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치유) 20. 숲에서 잡는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 고혈압 환자를 위한 숲 이용법
웰빙(well-being)을 넘어서 내추럴빙(natural-being)이 화두다. 인류의 역사는 숲에서 시작해 숲과 함께 진화 발전해 왔으니, 숲은 인간에게 원천적인 고향이며 모태와 같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내추럴빙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5퍼센트가 산과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숲은 부작용이 없는 치료약이고 보약이며, 모든 사람을 받아주는 종합병원이다. 누구나 가까이 있는 산과 숲을 쉽게 찾아가서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킬 수 있다. |
고혈압은 엄밀히 말해 질병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어떤 병보다도 더 무섭다. 고혈압은 별다른 증세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방질이 많은 음식 섭취, 잘못된 생활 습관, 운동 부족 등으로 고혈압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의학계 분석이다. 조사에 따르면, 30대 이상 성인의 혈압 분포를 살펴보면 남자의 28.4퍼센트, 여자의 47.3퍼센트만이 정상 혈압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혈압 위험은 훨씬 커지는데 우리나라 40대 남성 중 1명이 고혈압에 해당한다는 통계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2004년 말 대한고혈압학회는 정상 혈압 기준을 140/90mmHg에서 120/80mmHg 미만으로 대폭 낮추었다. 또한 수축기 혈압 120~139mmHg, 확장기 혈압 80~89mmHg에 속하는 범위를 고혈압의 전 단계인 ‘주의’ 단계로 새롭게 구분했다. 이 수준에 해당하는 혈압을 방치하면 4년 이내에 고혈압으로 발전할 위험이 정상 혈압 때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고혈압 전 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10년 후 심혈관 질한 발생률도 정상인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는 것이 미국에서도 조사되었다. 특히 심근경색의 경우에는 3.5배나 높다고 한다. 따라서 과거에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120~139/80~89mmHg에 속하는 사람들은 혈압 관리를 잘하여 수치는 낮추는 것이 돌연사 예방을 비롯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관건이다.
고혈압은 다른 여러 가지 위험한 병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빨리 조처해야 한다. 먼저 고혈압과 당뇨병의 관계를 알아보자. 두 병은 상관성이 매우 높다. 당뇨병 환자에게서 고혈압이 특히 많이 발견되고 고혈압 환자에게서도 당뇨가 정상 혈압 군과 비교하면 약 2.5배나 높게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고혈압과 당뇨가 공존하면 심혈관 질환과 뇌졸중, 신장 질환이 발병한 가능성이 크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에게는 130/80mmHg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신장 질환과 고혈압 관계도 마찬가지로 연관성이 높다. 만성 신장 질환 환자들에게서는 대부분 고혈압 증상이 나타난다. 신장 기능의 저하는 혈압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축기 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신장 기능이 연간 4~8ml/min으로 급속히 나빠진다. 신장 질환 환자들이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은 신장 기능의 악화를 예방하거나 완화하고, 심혈과 관계된 합병증과 이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은 혈압을 130/80mmHg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고받고, 특히 단백뇨의 단백질량이 1그램 이상일 때는 125/75mmHg 이하로 철저히 조절하여야만 신장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50대 이상의 남성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발기부전도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 더 자주 발견된다.
돌연사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출혈성 뇌졸중과 같은 뇌혈관 질환과 고혈압의 관계는 거의 정비례한다고 보아야 한다.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출혈의 위험도는 제1기 고혈압에서는 2.6배, 제2기 고혈압에서는 4.3배, 180/110mmHg 이상일 때는 9.9배로 급증한다고 한다.
40대 돌연사율이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 통계와 40대 고혈압 환자들이 거의 50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40대의 돌연사는 한 가정의 기둥이 졸지에 무너지는 불행이기도 하지만, 생산력이 정점에 오른 인력을 잃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불행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일이 이러한 불행을 예방하는 최선책이다.
이렇게 위험한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고혈압은 왜 생길까? 불행히도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약 95퍼센트의 고혈압이 특별한 원인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현대 의학 수준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40대 이하의 고혈압 원인은 대부분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본태성(本態性) 고혈압’이라 한다. 많은 사람이 혈압이 올라갈 때 두통이 심하고, 뒷골이 당기고, 목이 뻣뻣하다고 호소하지만, 전문가들의 연구 실험에 따르면 이런 증상과 혈압 수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고혈압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직 모르지만 여러 가지 잘못된 식습관을 비롯한 생활 습관과 상관이 있다는 것은 밝혀지고 있다. 과도한 염분 섭취, 술, 담배, 운동 부족, 공격적인 성격, 과로 등이 고혈압과 관련 있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혈압과 이에 따른 다른 질병의 유발을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활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고혈압 조절 방법은 숲을 이용한 운동이다. 혈압은 몸을 움직일수록, 그리고 몸이 더 가벼울수록 낮아진다는 것이 일방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숲 산책이나 가벼운 등산 같은 운동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면 수축기 혈압은 11mmHg, 이완기 혈압의 경우 8mmHg 정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수치는 혈압약을 복용하여 얻는 효과와 같은 수준이라고 하니 초기 고혈압에 속하는 사람들에겐 특히 효과적일 것이다. 더욱 좋은 소식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어떤 연령층에게도 효과 있는 방법이 운동이라는 사실이다. 이 정도의 방법으로도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율을 25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혈압이 높을수록 격렬한 운동보다는 경사가 낮은 숲길을 택해 걷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숲에서 걷기는 힘들지 않고, 지루하지 않으며, 흥미와 즐거움을 동반해 혈압을 조절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운동이다. 러닝머신에서 걷거나 운동장을 걷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걷는 숲길 산책과는 비교할 수 없다.
오감이 열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숲길 산책은 심장을 적당히 자극해 운동 효과를 높이고 혈압을 낮추는 데도 아주 좋다. 실험에 따르면 숲의 아름다운 경치와 피톤치드 같은 건강 물질이 우리 몸을 심리적/생리적으로 안정시켜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숲이 혈압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또 하나 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험한 것인데, 비디오로 교통 체증이 심한 장면을 30분 보여준 뒤 아름답고 평온한 숲 장면을 보여주어 혈압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조사하였다.
교통 체증이 심한 비디오를 볼 때 사람들의 반응은 혈압이 올라가고 근육이 수축하는 등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와 같은 생리 현상을 보였는데, 숲 비디오를 본 지 10분도 되지 않아 혈압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숲은 간접적으로 경험해도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 사무실에서 종일 근무하거나 숲에 갈 시간과 여유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창문 너머로라도 숲을 보자.
왜 숲이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자. 일단 걷는 것은 몸의 지방을 분해해 체중을 줄여 주는데 이것이 혈압을 조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숲에서 걷거나 등산은 호흡을 빠르게 할 뿐만 아니라 염분, 수분, 노폐물까지 땀으로 배출시켜 혈압을 더 잘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혈압 강하제 중의 하나가 이뇨제이다.
또한 숲은 아드레날린 분비량을 떨어뜨려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낮추어 준다. 이것은 베타차단제 같은 혈압약과 효과가 같다. 이런 약은 피로감과 불면 같은 부작용이 있지만, 숲에서의 활동은 더 활기차 밤에도 달콤하게 자게 하니 얼마나 효과적인가.
숲에서 적절히 활동하면 또 다른 호르몬인 인슐린 수치도 낮아져 혈압이 떨어진다.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인슐린은 우리 몸의 당도를 조절해 준다. 고혈압 증상이 있는 사람 대부분은 인슐린 수치가 높다. 몸속의 당을 조절하기 위해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한 것이다. 비만한 사람도 비슷하다. 인슐린 수치가 정상보다 높으면 신장이 염분을 걸러내지 못하고 가지고 있으므로 체내 염분 농도가 높아진다. 이 때문에 혈압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숲은 이 인슐린 수치를 낮추어 혈압을 조절해 준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고혈압 환자는 가파른 산에 오르거나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과격한 활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산지대는 산소가 부족하므로 특히 피해야 한다. 또한 날씨가 추우면 혈압이 올라가므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과체중이면서 고혈압이 있다면 공원이나 평지 숲길을 꾸준히 산책하는 정도가 좋다.
숲은 어느 약보다도 효과적인 혈압 강하제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주 숲을 찾으면 ‘침묵의 살인자’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고혈압 환자를 위한 숲 이용법
이제부터 숲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실천 방법은 매우 쉽다. 간단한 옷차림과 편한 신발을 착용하고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 숲으로 가자. 다만 초보자라면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우선 운동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운동해야 한다는 의무보다는 흥미로운 여가를 즐긴다는 기분으로 숲을 찾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할까?
처음엔 30분 정도로 시작하자. 일주일에 최소한 세 번 이상 숲에 가자. 차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40분, 1시간, 1시간 반으로 시간을 늘리고, 매일 숲에 가는 습관을 들이자.
어떤 활동을 할까?
숲길을 걷는 것이 최고의 운동이다.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점점 빨리 걷고, 마무리할 때쯤에는 다시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서 아름다운 야생화를 감상하거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다. 도감을 가지고 다니면서 나무와 야생화 이름을 익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오감을 열고 몸과 마음을 숲과 일치시켜 보자.
혈압 강하제를 복용하는데도 숲 운동이 좋은가?
물론이다. 만일 혈압약을 먹고 있다면 운동 강도를 어떻게 할지는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약의 종류에 따라 효과적인 운동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베타차단제나 칼슘길항제 같은 약을 먹는다면 단순히 심장 박동수로 운동 강도를 결정할 수 없고, 이뇨제를 복용할 때 약이나 운동 때문에 손실되는 칼륨이나 마그네슘을 충분하게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약을 먹는 환자라면 의사와 먼저 상의해야 한다.
운동을 중단하면 혈압 강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까?
숲에서 걷기와 같은 운동이 주는 효과는 마치 약을 먹는 것과 같다. 약을 끊으면 그 효과가 서서히 감소하는 것과 같이 숲에서 걷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 54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숲에서 운동시킨 결과 3개월 후 혈압이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후 14명은 운동을 중단했는데 3개월 후 혈압을 재어 보았더니 다시 고혈압으로 돌아와 있었다. 약이든 숲 걷기든 꾸준히 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신원섭. 숲으로 떠나는 건강 여행.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