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의심
화두공부를 바르게 하려면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화두를 의심해야 한다.
철저한 의심이야말로 화두를 제대로 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예를 들어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왜 뜰앞에 잣나무라고 했을까”, “부모가 태어나기 이전,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일까?” 하며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으로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그 의심을 풀어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각할 수 있는 길이 막힌 지점에서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의심해 들어가는 것이다.
화두에 의심이 생겨 간절하게 의심을 지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의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이것을 의정(疑情)이라고 한다. 의정이란 화두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감정이란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슬픈 사연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면 기쁘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다. 화두에 대한 의정도 이처럼 화두에 대한 의심이 감정이 돼 자연스럽게 올라오고 지속되는 것이다.
의정-의심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
의단-의정이 한 덩어리로 뭉쳐짐
어느 선지식은 이렇게 말한다. “생사의 관문을 타파하지 못했다면 의정이 불현듯 일어나야 한다. 그것을 눈썹위에 맺어놓고 놓아버리려 해도 버릴 수가 없고, 쫓으려 해도 쫓을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렇게 의정이 생기면 억지로 화두를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화두에 몰입하게 된다. 의정이 순일하지 않고 화두가 살아있지 못하면 이는 무기에 떨어진 것이다. 무기는 고요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다. 편안해서 좋기는 하지만, 그것은 생명이 없는 죽은 나무와 마찬가지다.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에서 깨끗한 마음 작용이 맹렬하게 일어나야 살아있는 마음이다. 마치 팽이가 아주 잘 돌아갈 때, 멈춰 있는 듯 고요해 보이지만, 전속력으로 움직이듯이 말이다. 따라서 고요한 가운데서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화두가 사라지면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화두삼매에 들면 화두와 내가 일치돼 화두가 또렷또렷 들려오며, 그와 동시에 어디에도 동요됨이 없이 고요한 평정을 이루게 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한다. 또렷또렷하고 고요하고 고요하다는 뜻이다. 즉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하면서 번뇌가 일지않아 마음이 아주 고요하다는 것이다.
화두를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면 의정이 무르익어 한 덩어리로 뭉쳐지는데, 이것을 의단(疑團)라고 한다. 나와 의심이 한 몸이 될 때 화두는 또렷한 한 조각을 이룬다. 화두와 내가 하나로 혼연일체가 되어 떼려 해도 떼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상태를 타성일편이라 한다. 나와 화두가 단단히 뭉쳐져 타성일편이 된 상태를 은산철벽이라고 한다.
은산철벽은 은으로 만든 산, 철로 만든 벽이다. 그 두께도 알수 없는 산과 벽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떡하니 버티고 있다. 바람도 통하지 않고, 위로 날아갈 수도, 땅을 파서 통과할 수도 없다. 은산철벽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어 한발자국도 나갈수도, 물러설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의심으로 똘똘 뭉친 화두의 은산철벽을 뚫고 나가야만 비로소 대자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화두 관문을 뚫고 나갔을 때 어느 것도 가로막을 것이 없는 푸른 허공이 펼쳐진다. 태고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길이 막힌데 이르러 철벽에 부딪치면, 마주하는 생각과 허망한 생각이 아주 고요해질 것이다. 그 공부는 물을 뚫는 밝은 달빛과 같아서, 자나깨나 한결같은 경지에 점차 이르면 번뇌는 쉬고 빛은 나려 할 것이다.”
자료제공=조계종 출판사
[불교신문 2411호/ 3월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