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진」에 대한 진실
기독교인에게는 비기독교인에 비하여 구별되는 특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타 종교시설에 대한 비우호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산 속에 있는 절간을 지나가게 되면 애써 외면합니다. ‘저 곳에는 진리가 없어!’ ‘저기에는 구원이 없어’ ‘저 모든 시설은 우상에 불과해!’ 그러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야!’ ‘괜히 다가갔다가 믿음 떨어져!’ 이러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해외여행에 나서면, 처음부터 타 종교 시설 방문은 제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국가도 많고, 가톨릭을 비롯한 힌두교, 회교 국가도 많습니다. 그러니 그런 나라들은 여행의 유익이 없을까요? 그 나라들에 대한 여행은 금지하는 것이 좋을까요? 기독교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분명히 가져야 할 줄 압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주님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기에 지구촌 구석구석에 선교사들이 파송됩니다. 흔히 말하기를 기독교인은 모두가 선교사라 합니다.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교회에 헌금하면 헌금의 일정 부분은 선교사를 위하여 쓰입니다. 해외에 선교사로 나가지 않더라도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그러니 비기독교 종교시설에 대한 신앙적 관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고후 10:4)
영적 싸움에서 ‘견고한 진’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고후 10“5)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타 종교의 대규모 시설이나 성경에 반하는 사상과 학문 철학 그 자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설이나 사상과 이데올로기 자체를 ‘견고한 진’이라 여기면서 기피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물리적 시설물이나 이념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견고한 진’이라는 표현이 쓰일 때는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 10:29절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하물며 7대 불가사의 등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시설물이라고 평하는 유물들이야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허락하에 지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성경만을 진리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반하는 것들에 미혹되어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심령에 이러한 불신의 성채가 쌓여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견고한 진’입니다. 성도는 이것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견고한 진은 물리적 시설 자체가 아니라 심령 안에 있는 비신앙적 장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