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제가 찍은 대전 국립 현충원 사진들입니다 (여긴 첫글이라 덜덜~ 하오나 용기를 내고 )
일을 잠시 쉬고 내일은 너무 붐빌테니 언니들과 엄마와 아버지 계신 대전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쉰살 조금 넘어 교감 승진을 6개월 앞두고 가정밖에 몰랐던 아버지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멀리서 오신 엄마는 묘지앞에서 주기도문과 성모송으로 기도한뒤 "내가 이리 혼자 딸들을 잘 키웠어요. (순간 전 뜨끔~) 나도 몇년뒤 갈께. 조금만 기다려요" .. .. .. .. .. .. ..
저는 어릴적 부모님이 싸우는걸 단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어릴때 술 담배 전혀 못하시고 땡~하면 귀가해 가족만 챙기던 아버진 엄마를 늘 발등에 태우고 안아서 아이들 보는 앞에서도 안부끄러우신지 두분이 자주 부루스 추던 적을 기억합니다 어릴적 마당에서 놀고 있는 딸들에게 아버지는 " 우리 딸들은 사랑한다고 하면 거지에게라도 시집 보내줘야지" 하며 흐뭇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당시엔 뭔 말인지 제대로 몰라 흘려 들었지만 시절이 지나 돌아보면 그런 말은 부모라면 엄청나게 하기 힘든 말이란걸 깨달았고 우리 아빠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수도 있는 로맨티스트셧던듯 합니다..
음악을 무지 좋아하셨던 아빠는 주말에 딸들 깨란건지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앉아서 놀던 고옷~ " 이런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곤 하셨습니다. 우린 시끄러워 짜증내며 깨곤 했습니다..
.. .. .. .. .. .. .. .. .. ..
귀경하다가 어릴적엔 저는 좋은 추억만 있어 언니들에게 "언니 우리 어릴적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치?" 했더니 언니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린 아버지에게 좋아한다고 키워줘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훗날 누군가 또 떠난 후 사무치게 후회할수 있기에 마음속 하지 못했던 말, 평소에 표현도 하고 , 나중 후회되지 않도록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도 더 진솔하고 따뜻하게 대해야겠습니다.. 영국 작가가 '잊히지 않은 것은 죽은 것이 아니다..' 내 맘 속에 늘 살아계신 아버지 .. "아빠...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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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구보다도 훌륭하시고 가정적인 아버님 밑에서 자라셔서 너무 부럽습니다.
돌아가시니 그리움으로 좋게만 보여
아버지께 서운했던 거두 눈녹듯 사라지더라구요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버지 생각하면 아무데서나 울컥. ㅎ
처음 보는 낯선 여자라 댓글 달기 어색하셨을텐데....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는 내내 아빠의 따스함과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그 시대 부모님들에게 흔히
볼 수 없는 세련되시고 로맨틱 하셨던 분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경상도
안동 분으로 말이 없으시고 생전
부인한테나 자식들에게 따뜻한 말
해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장하는 내내 아버지와 다툼도
많았습니다. 그러고보니 한편으론 아버지의
정이 그립고 아쉬웠던것 같습니다. 너무도 다른 청라언덕님의 아버님에 대한 글을 읽고나니 왠지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좋은 기억만 있었던건 아니고 이런 일도. ===>
한번은 중학교때 여름.. 짝꿍이 시골서 수박밭한데서 신기해서
여름에 거기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수박 먹고 놀다가 밤 9시경 귀가하니
아버지는 경찰에 연락하고 온 집안이 난리
잘못하면 아빠는 딸들에게 조근조근 부드럽게 뭘 잘못했는질 말씀한 뒤
회초리로 쎄게 종아리를 때립니다
그날 종아리 멍이 들 정도로 한 10대는 맞은듯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울땐 잊을려고 미웠던 이순간을 떠올립니다)
그날이 아버지 살아 계실때 제가 최고 많이 울었던 날 ㅎ
지금 생각해도 스파르타식 아버지 교육법은 심하셨던듯 합니다.
아버지가 미안해선지 자꾸 말을 걸어도 한달간 저는 대답도 안하고 삐져있었더랬습니다.
지금은 그것조차 추억이고 그리움이지만.
@청라언덕 뭐유? 회초리 맞을만 했슈!
그리고 말씀은 아빠가 밉다고 해도
그 상황마저 그리워 보이오!
어쨋든 청라언덕님의 따뜻했던
아버님의 기억과 추억이 부럽습니다!
@서준 님...
예 알겠습니다 ㅎ
우리 아버지는 다정다감은 아니셨지만
딸들에게는 마냥 약하셨죠 고등2학년때
친구들하고 노느라 좀 늦게 다녔는데 회초리를 힘껏 올리시곤 내 다리에 닿을때는 그냥 갖다대기만 하시던...
지금도 삼시세끼 엄니가 차려 주셔야 해서
울 엄니 스트레스가 안타깝지만... 주말이라도 내가 해야는데 난 벙개 다니느라^^
아직도 부모님 보호아래 있는것 같아 죄송한 맘이지만 감사할 따름이지요~ 늘 걱정은 됩니다.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어요.. 꼭 해야지 하면서...
오늘 바쁘셨네 청라님
아버님께 다녀오느라... 음악 올리랴..
댓글 다시느라...^^
영상과 음악이 딱 좋으네요
아버님도 오늘은 가족들과 만나
흐믓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코러스아씨..그쵸 그게 일반적 아버지상이죠.
엄마처럼 때릴려하고도 못때리는.
남학교에만 수십년 근무하셔서 아버진 남학생들 대하듯 한듯.
언니가 운전하고 쇤네 멀티가 가능해 폰으로 하니 썩 안바빴음 ㅎ
주말 번개하러 댕기신단 말에 귀여워 빵 터지고
저는 지금 내일 갈 트레킹에 음식들 만드느라 부산함
다람쥐 없는 허가된 낮은 동산에서 줏은 도토리로, 한국산 도토리묵 만드는 중
(선물할 묵 가루도 2봉지 갖고 갑니다)
@청라언덕 여태 안자고 내일 음식준비?
바람직한 우리 청라언덕님^^
낼 효도좀 할랫더니 묵 먹으러
트래킹 대열로..
쪼금만 하고 그만 주무셤~
ㅎ 아버님과 좋은시간 보내시고 오셨는지요???^^
교장선생님 잘 주무셨나요
네~
거긴 아버지께서 늘 환하게 반겨주시는듯 합니다^^
이 공간 모든 글 다 읽으시는 거 때론 힘드시지요
우리가 편히 글 쓰며 좋은 분들과 소통할수있는거도 교장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고맙습니다^^
어제 대전 현충원에 다녀오셨다고 해서..
아버님이 군인이셨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훌륭하신 교육자셨네요.. 부러움입니다.
글을 읽으며 주마등처럼 저는 아버지에 대한 여러 기억이 생각됩니다.
추억보다 그저 기억처럼요..
영국 작가가 '잊히지 않은 것은 죽은 것이 아니다..'
내 맘 속에 늘 살아계신 아버지 ..
"아빠...사랑해요..."
주신 마지막 부분 글에 잠시 멈춤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창작방 벗님 소나무님 안녕하셨죠
전 오늘 트레킹 다녀와.
아버지는 군인이 아니시고 한국전쟁때 오른쪽 눈 실명, 오른팔 다치셨거든요
소나무님도 아버님 그리운거군요...토닥토닥
감사합니다
'잊히지 않은 것은 죽은 것이 아니다' 마지막 명언을
마음 속에 담아봅니다.
현충원 둘레길은 인기 명소라서 대전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죠.
글을 읽으면서 청라언덕님의 포근한 인품까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전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군요.
상아탑님 안녕하세요
아버지와 가까운 곳에 사시군요
전 대전은 1년에 한번 가는 곳
좋은 기억만 남아 좋게 쓰여 그렇지 저도 장단점 다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랍니다.
좋은 밤 되시길요
울아부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있지요.
울오빠도 현충원에 계시지요
시크님 오라버님도 현충원에 계시군요
혹 우리 아버지 옆은 아니실까.
(아버지는 147번 쪽요 ㅎ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