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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 straw bag
곡식 ·비료 ·소금 등을 담기 위해 짚으로 섬처럼 만든 용기.
새끼로 날[經]을 만들고, 짚을 씨[緯]로 하여 돗자리를 치듯 쳐서 울을 깊게 한 후, 양쪽 가장자리를 꿰어 만든다. 1900년대 초에 일본에서 들어왔으며, 명칭도 일본어 ‘가마스’에서 비롯되었다. 가마니가 들어오기 전에는 섬을 썼는데 날 사이가 성기어 낱알이 작거나 도정된 곡물은 담지 못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치는 가마니틀을 사용하였으나, 동력을 이용하는 가마니틀이 출현하였고 정부에서도 1970년대 말까지 매입하여 가마니를 농가에서는 부업(副業)삼아서 짰다. 최근에는 크라프트지(紙) ·합성수지 등을 사용한 포대가 개발되어 생산은 줄어들고 있다.
볏짚으로 곡물 ·비료 ·소금 등을 담는 가마니를 짰던 기계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날을 만들고 짚을 씨로 하여 가마니를 짜는 기계로서, 그 구조에 따라 인력 2인용, 인력족답용(人力足踏用), 인력 겸 동력용 회전형, 동력자동형 등으로 분류된다. 인력용은 볏짚을 공급하는 사람과 공급된 볏짚을 바디로 탄탄하게 다지는 사람이 합동해서 짜는 기계이며, 족답용은 발로 밟아 구동동력(驅動動力)을 발생시키고 손으로 볏짚을 공급하면서 짜는 기계이다. 동력자동형은 틀에 새끼를 나르는 부분, 새끼를 한 줄 간격으로 분리시키는 부분, 볏짚 공급부, 공급된 볏짚을 짜는 부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동식 기계이다. 최근에는 마대(麻袋) ·비닐포대 ·종이부대 등이 많이 보급되어 가마니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가 래. spade
흙을 파는 농기구의 하나.
삽날을 끼운 넓적한 몸에 긴 자루를 박고 날 양편에 줄을 매어 사용한다. 1사람이 자루를 잡고 2∼4사람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당겨 흙을 떠내는 것으로 삽보다 작업효율이 높다. 가랫날을 끼우는 부분을 가랫바닥, 자루와 몸 부분은 가랫장부, 날 양편에 맨 줄은 가랫줄이라 한다,
간승間繩 <= 못줄
일정한 거리마다 눈표를 붙인 긴 노끈
씨를 뿌리거나 모종할 때 심는 간격을 조정하는 데 쓰는 노끈으로, 일정한 거리마다 표를 붙여서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거리를 조정한다. 벼를 이앙(移秧)할 때 쓰이는 못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필요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한 여러 가지 간격의 못줄이 있다.
갈퀴 rake
대쪽 끝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서 부채살처럼 펼친 후 자루를 붙여서 만든 농기구
낙엽이나 곡물을 긁어 모으는 데 사용한다. 8 ·15광복 이후 얼마 동안 갈퀴는 농촌에서 지게 ·도리깨 등과 함께 중요한 농구였으며, 그 용도도 다양하였다. 농가 연료를 솔가리 ·가랑잎으로 충당하던 시기에는 그것을 긁어 모으는 데 사용한 도구였고, 벼 ·보리 ·밀 ·메밀 ·콩 등을 탈곡할 때, 알곡을 덮고 있는 검불을 걷어내거나, 흩어진 알곡을 모으는 데도 사용하였다. 한편, 여러 사람들의 재물을 부정한 방법으로 긁어 모으는 탐관오리의 토색(討索)질을 빗대어서 ‘갈퀴질한다’고 하였으며, 화가 나서 험상궂게 된 눈을 ‘갈퀴눈 같다’고도 한다.
개상 .tree thresher
타작할 때 알곡을 떠는 데 쓰이는 재래식 농기구.
지방에 따라 챗상·대상·공상·탯상·메·타작대라고도 한다. 조선 정조 때 서호수(徐浩修)가 지은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가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볏단이나 보릿단 등을 높이 쳐들었다가 이 개상에 세차게 태질을 하여 곡식의 알갱이를 떨어냈는데, 이것을 "개상질한다"고 하였다.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마치 밥상처럼 네모지게 깎은 통나무에 네 다리를 붙이거나, 서까래 같은 굵은 통나무 3∼5개를 나란히 잇대어 양쪽에 지름대를 넣거나 새끼줄로 엮은 다음 다리를 붙여서 만든 것 등이 있다. 이것을 그냥 쓰기도 하지만 여기에 넓적한 돌을 얹어서 쓰기도 하였다.
이런 개상이 없는 농가에서는 그 대용으로 한쪽이 평평한 굵은 통나무를 그대로 엎어 놓고 사용하거나 나무절구를 뉘어 놓고 사용하기도 하였다. 강원도의 도계(道溪) 지방에서는 크고 넙적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탯돌'이라고 하였다.
개상은 높이 60∼80㎝ 정도 되고, 길이는 여러 명이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하다. 성인 남자 한 사람이 일할 때 하루에 벼 1.5∼3가마 정도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개상질은 아무리 잘하여도 낟알을 완전히 떨어내기는 어렵다. 덜 떨린 것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짚채' 등을 이용하여 떨어내는데, 이것을 "짚 앗는다" 또는 "'벼 앗는다"라고 한다.
조선 후기 무렵 낟알을 좀더 편리하게 떨어낼 수 있는 홀태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개상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거릿대 tree fork
농기구의 일종
가지가 세 갈래로 벌어진 물푸레나무 등의 자연목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불에 구워 휘어서 만든다. 두엄이나 낙엽 등을 걷어 내거나 뒤집거나 지게 발채에 퍼 담는 데 쓴다. 형태가 쇠스랑이나 삼지창을 닮아서 강원 일대에서는 ‘나무 쇠스랑’이라 부르고 전남 산간 지대에서는 ‘삼지창’이라 이른다. 거릿대라는 이름은 3개의 발이 앞으로 뻗어 나간 모습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소 따위의 길마 위에 덧얹고, 볏단 ·보릿단 등을 싣는 농기구
둥근 나무로 ‘II’자 모양을 짜고, 좌우 바깥쪽으로는 새끼줄을 매었다. 가운데는 길마 위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짧은 막대 2개를 가로 끼워놓았다.
이와 비슷한 것에 ‘발채’가 있는데,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발채는 새끼줄 6∼10가닥을 매고 늘어진 끝을 서로 엇결어서 방석 같은 바닥을 만든다. 바닥은 띠풀 ·억새 등으로 짠 것을 따로 매달기도 한다
고무래. 고물개 wooden rake
(불고무래 fire rake ,<= 잿고무래)
논밭의 흙을 고르고 씨 뿌린 후에 밭의 흙을 덮으며, 곡식·재 따위를 긁어모으거나 펴 너는 데 쓰이는 농기구
직사각형·반달형·사다리꼴 등의 널조각 위쪽에 자루를 박아 'T'자 모양으로 만든다. 용도에 따라 논밭에서 쓰는 것과 염전에서 쓰는 것, 곡식을 멍석 등에 널어 말리는 데 쓰는 것, 부엌에서 재를 긁어내는 데 쓰는 잿고무래 등이 있다.
모양에 따라 고무래 날을 이빨처럼 어긋나게 톱으로 썰어내는 것과 고무래 등에 발을 달아서 사용하는 발고무래가 있다.
곡괭이 pickaxe
괭이의 한 가지로, 뿔괭이라고도 한다. 보통의 괭이보다 날의 너비가 좁고 기름하다. 가운데에 괴구멍이 있어 자루를 끼우게 되어 있고, 양쪽 끝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양 끝에 황새 부리처럼 뾰족하게 날이 서 있다.
날은 강철로 되어 있고 자루는 대개 참나무·느티나무 등의 단단한 목재를 쓴다. 날의 길이는 150㎝ 내외, 자루의 굵기는 3∼4㎝ 정도이다.
돌이 많은 밭을 갈 때 주로 사용되고, 김을 맬 때 땅을 파거나 고르는 작업을 할 때에도 사용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농기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요즘도 토목공사 등에서 이용되고 있다
곰방메 sledgehammer
논밭을 간 다음 흙덩이를 깨뜨리거나 골을 다듬는 데, 또는 씨뿌린 뒤에 흙을 덮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둥근 나무토막에 구멍을 뚫고 긴 자루를 끼워 T자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곰방메의 나무토막에 4∼6개의 구멍을 뚫고 굵은 발을 끼워 흙덩이를 깨거나 덮는 데 편리하게 한 것도 있는데, 이를 발곰방메라 한다
괭이 hoe
1. thrust hoe 2. scuffle hoe
땅을 파거나 작토(作土) 또는 제초(除草) 등의 작업에 쓰이는 농기구
끝이 넓적한 날로 되어 있으며, ㄱ자로 구부러진 끝은 굇구멍으로 되어 있어 여기에 긴 자루를 낀다. 자루는 단단한 재질의 참나무나 느티나무로 만들며 길이는 대체로 150 cm 안팎이다. 날의 생김새에 따라 가짓잎괭이 ·삽괭이 ·토란잎괭이 ·수숫잎괭이 등이 있다.
역사는 농경문화의 발상 및 그 발달과정과 거의 궤(軌)를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미 신석기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돌칼 ·돌낫 ·돌괭이 등이 발견되었다. 돌괭이는 경운용(耕耘用), 돌낫은 수확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토기 [攪土器]
교쇄기(攪碎器)라고도 한다. 말이나 소가 끌게 하여 표토(表土)의 흙덩어리를 부스러뜨리고 풀뿌리 따위를 털어내어 흙을 부드럽게 하는 이[齒]가 많은 기구이다.
보습과 비슷하나 흙을 갈아 누이는 장치가 없으며, 또 깊이갈이에도 부적당하다. 보습쇠의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술 ·성애 ·한마루가 세모꼴을 이루는 것은 쟁기와 비슷하나 보습 끝이 무디며 대체로 술이 곧게 내려가고 몸체가 빈약한 점이 다르다. 보습도 쟁기보다 덜 휘었고, 볏이 없다. 보습은 한마루에 의지한 덮방으로 술에 고정시켰다. 손잡이는 술 위쪽에 자루를 끼워 양쪽으로 잡을 수 있다. 소 한 마리가 끌거나 사람이 지게를 지고 지게가지에 끈을 매어 끌기도 한다.
주로 밭에서 바닥이 좁고 험한 곳을 얕게 갈 때 쓰며, 쟁기로 갈아놓은 논밭의 골을 타는 데도 쓴다. 볏밥이 양쪽으로 갈려 나가기 때문에 감자밭 등을 맬 때 편리하다.
끙게.끌개
씨앗을 뿌리기 전에 밭을 판판하게 고르고 흙을 부수뜨리는 데 쓰는 농기구.
보리씨를 뿌리고 흙을 덮을 때 쓰기도 하고, 어린 소를 길들일 때도 이것을 이용한다. 무겁고 긴 각목(角木) 양쪽에 나무 자루를 박고 여기에 끈을 매어 소가 끌기도 하고, 2줄을 맨 가마니에 돌이나 뗏장을 실리거나 또는 아이들을 그 위에 태워 소가 끌게도 한다.
나래
논,밭을 평평하게 고르는 농기구
모양은 써레와 비슷하다. 1∼3개의 나무판을 잇대어 만들거나, 밑에 댄 1개의 나무판 위에 작은 나무 7∼10개를 나란히 엮어 대기도 하며, 써레의 발 부분에 넓적한 철판을 대어 쓰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 몸을 이루는 나무판 아래 쇠날을 대기도 하며 함석판 아래에 쇠날을 댄 것도 많다.
논바닥이 불규칙하여 물이 고르게 퍼지지 않아 높은 곳의 흙을 낮은 곳으로 끌어내릴 때(바닥걸기질), 논·밭에 물이 나서 흘러 들어간 토사를 처리할 때, 논이나 밭을 개간할 때도 많이 사용한다.
이 밖에 집터를 닦을 때, 보(洑)를 막을 때도 사용하며 떨어 놓은 곡식을 한 곳에 모을 때에도 사용한다.
흙덩이를 고르거나 땅을 다지는 나무 연장
《농사직설(農事直說)》에는 윤목(輪木)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름 30cm, 길이 80cm 정도의 통나무에 길이 13cm, 지름 5cm 정도의 토막나무발이 30여 개가 박혀 있다. 또한 양쪽에 고리가 달려서 소나 사람이 끌고 다닌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의 효과는 바람에 씨가 날리지
않고 수분의 증발도 막아 준다.
scythe(큰 낫). pruninghook(전지용 낫)
농작물 또는 풀, 나무를 베는 데 쓰는 'ㄱ'자 모양으로 생긴 기구
낫의 고어는 ‘낟’이다. 칼날의 ‘날[刀]’은 ‘낫’과 어원이 같은 말이다. 농경과 더불어 발명된 수확용 농기구이다.
고대 동방에서 일어난 맥작농경(麥作農耕)에서 그 이삭을 베는 데 돌로 만든 날을 끼운 낫을 사용하였다. 그 원형은 사슴 또는 야생마 등 초식동물의 아래턱뼈와 비슷했을 것이다. 톱니 모양의 이빨 대신 테두리를 톱날처럼 판 돌날을 잇몸 모양의 틀에 붙인 것이 발견된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한 줄로 늘어선 돌날은 톱니낫의 구실을 하고, 자루의 구실을 하는 아래턱뼈 모양의 나무는 쥘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이런 종류의 낫이 보릿대를 베는 데 알맞다는 사실은 여러 나라에서 보리베기를 하는 데 톱니바퀴 모양의 낫을 쓰는 점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벼농사를 많이 하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조개껍데기의 전을 갈아 벼이삭을 자르는 데 썼으며, 한국·일본·중국 등에서는 조개껍데기 대신 납작한 돌로 만든 칼, 즉 돌칼을 사용하였다. 쇠가 나온 뒤부터는 같은 모양의 철제품이 이것을 대신하였으나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아직 화베이지방[華北地方]·몽골·남만주 등에 전해져 좁쌀끌·손톱낫 등으로 불리면서 쓰인다.
오늘날의 낫과 같은 모양인 것은 중국에서는 이미 신석기시대의 돌낫으로 시작하여 뒤에 쇠낫으로 바뀌었다. 낫은 계속 발전하여 날 뒤쪽을 구부려 여기에 자루를 만들어 끼웠는데, 날과 자루는 둔각(鈍角)을 이루었다. 돌칼 모양의 손톱낫은 이삭을 자르는 데 썼고, 쇠낫은 포기를 베는 데 썼으므로 이 두 종류의 낫의 교체는 농사방법의 개량과 관련이 있다.
유럽의 신석기시대 낫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청동기시대 이후 청동 또는 쇠로 만든 낫이 발달하였으며, 청동으로 만든 낫 가운데는 날과 자루를 하나로 만든 것이 있고, 그 모양이 아래턱뼈 모양에 날을 끼운 낫과 닮은 것이 있는 것을 보면 동양식 돌날의 낫이 만들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낫의 종류는 모양이나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눈다.
담배낫은 담배의 귀를 따는 데 사용하는 작은 낫을 말하며,
밀낫은 풀이나 갈대 등을 밀어서 깎는 낫을 말한다. 밀낫의 형태는 보통 낫과 같으나 등이 날이 되고 자루가 긴 편이다.
버들낫은 보통 낫보다 날이 짧으며, 예전에 고리를 만들 때 사용하였다.
벌낫은 벌판의 무성한 갈대 따위를 휘둘러서 베는 도구이다. 모양은 보통 낫을 닮았으나 날이 크고 자루가 길어서 두손으로 쥐어야 한다. 갈대가 많은 제주도에서 많이 사용한다.
접낫은 작은 낫이다. 접낫의 날끝은 물음표처럼 오그라들어서 옥낫으로도 부른다.
뽕낫은 자루가 보통 낫처럼 길지만 날 길이는 짧다. 보통 낫으로 남자 한 사람이 하루에 30여 평의 벼를 벨 수 있다.
낫과 관련하여 무속신화(巫俗神話)인 성조(成造)대감 이야기에, 그가 낫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천궁대왕(天宮大王)과 옥진부인(玉眞夫人)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 인간에게 집을 지어주려고 각종 연장을 만들었는데, 이 중 하나가 낫이라고 한다.
고려가요 《사모곡(思母曲)》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낫과 호미에 비유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더 적극적이고 지극함을 읊고 있다.
소나 말이 끄는 수레
대개 수레바퀴가 양쪽에 각기 하나씩 2개가 달려 있다. 남도 지방에서는 소의 목에 멍에를 걸고 밧줄을 차체(車體)에 매어서 끌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북도 지방에서는 멍에에서 차체까지 직접 장대로 연결되어 있으며, 바퀴는 옛날에 나무바퀴에 쇠테를 두른 것을 사용했으나 근래에 와서는 자동차 바퀴로 대치되었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초(軺)를 달구지라고 하였다.
대패 planer
목재의 표면을 깎는 목공구
↑ 장대패
막대패·중간대패·다듬질대패로 나누어진다. 또 평면을 깎는 평대패, 특수한 부분의 가공에 사용되는 측면대패·홈대패·배대패·모따기대패·내원대패·외원대패 등이 있다. 구조는 대팻집과 대팻날로 되어 있다. 대팻집의 재료에는 마찰이 적고 거스름결이 곧으며, 수축변형이 적은 참나무·느티나무·떡갈나무 등이 사용된다.
대팻날은 연강(軟鋼)에 탄소공구강을 단접(鍛接)·열처리한 것을 사용한다. 평대패에서 대패의 크기는 대팻날을 mm로 측정한 치수로 부르는데, 50 ·60 ·70 ·80의 것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패로 절삭하는 과정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① 1단계:대팻날이 재료의 절삭면을 파고 들어가는 최초의 순간의 힘 F는 뒷날에 수직방향으로 작용하는 힘 F1과 수평방향으로 작용하는 힘 F2로 나뉜다. 이때의 힘의 합성은 F = F1 + F2이다. 여기서 합력 F는 대패의 인장력(引張力) 및 전단력(剪斷力)이 되며, 수직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클수록 마찰력은 커지지만, 수평방향의 힘이 크면 그 반대가 된다.
② 2단계:계속하여 절삭이 진행되면, 나뭇결방향으로 대팻밥이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
③ 3단계:더욱 절삭해 들어가면 전단력의 작용으로 대팻밥이 길어져 꺾이고 금도 없어진다.
대패를 사용할 때에는 대팻날에 무리를 주지 않고, 고운 절삭면을 얻기 위해 대팻날이 알맞게 조정된 대패를 사용해야 한다. 대팻날을 뺄 때에는 왼손으로 대패를 잡고, 오른손의 망치로 대팻집머리의 양쪽을 가볍게 때려서 뽑아낸다. 또 날을 박아 넣을 때에는 대팻날과 덧날을 조금씩 때려 박도록 한다.
대팻날 끝을 시선(視線)에 일치시키고 날과 징머리부분을 알맞게 때려 조정하면 된다. 대패를 오랫동안 사용하면 대팻집 밑면이 닳아서 평평하지 못하므로 깨끗한 절삭면을 얻을 수 없다.
도끼 axe
주로 나무를 자르기 위한 도구 또는 목공구(木工具)로 쓰이는 날붙이.
역사적으로 보면 도끼는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어온 인류 최고(最古)의 격투용 무기의 하나였다. 중세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것으로, 짧은 손잡이가 달린 손도끼와 창과 같이 긴 자루가 달린 것이 있다. 도끼의 사용 역사는 오래 되어 그 원류는 석기시대의 석부(石斧:돌도끼)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도구들 중 하나이며, 현재도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돌도끼를 사용하고 있다.
돌도끼의 재료로서는 견고한 돌이 사용되었는데, 적당한 돌이 없는 지역에서는 큰 조가비나 동물의 뼈 등도 사용하였다. 그후 금속의 사용과 함께 도끼는 청동 ·철 등을 재료로 사용하였고, 그후에는 철합금(鐵合金)도 이용하게 되었다. 최초의 금속제 도끼의 형태는 단순한 돌도끼의 형태를 모방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발전되어 크노소스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과 같은 양날도끼, 또는 서양 중세의 전투용 도끼, 그 밖에 반월형(半月形)을 한 장식용 도끼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변천하였다.
도끼의 용도는 처음 수렵생활에서 이용되던 형태에서 점차 전투에 필요한 무기로 발전하였고, 한편으로 생활용구로 변천되었다. 서양 중세 초기의 프랑크족(族)은 자루가 짧은 손도끼를 전부(戰斧)로 사용했으며, 중세 후기에는 기사(騎士)들도 이것을 사용하였다.
도끼는 또 많은 민족에 의해 신(神)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종교적인 예배의 대상물로 숭배되기도 했다. 양날도끼는 이집트 신화에서는 예배의 대상이었고, 크레타섬의 남부에서는 단 위에 도끼를 올려놓은 예배당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지중해의 기원전 유적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 밖에도 아프리카의 콩고 지방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도끼를 신성시(神聖視)하는 풍습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지역의 민간신앙 ·속담 ·민화(民話) 등에 도끼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도끼를 신성시하는 풍습에서 도끼로 점을 치는 풍습도 나오게 되었다. 또한 도끼는 병든 사람의 고통을 없애 준다는 설화나 마귀를 내쫓는 힘이 있는 등의 민속신앙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출토된 도끼는 구석기시대의 타제품(打製品)에서부터 마제석부(磨製石斧) 등이 발견되었으며, 그 형태도 다양하여 직사각형의 양날, 끌 모양의 한쪽날, 그리고 다두형(多頭形) 또는 환석(環石) 등이 있고, 함북에서는 정(丁)자형의 타제석부 등이 나왔다. 이렇게 석부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의 도끼는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치는 동안 점차 철제의 도끼가 나왔으며, 생활용품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변천하였다.
쇠도끼 iron axe
자식 낳기를 비는 뜻에서 부녀자들이 가슴에 품고 다닌 쇠로 만든 도끼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썼던 것으로 크기는 길이가 4.5∼7cm 정도였으며, 그 견본이 온양민속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전통사회에서 부녀자 최대의 임무와 사명은 출산이었는데, 따라서 출가한 여자들은 산천이나 명승지 또는 절에 가서 치성을 드렸다. 이때 치성의 주대상은 바위나 돌이었는데 그것들 못지않게 쇠도끼도 중요한 치성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바퀴에 끈이나 체인등을 걸어 힘의 방향을 바꾸거나 힘의 크기를 줄이는 장치이다.
힘의 방향 만을 바꾸는 것은 고정도르래이고 힘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주는 것은 움직도르래이다. 많은 기계에 사용되고 있으며 어떤 도르래를 사용하더라도 전체 일의 크기는 줄이지 못한다.
지렛대, 쐐기 등과 함께 힘의 전달기구로 쓰이며, 두레박, 기중기 등에서 도르래를 이용한다. 크게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로 나눌 수 있고, 둘을 혼합한 복합도르래도 있다. 고정도르래는 힘의 방향을 바꾸고, 움직도르래는 힘의 크기를 크게 하여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힘의 크기가 줄어들더라도 당기는 거리가 그만큼 길어지므로 일에는 이득이 없다.
곡식의 이삭을 두드려서 알갱이를 떠는 데 쓰는 농기구.
기름한 작대기 끝에 구멍을 뚫어 꼭지를 가로로 박아서 돌릴 수 있게 하고, 그 꼭지 끝에 2∼3개의 휘추리를 잡아매서 휘둘러 가며 친다. 보리·밀·콩·녹두·팥·조·메밀 등의 타작에 쓴다.
도리깨는 자루인 도리깨장부·도리깨꼭지·도리깨아들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도리깨장부는 주로 대를 많이 이용하고, 도리깨아들(열)은 닥나무·윤유리나무·물푸레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쓰며, 대쪽을 달기도 한다. 도리깨로 이삭을 두드려 알갱이를 떠는 것을 '도리깨질'이라고 한다.
이에는 한쪽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져서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마주 서서 찧는 양다리방아와 한쪽이 벌어지지 않고 곧아서 한 사람이 찧는 외다리방아의 두 가지가 있다. 외다리방아의 가장 오랜 증거는 황해도 안악의 옛 고구려 무덤의 그림으로서 이 무덤은 4세기에 만들어졌으므로 이미 4세기 이전부터 이것을 써 왔음이 분명하며, 이 방아는 근래까지 전남의 해안 지방에서 사용되었다.
디딜방아의 분포지역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대륙, 인도네시아 등지의 도서 지역, 일본 ·네팔 ·인도 등이지만, 양다리방아는 한국 고유의 발명품으로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다.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외다리방아를 나란히 설치하여 쓸지언정 한국처럼 양다리방아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양다리방아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러가며 찧는 까닭에 매우 능률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고달픔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공이로는 나무, 돌을 쓰지만 나무 공이 끝에 겉을 우툴두툴하게 만든 쇠통을 끼우기도 한다. 확으로는 작은 돌절구를 땅에 묻으며 천장에서 늘인 새끼줄을 쥐고 방아를 찧는다.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아 삽질을 하듯 손잡이를 뒤로 눌러 떠엎거나 손잡이를 옆으로 비틀어서 땅을 일구는 농기구
솔뿌리 ·청미래덩굴의 뿌리 등을 캐기도 하며, 쟁기로 갈다 남은 구석진 땅이나 소가 들어서지 못하는 좁은 땅을 가는 데 쓰고, 밭을 가는 데도 사용한다. 지금도 도서 지방 ·해안 지방에서는 종종 하며, 쌍따비를 아주 작고 날카롭게 축소하여 인삼을 캐는 데 쓴다. 청동기에 따비질하는 모양이 음각되어 있고, 또 고분발굴에서도 따비의 날이 여러 곳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농경이 시작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차차 발달하여 쟁기가 된 것이다.
따비는 형태에 따라 외따비, 쌍따비가 있다. 외따비는 아랫부분이 앞쪽으로 휘어나간 나무로 된 몸채 위쪽에 손잡이를 가로대고, 중간 턱이 진 곳에 발판을 끼웠다. 아래쪽 끝은 보습처럼 앞을 얇게 깎았으며, 여기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이나 주걱처럼 생긴 날을 끼워서 만들었다. 쌍따비는 몸통이 발판까지는 외따비와 비슷하나 손잡이가 없이 한쪽 끝이 길게 앞으로 휘어서 벋어나갔으며, 발판 아래쪽이 상아처럼 두 가락으로 나란히 벋어나와 여기에 끝이 날카로운 쇠날을 끼웠다.
타격용의 공구
직종·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세차게 두드리는 공구를 가리킨다. 작은 것은 마치, 큰 것은 메라고 하며, 최근에는 해머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기원은 오래 되었는데, 각지의 유적에서 석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인류가 생겨난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새끼 등으로 꼬아 만든 주머니로 물건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데 쓰는 기구
망탁·망태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구럭·깔망태라고도 한다. 가는 새끼나 노를 엮어 나비가 좁고 울이 깊도록 짠 네모꼴의 주머니이다. 어깨에 멜 수 있도록 양끝에 길게 고리를 달아 썼다.
강원도 산간지대에서는 주루막이라 하여 주둥이에 끈을 달아 두루주머니처럼 주둥이를 죌 수 있게 만들어 쓴다. 이 주둥이 끈과 아래 양끝에 달린 멜빵은 하나로 되어 있다. 이것은 가늘게 꼰 새끼로 촘촘히 엮는데,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 고리에 칡덩굴이나 왕골, 가래나무 껍질을 감아 보호한다. 망태기를 이용하여 곡물이나 감자, 옥수수 등을 나르는데, 보통은 감자 세말들이가 많고 무게는 800~1,500g이다. 종류는 심마니 망태기 등이 있다.
밀 같은 곡물을 가루로 만들고 팥 ·콩 ·메밀 ·녹두 등을 거칠게 타거나 물에 불린 콩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이 밖에 풀매라 하여 옷에 먹일 풀을 만들기 위해 물에 불린 쌀을 가는 맷돌이 있으며, 이것은 밑짝에 주둥이를 길게 달아놓은 것이 특징이다. 흔히 한 사람이 손잡이를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아가리에 곡물을 흘려넣는다. 그러나 맷돌이 크고 갈아야 할 곡물이 많을 때에는 손잡이에 가위다리 모양으로 벌어진 맷손을 걸고 2~3사람이 노를 젓듯이 앞뒤로 밀어가며 갈기도 한다.
맷돌은 물맷돌과 구멍맷돌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구멍맷돌에는 한구멍 맷돌 ·두구멍맷돌 ·네구멍맷돌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절에서 많이 썼다. 절에서는 단백질의 공급을 두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콩을 한꺼번에 많이 갈 수 있는 매우 큰 맷돌이 필요하였다. 물맷돌은 수로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퀴를 돌리고 그 힘을 받은 굴대가 윗짝을 회전시키는 맷돌로서 서아시아에서 발명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두구멍맷돌은 긴 작대기를 잡아매고 집짐승이 끌어서 돌리며, 네구멍맷돌은 ㅁ자꼴의 틀을 얹고 이를 네구멍에 잡아매고 두 마리의 집짐승이 돌린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만들었다고 전하는 네구멍맷돌은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다자이후시[大宰府市] 간제온사[觀世音寺]에 지금도 남아 있다.
맷방석 small strawed mat
도래방석보다 작으면서 주위에 전을 달아 짚으로 짠 둥근 방석
흔히 매통이나 맷돌 아래에 깔아서 갈려 나오는 곡물을 받는 데 쓰며, 콩 ·팥 따위의 곡물을 널어 말리거나 담아두기도 하고 방석으로도 쓴다. 맷돌을 앉히는 가운데는 노 따위의 질긴 끈을 넣어 짜서 맵시를 내는 동시에 쉽게 닳지 않도록 한다.
도래방석 round strawed mat
주로 고추,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는 데 쓰는 농기구
도래방석이라는 이름은 그 모양이 둥근 데에서 왔다. 멍석보다 얇고 작아서 다루기 쉬우며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지름 1.5m쯤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리는 서너 말 널어 말리며 이 밖에 방석으로 쓰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무늬를 넣어 짜서 멋을 내기도 한다.
짚으로 새끼 날을 짜서 엮은 큰 자리
농가에서 흔히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 쓰이고, 또 옛날에는 잔칫집에서 마당에 깔고 손님을 접대하기도 하고 방에 깔기도 하였다. 모양은 대개 사각형이며, 네 귀에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있다. 둥근 것 중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작은 것은 맷방석이라 하여 맷돌질을 할 때 사용한다.
말뚝이나 못을 박거나, 떡을 치고 짚뭉치를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드는 데 쓰는 기구
쇠로 만든 것을 쇠메, 나무로 만든 것은 목메라 이르며 농가에서는 주로 목메를 쓴다. 이 밖에 먹쇠메라고 하여 단단한 흙이나 돌을 두드려 부수는 데 쓰는 것도 있으며 이것은 두꺼운 쇠원판에 자루를 끼웠으며 몽둥이라고도 부른다. 쇠메는 목수를 비롯하여 석수 ·대장장이들이 많이 쓰며 크기에 따라 대형 ·중형 ·소형으로 나눈다.
멱서리 strawed sackfuls
짚으로 날을 촘촘하게 결어서 볏섬 크기로 만든 그릇
섬은 한 차례 밖에 쓰지 못하지만 이것은 서너 해 쓸 수 있는 까닭에 농가의 요긴한 그릇으로 손꼽힌다. 울이 깊고 바닥은 네모꼴을 이루며 곡물을 갈무리하거나, 담아 나르는 데 쓰인다
못줄 quideline for rice planting
간승間繩 참조
일정한 거리마다 눈표를 붙인 긴 노끈
씨를 뿌리거나 모종할 때 심는 간격을 조정하는 데 쓰는 노끈으로, 일정한 거리마다 표를 붙여서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거리를 조정한다. 벼를 이앙(移秧)할 때 쓰이는 못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필요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한 여러 가지 간격의 못줄이 있다.
낮은 곳의 물을 보다 높은 지대의 논 ·밭으로 자아올리는 농기구
수룡(水龍) ·수차(水車)라고도 한다. 한 개의 굴대[軸] 주위에 여러 개의 나무판을 나선형(螺旋形)으로 붙여 마치 날개 달린 바퀴처럼 보인다. 이 날개판을 두 발로 번갈아 밟으면 바퀴가 돌아가고 퍼올려진 물이 봇도랑으로 흘러들어간다
솜이나 털 따위의 섬유를 자아서 실을 만드는 수공업적인 도구
나무로 된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 보통 6각의 둘레를 만들고 가운데에 굴대를 박아 손잡이로 돌린다. 회전축을 이용하는 물레는 용도에 따라서 방차(紡車) ·도차(陶車) ·선륜차(旋輪車) 등으로 부른다.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물레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BC 5∼AD 6세기부터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은 방차를 써서 삼[麻]과 같은 식물섬유를 뽑아 경사(經絲)가 두드러진 평직물을 짰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추기는 삼국시대에 수직기로서는 가장 발달한 능직기로 발전하여, 4세기 후반에 신라에서는 능라겸견(綾羅縑絹)을 수십 척의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물레의 기능은 하루에 4개의 가락에 실을 들일 수 있다고 한다.
냇가에 물길을 만들어 물이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여 곡식을 찧는 방아.
물레방아는 큰나무바퀴와 굴대에 공이를 장치하여,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 그 끝의 공이가 확 속의 곡식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동작이 자동으로 되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찧을 수 있으며, 공이가 양쪽으로 두 개가 물려 있어 엇갈려 찧어지는 것과 한 개만 있는 것 등이 있다.
물방아는 일명 통방아라고도 하는데, 긴 통나무로 된 방앗대 한쪽을 파내어 물받이를 만들고, 반대쪽에는 공이를 달아 가운데를 받친 원시적인 물방아이다. 물받이에 물이 차면 그 무게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 반대쪽의 공이가 들리고 물받이가 기울어져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아래로 떨어져서 확 속의 곡식을 찧는다.
흙을 고르거나 곡식을 긁어 모으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번지의 형태는 일정하지 않다. 좁고 긴 네모꼴의 널빤지에 써렛발이 맞도록 작은 구멍 두 개를 뚫은 것, 작은 나무 조각 둘을 덧대어 턱을 만들고 써렛발을 대고 써레 손잡이에 잡아맨 것 따위가 있다. 널빤지로 만든 번지는 사람이 어깨에 메어 끌고 나가거나 두 사람이 마주서서 손으로 쥐고 훑어 나가기도 한다.
한편, 평안도의 마른 논 지대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살번지, 매번지, 밀번지, 발번지, 통번지와 같은 특이한 형태의 것을 썼다. 살번지는 써레를 닮았으나 이[齒]가 셋뿐이고 가운데 이는 곳에 따라 길거나 짧다. 씨를 뿌리고 거름을 준 다음 이것을 소에 메워 밀고 나간다. 이 번지는 씨 위를 덮는 흙을 두껍게 하여 싹이 트는 데 필요한 습도를 보존해 주는 효과가 있다.
매번지의 형태는 살번지와 비슷하나 가운데 이가 없고 두 개의 이 사이에 짧은 막대를 붙인 것이 다르다. 이러한 까닭에 매번지는 따로 만들지 않고 살번지의 가운데 이를 빼고 붙여 쓰기도 한다. 매번지는 살번지질을 한 뒤 손으로 눌러가며 이랑 위로 끌어서 흙 속의 수분이 쉽게 날아가지 않도록 한다.
밀번지의 형태는 극젱이를 닮았다. 성애는 가위다리 꼴로 벌어졌고 술 끝에는 날 대신 넓적한 통칼(길이 30.3 cm, 너비 18.8 cm, 두께 3 cm 정도)을 붙였다. 이 번지는 싹이 터서 그 끝이 땅 위로 솟아올랐을 때 둔덕 위로 끌어서 미처 나오지 못한 싹 위에 덮인 흙을 걷어내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하면 싹이 햇볕을 받아 더 빨리 자라고 잡초도 죽는다.
발번지의 성애와 술은 매후치와 비슷하나 바닥 모양이 다르다. 나무판 두 개를 10 cm 간격으로 나란히 놓고 이 위에 짧은 막대 5개를 12 cm마다 붙인 뒤에 널을 두 개의 나무판 사이에 끼워 넣어서 바닥으로 삼는다. 논에 물이 차기 전에 이것을 끌면 이랑 사이의 흙덩이가 부서지고 잡초도 제거된다. 통번지의 형태는 후치를 연상시키지만, 바닥 좌우 양쪽에 널빤지가 달린 것이 다르다. 이것을 끌면 골에 있던 흙덩이가 바닥 안쪽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때문에 좌우 양 이랑에서 자라는 벼에는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
명주 ·무명 ·모시 ·삼베 등의 피륙을 짜는 틀
목재로 만들었으며, 2개의 누운다리에 구멍을 뚫어 앞다리와 뒷다리를 세우고 가로대로 고정시켰다. 여기에 도투마리를 얹고 잉아를 걸어 말코에 연결하고 앉을깨에 앉아 부티를 허리에 두른다. 피륙은 날의 촘촘함을 따질 때에 ‘새’라는 말을 쓴다. 1새는 바디의 실구멍 40개로 짜는 것을 말하며, 한 구멍에는 두 가락의 실을 꿴다. 명주와 모시는 보름새(15새)가 가장 좋고, 무명은 보통 9새로 짜나, 9새 이상의 새로 짜는 경우도 있다. 무명과 명주는 시기를 가리지 않으나 삼베와 모시는 추석이 한계로 찬바람이 나면 짜지 못한다. 찬바람이 나면 베가 버져서 바디를 오르내리기 힘들며 북을 넣기도 힘들다.
명주의 경우, 음력 4월 초에 누에 종자를 사서 뽕잎을 먹이며, 5월경에 누에가 고치를 짓는다. 이것을 따서 따가운 햇볕에 잘 말린 뒤, 실솥을 걸고 끓는 물에 적당한 분량을 넣고 자애에 걸어 돌꼇에 올린 뒤 실대롱에 감아서 날았다가 바디에 꿰어 맨 다음 도투마리에 올린다. 무명의 경우, 음력 4월 하순에 목화씨를 뿌려서 8월 중순께 첫물을 따며, 이것을 볕에 잘 말려, 씨아에서 씨를 빼고 활로 타서 솜이 부풀게 한 다음, 말대로 말아서 고치를 만든다. 이것을 물레질하여 실톳을 만들어 날틀에서 실을 합사한 뒤에 명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 베틀에 올린다. 삼베는, 음력 3월 말경에 삼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7월경에 베어서 삼솥을 걸고 푹 쪄서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얼레빗으로 째서 말린 뒤에 삼는다. 이 삼실을 물레에 자아서 실톳을 만들어 돌꼇에 올려 양잿물에 삶아, 맑은 물에 계속해서 삼때가 빠질 때까지 씻는다. 이것을 다시 돌꼇에서 내려 실을 사렸다가 바디에 꿰어 베를 맨 다음 베틀에 올린다.
〈부분명칭〉 ① 용두머리:베틀 앞다리 위쪽에 있어, 2개의 다리를 연결하며 눈썹대를 끼우는 나무. ② 눈썹대:용두머리 두 끝에서 앞으로 내뻗친 가는 막대기로 끝에 눈썹이 달려 있다. ③ 눈썹노리:눈썹대의 끝부분이며, 눈썹줄이 달려 있다. ④ 눈썹줄:눈썹대 끝에 잉앗대를 거는 줄. ⑤ 잉아:베틀의 날실을 끌어올리도록 맨 실. ⑥ 잉앗대:뒤로는 눈썹줄에 대고 아래로는 잉아를 걸어놓은 나무. ⑦ 속대:잉앗대 밑에 들어간 나무. ⑧ 북:씨올의 실꾸리를 넣는 것으로 날 틈으로 오가며 씨를 푸는 구실을 한다. ⑨ 북바늘:북 속에 실꾸리를 넣은 뒤 실꾸리가 솟아나오지 않도록 북 안 씨울에 끼워서 누르는 대쪽(북딱지).
⑩ 꾸리:북 안에 들어 있는 실. ⑪ 바디:베의 날을 고르며 북의 통로를 만들어 주고 실을 쳐서 짜는 것인데, 가늘고 얇은 대오리를 참빗살 같이 세워 두 끝을 앞뒤로 대오리를 대고 단단하게 실로 얽어 만든다. 살의 틈마다 날을 꿰어서 씨를 짠다. ⑫ 바디집:바디의 테. 홈이 있는 두 짝의 나무로 바디를 끼우고, 양편 마구리에는 바디집 비녀를 꽂는다. ⑬ 바디집 비녀:바디집 두 짝의 머리를 잡아 꿰는 쇠나 나무. ⑭ 최활:베를 짜나갈 때 폭이 좁아지지 않도록 나비를 지켜주는 가는 나무오리. 활처럼 등이 휘고 두 끝에 최를 박았다. ⑮ 부티:베 짜는 이의 허리 뒷부분을 감싸는 넓은 띠. 나무껍데기 ·가죽 ·헝겊 등으로 만들고 말코 양쪽 끝에 부티끈을 매어 고정한다.
벽채 small sickle
나무 자루에 반달 모양의 쇠 날을 끼운 농기구
낫을 닮았다. 광산에서 광석을 캐기 위해 굳은 땅을 파낼 때 쓰며 여름 한철 약초를 캐러다니는 사람들도 풀 뿌리를 이것으로 걷어낸다.
광석이나 석탄을 캘 때 섞여 나오는 잡돌인 버력을 긁어 모으기 위해 한쪽에 날개를 붙인 것도 있다.
보습 plow share
따비·쟁기·극젱이 등의 술바닥에 박아 사용하는 쇳조각으로 된 삽 모양의 연장
땅을 갈아서 흙덩이를 일으키는 데 사용한다. 종류에는 돌보습·따비보습·극젱이보습·쟁기보습 등이 있다. 돌보습은 땅을 파거나 갈고 뒤엎는 데 쓰는 중요한 농기구로, 신바닥 모양이나 버들잎 모양이 많고 길이는 보통 30∼65㎝이다. 우리나라에서 돌보습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이다. 그전까지는 돌괭이 등을 사용하다가 더욱 발전된 형태로서의 농기구가 나타난 것이 돌보습이다. 이때부터 조·옥수수 등의 곡류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돌보습이 출토된 유적은 청원쌍청리유적 등이다.
쓰레기·거름·흙·곡식 등을 담아 나르는 그릇
싸리·댓가지·칡덩굴·짚·새끼 등으로 엮어서 만든다. 짚이나 새끼로 만든 것은 앞은 벌어지고 뒤는 우긋하게 울타리를 삼고 위의 가장자리는 나무를 휘어 둘러서 테를 만들어 손잡이를 삼는다. 싸리·댓가지·칡덩굴로 만든 것에는 뒤가 우긋한 것과, 앞이 넓게 헤벌어진 것의 2가지가 있다.
주로 거름(퇴비)나 풀 따위를 걷어 올리는 농기구
쇠로 갈퀴처럼 발을 만들고, 'ㄱ'자로 구부러진 한쪽 끝에 긴 나무자루를 박았다. 쇠스랑 발은 보통 3개이나, 지방에 따라 2개 또는 4∼7개가 달린 것도 있다. 논둑을 쳐내고 새로 붙일 때에도 사용된다.
모내기에 앞서서 논을 고르거나 모내기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농기구
긴 토막나무에 둥글고 끝이 뾰족한 이[齒] 6~10개를 빗살처럼 나란히 박고 위에는 손잡이를 가로 대었다. 또 토막나무에 대각을 이루도록 긴 나무를 박고 여기에 봇줄을 매어 소 멍에에 잡아매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봇줄을 매지 않고 양 나루채 자체가 소 멍에에 이르도록 길게 만든 것을 쓰기도 한다. 몸체는 소나무를 이용하지만 이는 참나무나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나무를 깎아 박는다.
흔히 논에서 쓰는 것을 ‘무논써레’, 밭에서 쓰는 것을 ‘마른써레’라 이른다. 마른써레의 경우는 써렛발이 하늘로 향하도록 뒤집어 놓고 이 위에 아이들이 올라타고 소가 끌도록 한다. 또 못자리를 판판하게 고르는 번지를 따로 쓰지 않는 곳에서는 써레의 발과 발 사이에 새끼줄을 감고 이것을 논바닥 위로 끌어서 판판하게 고른다.
한편, 전남 고흥 지방에서는 옹이진 자연생의 참나무 6~7개를 아래쪽으로 깔고 잡아매어 바닥을 만들기도 하고, 옹이가 없으면 띠로 이를 깎아 박아서 소에 메운다. 이 때에는 어린 아이가 위에 올라타거나 적당한 크기의 돌 서너 개를 얹어 두며 이것을 공이써레라 부른다.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
쐐기·씨앗이·쌔·쐬아·타리개·교거(攪車)·연거(碾車) 등의 이름이 있다. 대개 직사각형의 나무토막으로 몸통을 삼아, 2개의 기둥을 박고, 그 아래쪽을 작은 판자로 가로질러 가랫장을 비슷이 고정시켰다. 양 기둥에는 길게 구멍을 뚫어 2개의 가락을 받침대와 함께 꿰어 쐐기를 박아 고정시킨다. 가락은 참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데 가락의 한쪽을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귀'를 만들고 몸통은 원형으로 만든다. 이때 한 개의 가락은 씨아손을 꿰어 돌릴 수 있도록 오른쪽 기둥 밖으로 길게 노출이 되는데, 이것을 장가락이라 하고 작은 것은 보통 가락이라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흔히 작은 것을 암가락 또는 암씨앗이동이라 하며, 장가락을 숫가락 또는 숫씨앗이동이라고도 한다. 몸통 나무토막에 긴 판자를 꿰어 앉을깨라 하며, 여기에 사람이 걸터앉아 오른손으로 씨아손(꼭지마리)을 잡고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목화를 가락의 틈새로 메기면, 그 속의 씨가 빠져 나오고 솜은 뒤로 빠져 나간다. 이 행위를 씨아질이라 한다. 씨아는 보통 혼자서 작업을 하나, 두 사람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씨아손을 양쪽에서 돌릴 수 있게 고안한 것도 있다. 보통 한 사람이 하루에 목화씨 2∼3말을 뺀다고 한다. 씨아가 잘 돌지 않고 귀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면 비누 쪽을 떼어 귀에다 넣고 돌리면 약간 부드러워진다.
수차 <= 무자위와 같음
얼루기
산간 지방에서 가을철에 거둔 곡물단을 말리는 데 쓰는 기구
서까래 같은 둥글고 긴 나무 여러 개를 원뿔 모양으로 위는 모아서 묶고 아래는 벌려 세운 다음, 밑에서부터 위까지 곡식단을 끼워 넣을 3~5개의 테를 둘러 놓았다.
보통 8개의 서까래로 한 틀의 얼루기를 만들며, 꼭대기에는 짚이나 삼대로 짠 용수 모양의 주저리를 씌워서 비가 스미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옥수수 따위를 말릴 때에는 10여 개의 나무를 서로 엇걸어서 맞배지붕꼴로 세운다. 얼루기의 가운데는 비어 있어 바람이 잘 통하므로 쉽게 마른다.
연자방아
가축을 이용하여 둥근 큰 돌을 굴려서 곡식을 빻는 기구
옹구
감자 ·고구마 ·배추 따위의 농작물이나 흙 ·거름 ·모래를 나르는 데 쓰는 기구
둥근 나무를 로마자 Ⅱ자 모양으로 짠 틀의 좌우 안쪽에서 아가리가 넓고 불이 처지도록 망태 기처럼 새끼로 엮어 내려간 것으로 안쪽을 바깥쪽보다 길게 해서 끝이 바닥을 한 번 싸도록 한다. 짐을 실을 때에는 긴 막대기를 줄과 줄 사이사이로 꿰어 놓았다가 부릴 때 막대기를 빼면 바닥이 열리면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으로는 주로 무 ·호박 ·감자 ·배추 ·두엄 따위를 나른다. 이 밖에 틀 좌우 양쪽에 가마니를 달아서 주머니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초가집의 지붕이나 담을 덮기 위하여 짚이나 새 따위로 엮은 물건. ≒개초(蓋草)·이엉초.
이엉의 방언
-골미채
-가꿀영
-날개
-넝
-무근녕
-비놀영
-속녕
-예영
작두 斫刀 straw cutter or chopping[cutting] fodder
말·소에 먹일 여물을 써는 연장
풀·콩깍지·짚·수수깡·고구마 덩굴 등을 썬다. 기름하고 두둑하며 끝이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토막 위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2개의 짤막한 쇠기둥을 박아 세우고, 그 틈에 길고 큰 칼날 끝을 끼워 고두쇠로 꿰고 한끝의 나무자루 안쪽에 쇠고리를 박아 새끼로 끈을 매어 손에 잡고 발판을 만들어 한 발을 딛는다. 다른 한 발은 작두 자루를 밟아 새끼줄을 잡아 올렸다내렸다 하며 썬다.
대부분 가지가 벌어진 끝을 작두의 머리 쪽으로 삼으나, 전라남도 지방의 작두는 이와 반대이다. 양 가지가 벌어진 쪽에 발걸이를 고정시켜 놓는다. 두 사람이 1조가 되며 한 사람은 여물감을 먹인다.
작물을 재배할 목적으로 우마(牛馬) 또는 기계력(機械力)을 이용하여 흙을 파 일으키는 데 사용하는 기구.
쟁기는 동양에서 발달하여 한국·중국·일본·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이용한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개량 쟁기가 대부분이다.
쟁기는 원래 소·말 등 가축이 끌었으나, 오늘날에는 트랙터(동력경운기)가 보급되어 동력경운기용 쟁기가 보급되었다.
형태에 따라서 무상리(無床犁)·장상리(長床犁)·단상리(短床犁)로 분류한다.
무상리는 쟁기의 바닥이 전혀 없거나 아주 짧은 것으로서 흙과 마찰이 적고 심경(深耕)에 적합하지만 반전(反轉)이 좋지 않고 안전성이 없어서 다루기가 어렵다.
장상리는 쟁기의 바닥이 길기 때문에 안전성이 좋고 사용하기 쉽지만 견인저항(牽引抵抗)이 크며 심경에는 부적당하다.
단상리는 무상리와 장상리의 장점을 절충한 개량 쟁기로서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쟁기는 거의 단상리이다. 일반적으로 안전성도 좋고 저항이 작고 역토의 반전·파쇄능력도 크다. 특히, 논의 경기작업에 적합하며 사용하기도 쉽다.
역토의 반전방향에 따라 단용리(單用犁)·쌍용리(雙用犁)로 분류하며, 용도에 따라 평기경리(平起耕犁)·휴립리(畦立犁)·2단경리(二段耕犁), 소형 트랙터용 쟁기로 분류할 수 있다.
장도리 hammer
못을 빼거나 박을 때 사용되는 기구
짚 ·싸리로 만든, 다래끼보다 작은 바구니
짚으로 만든 것은 아가리가 좁고 밑이 넓으며 바닥은 네모꼴이고, 멍석이나 멱서리를 엮듯이 짠다. 아가리 양쪽에 끈을 달아 허리에 둘러 감아서 이것을 배에 달리게 한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한쪽 어깨에 끈을 걸어 메거나 목에 걸기도 한다. 싸리나 대로 짠 것은 앞쪽에 짧은 마대나 대쪽을 대고 멜빵을 달아 어깨에 메거나 배에 둘러찬다. 콩 ·팥 ·감자 등을 심을 때 씨를 여기에 담아서 메고 뿌린다. 산의 나물을 캐거나 고추를 딸 때, 논밭에 비료를 줄 때도 이용된다. 지방에 따라 다락지 ·종두래미 ·종다래미 ·씨글메꾸리 ·종댕이 ·종다리 등의 이름이 있다.
주루막
강원 산간지대에서 감자 ·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나르는 데 쓰는 기구
가는 새끼로 결은 네모꼴 주머니로서 주둥이를 죌 수 있도록 고리를 지어 붙이고 고리와 아래 양 끝에 멜빵을 달았다. 오래 두고 쓰려고 닳기 쉬운 고리에 칡덩굴이나 왕골 또는 가래나무 껍질 따위를 감아 둔다. 주루막은 짚 외에 왕골이나 노끈 또는 종이를 비벼서 꼰 끈으로 만들기도 한다.
짐을 얹어 등에 지는 운반도구
지게는 양다리방아 ·발무자위 등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발명한 가장 우수한 연장의 하나이다. 가지가 조금 위로 벋어난 자연목 2개를 위는 좁고 아래는 벌어지도록 세우고 사이사이에 3~4개의 세장을 끼우고 탕개로 죄어서 고정시키고 위 아래로 멜빵을 걸어 어깨에 멘다. 그리고 등이 닿는 부분에는 짚으로 두툼하게 짠 등태를 달아놓았으며 이것을 세울 때에는 끝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진 작대기를 세장에 걸어둔다.
지게의 형태나 크기는 곳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만드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우선 지게 길이는 이것을 지는 사람의 키에 맞추기 마련인데 평야지대의 지게는 산간지대의 것보다 긴 편이다. 이에 비해 산간지대는 길이 좁고 가파르며 돌부리나 풀 따위에 걸려서 넘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에 짧은 지게를 쓴다. 또 전북 서반부 일대의 지게는 동발과 동발 사이가 넓고 지게 자체를 지는 사람쪽으로 구부려 놓는 점에서 다른 평야 지대의 지게와 차이를 보인다. 지게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분류하면 제가지지게 ·옥지게 ·쪽지게 ·바지게 ·두구멍지게 ·켠지게 ·거지게 ·쇠지게 ·쟁기지게 ·모지게 ·부게 ·물지게 따위가 있다. 주로 소나무로 만드는 제가지지게는 ‘가지가 자연히 벋어나간 나무로 짠 지게’라는 뜻으로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지게는 모두 이에 속한다. 옥지게는 참나무로 건 지게로서 가지의 중간 부분이 위쪽으로 구부러졌다. 옥지게는 이처럼 ‘가지가 굽은 지게’라는 뜻이다. 옥지게는 강원도 산간 지대에서 섶나무나 꼴 따위를 나르는 데 쓴다. 물매가 워낙 된 곳에서는 사람이 지게를 지고 걸을 수 없는 까닭에 동발을 두 손에 쥐고 끌어내리기 위해 가지를 구부린 것이다. 가지는 불에 구워가며 조금씩 구부린다. 쪽지게에는 예전의 등짐장수들이 이용한 간단히 만든 지게와 몸에 구멍을 뚫고 가지를 끼워넣은 것의 2종류가 있으며 뒤의 것은 전북 서반부 일대가 본거지이다. 이 일대는 평야 지대로서 지게감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러한 지게를 만들어 썼다. 바지게는 주로 강원 영동지방에서 영서지방으로 태백산맥을 넘어 해산물을 팔러 다닌 사람이 쓴 지게로 가지가 달리지 않았으며 짐은 지게에 잡아맨다. 이들의 작대기 또한 특이하여 위쪽에는 노치를 짓고 아래에는 쇠못을 박아 놓았다. 이 쇠못은 겨울철 미끄럼 방지에 효과적이다. 두구멍지게는 가지 구멍이 위 아래 2개 있는 지게로서 짐의 종류에 따라 가지를 맞추어 끼운다. 켠지게는 지게감 하나를 톱을 이용해서 켜서 둘로 나눈 지게이다. 거지게는 동발 부분이 거의 없는 짧은 지게로서 길마 좌우 양쪽에 걸고 무거운 돌이나 긴 나무 따위를 마소의 힘을 빌어 나르는 데 쓴다. 쇠지게는 쇠로 만든 지게이고 쟁기지게와 모지게는 쟁기나 모를 나르는 데, 부게는 해안에서 거둔 어획물을 나르는 데 쓴다.
한국의 지게는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쓰시마[對馬島]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 이름 그대로 ‘시케이’ 또는 ‘지케이’라 부른다.
바소거리. 소코리.소코리
지게위에 얹어 두엄(퇴비)이나 흙등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기구
타비. 따비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아 삽질을 하듯 손잡이를 뒤로 눌러 떠엎거나 손잡이를 옆으로 비틀어서 땅을 일구는 농기구
탈곡기 (脫穀機) a threshing[thrashing] machine
120)this.width=120;"> 벼 ·보리 등의 탈곡을 주목적으로 하는 농업기계
특수한 것으로 땅콩탈곡기 ·옥수수탈립기 등이 있다. 탈곡방법은 작물의 종류나 농업의 발달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옛날에는 두 나뭇가지의 한 끝을 동여매어 집게 비슷하게 만든 것에 벼이삭을 끼우고서 훑는 벼훑이를 사용하였고, 회전식 탈곡기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납작한 쇠못을 나무판에 촘촘히 박고 그 사이에 벼이삭을 끼워서 훑는 그네를 사용하였다.
콩이나 팥 등은 마당에 널어 건조시킨 후, 긴 장대 끝에 구멍을 맞뚫고 그 구멍에 가는 막대를 가로 박아서 돌게 한 다음 그 막대 끝에 2,3개의 회초리를 달아 휘둘러가며 내리치는 도리깨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작업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수고를 덜기 위한 연구 끝에 벼의 탈곡용으로 족답식(足踏式) 탈곡기가 발명되었고, 현재는 동력회전탈곡기뿐만 아니라 베는 동시에 탈곡 및 선별작업까지 하는 능률적인 콤바인이 사용되고 있다.
탈곡기는 동력에 따라 인력식(人力式)과 동력식으로 분류할 수 있고, 짚공급방식에 따라 수급식(手給式) ·자동공급식 ·투입식으로 분류되며, 급동(扱胴)의 수와 공급위치에 따라 단동식 ·복동식, 배진장치에 따라 반자동식 ·자동식으로 분류된다. 인력탈곡기는 보통 족답탈곡기라고 하는데, 인력에 의해 동력을 발생시키므로 힘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며, 탈곡손실이 많고 선별장치가 없다.
동력탈곡기(자동탈곡기)의 구조는 급동을 중심으로 하는 탈곡장치와 풍구를 중심으로 하는 풍선장치(風選裝置)가 주요 부분인데, 이것에 볏단의 자동공급장치와 탈곡된 벼 낟알을 내보내는 장치를 갖춘 것도 있다. 급등에는 역 V자 모양의 급치(扱齒)가 많이 꽂혀 있는데, 이것을 회전시켜 가면서 급치에 벼이삭을 갖다대어 벼알을 떨어뜨린다. 수망(受網)에 떨어진 벼 낟알이나 볏짚은 풍구에 의해 풍선되어 무거운 벼 낟알은 1번구로, 가볍고 불완전한 벼 낟알은 2번구로, 볏짚은 3번구로 배출된다. 한편, 옥수수는 손으로 탈립(脫粒)하거나 도리깨 같은 것으로 탈립하였으나 근래는 옥수수탈립기가 개발되었다. 더욱이 옥수수 수확기와 탈립기를 겸비한 특수 콤바인이 사용되고 있다.
목재·금속·석재(石材)·플라스틱 등을 절단하기 위한 공구.
인간이 석기시대(石器時代)부터 쓰던 도구로 얇은 강판의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를 새겨 물건을 절단하는데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목재나 금속을 가공하는데 이용되며 산업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용구 중 하나이다.
톱의 역사
톱은 석기시대(石器時代)부터 알려져 있었다. 나무나 뼈를 자르기 위해 사용한 플린트제(부싯돌)의 톱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도 널리 목재가공용으로 사용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청동제 톱은 이미 근대와 마찬가지 외형을 가지고, 제12왕조 무렵에는 권총형 손잡이를 가진 것이 있었으며, 크레타의 중기 미노스 제3기에는 약 150cm의 청동제의 큰 톱이 제작되었다.
로마의 건축용 석재(石材)를 절단하는 데에 수동(手動)의 철제 톱이 사용되었으며, 4세기 말에는 수차(水車)에 의한 동력톱도 일부에서는 시도되었다. 중세가 되자 2개의 손잡이가 달린 톱, 통나무를 세로로 켜는 큰톱이 목재용으로 사용되었다.
톱켜기작업에서 중노동을 덜려는 목공기계의 발명은 증기기관(蒸氣機關)의 출현에 의하여 자극되었다. 원형톱은 1777년에 영국에서 특허를 얻었고, 후에 조선용(造船用)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1808년에 증기기관으로 운전되기도 하였다. 띠톱은 1808년에 영국에서 특허를 얻었으나, 오랜 사용에 견딜 수 있는 강철(鋼鐵) 띠가 나온 다음 1849년 무렵에야 실용화되었다.
톱의 종류
가공하는 재질·가공법·가공부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목재가공용이 많다.
① 양날톱:목공에서 가장 보통으로 사용되며 사다리꼴의 얇은 강판에 한쪽에 켜는 톱으로, 다른 한쪽에 자르는 톱날을 만들어 사다리꼴의 좁은 쪽에 목을 만들어 자루를 달았다.
② 등대기톱:매우 얇은 강판에 자르는 날을 잘고 가늘게 만들어 등쇠를 붙여 보강한 것이다. 자르는 톱의 하나이며 정밀가공에 쓰인다.
③ 붕어톱:심장 모양의 바깥쪽에 날을 만든 것으로 나무 표면에 홈을 만들 때, 도중에서 자르기 시작할 때 등에 쓰인다. 톱니는 가르는 톱니와 켜는 톱니로 되어 있다.
이밖에 소세공용의 활톱, 곡선세공용의 실톱, 쇠를 써는 쇠톱 등이 있다. 최근에는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해 원형 또는 직선상의 톱을 전동기에 의해 움직여 재료를 가공하는 전동용구도 나오고 있다.
통가리
쑥대나 싸리 또는 뜸 등을 새끼로 발처럼 엮어서 둥글게 둘러치고 그 안에 감자·고구마 등을 갈무리하는 데 쓰는 기구
발가리(경기 안산)·발(충북 봉양)·감자울(강원 도계)·발두지(전남 보성)·둥가리(전남 해남) 등으로도 불린다.
이들 농작물은 겨우내 얼지 않도록 보관해야 하므로 통가리는 방구석이나 부엌 안에 설치한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필요한 때에는 가는 나무들을 양끝에 덧대어 넓혀 쓰기도 한다.
강원도 산간지대의 겨릅대로 엮은 밤우리도 통가리의 한 가지이다
벼 ·보리 ·팥 ·콩 ·밀 등 곡물의 쭉정이 ·겨 ·먼지 등을 가려내는 농기구
지방에 따라, 풍로 ·풍차(風車)라고도 한다. 양쪽에 큰 바람구멍이 있고, 큰 북 모양의 통 내부에 넓은 깃이 여러 개 달린 바퀴를 장치하여, 이것을 돌려서 일으키는 바람의 힘으로 위에 올려, 장치한 깔때기 모양의 아가리로부터 흘러내리는 낟알과 티끌 ·쭉정이 ·왕겨 등의 잡물을 가려내는 장치이다.
쇠날의 앞이 뾰족하고 위는 넓적하며 한쪽에 가느다란 목이 휘어 꼬부라지고 그 끝에 둥근 나무토막의 자루를 박은 김매는 데 쓰는 농기구
호미날의 모양은 사용되는 지방의 자연적인 조건·토질·농작물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① 보습형:경기·충남·충북·전북 등지에서 흔히 쓴다. 쟁기의 보습처럼 날 끝이 뾰족하고 위는
넓적하다. 날을 흙에 넣고 잡아당기면 흙이 쉽게 뒤집어져 논을 매는 데 적당하다.
② 낫형:경남·제주·전남·도서지방·산간마을 등의 자갈이 많은 지대에서 쓴다. 낫과 같이 폭에
비하여 길이가 길며 끝이 예리하여 자갈 등의 저항물이 많은 밭에서 쓰기에 편리하다.
③ 중부 이북의 호미:한국 호미 중에서 날과 자루가 제일 길며, 풀을 찍는 데에 편리하다.
보리·밀·콩·옥수수 등 이랑이 넓은 밭에는 능률적이나 흙을 떠 엎는 힘이 약하여 논에는
적당하지 않다.
토양의 성질에 따라 사질양토에는 호미날이 넓적하고, 진흙땅이나 자갈땅에는 호미날이 뾰족하고 가늘게 생긴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홀태 rice hackle
곡식 이삭 특히 벼를 훑는 농기구
벼훑이(벼훌치), 한태라고도 한다.
조그만 집 모양의 탈것.
안에 사람이 들어앉고, 밑에 붙은 가마채를 앞뒤에서 2사람 또는 4사람이 손으로 들거나 멜빵에 걸어 메고 운반한다.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 많이 쓰였으며, 종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연(輦):옛날 왕이 탄 것으로 덩과 비슷한데, 좌우와 앞에 주렴이 있고, 헝겊을 비늘 모양으로 늘이었으며, 채 2개가 길게 붙어 있다. ② 덩:공주 ·옹주가 탄 가마로 연과 비슷하다. ③ 초헌(軺軒):종2품(從二品) 이상의 벼슬아치가 탄 외바퀴 수레. 긴 줏대에 외바퀴가 달려있고, 앉는 데는 의자와 비슷한데 위는 꾸미지 않았다. ④ 남여(籃輿):의자 비슷한 것의 밑에 2개의 약간 긴 채를 꿰어 붙인, 포장이나 덮개가 없는 작은 가마이다. ⑤ 삿갓가마[草轎]:초상중에 상제가 탄 가마로, 가장자리에 흰 휘장을 두르고, 위에 큰 삿갓을 덮은 것처럼 꾸몄다. ⑥ 사인교(四人轎):민간에서 혼례 때에 신부를 태우고 운반한 가마로, 앞뒤에 각각 2사람씩 모두 4사람이 메었다. ⑦ 교여(轎輿):사람이 타지 않고 물건을 운반하는 데 사용한 가마이다. ⑧ 용정자(龍亭子):나라의 옥책(玉冊) ·금보(金寶) 등 보배를 운반할 때 사용한 가마이다. ⑨ 채여(彩輿):왕실의 의식 때 귀중한 물건을 실어 나른 가마로, 남여와 비슷하며 채가 달려서 앞뒤에서 멘다. ⑩ 무개(無蓋)갸자:음식물을 실어 나르는 데에 사용한 들것으로, 2사람이 메듯이 하여 날랐다. 이 밖에 구조상으로 종류가 다른 것이 있는데, 보교(步轎)는 정자(亭子) 지붕 모양으로 가운데가 솟고 네 귀를 내밀었으며, 바닥은 소의 생가죽 올로 엮어서 만든 것으로, 바닥 ·뚜껑 ·기둥을 각각 뜯을 수 있다. 장독교(帳獨轎)는 뒷면 전체가 벽이고 양 옆에는 창을 냈으며, 앞쪽에는 들창처럼 버티게 된 문이 있고, 뚜껑은 지붕처럼 둥그스름하게 마루가 지고 네 귀가 추녀처럼 되었으며, 바탕의 바닥은 살을 대었는데 전체가 붙박이로 되어 있다. 소잔등에 고정하여 1사람이 뒤채를 잡아 균형을 잡으면서 몰고 가기도 한다. 장보교(帳步轎)는 장독교와 비슷한 것으로 4기둥을 세우고 4면에 휘장을 둘러쳤으며, 조립할 수 있다.
사인교 quadruplet dooly
4사람이 메는 가마.
앞 뒤에 2사람씩 1줄로 서서 멜빵에 장대를 걸어서 어깨에 매도록 되어 있다. 민간에서 혼례 때 신랑 신부가 주로 사용하였다. 신랑 것은 보통 장식이 없지만 신부의 가마는 꽃가마라고 하여, 여러 가지 색깔을 칠하거나 술을 다는 등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가마 몸체에는 부부 금실이 좋고 자손이 많기를 비는 무늬를 새겨 넣었고 가마 덮개의 4면 가장자리에는 5가지 색술을 둘렀다. 옆 미닫이 창문에는 꽃을 그려 넣은 유리창을 끼우고 들창문과 양쪽 문 밖에는 바탕에 거북등무늬가 그려진 구슬발을 달았는데, 발에는 부채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가마 안에는 바닥에 숯과 목화씨를 놓고 그 위에 방석을 깔며, 한쪽 구석에는 요강을 놓는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갈 때에는 신부의 가마에 흰 천으로 휘장을 두르고, 가마 지붕에는 호랑이 가죽이나 쓸개를 얹어서 잡귀와 액을 물리친다
국수틀 noodle machine
가루를 반죽하여 통에 넣고 공이로 눌러서 국수를 뽑아내는 틀
조선시대의 국수틀은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틀에, 분통 밑에 구멍이 송송 뚫린 쇠판이 달려 있다. 메밀가루 등으로 반죽을 하여 국수분통에 알맞은 굵기와 길이로 빚어 넣고, 분채에 달린 분공이를 분통 위에 맞추어 놓고 누르면, 밑에 댄 쇠판으로 국수가 빠져나온다. 밑에 솥이 있어 끓는 물에 받아 익혀서 찬물로 옮겨 식혀서 건진다. 쇠판에 뚫은 구멍의 크기에 따라 국수 가락이 가늘게 또는 굵게 뽑아진다. 오늘날에는 간단한 구조로 된 기계를 사용한다
교자상 [交子床] large table
명절이나 축하연 때 음식을 차려 놓는 직사각형의 큰 상.
재료는 은행나무나 피나무로 된 천판에 소나무 ·화류나무 등으로 다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천판의 네 귀는 말각으로 처리하고 변죽은 굵게 연귀맞춤을 했으며, 밑에는 4개의 다리를 세우고, 운각(雲刻)을 세워 붙이고, 중대를 돌려 강도를 주었다. 반면이 통판으로 된 목재를 사용하면 튼튼하지만, 이를 구하기 어려워 2~3개의 판재를 이어 붙이거나 부판을 이용한다.
교자상 차림에는 주안상 형식의 건교자(乾交子), 밥상 형식의 식교자(食交子), 주안상과 밥상 형식의 얼교자가 있다. 한국의 전통은 독상을 받는 것이 원칙이나, 20세기 초부터 외세의 영향으로 식생활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궁중에서도 아랫사람들이 겸상으로 사용하였고, 사가(私家)에서도 같은 계층의 연배끼리 겸상으로 사용하였다.
귀때동이 bucket for muck
농가에서 거름을 줄 때 사용하는 농기구.
구대동이·구댕이라고도 하며, 한쪽에 귀때를 붙여 만든 동이를 말한다. '귀때'란 주전자의 주둥이처럼 그릇의 주둥이 한쪽을 삐죽하게 내밀게 만든 것이다.
귀때동이는 주로 농가에서 논밭에 져다 놓은 오줌이나 똥·재 등의 거름을 거름통에서 덜어내 이리저리 옮겨가며 뿌리는 데 사용한다. 보통의 도기로 된 물동이와 비슷하지만 한쪽에 귀때를 붙였기 때문에 안에 담긴 액체를 따르는 데 편리하게 되어 있다. 술을 비롯한 간장 등의 액체를 담아서 쓰는 귀때항아리보다는 조금 크다.
귀때동이의 재료는 보통 질그릇으로 된 것이 많지만 나무로 만들어 쓰기도 하였다. 동이 하나에 5∼10되 정도의 거름을 담을 수 있다.
120)this.width=120;"> 기름틀 defatted tool
콩·참깨·들깨 같은 식물을 원료로 하여 기름을 짜는 틀.
두 갈래로 아귀진 두툼한 나무 끝에 가랑이가 벌어진 받침대를 끼우고, 한가운데에는 둥글게 홈을 팠으며 철로 된 홈통을 아래쪽으로 박아, 기름이 그곳으로 흘러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 위에 기름떡을 얹어놓고 기름떡 위에 돌이 실린 기름챗날을 올려놓는다.
또 다른 형태로는 앞머리 위에 두 개의 세장으로 연결된 사다리 모양의 것이 있다. 이 머릿골의 아랫세장 위에 굵고 둥근 나무틀을 뉘어 놓고, 이 위에 홈이 파인 떡판을 걸쳐 놓는다. 이 떡판 위에 기름떡을 올려 놓은 다음 윗세장에 챗날을 끼우고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아 기름을 짠다. 기름떡은 깨를 잘 씻은 다음 볶아서 절구에 찧고 채에 쳐서 자루에 담아 솥에 넣고 김을 쐰 것이다.
다식을 박아내는 틀
길쭉하고 단단한 나무 조각의 위 ·아래에 다식 모양을 파낸 것과 한 조각에 구멍을 파낸 것도 있으며, 각재에 원형 ·화형 ·물고기 등을 음각으로 파낸 하나의 판으로 된 것도 있다. 위 ·아래 두 짝으로 된 것은 다식 모양을 돌출시킨 양각판과 투공시킨 판이 양 끝에 버팀대가 있다. 양각판의 돌출부에 壽(수) ·福(복) ·康(강) ·寧(녕) 또는 완자무늬 ·꽃무늬 등이 음각되어 있다. 다식을 박을 때에는 위판을 올려 괴고 구멍에 반죽을 넣어 눌러 찍으면 된다. 혼례 ·회갑연 ·제례 등에 반드시 쓰이는 조과품이었다. 대를 물리면서 사용하고, 필요시에는 주부가 새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
an oil cup for a lamp, a lamp oil container
동물성 ·식물성 기름, 석유 등을 연료로 등불을 켜는 그릇
재료에 따라 목제 ·토제 ·와기 ·대리석 ·백자 ·사기 ·놋 ·철제 등잔이 있다. 여기에 한지 ·솜 ·노끈 따위로 3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을 먹여 불을 켠다. 1876년경 일본에서 석유와 함께 심지꽂이가 따로 붙은 등잔이 들어왔다. 주로 사기로 된 것이었지만 백자 ·놋쇠 ·백동 ·철 ·대리석 등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불을 밝게 하려면 심지 2개를 사용하는데 이것을 쌍심지라고 한다. 보통 등잔걸이 ·제등(提燈) ·좌등(座燈) 등에 올려놓고 사용하나, 등잔에 등대가 붙은 것도 있다. 이동하는 도중 기름이 넘쳐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름받이를 밑에 걸어서 넘치는 기름을 받기도 한다
120)this.width=120;"> 물방아 water mill=noria
물의 힘으로 공이를 오르내리게 하는 방아.
곳에 따라 벼락방애·통방아라고도 부른다. 벼락방애는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벼락처럼 크다는 데에서, 통방아는 방아 자체를 통나무로 파서 만들었다는 데서 연유한다.
굵고 긴 통나무의 한끝을 구유처럼 길게 파서 물이 담기도록 하고 다른 끝에는 공이를 박았다. 수로(水路)에서 쏟아지는 물이 물받이에 가득 차면 물의 무게 때문에 물받이 쪽이 주저앉고 공이 쪽은 들려 올라간다. 이 때 물받이에 담긴 물이 쏟아지면서 공이가 떨어지는 것이다. 큰 통나무가 귀한 곳에서는 궤짝을 짜서 물받이로 쓴다.
공이의 오르내리는 속도는 물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매우 느려서 사람이 붙어 있지 않고 한나절에 한 번쯤 곡식을 바꾸어 넣기만 한다.
삼 ·모시 ·노(실 ·삼껍질 ·헝겊 ·종이 등으로 가늘게 꼰 줄) 등으로 삼은 신.
삼신’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는 구(屨)이며, 마혜(麻鞋) ·망혜(芒鞵)로 표기한다. 형태별로 보면 이(履: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의 일종이다. 짚신보다 고급품이나 피혁제 ·포백제(布帛製) 신이 출현함에 따라 일반적으로는 서민층 남녀가 사용하였고, 섬세한 제품만을 사대부 계층에서 편복에 사용하였다. 미투리를 통칭하여 삼신이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세분하면 삼신 ·절치 ·탑골치 ·무리바닥 ·지총미투리 등의 명칭이 있다. ① 삼신:재료가 주로 생삼인 데서 비롯한 명칭이다. ② 절치:거칠게 삼은 미투리로 절에서 신은 데서 비롯한 명칭이다. ③ 탑골치:튼튼하고 잘 삼은 미투리이다. 동대문 밖 탑골에서 삼은 데서 유래한다. ④ 무리바닥:무리(쌀을 물에 불려 갈아서 체로 받쳐 가라앉힌 앙금)를 바닥에 먹인 미투리이다. 고급품이다. ⑤ 지총미투리:종이를 꼬아서 만든 노로 총(미투리의 앞 ·옆쪽에 박힌 낱낱의 올)을 삼은 미투리이다.
민구 民具
〈생업에 관한 것〉
① 농기구:쟁기 ·가래 ·삽 ·괭이 ·쇠스랑 ·써래 ·호미 ·두레 ·맞두레 ·용두레 ·무자위 ·두레박 ·홈통 ·거름장군 ·거름통 ·거름바가지 ·귀때동이 ·삼태기 ·낫 ·전기 ·개상 ·벼훑이 ·도리깨 ·홀태 ·호롱기(탈곡기) ·갈퀴 ·넉가래 ·물레방아 ·물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절구 ·매통 ·멍석 ·발 ·도래방석 ·섬 ·멱서리 ·채독 ·나락두지등,
② 수렵기구:활 ·창 ·틀 ·덫 ·그물 ·올무,
③ 수산기구:주낙배 ·돛배 ·뗏목 ·투망 ·낚시 ·작살 ·대창 ·물치창 ·반두 ·사내끼 ·통발 ·이끼수 ·쏙가래 ·수경 ·그랭이(바지락 채집용) ·새고막 채묘기(採苗器) ·굴 채묘상(採苗床),
④ 광산용구,
⑤ 각종 공장용구(工匠用具),
⑥ 축산기구:닭둥우리 ·구유 ·길마 ·착도,
⑦ 양잠기구:잠박 ·잠박틀 ·잠섶 ·잠망 ·회전섶 ·말연섶 ·견면채취기 ·뽕칼,
⑧ 양봉기구.
〈사회생활에 관한 것〉
① 상역구(商易具):되 ·말 ·저울 ·산판 ·자,
② 문방구:붓 ·먹 ·벼루 ·연적 ·문진 ·필통 ·지통.
〈신앙의례에 관한 것〉
① 무구(巫具):무복 ·무악기 ·무굿의기(儀器) ·무신도,
② 점복구(占卜具),
③ 불구(佛具),
④ 혼례용구:함 ·목안,
⑤ 상구(喪具):상여 ·요여 ·요령 ·관,
⑥ 제례용구:신주함 ·감실 ·제상 ·향로 ·향상 ·향합 ·제기.
〈의식주에 관한 것〉
① 복식(服飾):바지 ·저고리 ·마고자 ·조끼 ·도포 ·학창의 ·배자 ·두루마기 ·등거리 ·치마 ·저고리 ·고쟁이 ·속곳 ·장옷 ·토시 ·버선 ·행전 ·한삼 ·장갑 ·허리띠 ·대님 ·도포띠 ·대례복 ·소례복 ·혼례복 ·상례복 ·화관 ·족두리 ·굴레 ·남바위 ·아얌 ·조바위 ·정자관 ·흑립 ·방갓 ·삿갓 ·패랭이 ·고깔 ·갈모 ·유건 ·복건 ·짚신 ·미투리 ·마른갓신 ·목화 ·가죽신 ·나막신 ·진신 ·눈신 ·동곳 ·비녀 ·떨잠 ·뒤꽂이 ·첩지 ·다래 ·댕기 ·귀고리 ·목걸이 ·가락지 ·팔찌 ·안경 ·대삼작노리개 ·장도 ·주머니,
② 음식용구:사발 ·대접 ·접시 ·종발 ·숟가락 ·국자 ·젓가락 ·독 ·항아리 ·뒤주 ·두멍 ·단지 ·두루미 ·채반 ·소쿠리 ·광주리 ·솥 ·냄비 ·도마 ·칼 ·강판 ·조리 ·깔때기 ·번철 ·석쇠 ·양념절구 ·신선로 ·전골틀 ·화덕 ·시루 ·시룻방석 ·떡판 ·떡메 ·떡쌀 ·떡칼 ·다식판 ·약과판 ·소주고리 ·용수 ·기름틀 ·메밀묵틀 ·국수틀 ·밀대 ·풍로 ·삼발이 ·바가지 ·두레박 ·물동이 ·물통 ·물지게 ·똬리 ·개수통 ·설거지솔 ·수세미 ·밥상 ·돌상 ·공고상 ·교자상 ·약상 ·전골상,
③ 주거용구:장 ·농 ·반닫이 ·궤 ·함 ·상자 ·횃대 ·책장 ·책상 ·문갑 ·사방탁자 ·연상 ·고비 ·문서함 ·돈궤 ·필목궤 ·이불 ·요 ·포대기 ·베개 ·처네 ·죽부인 ·평상 ·목침 ·보료 ·방석 ·돗자리 ·팔걸이 ·안석 ·장침 ·좌장.
〈연희 ·놀이에 관한 것〉
① 연희구:탈 ·탈놀이 의상 ·꼭두각시놀음 인형,
② 악기:대금 ·퉁소 ·단소 ·피리 ·호적 ·나팔 ·소라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양금 ·비파 ·북 ·장고 ·징 ·꽹과리 ·제금,
③ 놀이기구:바둑 ·장기 ·쌍륙 ·윷 ·윷판 ·승경도 ·유객환(留客環) ·윤목 ·팽이 ·제기 ·연 ·얼레 ·줄다리기줄 ·목우(木牛) ·고싸움놀이고 ·차점놀이차 ·투전 ·마작 ·골패.
〈교통 ·운반에 관한 것〉
① 교통구:쌍가마 ·명차 ·보교 ·사인교 ·독교 ·삿갓가마 ·남여,
② 운반구:걸채 및 발채 ·옹구 ·거지게 ·발구 ·달구지 ·지게 ·바소거리 ·망태기 ·주루막 ·다루깨 ·바구니 ·광주리 ·다래끼 ·종다래끼.
〈위생 보건에 관한 것〉
① 약 제조기구:약연 ·약작두 ·약장 ·약저울,
② 복약구(服藥具):약탕관 ·약짜는 틀 ·약싸개 ·약사발,
③ 진료기:침 ·침통 ·부항단지 등을 들 수 있다.
직기(織機)의 주요부품
대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얇고 평평한 바디살을 평행하게 늘어 세워 틀에 고정한 것이다. 날실의 배열과 밀도를 정하고 씨실을 북침할 때 북이 통과하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 따라서 특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바디살은 굴곡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직기에서는 날실이 잉아에 의해 이웃이 교대로 오르내려 개구(開口)되고, 그 개구부를 씨실이 좌우로 달려 직물을 구성해간다. 이때 이 조작만으로는 씨실의 배열이 성겨서 실용적인 직물이 되지 못하므로, 빗살과 같은 바디로 씨실을 빽빽하고 튼튼하게 내리친다.
바디에는 대바디[竹製]와 금속바디[鋼製]가 있는데, 대바디는 주로 수직기(手織機)에, 금속바디는 수명이 길어서 역직기(力織機)에 사용된다. 바디 높이는 북의 크기와 관계가 있는데, 역직기용은 수직기용보다 높고, 무명용은 명주용보다 높다. 또, 바디살의 나비나 두께는 바디의 종류에 따라 다르나, 한 바디에서는 나비와 두께가 균일해야 한다.
약탕기 [藥湯器] 120)this.width=120;">
a pipkin for preparing decoctions
한약을 달이는 그릇
전약용구(煎藥用具)라고도 한다. 옛날 사람들은 “은그릇이 최상이요, 자기는 그 다음이다”라고 하면서 돌이나 철그릇으로 약을 달이는 것을 금하였다. 이러한 그릇으로 약을 달이면 후에 침전이 발생되고 용해도가 떨어지며 심지어는 화학변화를 일으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흔히 쓰이는 뚜껑 있는 도자기 약탕그릇은 값도 싸고 화학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얼금이
체의 일종, 발이 엉글어서 큰 곡식알 등을 걸르는 도구
화롯불에 묻어 놓고 달구어 가며 천의 구김살을 눌러 펴거나 솔기를 꺾어 누르는 데 쓰는 바느질 도구
철제의 삼각뿔을 옆으로 누인 것 같은 형태로, 바닥이 약간 넓고 반들반들하며 끝이 뽀족하고 긴 쇠자루 끝에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다. 마름질을 할 때 재단선을 표시하기 위하여 금을 긋는 데에도 초크 대신 사용한다. 다리미와는 달리 작고 가벼우며 끝이 예리하여 구석진 솔기까지도 다릴 수 있고, 인두를 달군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두 straw cutter
말·소에 먹일 여물을 써는 연장.
풀·콩깍지·짚·수수깡·고구마 덩굴 등을 썬다. 기름하고 두둑하며 끝이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토막 위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2개의 짤막한 쇠기둥을 박아 세우고, 그 틈에 길고 큰 칼날 끝을 끼워 고두쇠로 꿰고 한끝의 나무자루 안쪽에 쇠고리를 박아 새끼로 끈을 매어 손에 잡고 발판을 만들어 한 발을 딛는다. 다른 한 발은 작두 자루를 밟아 새끼줄을 잡아 올렸다내렸다 하며 썬다.
대부분 가지가 벌어진 끝을 작두의 머리 쪽으로 삼으나, 전라남도 지방의 작두는 이와 반대이다. 양 가지가 벌어진 쪽에 발걸이를 고정시켜 놓는다. 두 사람이 1조가 되며 한 사람은 여물감을 먹인다.
손작두 straw cutter in hand
약초나 떡등 을 손으로 썰수 있도록 만든 작은 작두
120)this.width=120;"> 나무절구wooden grind machine
곡식이나 떡을 찧거나 빻는 민구(民具).
사람의 힘으로 곡식을 찧거나, 양념을 빻을 때, 또는 메주를 찧거나 떡을 찧을 때에 쓰는 매이다. 지방에 따라 도구·도구통·절기방아·방애라고도 한다.
절구는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돌절구·무쇠절구 등이 있다. 1개의 절구에는 보통 2사람이 맞공이질을 할 수 있도록 2개의 절굿공이가 딸려 있다.
절굿공이는 대개 긴 나무를 깎아 매끄럽게 만드는데, 손잡이가 되는 중앙 부분은 가늘게 하고 양쪽 끝 부분은 두툼하고 둥글게 되어 있다. 나무절구에는 나무공이를 쓰지만, 돌절구나 무쇠절구에는 돌공이·무쇠공이를 쓴다. 돌공이는 나무공이 끝에 기름하고 둥근 돌을 끼운 것과 길쭉한 돌덩이 끝에 구멍을 뚫고 ㄱ자 모양으로 나무자루를 끼운 것의 2가지가 있다. 분량이 많을 때에는 나무공이보다는 돌공이를 쓴다.
제주도에는 방에·방개라고 하는 절구가 있는데, 이것은 굵직한 2개의 받침다리 위에 지름이 120cm 이상 되는 통나무를 자연의 모양 그대로 하여 20∼25cm를 파고 넓적한 원통형의 목판(木板) 중앙에 지름 20∼25cm의 돌절구를 앉혀 놓아 좁쌀 등 낟알이 작은 곡식을 찧는다.
음식을 끓이거나 구울 때 석쇠나 그릇을 올려놓기 위하여 불 위에 올려놓는 취사용 기구
세발다리 ·둥근쇠라고도 한다. 둥근 쇠테에 발이 3개 달려 있다. 주로 화롯불에 음식을 만들 때 다리쇠와 함께 많이 쓰는데, 화로의 재 속에 다리를 박아 세워 놓고 그 위에 그릇을 얹어 음식을 끓이거나, 석쇠를 올려놓고 구이를 하기도 한다. 풍로가 생기기 전에는 가정에서 널리 쓰였다
쌍가마 雙駕馬
말 2마리가 각기 앞뒤 채를 매고 가는 가마.
조선시대에는 원칙적으로 외국에 나가는 사신, 관찰사·의주부윤(義州府尹)·동래부윤(東萊府尹) 등 종2품관 이상의 벼슬아치만 탈 수 있었다. 승정원의 승지를 지낸 정3품 수령은 예외로 탈 수 있었으며, 정2품 지방관이 지방에서만 타고 서울에서는 타지 못하였다.
자배기
아가리가 둥글고 넓적하게 벌어진 옹기그릇.
흔히 독 뚜껑으로 쓰는 소래기보다 운두가 약간 높으며 바닥이 넓다. 동이만한 부피에 높이가 낮고 넓적하게 만든 오지그릇처럼 생겼으며, 바깥 면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흔히 곡식이나 채소를 씻거나 절일 때, 나물을 삶아 불리거나 떡을 하기 위하여 쌀을 담그어 놓을 때, 설거지를 할 때 조리용 그릇으로 썼다.
특히 강원도 강릉지방에서는 도토리를 담거나 간수를 얻기 위하여 바닷물을 떠 놓는 통으로도 사용하였다. 최근에는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가볍고 쓰기 편한 그릇이 많이 나와서 잘 쓰지 않는다.
주루막
강원 산간지대에서 감자 ·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나르는 데 쓰는 기구
가는 새끼로 결은 네모꼴 주머니로서 주둥이를 죌 수 있도록 고리를 지어 붙이고 고리와 아래 양 끝에 멜빵을 달았다. 오래 두고 쓰려고 닳기 쉬운 고리에 칡덩굴이나 왕골 또는 가래나무 껍질 따위를 감아 둔다. 주루막은 짚 외에 왕골이나 노끈 또는 종이를 비벼서 꼰 끈으로 만들기도 한다.
죽부인 [竹夫人]
대[竹]를 쪼개어 매끈하게 다듬어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옛 침구.
사용하는 사람의 키만큼 길고 누워서 안고 자기에 알맞은 정도의 원통형이다. 속이 비어 있어 공기가 잘 통하고, 대나무의 표면에서 느끼는 차가운 감촉 등을 이용하여 만든 것인데, 여름에 홑이불 속에 넣고 자면 더위를 한결 덜 수 있었다.
곡물·모래 등의 알갱이를 거친 것과 미세한 것으로 선별하는 용구.
체의 모양은 얕은 원형·사각형의 나무테 바닥에 말털·철사·대나무·등나무 등의 망 또는 삼·명주 등의 포백(布帛)을 팽팽하게 친다. 이것을 사용할 때에는 이 망 또는 포백 위에 곡물·모래 등 선별해야 할 과립(顆粒)을 얹어 흔들어서, 망의 눈을 통과하는 입자와 통과하지 않는 입자로 나눈다. 삼·명주 등은 미세한 것으로 체질하며, 대나무·등나무 등으로 망을 짠 것은 거친 것을 체질하는 데 사용하였다. 또 공업용으로는 기계화된 회전체·진동체 등이 있다. 체눈의 크기는 보통 메시(mesh)의 단위로 표시한다. 체는 곡물의 정선에 필요한 공구였으므로 옛날에는 체장이들이 돌아다니며 요구하는 대로 만들거나 수선하였다.
체는 쳇바퀴·아들바퀴·쳇불로 이루어진다. 체의 몸에 해당하는 쳇바퀴는 얇게 켠 나무를 둥글게 말고 한쪽에서 솔뿌리 또는 실로 꿰매어 원통으로 만든다. 아들바퀴는 쳇바퀴 안쪽으로 들어가는 바퀴이며, 쳇불은 쳇바퀴에 매어 액체나 가루를 걸러내는 그물이다. 또한 체는 쳇불 구멍의 크기에 따라 어레미·도드미·중거리·가루체·고운체 등으로 나뉜다. 쳇불 구멍이 제일 넓은 어레미는 떡고물이나 메밀가루를 내린다. 쳇불은 철사나 가는 대오리로 메운다. 쳇불 구멍이 어레미보다 좁은 도드미는 좁쌀이나 쌀의 뉘를 고를 때 쓴다. 쳇불은 보통 철사로 엮는다. 중거리는 떡가루를 치며 시루면을 만들 때 떡가루를 물에 섞어 비비며 내린다. 쳇불은 천으로 메우기도 한다. 가루체는 송편가루 등을 내릴 때 사용한다. 쳇불은 말총을 사용했으나 근래에는 나일론천으로도 메운다. 고운체는 올이 가늘고 구멍이 잔 체이다. 쳇불은 말총이다.
체를 쓸 때에는 쳇다리를 사용한다. 쳇다리의 형태는 일정하지 않으나, Y자 모양으로 뿔이 세 개 달린 나무나 나무를 솥뚜껑처럼 둘글고 우묵하게 파고 한 가운데 구멍을 낸 것을 쓴다. 쳇다리는 동이나 함지와 같은 그릇 위에 걸쳐놓고 사용한다. 이 중 동이는 가루를 내는 데 사용하고, 함지는 술과 같은 액체를 거를 때 사용한다. 쳇다리는 장기간 일을 할 경우 피로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기구였다.
민간에서는 체를 악귀를 물리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설날 밤 야광귀(夜光鬼)라는 귀신이 인간세상에 내려와 어떤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사람의 신을 신어보고 맞으면 그대로 신고 간다. 이럴 경우 양광신이 신고 간 주인은 1년 동안 운수가 나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때 대문 앞에 체를 걸어 두면 밤새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신을 싣지 못하고 그냥 하늘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쳇다리
술이나 장, 기름 등 국물이 있는 것을 체로 거를 때 받는 그릇 위에 걸쳐서 체를 올려 놓는 기구
술이나 장, 기름을 비롯하여 액체로 된 국물이 있는 것을 체로 거를 때 받는 그릇 위에 걸쳐서 체를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만든 기구이다.
주로 나무로 되어 있는데, 나무가 두갈래로 갈라져 아귀진 부분을 잘라서 만든 쳇다리가 가장 보편적이다. 또한 나무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서 만들기도 하고 나무 등걸이나 뿌리가 얽힌 부분이나 나무의 결 방향으로 켜서 사용하기도 한다. 아니면 길다란 나무조각 4개의 끝에 구멍을 뚫고 끈으로 꿰어서 밑에 바치는 그릇 안에 서로 엇갈리게 놓아 그 위에 체나 맷돌을 올려 놓기도 한다.
쳇다리는 주로 술이나 장을 거를 때 외에도 콩나물 시루를 얹어 둔다든가, 빨래를 할 때 잿물을 내릴 때도 체 밑에 받치는데 이용되곤 했다.
120)this.width=120;"> 키 fanner fan
곡식 따위를 담고 까불러서 쭉정이 ·검부러기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구.
앞은 넓고 편평하고 뒤는 좁고 우굿하게 고리버들이나 대쪽 같은 것으로 결어 만든다. 곡식을 담고 까부르면 가벼운 것은 날아가거나 앞에 남고, 무거운 것은 뒤로 모여 구분할 수 있다. 키로 곡식을 까부르는 것을 키질이라 하고 바람이 조금 부는 날에는 더욱 잘 된다.
패랭이
옛날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가 쓴 갓
평량자(平凉子)·차양자(遮陽子)·폐양자(蔽陽子)·평량갓이라고도 한다. 댓개비를 갓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초립이나 갓은 패랭이가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패랭이는 원래 방립(方笠:삿갓)과 마찬가지로 일반에게 통용된 것이었으나 고급 관모의 출현으로 용도가 점점 국한되어 뒤에는 사인(士人)이 3년상을 치른 후 담제(禫祭)까지 썼으며, 서민에게는 역졸의 제모(制帽), 부보상·천민의 평상모가 되었다.
패랭이는 대개 소색(素色) 그대로 썼으나 역졸만은 검은 칠을 해서 썼다. 부보상은 갓끈을 꾀어단 꼭대기에 목화송이를 다는 것이 통례였고, 천민은 패랭이를 쓰기는 하되, 노상에서 양반을 만나면 패랭이를 벗고 길 옆에 엎드리는 관습이 있었다.
쇠를 달구거나, 쇳물을 녹여 땜질 등을 하는 데, 부엌의 불을 지피는 데 이용되는 기구.
골풀무와 손풀무가 있다. 발로 밟아서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를 골풀무 또는 발풀무라 한다. 손풀무는 손잡이를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바람을 일으키는데, 숯불을 피우기 위하여 손풍금 같이 생긴 손잡이를 잡고, 폈다오므렸다 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허풍선(虛風扇)은 손풀무의 하나이다.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풀무질이라 한다.
대장간이나 또는 불을 잘 피우기 위하여 바람을 불게 하는 기구
한태
1. 쟁기 따위의 봇줄을 잡아 매는 줄
2. 곡식을 특히 벼를 훑는 농기구
3. 홀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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