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중에 쓰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댓글도 많고 조회수도 높네요.
입사제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무엇보다 대학들이 학교 평가를 취업률로 따지는 시대가 되어가거든요.
서울대, 카이스트 같은 대학들은 학문적인 성취와 대학원 진학, 그것도 외국 명문 대학원 중심 대학 진출을
중시할 수 있지만, 대학 교수직도 꽉 들어찬 시대에 그런 것은 대부분 대학에서는 그다지 현실적인
학생 진로 방향은 되지 못 하거든요. 취업을 결정하는 것은 사지 선다, 오지 선다 정답률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면접이 강한 학생들이 취업이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사가 점수 잘 나오는 학생 데려다가
학업 경쟁 시킬까요? 영업을 잘 하고, 마케팅 계획, 사업 계획을 잘 세우고 브리핑 잘 하고 외국 바이어와도
곧 잘 의사 소통하는 '인재'를 원하죠. 아니면, 현장 직원들 통솔 잘 하고, 애로 사항 제대로 파악해서
한정된 회사 자원으로 직원들 사기 진작하고 말썽 부리는 직원 꾸짖거나 달래서 사고 안 치게 다독이는
리더십 강한 일꾼 좋아합니다. 시험 점수는 최고로 찍어 올리는데 꼴통이고 자기 잘 난 줄 알고,
문제 생기면 엄마가 회사로 쫓아 오는 사원을 원하지는 않거든요.
카이스트 입사관에게서 들은 이야기 하나 해 드리죠.
아이돌 스타 서인영이 카이스트에 가서 입학 사정부터 시작해서 강의 듣고 레포트 내고 시험 보고
프로젝트 맡아서 수행하는 과정을 찍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이지만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겁니다. 거기서 내어 놓은 오픈 퀘스쳔(Open Question 정답이
따로 없는 질문)이 '우리 나라에 미장원이 몇 개나 될까?' 였습니다.
사람들은 예능 프로니까 재미있으라고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나오는 문제입니다.
단지 미장원이 아니라 이발관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최고의 점수를 딴 학생의 답은 이런 식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5 천만 중 남자가 반이니까 2천 500 만명이다. 남자들이 이발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지 않을까?
이발사 한 사람이 하루에 20 명 정도의 머리를 깍을 것이다.
이발관 하나에 평균 4 명 정도의 이발사가 일한다고 생각하자....
2500 만 / 25 = 100 만 100 만 /20 = 5 만 5 만/4 = 12500 개 정도...
필요한 논리는 몇 가지 간단한 나눗셈 밖에 없고, 데이타는 인구와 남자가 인구의 반일 것이라는 상식적인 것,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추정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설명하는 학생이 많지 못 합니다.
한 학생은 최고의 성적과 스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내신 2 등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1 등을 줄곧 했고,
모든 과목 1 등급, 최고 점수, 각종 경시대회 금상, 대상, 토익 토플 성적 만점, ....
이미 합격이 결정되어 있다 싶이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질문을 받자 입이 딱 막히고 말았습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터무니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최고의 과학 대학에서 왜 생뚱 맞게 이발소 숫자를 묻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몰라도 되는 질문이고, 과학과 상관도 없고, 무엇보다도 전혀 정답을 맞출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속으로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는 소리가 저절로 터졌겠지요.
학생은 한 10 분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창가로 가서 창 밖을 보면서 몇 분간 눈물만 흘리다가 그냥 나갔습니다.
입사관들도 당황했겠지요. 당시 입사관 한 분 말씀이
' 그 학생이 그냥 헛소리 한 마디만 했다면...' 그럼 기본 점수를 주고 그러면 그 최하의 기본 점수로도 그
학생은 합격했을 거랍니다. '모르겠는데요.' 라던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 '100 개' 혹은 '10 만개 정도'
라고만 했다 하더라도... 그런데 말 한 마디 안 하고 그냥 나가 버렸으니, 어떻게 점수를 줄 수 없어서,
0 점 처리 해서 불합격했답니다.
실제로 한국의 이발관 수는 그런 추정으로 만든 숫자에 근접합니다. 이 질문은 사실 유명한 페르미 파라독스 중
하나입니다. 페르미 라는 물리학자가 시카고에서 일하는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인지 추정하는 과정을 변형한
것입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고전적인 질문들은 맥락이 다 연결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응시자의 자질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제공하는 단기 수련 과정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의 숨겨진 잠재력을 일깨우는 과정을 통해 돈 안 들이고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입사관은 완벽한 지식과 정보를 갖춘 학생을 뽑자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답을 확인하면
답이 바로 확인되는 문제는 고등학교 이전에 끝납니다. 추정을 하고, 추정에 따르는 예측, 예측을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보다 타당성과 설득력 있는 예측을 도출해 내는 과감성, 호기심, 열정, 강렬한 지적 열의를 원합니다.
머리 좋고 공부가 많이 된 학생은 사실 얼마든지 있습니다. 입학생 1 천명 중 800 명은 이미 능력과 학습량을
훨씬 뛰어넘게 갖춘 영재고, 과학고에서 선발합니다.
저도 캠프를 시작하기 전 5 년 전에는 우리 나라 학생들이 이런 것을 잘 하는가 혹은 그런 식으로 배우질 않아서
어떨까 걱정했는데, 캠프에서 전략 시뮬레이션과 발표하는 모습을 5 년간 지켜 보았더니 그렇지 않아요.
어른들의 생각이 굳어 있는 것이지 학생들은 기회만 주고 격려해 주고, 적당한 분위기만 만들어 주면
충분히 자기 생각을 피력하고 또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캠프에서도 명사 초청 강연에 공을 들이고
좋은 강사를 섭외하고, 아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자극하는 경력을 가진 분을 모시려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아이들은 매일 앉아서 선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일입니다. 지겹게도
그것만 해 왔거든요. 최고의 강사는 이미 인터넷 강사로 다 떠 있어요. 어떤 사람이든 인터넷 강사들 처럼
잘 떠들고, 많은 자료 준비 되어 있고,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만큼 쇼맨쉽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건 차고도 넘쳐요. 아이들에게는 어설프더라도 자기 의견을 말하고 자기 아이디어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회만 주면 아주 잘 합니다. 되도록 자기 발표의 기회를 많이 주면 도움이
되고, 또 잘 합니다. 캠프 끝나면 한 마디 씩 소감을 말하게 합니다. 한 마디 해 봐 하면
토막 마디만 나옵니다. '재미있었어요.' '그저 그랬어요' 등
그러면 바로 앞으로 가서 질문을 합니다. 뭐가 제일 재밌었어? 뭐가 제일 시시했어? 오기 전에는 어땠고,
지금 느낌은 어때? 구체적으로 물어 보면 할 말이 다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 시키면 그 다음 학생은
좀 더 길게 이야기 합니다. 헛소리를 해도 웃어 주고, 뭔가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면 칭찬해 주고 격려하면
아이들이 끼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소 객쩍은 소리를 해도 낄낄거리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 주면
더 신나서 떠듭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받아 준다는 느낌을 주면 달라집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믿지 못 하면, 모든 것이 꽝입니다. 입사제 준비하는데 엄마 아빠가 머리 아프다면...
저는 사실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이 이런 과정을 즐기고 자기 멋대로 할 수 있게 해 주면 작품이
나옵니다. 자기의 생애를 만화를 그려서 표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무언가를
담아 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주입할려고 한다고 해 보세요.
'너는 왜 그런 끼가 없니?' '너도 한 번 저렇게 해 봐.' 표정에는 '제가 그런 걸 제대로 할까?' 의구심이
가득찬 표정으로 해 보라 하면 잘 하다가도 김이 새 버리겠죠.