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잡채
황영(나작가 6기)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장을 보고 오라는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사무실 근처에 새로 생긴 반찬가게다. 특별한 반찬가게는 아니지만 여긴 시골이라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시골에는 없는 것이 많으니까. 빈 점포들 사이에 새로운 무언가가 생긴다고 하면 항상 눈길이 간다. 이번엔 뭐가 들어올까? 떡볶이? 치킨? 아무튼 지나가는 길도 아닌데 괜히 돌아서 인테리어 중인 내부를 슬쩍 곁눈질로 확인해 보곤 했다.
그것이 반찬가게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던 기억이 난다. 들뜬 마음으로 가게 앞에 섰다. 새로 단 간판은 집밥 상점이라는 딱딱한 글씨체 앞에 쌀알 모양의 귀여운 로고가 있었다. 쌀알 크기에 비해 작은 두 점과 웃는 입 때문인지 조금 싱거운 캐릭터였다. 짭짤하거나 혹은 달짝지근한 무언가가 땡기게 만드는. ‘우리 마을에도 반찬가게가 생겼다!’ 마음속으로 외치며 가게 문을 밀었다. 10평 남짓 공간에는 갓 만든 반찬들이 깔끔하게 진열돼 있었다. 아직 첫 끼를 못 먹었던 탓에 허기가 몰려왔다. 나무로 된 매대 위로 튀김과 제육볶음, 마른반찬이 있었다. 오른편 대형 냉장고에는 나물 종류와 김치, 볶음 반찬들이 있었고, 맞은편 선반 위로 쌀과 잡곡들이 둥근 통에 담겨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먼저 아내가 좋아할 만한 반찬이 눈에 들어왔다. 멸치볶음과 계란말이 그리고 진미채 볶음을 집어 계산대 위에 올렸다. 가게 주인은 계산대 뒤쪽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으로 들어가더니 소식이 없었다. 내가 집어 온 반찬들을 살폈다. 투명 사각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커튼을 양쪽으로 벌리며 주인이 나왔다. 쌀알 로고가 크게 박힌 베이지색 에코백과 함께 반찬을 투명 봉지에 담아 내밀었다.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당신 좋아하는 거 사 와’ 메시지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지?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상 생각해 보니 떠오르게 없었다.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오래된 유행어처럼 정말 그때 그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도 다르고 딱히 특정 음식이 좋아서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검색을 해서 맛집을 찾아갔을 때도 줄이 길면 바로 옆에 한산한 음식점으로 가는 게 낮다고 여기는 편이랄까.
이런 나를 키웠던 엄마는 종종 내가 군대에 갔을 때 첫 면회 이야기를 꺼낸다. 그즈음 같이 입대했던 동네 친구 현석이는 새우튀김을 좋아했었는데, 그런 친구의 식성을 잘 아는 현석이 어머니는 면회 전날 새우튀김을 잔뜩 해서 면회를 간 것을 두고 엄마는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몰랐던 게 좀 속상했던 모양이다. 고심하던 엄마가 면회에 싸 온 음식은 잡채였다. 잡채는 엄마의 필살기 같은 음식이다.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들었고 꼭 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만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었다. 면회 외박을 나와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가스버너와 프라이팬, 미리 준비해 온 재료가 담긴 커다란 반찬통을 꺼내 들었다. 능숙한 솜씨로 그곳에서 즉석에서 잡채를 만들었다. 어느새 일회용 쟁반 위로 잡채가 산처럼 쌓였다. 나는 들고 있던 종이컵에 잡채를 담아 크게 입안 가득 넣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는 내 쪽으로 잡채가 담긴 쟁반을 밀어주며 말했다. ‘영아, 힘들제? 많이 먹어라.’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눈앞이 뿌예졌다. 입안에서 가늘고 투명한 당면이 잘게, 또 잘게 끊어져 당근과 어묵과 시금치와 한데 섞여 목을 타고 넘어갔다. 따뜻하고 애잔한 맛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 온 반찬들을 식탁 위에 올려뒀다. 아내는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씻고 밥을 안쳤다. 지난번에 엄마가 싸준 잡채 소스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잡채를 위해 사둔 재료가 따로 없었다. 다행히 냉장고에는 양파와 당근, 파, 돼지 전지가 있었다. 재료를 모두 가늘고 길게 잘라놓고,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받침대 위에 올려 버튼을 눌렀다. 주방 찬장을 열어 소분되어 있는 당면을 꺼내 크게 한 주먹을 냄비에 넣었다. 물이 끓어오르자, 전기포트에서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버튼이 올라왔다. 뜨거운 물을 당면이 있는 큰 냄비에 옮겨 붓고 가스버너에 불을 올렸다. 오늘 사 온 반찬을 식판에 나눠 담았다. 밥솥에서는 수증기가 올라오면서 ‘백미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먼저 볶았다. 아삭한 식감을 위해 오래 볶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근, 파, 돼지고기를 따로 볶아 순서대로 접시 위에 올려뒀다. 달궈진 냄비에서 투명해진 당면을 꺼내 찬물로 헹궈 물기를 뺐다. 듬성듬성 가위로 당면을 잘랐다. 볶아둔 재료와 당면을 함께 프라이팬에 담아 엄마표 잡채 소스를 부어 긴 나무젓가락으로 썩었다. 찬장에서 참기름과 참깨를 꺼냈다. 잡채에 참기름을 조금 붓고 접시에 잡채를 올렸다. 그 위로 참깨를 한 꼬집 뿌렸다. 밥을 푸고 수저를 놓으니 그럴듯한 저녁 상차림이 되었다. 나는 아내를 불렀다. 아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며칠 전 부모님 댁에 들른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 생일이라고 했다. 보통은 생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음력 생일이었다. 20살 이후로 생일을 직접 챙겨준 적이 없다며 분주하게 무언가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대학 다닐 때는 친구들과 시간 보내는 게 좋아서 집에 내려가지 않았고, 직장이 생기고 난 후에는 피곤해서, 결혼하고 나서는 명절에만 잠시 들렀었다. 식탁 위로 미역국과 잡채, 샐러드, 돼지갈비가 금세 올라왔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에 오면 배가 부르고 입맛이 없었다. 엄마가 쌓아 올린 고봉밥을 반 이상 덜어 밥솥에 도로 넣었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젓가락으로 밥알을 조금씩 집어 입에 넣었다. 그사이 엄마는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통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잡채 소스를 500ml 페트병에 넣어주면서 집에 가서 해 먹으라고 했다.
“이거 어머니 잡채지? 난 어머니 음식 깔끔하고 맛있더라”
아내는 새로 사 온 반찬을 한 번씩 맛보더니 잡채를 계속 집어 먹었다. 나도 밥과 잡채를 번갈아 가며 먹었다.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다시 그릇에 밥을 퍼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뒷정리했다. 아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 창가에 서서 맞은편 빌라 뒤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한번 드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