 그와 제장들을 이끌고 와서, 장군께 싸움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한 부분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그가 러시아의 무적함대와 싸워서 이긴 전법이 바로 장군께서 한산대첩에 이용한 학익진을 원용한 정(丁)자진임은 아실 것입니다.
또한 그의 참모가 도고를 일러,
" 장군은 영국의 넬슨, 조선의 이순신과 비교할 만하다." 추켜주니
그가 한 말,
" 나를 넬슨에 비유하는 것은 가하나, 이 순 신 장군에 비교함은 不可하다." 는 말이 있었으니, 그들이 비록 조선을 식민 지배하였다 하나, 공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은 당시에도 여전하였고, 그러함에 공의 전공을 폄훼하거나 난중일기를 왜곡하였다 함은 논하기엔 극히 불경스러운 논란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정조께서는
조선은 물론이고 이 땅의 왕 중에 신하의 비문(正祖大王御製神道碑文)을 유일하게 손수 쓰신 분입니다. 그 비석의 서체도 당시 유행하던 구양순 체가 아닌 안 진 경체로 서각하심은 안 진 경의 충성심 만큼이나 그 공을 높이 사고 추모의 정이 컸기 때문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十四日壬寅 晴 任俊英偵探陸地 馳來言賊船二百餘隻內 五十五隻 已入於蘭前洋 又言被擄逃還人仲乞傳言 今月初六日 避亂于達磨山 爲倭所擄縛載倭船 金海名不知人 乞于倭將處解縛 夜 金海人附耳潛言曰 朝鮮舟師十餘隻 追逐我船 或射殺焚船 不可不報復 招聚諸船 盡殺舟師 然後直上京江云云此言雖不可盡信 亦不無是理 故送傳令船于右水營 告諭避亂人 卽令上去
십사일임인 청 임준영정탐육지 치래언적선이백여척내 오십오척 이입어란전양 우언피로도환인중걸전언 금월초륙일 피란우달마산 위왜소로박재왜선 김해명부지인 걸우왜장처해박 야 김해인부이잠언왈 조선주사십여척 추축아선 혹사살분선 불가불보복 초취제선 진살주사 연후직상경강운운차언수불가진신 역불무시리 고송전령선우우수영 고유피란인 즉령상거
十五日癸卯 晴 數小舟師 不可背鳴梁爲陣 故移陣于右水營前洋 招集諸將約束曰 兵法云 必死則生必生則死 又曰 一夫當逕 足懼千夫 今我之謂矣 爾各諸將 勿以生爲心 小有違令 卽當軍律 再三嚴約 是夜 神人夢告曰 如此則大捷 如此則取敗云
십오일계묘 청 수소주사 불가배명량위진 고이진우우수영전양 초집제장약속왈 병법운 필사즉생필생즉사 우왈 일부당경 족구천부 금아지위의 이각제장 물이생위심 소유위령 즉당군률 재삼엄약시야 신인몽고왈 여차즉대첩 여차즉취패운
十六日甲辰 晴 早朝 別望進告 賊船不知其數 直向我船云 卽令諸船 擧碇出海 賊船三百三十餘隻 回擁我諸船 諸將自度衆寡不敵 便生回避之計 右水使金億秋 退在渺然之地 余促櫓突前 亂放地玄各㨾銃筒 發如風雷 軍官等簇立船上 如雨亂射 賊徒不能抵當 乍近乍退 然圍之數重 勢將不測 一船之人相顧失色 余從容諭之曰 賊雖千隻 莫敵我船 切勿動心 盡力射賊 顧見諸將船 則退在遠海觀 望不進欲回船 直泊中軍金應諴船 先斬梟示 而我船回頭 則恐諸船次次遠退 賊船漸迫 事勢狼狽 卽令角立中軍 令下旗 又立招搖旗 則中軍將彌助項僉使金應諴船 漸近我船 巨濟縣令安衛船先至 余立于船上 親呼安衛曰 安衛欲死軍法乎 汝欲死軍法乎 逃生何所耶 安衛慌忙突入賊船中 又呼金應諴曰 汝爲中軍而遠避 不救大將 罪安可逃 欲爲行刑 則賊勢又急 姑令立功 兩船直入交鋒之際 賊將指揮其麾下船三隻 一時蟻附安衛船 攀緣爭登 安衛及船上之人 殊死亂擊 幾至力盡 余回船直入 如雨亂射 賊船三隻 無遺盡勦 鹿島萬戶宋汝悰,平山浦代將丁應斗船繼至 合力射賊 降倭俊沙者 乃安骨賊陣投降來者也 在於我船上 俯視曰 着畫文紅錦衣者 乃安骨陣賊將馬多時也 吾使金石孫鉤上船頭 則俊沙踴躍曰 是馬多時云 故卽令寸斬 賊氣大挫 諸船一時皷噪齊進 各放地玄字 射矢如雨 聲震河岳 賊船三十隻撞破 賊船退走 更不敢近我師 此實天幸 水勢極險 勢亦孤危 移陣唐笥島
십육일갑진 청 조조 별망진고 적선부지기수 직향아선운 즉령제선 거정출해 적선삼백삼십여척 회옹아제선 제장자도중과부적 편생회피지계 우수사김억추 퇴재묘연지지 여촉로돌전 란방지현각양총통 발여풍뢰 군관등족립선상 여우란사 적도불능저당 사근사퇴 연위지수중 세장불측 일선지인상고실색 여종용유지왈 적수천척 막적아선 절물동심 진력사적 고견제장선 칙퇴재원해관 망부진욕회선 직박중군김응함선 선참효시 이아선회두 즉공제선차차원퇴 적선점박 사세랑패 즉령각립중군 령하기 우립초요기 즉중군장미조항첨사김응함선 점근아선 거제현령안위선선지 여립우선상 친호안위왈 안위욕사군법호 여욕사군법호 도생하소야 안위황망돌입적선중 우호김응함왈 여위중군이원피 불구대장 죄안가도 욕위행형 즉적세우급 고령입공 량선직입교봉지제 적장지휘기휘하선삼척 일시의부안위선 반연쟁등 안위급선상지인 수사란격 기지력진 여회선직입 여우란사 적선삼척무유진초 녹도만호송여종,평산포대장정응두선계지 합력사적 항왜준사자 내안골적진투항래자야재어아선상 부시왈 착화문홍금의자 내안골진적장마다시야 오사김석손구상선두 즉준사용약왈 시마다시운 고즉령촌참 적기대좌 제선일시고조제진 각방지현자 사시여우 성진하악 적선삼십척당파적선퇴주 경불감근아사 차실천행 수세극험 세역고위 이진당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