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정용국
손대면 바스러지는 저놈의 성깔에다
올올이 몸을 말고 곁마저 까칠하기는
앵돌아 등돌려버린 저 봉지 속 능구렁이
헛헛한 순간마다 마른 몸을 살라내면
은근히 여며주는 엄마의 괴춤처럼
뉘라도 외롭지 않다 살갑고 푸근하다
시름 타래 풀어내고 간을 맞춘 멀국에는
알싸한 밤도 오고 쌈싸름한 시름도 모여
백동전 몇 잎 앞에서 두 무릎을 꿇는다
불펜(Bullpen)*
정용국
목숨 건 싸움판으로 발길을 옮긴다
관중의 아우성은 하늘을 찌르지만 소나 사람이나 자신의 기세만으론 견디기 어려운 법 투우사의 창과 상대의 방망이는 이미 적의 피 냄새를 맡아 버린 후라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고 목줄을 조여올 것이다 누구나 사는 일은 다 불펜에서 기다리는 일 내 힘으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까지 재주와 운을 기다려 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늘 내 편은 아니지 아범아 속 끓이지 말아라 죽으란 법은 없단다 엄마의 말 속엔 귀신이 사는지 울렁증도 사라지고 마음이 놓였다 어서 나가봐라 너를 믿고
내 뒤엔 우렁각시가 살아 지은 죄도 지워 주었다
*투우장이나 야구장에서 소나 투수가 대기하는 곳
ㅡ시집 『동두천 아카펠라 』지우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