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함민복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1962년 충북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우울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졸업 서울예대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꿈 위의 그림자 / 심재상
너무 오래 당신은 삼인칭으로 왔습니다 들판 위를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 언뜻언뜻 내 꿈 위를 지나가는 당신 그림자 나 거기 바닥 없는 집을 세우고 누우면 안 될까요 잠들면 안 될까요 딱정이처럼 단단해진 은유의 옷을 벗고 이젠 당신을 당신이라 부르리라 내 맘 먹는 날 꿈속에서도 당신을 날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 텐가요
도대체 언제까지 나의 이 침묵만이 당신의 입김인가요
1955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3년 계간《문학과 사회》로 등단 현재 관동대 프랑스문화학과 교수로 재직중 시집 『누군가 그의 잠을 빌려』, 『넌 도돌이표다』 저서로 『노장적 시각에서 본 보들레르의 시세계』등 |
운동장을 가로질러 간다는 것은 / 유홍준
가로질러 간다는 것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간다는 것은
길쭉한 사람이다 다리도 길고 목도 길고 뒤통수도 길고 귀도 긴 사람이다 어깨 축 처진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다 제 삶이 어떤 건지 한 번 중간 점검해 보는 사람이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한 가운데 서 보는 사람은
차마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사람, 흙먼지를 한 번 오지게 뒤집어 써보는 사람이다 어디 피할 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이다 마치 고문 당하는 사람이고 마치 숙청당하는 사람이다 모름지기 인간의 그림자 가 이렇게 길고 이렇게 홀쭉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사람이다
가로질러 간다는 것은 스스로 고개를 꺾는 것이다 그림자 중에 가장 긴 그림자는 운동장에 드리운 그림자다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2005년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 |
모래내 그림자극 / 박준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골목은, 왼편 담벼락과 오른편 옹벽처럼 닫혀있다 막 올려다본 하늘이 골목처럼 어두워지고 있다 어느 하루처럼 환하게 번지기 시작하는 외등을 보면 사람의 몸에서 먼저 달려나오는 것이 있다 오늘도 골목에서 너는 그림자였고 나는 신발을 꺾어 신은 배역을 맡았다 서로 다른 시간에서 유영하던 그림자들이 한 귀퉁이씩 엉키고 포개지는 일은 몸의 한기를 털어내려 볕 아래로 모이는 일과 같다 집시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림자극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나와 처음으로 스친 그림자는 담에 널린 담요를 걷어 한쪽 다리가 없는 비둘기를 감싸안고 다닌 적이 있다 그림자는 비둘기를 날려주고 담요를 다시 널어놓았다 그 그림자는 옆으로 걷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다 다음 그림자는 비디오테이프의 같은 장면을 서른 두 번 돌려보고 집에서 나오는 길이다 열한 번째 같은 장면에서 그림자는 울었고 스물 여섯 번째 같은 장면에서 그림자가 사정을 했다 그림자는 말 더듬는 일을 즐겨 할 것이다 내 그림자가 길게 따라가고 있는 그림자는 언젠가 버스 옆자리에 함께 앉고 싶은 그림자다 다시 말하지만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두운 골목, 사실 사람의 몸에서 그림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노래다, 울지 않으려고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은 하나 같이 고음이다 노래가 다음 노래를 부르고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붙잡는 골목이 모래내에는 많다
1983년 서울에서 출생. 200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그림자에게도 우산을 / 길상호
차마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있어 그림자 하나씩을 이끌고 왔다 비 내리는 골목 술집을 찾다가 불빛 아래 출렁이고 있는 사람들 그늘진 말들만 모두 담고 있어서 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씻겨도 씻겨도 어두운 사람, 술잔을 비우면서 우리들은 또 혓바닥에 쌓인 그늘을 보태놓겠지 빗방울이 지우려고 세차게 내려도 발목을 놓지 않는 그에게 살며시 우산을 씌워주었다 발목에 복사뼈를 심고 기다린 무릉도원에 닿으면 그도 일어나 걸을까 발바닥을 함께 쓰는 이곳에서는 손잡아 일으킬 수 없는 사람, 그를 위해 처음으로 내 어깨가 젖었다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재학. 청림문학 동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그 노인이 지은 집> 당선 시집<오동나무안에 잠들다><모르는척> |
꿈꾸는 그림자 / 이선애
엄마는 발목을 묶은 채 나를 끌고 다닌다. 언젠가 엄마의 등 뒤에서 무게를 잃고 떨어진 기억이 있다. 나는 엄마가 벌인 가지, 빛의 이파리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등급 없는 장애아다.
일요일 오전 아홉시, 나무처럼 산비탈을 오른다. 산을 오를 때마다 왜 엄마는 가파르고 위험한 길로만 나를 데려가는 걸까. 나는 떨어져 내리면서 태어나는 존재, 서어나무, 맥문동, 침엽의 향기 덧씌우며 내려앉는다.
어둠의 세계를 떠도는 빛에 이름을 붙인다. 삶이라는 바닥의 굴곡과 강도와 마찰을 체험하는 것이 즐겁다. 엄마의 몸을 줄였다가 늘이고, 숨기고 꾸미는 것은 나의 일과, 그것은 내가 늘 자연과 인간의 합체를 꿈꾼다는 증거다. 나는 매순간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난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서정적으로 살다가 형식적으로 죽고 싶다. 어느덧 슬금슬금 시간의 검은 멍이 땅바닥에 나를 파종한다. 나는 환하게 들어올려져 그림자처럼 사라진 텅 빈 엄마를 불러본다.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7년 불교신문 신인상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보름밤 종려나무 그림자에 실려 /김선우
부두를 돌아 상여가 나가는 걸 지켜보는 계집애 둘 훌쩍이는, 달빛
가장 낮은 해변까지 내려온 상여를 맞으며 종려나무 그림자가 눕네
어떤 비밀을 알고 있으면 저토록 산산이 찢어진 잎사귀가 상여를 이끄는 손가락이 되나
밑을 다 벌린 채 그보다 더 밑까지 흘러들어온 잔물결, 훌쩍이는 아이들의 상한 그림자를 씻어주네
뜨거워 손에 쥘 수 없던 스물한 살 엄마의 심장을 갓 꺼낸 둥근 빵처럼 나란히 들고 돌아서는 계집애 둘 어리고 아름다운 것들 속엔 치욕이 많아 보름밤엔 손에 닿는 무엇이나 맥박이 잘 잡히네
*가난한 항구의 섬 소녀들이 미혼모가 되는 일이 세상엔 드물지 않았다.
1970 강원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등단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동화집 : 『바리공주』 산문집 : 『물밑에 달이 열릴 때』 시힘동인 |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 박주택
누군가 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은행잎 떨어지는 그 수직으로 꽃을 부르는 노래다운 노래는 눈보라에 묻혔을 것이다
감히 죽지 못해 자욱한 바람에 긁히는 발자국만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보도블럭에 섞고 그 길을 따라 저녁의 긴 그림자 저물녘을 넘어가네
이제 누군가의 언저리에서 눈물로도 녹이지 못하는 차가운 불빛 어느 외진 골목에서 가슴에 섞이는 눈발에 흐느낌을 멈출 때
참는 것만으로는 저를 부를 수 없어 모반의 칼날을 바로 세우네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꿈의 이동건축』,『사막의 별 아래에서』외 시론집『『낙원회복의 꿈과 민족정서의 복원』외
그림자 / 안시아
뜨거운 한낮은 햇빛 가마터다 달궈진 태양이 먹빛으로 빚어지는 오후 그림자가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다 태양은 제 몸을 달궈 가장 어두운
그늘 하나씩 만들어주는 셈,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 빛으로 반대편을 반사한다 태양을 향한 직립이 담벼락 그림자를 휜다 길 한 켠 나무 아래로 두 개의 그림자가 교차해간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에게 그늘의 경계를 지워 가는 것 바람이 햇살에 담갔다 올린 나뭇잎이 유약을 입은 듯 반짝이고 있다 담벼락에 그림자 문양이 하나 둘 스치고 발걸음은 물레처럼 골목을 회전시킨다 뜨겁게 재벌구이 되는 오후가 지나면 가로등이 높은 곳에서 몸을 데우며 둥근 저녁을 빚어놓을 것이다 세상의 굴곡은 거대한 도공의 손길이다
서울 출생 한양여대,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3 현대시학 등단 시집『수상한 꽃』
그림자놀이 / 박선경
세상은 혼자 놀기 좋은 그림자놀이처럼 당신과 나 사이를 일렁이지 여덟 개의 서랍을 차례대로 연 바람의 모양 성난 커튼을 사이에 둔 것처럼 우리는 천둥소리를 삼킨 늑대가 되거나 검은 머리의 독사처럼 정지해 있는 커튼 뒤, 두 주먹을 치켜세운 마주한 세상
당신과 나는 결투의 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 무엇으로든 물들어야하는 스크린 위로 번지는 그림자들의 몽상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으르렁거리던 두 주먹을 펴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떼들 우리의 창을 열고 어둠과 어둠을 포개어 사랑에 빠진 자신을 바라볼 수 없도록 물들어야하네 창안의 나는 당신이 꿈꾸는 그림자처럼 창밖의 당신은 내가 꾼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는 커튼 뒤에서
당신과 나를 꿈꾸고 있는 누군가
세상은 혼자 놀기 좋은 그림자놀이처럼 일렁이는 당신과 나 사이 바람의 그림자 배꼽 밑의 서랍을 열어 보이네
1973년 서울에서 출생. 숭의여대,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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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내온 나무 그림자 / 강신애
그 나무는 브니엘교회 입구 가지밭 모퉁이에 서 있었다 먼 세상을 내다보는 자세로 산책에서 돌아오는 어느 날 나는 꽃삽으로 나무 그림자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토막 난 그림자를 날라 내 방에 장판처럼 드리웠다 어둔 물관으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쪼그려 앉아 나는 습자지 같은 잎새에 혀를 대보거나 갈색 차를 마셨다 그림자는 조금씩 자라났다 가지밭 모퉁이 나무가 그러하듯 제 나무가 그리울 땐 시선을 옆구리 깊숙이 파묻거나 바람도 없는데 나를 떨어뜨릴 듯 가지를 흔들어대기도 했다 길모퉁이 나무는 없어진 제 그림자를 탓하듯 산책길의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그 나무 밑에 서본다 그러면 가느다란 가지를 활갯짓하며 내 발치로 고속 촬영하듯 빠르게 나무 그림자가 생겨났다 가로등 환한 밤, 우리는 이렇게 만나곤 했다
1961년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 1996년 『문학사상』당선 시집 『서랍이 있는 두겹의 방』 |
그림자 거울 / 김찬옥
해를 등지고 걸어보지 않았으면 보도블록 틈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꽃잎에도 나를 비춰보지 못했을 것이다 풀숲을 기어 나와 아스팔트 바닥을 활보하는 지렁이의 발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광장에서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있는 비둘기의 오만한 날개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랫도리로 찬송가를 끌고 다니는 고무장화의 눈을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머리보다 늑장 부리는 발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맹인 지팡이처럼 눈앞에 웅덩이도 더듬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해를 등져보지 않았으면 그림자를 앞세우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전북 부안 출생 1996년 <현대시학> 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2002년 시집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2009년 시집 <물의 지붕>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
그림자를 마신다 / 이윤학
장대비 그치고 관악산 삼림욕장 상수리 숲 산책로를 걸었다
약수를 마시고 아욱 쑥갓 텃밭을 따라 걸었다 늙은이들 호박 오이를 따 길가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남자는 자전거 짐칸에 생수통을 묶고 반백의 머리 숙이고 걸어가고 있었다 벤치에 손수건을 깔고 앉은 남녀는 번갈아 손금을 보는 중이었다
상수리 이파리들이 떨리고 빗방울이 몇 개 떨어져 빈 개집 합판 지붕을 쳤다
비산농원 울타리 푸른 철사 그물에 빗방울이 맺힌다 물린 밥상머리에 앉아 눈물 콧물 비벼 짜는 네 모습 어른거린다
판자때기에 눌러 쓴 먹글씨. 닭.오리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기울어 어린 느티나무 첫 가지에 얹혀 지내고 있다
196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구름 그림자 / 신용목
태양이 밤낮 없이 작열한다 해도 바닥이 없으면 생기지 않았을 그림자
초봄 비린 구름이 우금치 한낮을 훑어간다
가죽을 얻지 못해 몸이 자유로운 저 구름 몸을 얻지 못해 영혼이 자유로운 그림자
해방을 포기한 시대의 쓸쓸한 밥때가
사랑을 포기한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다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등 |
봄 그림자 / 최정례
산천동 간절히 가고 싶었지만 못 갔어요 병이 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 길인데 연초록의 어린 순을 내민 가로수들이 길바닥에 그림자를 눕혀 놓고 있었어요 나무 어린 그림자 밟고 지나가는데 내 속에 그림자도 막무가내로 누워버리겠다는 거예요 산천동 꽃그늘에 덮인 산동네는 얼마나 처연한 빛을 띠고 있을까요 나도 술을 마시고 취해 누워 헛소리를 할 수 있다면
그런데 늑대의 털을 걸쳐 입은 내 그림자 벌떡 일어나더니 어리고 생생한 잎을 먹어치우고 그것들 헤치고 달렸어요 달리는 버스 지붕 길가에 조그만 상자까지도 다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었어요 모르는 척 마구 밟고 갔어요 영혼이라는 게 있을라구요 상자곽 같은 게 무심코 흔들리는 나무가지 같은 게 빌딩 꼭대기에 약간만 석양이 남아 그 위를 붉은 구름이 더돌고 아이는 계속 열이 올랐어요 그림자 점점 자라 한 저녁을 덮어갔어요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0년「현대시학」에 시「번개」등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햇빛 속에 호랑이』등 다수 |
그림자들 / 이원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1992년 계간『세계의 문학』가을호에「시간과 비닐봉지」외 3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 1996년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2001년『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2007년『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현대시학 작품상(2002), 현대시 작품상(2005) 수상 |
흘러 다니는 그림자들 / 신지혜
사람은 없고 사람 그림자만 돌아다닌다 그림자들이 검은 자루처럼 밑으로 쳐진다 혹은 고무줄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기도 하고 형체를 바꾸기도 한다 벽이나 문지방에 붙어있기도 한다 가만히 보라 이슥한 저녁, 주체할 수 없어 쓰러지는 벽들을 떠받치는 것들은 모두 그림자들뿐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주인들 몰래 서로 몸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은 모른다 혹은 주인이 잠자리 들 때 몰래 탈출하기도 한다 그림자가 출몰하는 곳에선 늘상 그림자들끼리 주인을 팔아치우기 위해 암거래가 이루어진다 보았는가 거리를 떠도는 그림자들은 동작이 민첩하다 그림자들은 모의하여, 자신의 주인을 멀리 추방시키기도 한다 한때의 권력이 되었던 주인은 위기의 벼랑 앞에서 최후의 목격자인 자기 그림자 앞에 두 무릎을 꿇을 때 있다
지금 네 옆을 돌아보라 그림자들이 침묵으로 네게 반란한다
서울 출생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대시학 》제5회 신인작품공모로 등단 제3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 전, <시와 뉴욕> 편집위원 재미시인협회, 한국 문인협회, 미동부 한국문인협회 회원 뉴욕 중앙일보 컬럼니스트 한.영 대역시집'New York Poetry'(미동부한국문인협회 간) The Famous Poets Society' U.S.A (2001) New Millennium Poet '로 선정 시집 『밑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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