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잘라 열번찍지 말자~
법 체계가 두 번은 커녕 단번에도 남자를 골로 보낼 수 있을 만큼 가혹하고 투다리 문어다리도 드물지 않은데다
사회적 분위기가 관심을 표현하거나 원치않는 관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고도의 피곤함을 유발시키는디 어케 열번을 찍을 수 있기나 할까
인연이란 기냥 세번을 스치고도 방향과 진전이 없으면 남남인 거다
기실 될 성 부른 남녀관계는 자리를 같이 한마디 말이라도 주고 받는 세번 안에 충분히 될 것 다 되는 거고 그 세번안에 별 일 없으면 후로도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 백퍼로써 눈빛만 봐도 전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원나잇스탠도 더러 있다던데 작금에 열번을 찍어주기 바란다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도끼병이나 성격장애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2223년엔 다들 누군가를 만나고 그 만나는 세번안에 좋은 짝지들 이루시기를 바람다~
모악산정에서 내려다 본 양친계신 시골마을
모악자락의 선영
백제와 조선 천년고도 전주를 품은 모악산자락 내고향 구이는 아홉구와 귀이를 지명으로 하고 있다
9의 큰 대덕이 날 것을 땅의 기운으로 하고 있다 하여 구이였다
근래 인물로는 김일성 정일 정은의 시조묘가 모악산에 있고 전두환 일가 음덕에도 묘소가 있다
지금은 거의 소실되고 몇기 남아 있지 않으나 고인돌도 많이 있었던 지역이다
산의 형상은 엄마가 앉아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며 구이쪽이 앞 금산사가 있는 김제평야가 산의 뒤로서 당연히 산신도 여성이라 한다
뒷쪽 지역은 근대까지 김제라는 명칭이 아니었는데 일제때 금이 제법 나왔기로 이름지어졌다 하며 산과 강을 끼는 침식충적토에 금이 났다거나 비슷한 지명이 여러 곳이다
국내 유일 지평선 곡창평야여서 눈 뜨면 시작되는 노동과 뼛속까지 근로가 생활화 된 곳으로 도시와 멀리 안분자족 했었다
모악산의 줄기는 전주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가르는 황방산으로 이어지며 덕진왕릉 건지산을 들러
마이산을 찍은 후 노령산맥으로 노령산맥은 태백산맥으로 이어 달리다 장백백두산을 이고 곤륜희말라야를 지맥으로 한다
모악산이 여신이므로 그 배우자인 낭군산도 있는 바 7~8km쯤 마주보고 떨어져 남신산이 있다
엎드려 용을 쓰는 지세의 고덕산이라 이름하고 모악보다 100m쯤 낮으나 산의 기세는 장중하다
고덕산에는 백제시대 금산사보다 훨 장엄한 대찰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널부러진 기왓장 외 흔적조차 대부분 멸실되었다
그 건너에 전주의 천년 외성 남고산성의 흔적이 무상한 세월을 초연하여 오늘도 비바람에 젖어들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남동쪽으로 보이는 바위능선이 사진과 같은 남고산성이다
시간이 될 때 임진 정유난에서 노량대첩 한산대첩 진주대첩 명량대첩 이상으로 중요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전투에 대해 기억을 복구해 적어 보겠다
금강라인과 민주지산 적상산 황석산 황매산 장안산 섬진강라인을 따라 진주성에 이르고 내륙으로는 전주성 남원성 순천성 등에서 조선의 명운을 건 전투들이 있었고 직접 돌아보며 적어봤던 것이다
난중 조선땅에서 인력과 물자가 가장 많았음으로 병참보급지였던 호남방어전 이었고 통영의 경상좌수영과 삼도통제영의 배후를 단단히 지켜냄으로써 3대 대첩을 있게 했으며 전투 자체로도 삼대대첩에 못지 않았지만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 그 이유도 적을 것이다))
https://youtu.be/5dkpk1gma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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