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생명 말씀(2023.10.15.) 말씀/ 계시록 1:8 그의 이야기 (history)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우리가 요즘 읽고 있는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에서 최진석 교수는 이솝우화를 소개하면서 건너가는 인간. 여행하는 인간, 이야기하는 인간은 같은 부류라고 합니다. 건너가기 하는 인간이 탁월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삶도 옳고 그름의 묶이지 않고 나만의 신화를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이루어놓은 이미 정해진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스토리를 구성하는 삶, 즉 스스로가 삶의 스토리 구성자로서 내 삶을 이야기로 그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논변 논증과 이야기의 차이점을 말합니다. 논증과 논변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삶을 딱딱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적이 되게 하는데 이야기는 빈틈 공간이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하고 그 이야기에 참여하여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학술의 세계에서야 는증 논변이 필요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는 이야기를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왕자, 돈키호테, 걸리버 여행기 모두 이야기로 풀어내는 풍자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효과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교육 할 때 논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거짓날 할 때마다 코가 거지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 씬 효과적이라고 하였습니다. 호기심 많은 나무 인형이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 용감하고 이타적인 실제 소년으로 변화되기까지. 거짓말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황당하지만 재미있고 교육적인 생각걸이를 많이 주는 이야기입니다. 피렌체를 가서 저는 그곳이 그 유명한 동화 피노키오 저자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피노키오 목각 인형도 두개 사와서 하나는 엘리사벳 보내고 하나는 제 방에 걸어놨습니다. 알고보니 피렌체가 아주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미켈렌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한 곳이고, 단테의 생가가 있고,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받아 두오모 성당이 세워진 역사적인 곳입니다. 폴리갑 선교사님의 가이들를 받아 설명을 들어보면 모두가 그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피노키오 이야기가 쓰여졌는지. 미켈란젤로가 어떻게 해서 다비드상이 조각하게 돠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보면 재미있고 감동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 이야기가 우리 신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주 관계가 많습니다. 영어로 히스토리가 무슨 뜻인가 하는 글을 흥미롭게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History 어원학적으로 풀면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겠지만 신앙적으로 재미있게 his story라고 풀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그의 이야기 즉 예수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거시안적 안목으로 보면 사실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주님이 오셔서 종말을 맞는 창조 구속의 역사입니다. 곧 리스도 예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성경의 처음 시작은 이렇습니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요한복음 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처음 시작도 예수님 끝도 예수님 그 분 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빠지면 역사는 미안성이 됩니다. 복음은 모두 예수님에관한 감동스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아들을 보내어주셨는지, 그 아들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어떻게 벌래만도 못한 죄인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종처럼 섬기셨는지, 어떻게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어떻게 제자에게 은 30냥에 팔리고. 자기 백성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외치는 아들의 음성을 하나님은 어떻게 외면하셨는지, 그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찌를 죄인들 마져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이야기,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야기는 오늘날도 우리를 울게 하는 감동의 스토리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으며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이렇게 딱딱한 논변 농증 의 강해보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이야기는 그 분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함께 참여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만나시는 이야기는 모두 나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죄인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참여하시도록 완벽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죄인의 연약한 모습, 종의 보습으로 오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모두가 내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 나의 히스토리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아무런 스펙이 없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약자들이, 손가락질 받던 세상에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감동의 히스토리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도 달라집니다. 왜 우리는 예수 안에 들어가서 나만의 스토리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까? 그 이야기 속에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고,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과 행복을 전달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펙은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나 홀로 판검사 되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합니까? 재벌이 되면 무엇합니까?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은 교만해지고, 낮은 사람을 무시하고, 낮은 사람은 사람들은 자학하고 열등감에 빠집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만의 역사는 죽음으로 끝나고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스토리가 없으면 사람들은 결국 적자 생존에서 살아남는 것, 남보다 뛰어나고 화려한 경력을 쌓고, 좀 더 큰 집을 짓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 좋은 차를 타거나, 힘을 축적해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세상에 명예를 누리다 죽는 것 그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처럼 모든 것을 소유하고 누려보았어도 결국은 바람을 잡는 것 같고 헛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과거에 주님을 잘 몰랐을 때는 참 외로웠습니다. 세상에 자랑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인기끌만한 것이 없습니다. 스펙이 없습니다. 남들처럼 명문대 나온 것도 아니고, 능력이 많은 것도, 부요했던 것도 아니고, 목회 후에는 성도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작은 시골 교회에서 조용히 목회를 하는 이름없는 시골 목사에 불과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사랑의 본질을 붙잡고 책을 읽고 그 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나누며 스토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세계로 전파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자 전혀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아가니까 사소한 인생의 삶도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내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니 내 자신이 행복합니다. 나눌 것도 생깁니다. 이태리 돌로미티 로마르 다녀와서도 단순 여행이 아니라 30편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흥상 몫님도 마치 내가 여행을 하는 것같다고 하였습니다. 전에 미국에 계신 한번도 만나뵌적이 없는 광주 출신 한 선배 선교사님은 나의 스토리를 읽고 김선생님의 멋진 무도회장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곳 무안에 있는 제 무도회장에 와서 저와 멋 있는 왈츠와 스윙을 같이 추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연 오시면 낙지 염포탕도 대접해드리고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부족해도 나만의 삶의 이야기가 있으면 세게인들과도 나눌 것이 있게 됩니다. 저는 산장의 텐트, 바닷가 정원, 심지어 아침 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주 안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삶, 모든 비밀을 다 공개하며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올린 스토리가 이제까지 올린 글이 3,000개 가까이 됩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겠습니까? 무의미한 삶이 예수님의 역사 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남을 감동시키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약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강한 이야기, 가난하지만 부요한 이야기,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시골 변방에 있지만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스펙은 없지만 우리도 예수 안에서 나만의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 입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순ㅁ 때문에 나도 역사의 주연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사실 성경의 사건들이 다 스토리입니다. 별 볼일 없는 한 노인으로 늙어가다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구속 역사에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이야기, 90세나 되어 경수가 끊어진 여인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해변의 모래, 하늘의 뭇별과 같은 후손을 낳는 열국의 어미가 된 이야기. 이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꼴찌으 인생 이었지만 물매돌 하나로 거이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 왕의 진미를 거절하며 믿음을 지키다 사자굴에 던지어졌지만 살아나서 왕까지 감동시킨 다니엘과 친구들, 갈릴리 바닷가에서 평생 고기나 잡으며 어부로 살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하여 사람 낚는 어부가 된 이야기, 그리고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옥합을 깬 여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갑작스런 일에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십니다. 여인은 죄 많은 자신을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영접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해서 아낌없이 향유를 부어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예수님의 복음뿐 아니라 예수님과 관계된 모든 이야기가 히스토리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함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전해야 합니까? 예수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모두가 이야기꾼 입니다. 베드로 전서 2:9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곧 그것이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자례입니다. 우리도 그의 이야기 히스토리를 써내려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신격호만 우유배달 한 것이 아니라 이명남 집사도 우유달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전국 1등 기자상도 받고 또 계속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기자라고 해서 다같은 기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천국 취재, 하나님도 인터뷰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신과 인터부를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신이 말했습니다. "그래.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네. 시간이 있으시다면.." 신이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나의 시간은 영원.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지. 그래 무슨 질문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가?" 그가 물었습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습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신이 그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그런 다음 겸허하게 말했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 밖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신이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하기를..언제나 모든 방식으로.." 이정도는 되어야겠지요. 하나님까지 취재하는 최고의 기자! 앞으로 주안에서 나만의 히스토리가 있는 멋진 기사를 써내려가는 독특한 기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스토리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만들어가면 됩니다. 서광호 목사님은 전기 기술자가 되어 삶의 현장에서 이방 영혼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계시고, 지홍집사님은 강진 청산도 소안도 섬들을 돌며 우유배달하며 주님의 히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스토리가 이긴다 책 저자 김정태씨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혹은 주변 상황을 살피고, 환경을 탓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자신을 긍정하고, 지금 당장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 당신은 보이는 것보다 크다. 헷세의 말입니다. 최광휴 선고사님도 지금 함평에서 딸기 농법을 배우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왕년에 필리핀 선교사로 가서 야심차게 학원사업을 하고, 대학까지 세우고 직원 100명 이상을 거느린 사장이 되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도 많이 체험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내 자신은 혁명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화제 사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절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다시 시골 함평에 농막을 허락하시고 땅을 갈고 나무를 심게하시고, 농사 일을 배우게 하시며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를 시키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최광휴 선교사님을 더 큰 그릇으로 빚으시고자 우주교회를 만나게 하시고 우주적 마인드를 심고 계십니다. 필리핀의 마인드를 가지고 다시 필리핀으로 가면 안됩니다. 이제는 우주적 마인드를 갖고 필리핀을 섬겨야 성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계속 완성될 때까지 하루하루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며 준비하시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어떤 학위 한 장,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최고 스토리 인생을 사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스펙은 없어도 스토리는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스토리가 있으려면 이것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진정성 그리고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용 있고 나눠줄 수 있는 스토리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 들 모두가 예수님의 히스토리 안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히스토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