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가 중국대륙 통일하고 제일 먼저한게 자기들 발원지 요동반도 + 남만주에 있는 만주족들 전부 중원으로 강제이주 시킴 일명 "봉금령" 그래서 요동반도 + 남만주 지역이 사실상 빈땅이 되니까 조선인들이 압록강 , 두만강 건너서 땅 개척하고 정착함 . 근데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조선인들이 지금의 중국 선양시 , 지린시 가 위치한 곳 까지 내려와서 정착하니까 이게 당연히 청나라 조정에게 까지 보고되면서 청나라 관리와 조선 관리가 파견되면서 국경조약을 실시하는데 그게 '백두산 정계비' 임 . 근데 압록강은 강폭이 넓다 보니까 국경선이 분명한데 . 두만강은 강폭이 좁다보니까 국경선이 분명하지 않음 . 그래서 청나라 관리들이 백두산에서 흐르는 이 작은 산꼴강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정하자고 했고 청나라가 그 지역에 담벼락을 설치하도록 명령함 . 근데 ... 청나라 관리들이 국경선이라고 정한 그 강은 사실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였음 . 보통 강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정하면 강의 상류와 하류를 조사하고 파악해야 하는데 ... 청나라 관리들이 귀찬아서 안함 ㅋㅋ근데 조선 관리들은 몇개월에 걸쳐서 조사를 했었는데 ... 조선관리들이 " 어 ? 이거 두만강 아닌것 같은데 ? 쑹화강 까지 이어지는데 ? " 그걸 왕에게 보고함 . 당연히 조선 입장에서는 청나라 행정 실수이기 때문에 그냥 죽닥치고 무관하고 청나라 명령대로 백두산 정계비를 기준으로 세워진 비석 아래 강줄기를 따라 울타리를 설치함 . 그리고 그곳이 지금의 간도땅이 되었고 그곳에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하고또 왕과 관리들도 간도땅에 이주를 권장하기 까지 했음 . 그게 지금의 '조선족' 의 시초 탄생임 . 중요한건 ... 청나라가 이걸 150년 동안 몰랐다는게 함정임 ㅋㅋ 무려 자신들의 행정실수로 간도에 조선인들이 정착해 살고 조선행정기관이영향을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려 1860년 봉금령이 해제되고 여진족 , 만주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알게됨 ㅋㅋ 그게 간도분쟁의 시작이 됨 . 벌써 150년전 지난 일이다보니까 청나라가 조선에게 " 너네가 비석위치 옴긴거 아니냐 ? " 라고 까지 얘기함 ㅋㅋ근데 150년전 조선관리들이 청나라 관리들의 행정실수로 일어난 국경인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비석의 위치와 지형도 , 토문강이 흐르는 위치두만강이 백두산관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형도 그림 까지 무려 복사본 까지 100점이 넘는 지형도 그림과 상세기록 까지 적어놓음 . 사실상 빼박이라 반박도 못하고 이때가 청나라가 1차,2차 아편전쟁으로 개처맞고 또 러시아게 1860년 연해주를 할양받으면서 러시아가 조선의 간도 영향권을 지지하니까 청나라가 찍소리도 못함 ㅋㅋ 심지어 청일전쟁 이후 조선이 청나라와의 종속관계에서 독립국으로 국제사회에 인정받으니까 간도를 반환받아야 겠다고 무려 15차례나 30,000명을 동원해서 청나라군을 파견했는데 3,500명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조선군이 모두 격퇴하면서 사실상 간도지역을 조선이 실효지배 하게됨 ... 안타까운건 1905년 일본이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9년 청나라가 일본에게 만주철도/광산체굴 이권을 주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나라에 반환하겠다는 간도협약 체결하면서 사실상 뺏기게됨 .
출처: 향림자 방송 다시보기 원문보기 글쓴이: 정권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