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숙의 미학 에세이 (42)
오르페우스가 애끊는 노래를 부르자
탄탈로스는 목이 마른데도 잠시 물 마시는 것조차 잊었다.
악시온의 바퀴도 정지했다.
독수리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것을 잠시 그쳤고,
다나오스의 딸들은 체로 물 푸는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시시포스도 바위 위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복수의 여신들이 눈물을 흘린 것도 그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데스도 페르세포네도 거부할 수 없이 에우리디케의 이름을 불렀다.
<키스(연인)> 클림트 캔버스에 유채 180x180cm 1907-1908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갤러리
음악의 신 아폴론이 사랑한 오르페우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명실공히 대표작이랄 수 있는 <키스(연인)>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화가이며 빈 분리파를 이끈 구스타프 클림트가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그의 절정기인 1907년에서 1908년 사이에 그린 유화이며 애초에는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작품은 오스트리아에서는 국보 대접을 받으며 벨베데레 궁전에 그의 많은 작품들과 함께 모셔져 있다. 당국이 이 작품만은 결코 외부로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기에 직접 그곳에 가지 않으면 원작을 감상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사방 1.8m의 대작인 그림의 화면은 어두운 금색을 배경으로 밝은 금빛이 남녀주인공을 감싸고 있으며 발치에는 다채로운 꽃들이 만발한 풀밭이 펼쳐져 있다. 남자는 무채색의 기하무늬와 소용돌이무늬의 옷을 입고 여자는 동그란 무늬가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작품 제작 당시 유행한 아르누보와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보여주는 크고 작은 패턴 위에는 금박 은박의 장식물을 덧붙여서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몹시 화려하다. 남자의 기하학적 흑백 모티프는 남성성을, 여자의 꽃과 원형 패턴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자연스레 느끼게 한다.
수수께끼의 알레고리를 가득 지니고있는 것으로 보이는 작품답게 이 그림의 모델과 배경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이들이 그림 속 남녀를 클림트와 그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로 추측한다. 그는 평생 정신적 연인과 육체적 연인을 철저히 분리하여 여성들을 대했다. 수많은 여성과 끊임없이 염문을 뿌리며 성적으로 문란했지만 플뢰게와는 어떤 육체적 관계도 맺지 않은 채 끝까지 정신적 사랑을 유지했다. 그리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918년 56세로 운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은 이도 플뢰게였다.
미술사학자들은 그림 속 연인들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pheus and Eurydice)라고 추정한다. 에우리디케는 뱀에 발목이 물려 죽었는데, 작품 속 여성이 풀밭에 맨발로 있기 때문이다. 정작 클림트는 아폴로가 다프네에게 키스하는 순간을 묘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림의 여러 정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자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로 보는 것으로 더 풍성한 스토리를 풀어나갈 수가 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중에 최고의 시인이며 음악가이다.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하면 온갖 동물들이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매혹적인 노래를 불러 사람을 유혹해서 죽이는 것으로 악명높은 바다의 괴물 세이렌조차도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리라 연주에 막혀 처음으로 사람을 유혹하지 못했다.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결혼한 지 얼마 못 가 뱀에 물려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되찾아 이승으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는 노래와 연주로써 자신의 앞을 막는 이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마침내 명계로 건너가는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 저승문을 지키는 세 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개 케르베로스 등이 그의 노래에 감동하여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저승에 도착하여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를 만나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에 역시 그의 절절한 연주가 하데스의 귀에 들려서 그를 불러오게 했다. 하데스가 오르페우스에게 산 사람이 겁도 없이 지하세계에 온 이유를 묻자, 그는 말문이 막혀 눈물만 흘렸다. 재차 묻자, 리라의 현을 연주하고 점차 입이 열려 노래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에 결국 저승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마저 감동하였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단, 저승을 벗어나 이승에 다다를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의 영혼을 데리고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에는 순조롭게 보였다. 그러나 저승을 벗어나려는 찰나, 아내가 잘 쫓아오는지 문득 의심이 들었다. 길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빛을 보았을 때 더는 참지 못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았다. 순식간에 에우리디케는 안개의 정령으로 변하여 하데스의 집으로 사라져 버렸다.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연주하며 다시 저승문을 두드렸지만 길은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들의 두 번째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클림트의 <키스> 장면은 아내가 뱀에 물려 죽어가는 순간의 첫 번째 이별 모습이거나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에우리디케가 저승으로 되돌아가는 두 번째 이별의 순간 모습일 것이다. 묘하게도 그림의 화려한 외양은 오히려 이별의 순간의 애절함을 부각시킨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무모하다는 것을 말한다. 아폴론은 음악의 신이고, 인간 중에서 최고의 음악가는 오르페우스다. 그는 트리키아 왕 오이아그로스와 뮤즈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다.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아 최고의 음유시인이자 노래와 현악기 연주에 조예가 깊었다. 이를 눈여겨본 아폴론이 그를 파르나소스산으로 데려가서 그에게 황금 리라를 주고 음악을 가르쳤다. 이렇게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최고의 음악가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신의 총애를 받아도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고 죽음을 극복할 수도 없다.
이 신화는 성경의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탈출하다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모티브가 연상된다. 하지만 그때는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는 거였고, 여기서는 남편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보려고 뒤돌아보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렇듯 많은 신화와 전설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얘기가 들어있다. 기억이라는 지층의 두께를 쌓지 말고 저 높은 존재를 향해 앞만 보고 가라고 한다. 뒤돌아보면 돌이나 소금 기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설화들은 그러니까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내리기 시작하면 재앙이 오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그러나 자각은 기억의 집적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자각을 통한 각성의 바탕에서 존재에 대한 성찰과 문명의 퇴적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신의 경고를 무시한 인류는 운 좋게도 아직은 살아남아 있다.
홀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상심에 잠겨 지내며 그를 흠모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트라키아의 디오니소스 제전에 참가한 여인들이 자기들을 무시하는 오르페우스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갈갈이 찢어 죽이고 말았다. 그의 머리만이 찢어지는 것을 면했는데, 머리와 리라는 헤브로스 강에 떨어져 바다로 흘러갔으며 그 동안에도 그의 머리는 에우리디케의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 레스보스섬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머리를 건져 매장하고 신전과 신탁소를 세웠다. 그 이후 이 섬 사람들은 시적인 소질을 물려받게 되었다. 오르페우스의 신체 조각은 뮤즈들이 모아 묻어주었고, 그곳에서 지금은 밤 꾀꼬리가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고 한다. 오르페우스가 죽을 때 부서졌던 리라는 제우스가 하늘의 별자리로 가져가서 거문고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오페라와 인연이 깊다. 오페라는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의 ‘카메라타(camerata)’라는 예술가와 귀족들의 모임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복원하기 위한 실험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1600년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케’다. 또는 1607년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본격적인 오페라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오페라가 모두 오르페우스 신화를 소재로 삼았다. 그만큼 이 서사구조에 극적인 요소가 풍부하다는 반증이다.
오르페우스 오페라의 최고 인기작은 글루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1762)다. 그 중에도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부르는 아리아 '에우리디체 없이 어찌 살까(Che faro senza Euridice)’가 심금을 울린다.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한 메조소프라노들이 불렀고 자루스키 등 카운터테너들의 단골 곡이기도 하다. 파바로티의 고음이 빛나는 녹음도 귀하다.
오페라 외에도 하이든의 <철학자의 영혼(L’anima del Filosofo)>(1791)에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하프 연주를 주로 하는 리스트의 교향시 <오르페우스>가 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음악 <오르페우스(Orpheus)>(1948)를 작곡했다.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는 1858년, 나폴레옹 3세 치하 시대에 당시 가식적이고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상류사회 부부를 풍자하기 위해서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를 상영했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패러디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현대적으로 해석한 세련된 풍자극이 다양하게 공연되고 있다.
브라질의 카니발을 소재로 하여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비극적인 사랑을 각색한 마르셀 카뮈 감독의 영화 <흑인 오르페 (Orfeu Negro, 1959)>도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현란한 라틴문화와 그와 대조되는 현대적 조형미가 절묘하게 섞인 수작이다. 영화주제곡 <카니발의 아침(Manhã De Carnaval)>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회화와 조각에서는 루벤스를 비롯하여 너무나 많은 이들이 이 소재를 다뤘다. 음악이라는 예술을 바탕으로 지고한 순애보와 저승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은 인류가 가진 관심사 중에 가장 큰 카테고리인 사랑, 죽음, 예술을 두루 망라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파나센코 <Orpheus and Euryd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