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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교 18회 동창
충남 서천 '동자북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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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리갈대밭도 일품이며 한산 부여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또 눈에 띠는 생소한 단어 큰뜸, 건너뜸,,, '뜸'은 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을 말하는데 여행 수없이 다녔어도 이런 안내판은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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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북 마을은 인구 130명 정도의 아담한 마을로 마을 중앙에 위치한 '큰뜸'을 비롯하여 넓은 들판이 있어 이름 붙여진 '들땡이', 산자락에 위치한 '넓박굴', 산자락 모퉁이에 위치한 '구석뜸' 4개의 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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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자북 마을 지명 >
* 큰뜸 : 가장 중앙에 위치한 마을, 비교적 다른 마을에 비해 크게 형성되었다 하여 큰뜸이라 부르며 본래 나씨가 많이 거주하였다
* 웃뜸 : 큰뜸에서 넓박굴로 가는 길에서 산쪽에 위치한 곳이다. 큰뜸 위쪽에 위치한다 하여 '웃뜸'이라 하고, 큰뜸에 비해 작다 하여 '작은뜸'이라고도 한다
* 냉골 : 축봉산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려 올달샘을 이루었는데, 그 물이 워낙 차서 냉골이라 부른다
* 구석뜸 :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하여 구석뜸이라 부르며, 냉골과 큰뜸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구석뜸 뒤의 낮은 언덕을 가로지르면 큰듬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금성 나씨의 재실이 1963년도에 건립되어 지금껏 보존되어 있다. 1채는 공가이고 1채는 헐렸다. 이곳은 '최뜸'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경주 최씨가 이곳에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들땡이로부터 구석뜸으로 이어지는 곳이 최씨 거주지였다
* 들땡·들땡이 : 신성리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 마을로. 들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하여 들땡이라 부른다
* 건너뜸 : 웃뜸과 큰뜸의 건너편에 위치한 마을이다 가장 양지바른쪽에 위치해 있다. 마을 위쪽으로 동산이 길게 늘어서 있으며, 산 아래 집들이 모여 있다
* 넓박굴 : 웃뜸에서 일광재쪽으로 길게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위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 도렬 : 동자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로, 구현리로 돌아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하여 도렬이라 부른다
30여년 전에 마을 공공시설로 건립한 정미소가 들어섰는데, 운영이 원활하지 않아 지금은 개인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현재 4호만이 거주하고 있으며, 정미소가 건립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 동구레산 : 국도 21번에서 신성리로 나뉘는 지방도로를 따라 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로 동구레산에 위치해 있어 동구레산이라 불린다
* 바우백이 : 신성리로 이어지는 693번 국도변에 위치한 마을로, 동자북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초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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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로 살짝 엿본 옛 모습 그대로의 집
마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가려다가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이고 트럭에 큰 북이 실려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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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북마을의 동자북이라는 명칭은 동자가 북을 치는 형국이란 데서 유래되었으며, 백제의 왕자를 지키기 위해 나당연합군과 싸웠던 19명의 아이들에 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백제와 나당과의 전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열아홉 명의 아이들이 건지산 중턱에 모여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매일 싸움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도 "원님한테 찾아가 사움터에 보내달라고 사정해볼가?" 그러면서 나라를 걱정하곤 했다
부모에게 "사비성은 나당군에게 점령됐고 의자왕은 도망가다가 돌아와 항복을 해서 백제는 이제 나라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믿기지 않은 현실에 시름에 잠기다 예전처럼 싸움놀이를 하는 시간에 산에 모였지만 며칠 내내 싸움놀이는 하지않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날 성안에서 백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궐기운동이 일어나자 아이들은 그제서야 다시 싸움놀이를 시작하여 북 두 개를 구해 아래 위에서 북을 치며 격돌하는 싸움놀이를 했다.
사비성은 떨어졌으나 그들이 사는 곳엔 도승과 왕자 그리고 좌평 한 명이 살고 있어 성안 사람들은 곧잘 뭉쳐서 씨움터로 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개선하곤 했다.
아이들의 싸움놀이는 계속됐고 이곳에 머물던 왕자에게도 그들의 싸움놀이가 알려져 어느날 왕자가 직접 그들을 찾아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크게 기뻐하여 많은 음식을 차려줬다.
세월이 흐르고 날이 지나면서 이곳에 일어난 군사들의 사기가 시들시들해질 무렵,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흙 범벅이 돼 싸우는 그들 앞에 다시 왕자가 찾아왔다.
초라하게 비를 맞고 있는 왕자를 보며 한 아이가 "왕자님 기운 차리세요"라고 말하자 왕자가 "나는 그대들을 믿노라"하며 손짓함으로 아이들은 왕자의 손짓대로 몽둥이를 들고 성안으로 들어가 그날부터 왕자를 지키는 용맹스런 부하가 되었다
왕자의 군대는 잘 싸웠으나 싸움터에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성안 사람들은 몰래 피난을 가서 성이 텅 비게 되자 나당군이 쳐들어왔다
왕자를 지키던 아이들은 성을 지키라는 왕자의 분부대로 성벽에 올라가 싸우기 시작하다가 성안이 적에게 포위되었음을 눈치 채고 성을 빠져나가 야습을 하면서 적진지로 들어가 얼마동안 싸우다가 후퇴하여 건지산을 거쳐 동자북 뒷산을 올랐는데 그들이 산에 올랐을 때는 대부분이 죽고 부상당해 있었다
그들은 그곳이 자신들이 죽을 자리라고 생각하며 흙을 파고 돌을 놓아 벽을 쌓았다.
새벽이 되자 적이 산으로 올라오는 게 보이고 적이 가까이 오자 "북을 쳐라 적이다" 하고 외치는 한 소년의 소리를 들은 부상당한 아이들은 창칼을 들고 맞서 싸웠다.
북소리는 요란하게 울려퍼져 곳곳에 아우성과 신음소리가 들렸고 해가 뜨면서 북소리도 멈췄다.
마지막 남은 열아홉 명의 동자들이 북소리와 함께 모두 전사한 것이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북소리가 들려오고 천둥 번개를 동반한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고 산의 모양이 점점 변해갔으며 열아홉 명의 아이들은 자연스레 땅속에 묻히게 됐다.
시체가 완전히 묻혔을 때 북소리와 빗소리가 멈췄다
그 후 비가 내리는 날에는 땅속에서 동자들의 북치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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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서천문화원 원장님, 한국문화원 연합회장님, 서천군수님, 서천군의회 의장님도 참석하시어 길놀리 공연을 시작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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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한 공간에는 소곡주 만드는데 사용되는 도구 '동자북 마을 모시'에 관해 전시되어 있다
동자북 마을에서는 충남무형문화재 한산모시짜기 1호로 지정된 나성덕씨를 주축으로 들댕이 3명, 큰뜸 5명, 구석뜸 7명으로 총 15명이 모시를 생산하고 있으며 모시생산 장소는 구석뜸에 위치한 모시방(전금순씨 자택)이 있어 주로 모시굿을 생산한다
소곡주(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는 한산면에 생산되는 술의 일종으로 1,5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맛과 향이 뛰어나 한번 맛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고 하여 일명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문헌인 '산림경제' 와 '동국세시기' 등에 소곡주에 대한 기록이 있다
전하는 바로는,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이 주류성에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소곡주를 빚어 마셨다 하며 조선시대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한산지방의 주막에 들렀다가 소곡주의 맛과 향에 사로잡혀 한두 잔 마시다가 과거날짜를 넘겼다는 일화도 있다
< 소곡주 제조과정 >
누룩제조 : 통밀을 거칠게 빻아 따뜻한 물에 넣고 버무린 뒤 한 달 정도 배양한다
밑술담그기 : 맵살을 물에 불렸다가 가루로 만든 다음 물을 내려 찜통에 쪄낸 후 이것에 누룩침출액을 합하여 비빈 뒤 3일 동안 발효시킨다
덧술만들기 : 찹쌀을 찜통에 쪄서 고두밥을 만들고 완전히 차게 식으면 밑술과 누룩엿기름 물을 넣고 비벼 땅에 묻은 항아리에 담아 고추와 메주가루를 넣는다
숙성하기 : 저온에서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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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곡주와 어울리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도 전시되어 있다
바삭바삭 고소한 '모시감자편부각'은 지난 여름에 저장해 두었던 모시잎에 감자를 얇게 썰어 두어 말렸다가 튀긴 음식이다
미나리부침, 호박고지떡볶이, 쭈구미 조림, 꽃게탕, 전어구이, 닭고기더덕냉채, 두부전골, 모밀전병, 늙은호박김치 등도 소곡주와 궁합이 맞는 음식이다
특히 깎두기 담듯 해서 먹는 '늙은호박김치'는 서천의 향토음식으로 예전부터 먹어왔지만 현대인들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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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안에는 소곡주가 가득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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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체험행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동자북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발전시키고 도·농교류사업을 펼치기 위한 취지로 조성된 '한산 소곡주 체험관'이다
체험관은 체험실과 술 저장시설이 있으며, 대대로 소곡주 제조 기술을 배워 온 한산지역 할머니들이 강사가 되어 소곡주 제조법을 가르칠 것이다
소곡주 제조실은 1.8ℓ로 연간 2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갗추었고, 친환경 원료 곡류생산, 저장시설을 갖추었다
찾아가는 길 : 충남 서천군 한산면 동산리 136-1번지 >> 서천문화원 ☎ 041)95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