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팔공산 자락의 오래된 사찰인 북지장사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유산인 방짜유기를 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2007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이봉주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은 방짜유기와 제작도구
등 1489점을 소장하고 있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지상3층.지하1층
규모의 박물관은 전시실과 더블어 영상실과 야외공연장, 체험장, 등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봉주 선생이 만든 특대징이 관람객을 반긴다.
'대징'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쇠북으로 법당에 걸어놓고 의식을 시작할 때 치는 징이다. 지름 161cm에 98kg의 무게를
자랑하는 특대징은 그 크기뿐만 아니라 소리의 울림과 퍼짐이 맑고 웅장한것으로 유명하다.
박물관에서는 방짜유기의 역사와 종류, 제작과정 등을 한 눈에 볼수있다.
전시실은 여러 종류의 방짜유기 수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로 크게 나누어진다.
유기문화실
입구에 자리한 전시실인 유기문화실은 유기에 대한 관람객들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도록 꾸며져 있다. 각종 유기와 영상. 사진 등의 전시물은 방짜유기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된다. 방짜유기 제작과정에는 방짜유기, 반방짜유기,주물유기 등이 있다.
석기시대와 청동,철기시대,삼국,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근대의 그릇들을 시대별로 나누어 전시해 우리나라 식기 문화의 변화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경상,전라,충청도를 비롯해 서울,경기도의 놋그릇들을 지역별로 분류,전시해 각지역놋그릇들이 지닌 특성을 파악할수 있다. 유기문화실 끝부분에서는 방짜기법으로 만든 각종 악기가 전시돼 있다.
악기는 방짜기법의 장점을 가장 잘보여줄수 있는 유기 제품으로 손꼽힌다. 심벌즈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인 자바라와 작은 여러개를 나무틀에 메달아 만든 운라등 여러 악기의 모습을 직접 볼 수있다.
또 한 바라,꽹과리,징,등의 소리를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다. 유기문화실 출구에는 나무나 금속등의 재료를 깎아 여러 기구를 만드는 갈이틀(가질틀)이 자리하고 있다. 갈이틀은 속도조절이 가능하고 거공하는 재료를 원형으로 다듬을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봉주 선생의 특대징:
박물관로비에 들어서면 이봉주 선생이 만든
특대징이 자리하고 있다. 큰징의 경우 제대로 된 소리를 잡는데만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방짜유기장 이봉주 선생님을 더 알아보기....
이봉주 선생은 방짜유기의 쓰임새와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인물이다. 방짜유기의 고장으로 유명한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에서 태어났다. 유기행사이였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방짜유기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레 가질수 있었다. 1948년 22세때 서울에 위치한 밥청양대유기 공장에 입사한 후 18개월 만에 공장의 방짜유기 제작을 총괄할 정도로 방짜유기 제작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1957년에는 서울에 평북양대방짜유기 공장을 설립, 방짜유기의 쇠락 속에서도 전통의 명맥을 잇기 위해 힘썼다.
1978년에는 자신의 유기공장을 경기도 안양으로 이전했으며 1979년 경기도 민예품 경진대회에 입선했다. 1981년 제6회 전승공예전에 입상하는 등 방짜유기를 알리는데 애썼으며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받았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축하 공연용 바라(놋쇠로 만든 라악기) 400쌍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이봉주 선생은 후손들에게 방짜유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평생 수집하고 제작한 유기작품을 대구시에 기증했고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이 설립됐다.
방짜유기란 무엇일까?
유기중에서도 방짜유기는 더욱 특별하다. 방짜유기란 구리와 주석을 78대22의 비율로 녹여 만든쇳덩어를 불에 달구어가며 망치로 두드려 만든 유기를 말한다.
망치로 금속을 두드려 만들고 반복적인 열처리가 이뤄지기때문에 방짜유기는 잘 휘어지거나 깨지지 않는다. 또한 일반 유기에 비해 광택이 뛰어나며 표면에 메자국(망치자국)
의 멋스러움이 남아있는 특징이 있다. 생활그릇 등의 식기를 비롯해 제사때 사용하는 제기 등이 방짜유기로 제작되고 있으며 징과 깽과리 등의 악기류가 방짜기법으로 만들어진다.
방짜유기의 명칭은 각 지방마다 다르다. 남한지방에서는 "방짜" 로 북한지역에서는"양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북한의 평안남도 정주군의 밥청지역에서 비교적 큰 물건을 망치로
드들겨 만들었는데 이때문에 큰 그릇을 뜻하는 '양대'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방자유기는 전국에서 제작됐지만 남한지역에서는 경남 함양군에서 방짜유기를 많이 제작했으며 경북김천에서도 징과 꽹과리 등의 농악기를 중심으로 방짜유기를 많이 만들었다.
방짜유기는 식품을 담고 보관하기에도 좋다. 은식의 따뜻함과 맛을 유지하기에 좋으며 살균효과도 높다. 방짜유기가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병원성 대장균인 o-157균을 살균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명의인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 주석은 자체로 상당한 살균효과가 있다.'고 적혀있는데, 주석은 방짜유기의 주성분 중 하나다.
방짜유기법으로 제조된 징과 꽹과리 등의 악기는 두드려도 깨지는 법이 없으며 그 소리가 아름답다. 쇳물을 금속 틀에 부어 그 형태를 만드는 주물 징의 경우 소리의 파장이 단순하고 멀리 퍼지지 않지만, 방짜 징의 경우 서로 다른두음파가 간섭을 일르키면서 소리가 커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는 '맥놀이 현상'이 나타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도 '맥놀이현상' 덕분이다.
물론 방짜기법으로 악기를 제작하는것은 석기류등을 만들때 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릇의 경우 모양만 잘 잡으면 되지만 징 등의 악기는 소리를 잡는 노력을 더해야 하기때문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인 '울음깨기" 공정을 거쳐야 방짜유기 악기가 완성된다. 큰징의 경우 제대로 된 소리를 잡는데만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재현실
재현실은 방짜유기 공방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유기 제작과정을 한 눈에 알아볼수 있다. 방짜유기제작으로 이름을 날린 1930년대 평안북도 정주군 남청마을의 유기공방과
유기전 등의 초가집의 형태로 재현돼 있다. 공방에서는 한복을 입은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이 방짜유기를 만들고 있다. 관람객이 디가서면 인형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방짜유기를 두드리는 소리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공방옆에는 유기전도 자리하고 있다. 갓을 쓴 채 장부를 정리 중인 가게 주인의 모습과 유기를 닦고 판매하는 점원의
모습이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기증실
기증실은 방짜유기장 이봉주 선생이 직접 제작한 작품 중 특히 예술적 가치가 높은 유기를 전시하고 있다. 기증실에 들어서면 음식이나 떡을 담는 방짜밥통이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반긴다. 이밖에도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거대한 그릇 모양의 종인 좌종 등 평소 볼수없는 특이한 형태의 방짜유기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은 전통 상차림에 사용된 식기류다. 우리나라 전통 상차림은 반찬 수에 따라 3.5.7.9.12첩 반상으로 구분되는데 여러형태의 반상기가 방짜유기로 재현돼 있다.
12첩 반상기는 임금님의 수라상에 9첩 반상기는 지체 높은 사대부 집안에서 썼고 일반 가정에서는 7첩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제사를 모시는데 쓰이는 제기류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대부 집안의 제례상에서부터 불교와 대종교의 제례상이 방짜유기로 재현돼 전시중이다. 이밖에도 천주교와 불교 양식이 어우러진 촛대 등 이봉주 선생의 다양한 창작작품을 기증실에서 만나볼수 있다.
재현실을 관람다하고 밖으로 나오면 상설체험장을 만날수있어요.
상설체험장에서는 징을 직접 쳐서 소리를 들을수 있는것은 물론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는 전통놀이인 투호를 즐길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넓은 정원과 벤치 등이 자리하고 있어
대구지역 유치원의 소풍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