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만;2남3녀중 장남.부;김종선.하늘나라계심.모;백순자;제가 모시고 살고 있어요.
1964년 음력 11월3일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464번지 출생.
1971년~1977년 감교 초등학교 입학, 졸업.
1977년~1980년 상서 중학교 입학, 졸업.중학교2학년때 복싱체육관구경등.서울작은집에 여름방학때에 놀러옴.
가을 아버지주머니 훔쳐서 서울로 가출, 붙잡혀서 끌려내려감.말썽꾸러기.
1980년~1985년 서울 복싱 김준호 체육관 운동--화양동, 성수동, 미아리,청량리.종로, 자양동, 노량진,신촌,차취활동.
1986년(23세) 봄, 영등포 삼각지 활동,강철문.호남향우회총무등.인연. 신민당 직선개헌 서명운동.
여름 ;전남 보성군 보성읍 전희숙 65년생 만남 봄에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어요)
86년 여름.영등포구 당산2동 광성연립 (현재도있어요) 방1간월세방20만.8만원.동거생활 전희숙 고생 많이했어요.
86년.신민당중앙당사에서 신민당 이민우총재,김영삼고문과 직접인사.감회가 깊었다.
김대중선생 가택연금,육성녹음 태이프 연설 감동받음 .군부독제타도.직선개헌서명운동.최류탄,군화발 난무.
86년9월8일 전주 35사단입대 영등포에서 정치활동하다가 잡혀갔음.빨리 제대 시켜주라고 부모님 속썩임.
의가사 (생계곤란)제대 서류작성 12월18일;제대.군번 94324592.
87년 (24세)가을 영3동 롯데마트옆 동아맨션 방1간거주
87년6월10일대회;6월민주화운동;광화문.종로.미도파.명동일대 최류탄난무.6.29선언챙취
87년1월 김대중선생님 꿈속에서 만나뵈었음. 잡설침. 다음날 동교동자택 인사드림.
남궁진비서실차장 안내로 김대중선생님.이희호여사님과 악수감회.더욱더 적극적활동.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등.
87년6월10일대회;6월민주화운동현장;광화문.종로.파고다공원.미도파.명동일대.최류탄난무.6.29선언쟁취
87년 평화 민주당 창당 (구)세종문회회관활동,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평민 서민정당.
기호3번 김대중 대통령 후보 외각,경호활동.김옥두경호실장께 충성심 인정받음.
라면으로 식사, 모금함준비, 새우잠.제주도만 못가고.부산.대구.대전.광주.강원도.충청도.전라도등.전국.군.단위.가보았음.
12월대선 낙선 부정선거규탄[ 고 문익환목사님]등 민주인사 진압,탄압.구로구청 참사 현장활동. 암울한시기.도망다님.
88년(25세)총선.영등포(갑)가시밭길 20년, 기호3번 김수일후보 수행비서. 이종만회장,서동안회장 만남.
13개동 사랑방 좌담합동유세.김수일후보 낙선으로 낙심함.
88년6월.평화민주당 중앙당 대외협력위원회 차장임명.김대중총재께서 수여하심.이병로위원 친분맺음.
88년8월 동교동 자택 전화담당.경호야간 오후6시에서 다음날오전9시 날샘.일주일3일근무.
88년10월 이희호여사님께 충성심, 성실함 인정받음.자택비서로 근무하여 일주에 한번집에 감.
전희숙 속상해함 수많은 날 싸움.미안했음.그러나 힘들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좋은일 있을거라고 위로함.
89년(26세) 양평1동 포푸라연립에서 방1간 거주.
90년(27세) 여름 방2간 당산1동 3가 우체국 주위
90년 9월8일 신촌 로타리 예식장 결혼식.주례 한광옥비서실장,이희호여사님 참석.
91년 (28세) 11월30.큰딸 김화실출생.당산1동거주.
92년 (29세) 동교동근무중 민주당 장석화국회의원후보(당선) 지원운동.김주철부위원장,김정환국장 등과 친분맺음.
92년 당산1동 3가 이사 장석화의원사무실 주위.
92년 김대중 후보 대선 낙선 정계은퇴 선언후 영국으로 출국후 낙심함.
93년(30세) 봄. 장석화 국회의원 영등포(갑)지구당 중앙대의원,홍보부장으로 활동.
94년(31세) 영등포 정당활동 전 김원기 국회의장께서 창립하신 한백산악회 본부 활동.
95년 (32세)5월31일 아들 재호출생.양평동1가45번지 거주.
96년 (33세)영등포호남향우회, 영등포구의회의원 김진국회장, 김원만 섭외총무 활동.
97년 (34세)3월 아태평화 재단 활동 (이사장 김대중)
97년 (34세)10월 김대중후보 일산자택비서 5년만에 다시 모시게됨--김원만 일상생활,신상파악후
김옥두의원님 추천.. 진심 감사드림.
제 처 전희숙과의 약속다짐 김대중선생님께서 패배 하신다면 다시는 정치활동 안함 약속.
97년12월18일 개표시작 일산사저에 내.외신기자 100여명 및 당원등 수백여명 성원. 긴장속 개표 지켜보는중 일산자택거실
생중계중 김원만얼굴 Tv 방영으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 몸이 떨리고 굳는느낌, 새벽 당선확정후 울움바다.
꿈이 아닌지 벽을치고 비서진과 서로 몸을 치면서 끌어안고 확인.
친구, 선배, 친적등 축하 한다고 삐삐가 울리고 헨드폰 불남.
98년(35세)2월25일. 김대중대통령님 취임식 생중계 때 일산사저에서 지켜보는 김원만비서가 tv 방영으로
친구, 지인들으로부터 전화 빗발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